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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와 빈곤

2019년 11월 7일 오늘의 책

진보와 빈곤

헨리 조지 | 현대지성 | 2019.05

분류 : 사회/정치/법률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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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조지의 집필 경위 헨리 조지는 식자공 생활을 했는데, 인쇄소에서 만난 한 늙은 식자공으로부터, “도시는 매일 발전하는데 왜 우리 노동자는 늘 이렇게 가난하게 살까” 하고 한탄하는 소리를 듣고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다 같이 가난으로 고통을 받는다면 그나마 덜 괴로울 텐데, 왜 어떤 사람은 아주 잘 살고, 어떤 사람들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이렇게 가난하기만 할까’ 하는 의문을 품게 되었다. 헨리 조지는 당초 고전 경제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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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야의 경제학자가 탄생시킨 정치경제학의 고전

 

오래전 태국 방콕에 간 적이 있다. 방콕 시내의 화려한 쇼핑센터를 보며 순간 한국 도심지에서 만나게 되는 여느 대형 쇼핑센터와 견주어도 결코 손색이 없는 그 휘황찬란함과 규모를 통해 태국의 발전상을 실감했다. 이후 우리 일행은 그동안 살면서 거의 해본 적 없는 매우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되었는데 바로 방콕 외곽지역에 있는 소위 슬럼가로 불리는 빈민촌 방문이었다. 빈민촌 하면 떠오르는 생각하기 싫은 그림들이 있지만 사실 한 번도 가본 적이 없기에 내심 호기심 또한 발동했다. 가이드를 따라서 빈민촌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개인적으로 경악을 금치 못했다. 나와 같은 사람들이 삶의 터전이라 말하며 살아가는 그곳의 참상을 직접 눈으로 목격하자 나도 모르게 양미간이 찡그려지고, 자연스레 손으로 코를 가리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마을 천지가 쓰레기로 뒤덮여 있기에 악취는 말할 것도 없고, 곳곳에 오물과 오수가 넘쳐나는, 말 그대로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없을 것만 같은 주거 공간이 게딱지처럼 따닥따닥 붙어서 군락을 형성한 모습이 차마 사람이 사는 집이라기보다는 (미안한 말이지만) 개, 돼지와 같은 짐승들이나 있을법한 축사의 느낌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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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 남짓한 시간이 24시간처럼 길게 느껴진 곤혹스러움을 뒤로 한 채 그곳을 나오며 내 머릿속을 계속해서 떠나지 않았던 의문이 있다. 불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방콕 시내의 화려한 쇼핑센터, 고급 아파트들의 모습과 방금 내가 목격한 처참한 가난과 빈곤의 현장이 오버랩되는 것부터 시작되었다. 이러한 극단적 부와 빈곤의 차이는 무슨 이유 때문에 생기는 것일까? 왜 어느 한 편에서는 자손 대대에 걸쳐 평생토록 흥청망청 먹고 마셔도 결코 마르지 않고 샘솟는 화수분과 같은 부를 가진 반면 어느 한 편에서는 하루 한 끼도 먹지 못해 어린이들이 영양실조에 걸리고, 굶주린 엄마 품에 안겨 더 이상 나오지 않는 말라비틀어진 젖을 빠는 아기들의 힘겨운 숨소리가 일상이 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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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생각만 해도 짜증 나고 화나는 물음에 대해 기막힌 정답을 제시하는 감동적인 경제 고전이 있다. 바로 오늘 서평으로 소개하는 19세기 미국 재야 경제학자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이다. 1839년 미국 필라델피아의 어느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헨리 조지가 그의 평생 심혈을 기울여 탄생시킨 본서는 그가 실제로 업무차 방문한 뉴욕 슬럼가에서 최악의 가난과 극심한 빈곤의 현장을 목격한 후 충격을 받아 집필을 결심하게 된 정치경제학 분야의 고전이다. 본서에서 저자 헨리 조지는 가난과 부의 극심한 불균형의 원인을 찾고, 그 해결책을 제시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지성과 역량을 쏟아붓는다. 이 책은 단지 부의 불균형, 그리고 가난과 빈곤의 원인만을 찾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경제학적 관점에서 그치지 않고 인류가 보편적으로 알고 있어야 할 인간으로서의 도덕적 관념과 정의에 대한 바른 태도에 대해서까지 그의 깊은 혜안을 나누어 준다. 이 책을 만나는 독자는 본서 한 권을 통해 지금 우리에게 닥친 경제적 난관과 더불어 사회 정의의 문제에 대해서까지 속 시원한 해답을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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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임브리지 대학교의 정치경제학 교수 ‘알프레드 마샬’은 경제학을 공부하는 경제학도들에게 cool heads but warm hearts(차가운 머리와 따뜻한 마음)를 강조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는 경제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차가운 이성으로 당면한 현안과 경제적 난제들을 풀어가되 항상 따뜻한 마음으로 사람들의 형편을 생각하고 살펴야만 한다는 촌철살인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을 읽어가며 나는 헨리 조지야말로 마샬이 말한 바로 그 차가운 머리와 따뜻한 마음을 가진 경제학자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가 본서를 통해 말한 이야기의 핵심은 극심한 빈부의 격차는 바로 소수의 가진 자들에 의해서 독점되는 토지(땅)의 사유화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헨리 조지가 살던 시대와 그 이전 시대에서 계속되던 시대정신은 헨리 조지의 이러한 토지 사유화가 빈부 격차의 근본 원인이 된다는 사실에 대해 강력하게 반대한다. 그도 그럴 것이 어느 시대나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은 결코 자신들의 기득권을 순순히 내어주지 않기 마련이다. 헨리 조지의 주장이 그들 기득권층에게는 이름도 없는 무학의 경제학자가 주창한 사회주의 사상이나 유토피아적 공상에 불과한 것으로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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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 보면 헨리 조지가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기록하고 비판한 어느 이론을 만나게 된다. 일반인들은 상상할 수도 없는 부를 움켜쥔 사람들과, 하루 벌어먹기도 힘든 극심한 빈곤과 끝이 보이지 않는 가난의 쳇바퀴 속에서 절망의 눈물로 하루하루를 죽지 못해 살아가는 사람들이 상존하고 있는 부의 불균형이 인구 증가와 같은 자연현상에서 비롯되었다고 단순하게 치부해버리는 ‘맬서스’의 인구론이 그것이다. 즉 인구가 많아지면 수요는 많아지고 그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서 많은 일자리가 필요해진다. 그러나 노동 인력이 넘쳐나면 한정된 자본을 통해 늘어난 노동에 대한 임금을 나눠 가져야 하기에 자연스럽게 노동자들에게 돌아가는 임금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근시안적 이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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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서스의 인구론에 따르면 인구를 자연적으로 조절하기 위해 전쟁, 기근, 가난, 전염병과 같은 자연적인 제약은 인구의 과도한 증가를 막아주는 장치가 될 수도 있다. 그의 이런 단세포적 생각은 마치 헐리우드 영화에 나올 법한 사악한 테러 집단이 인류의 개체 수를 인위적으로 줄여야지만 지구를 쾌적하게 유지할 수 있다는 미명하에 전염병이나 대규모 공격으로 감행하는 어리석음의 극치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것은 인구 증가라는 자연적인 재해(?)를 허락한 창조주의 무능력을 간접적으로 비꼬는 신성모독적인 이론이 아닐 수 없다. 하기는 맬서스 본인이 부유한 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태생부터 금수저였기에 아마도 차가운 머리를 가진 그의 학문적 관심은 애초부터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마음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으리라. 노동자들의 임금은 한정된 자본에 의해서 나누어지는 것이 아니라 노동에 의해서 발생된 생산물에 의해서 나누어진다는 ‘초딩’들도 알아들을 법한 지극히 상식 수준의 이야기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유아적 사고를 가진 사람이 어떻게 경제학자라고 명함을 내밀었는지 의아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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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맬서스의 인구론이 가장 크게 간과한 부분은 바로 부의 불균형의 문제에서 근본적으로 작용하는 가장 큰 내재적 원인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바로 본서의 역자 해제에서도 잠깐 언급되고 있는 인간 탐욕의 문제이다. 헨리 조지는 극심한 사회 양극화 현상에 대해서 인간 탐욕의 문제를 정확하게 직시했다. 그렇다. 인간 본성의 타락에 기인한 탐욕스러움으로 남의 것을 더 빼앗아 자신의 배를 불리는 인간의 원초적 이기심과 죄악스러운 욕망이 어쩌면 인류의 고질적인 부의 불균형을 가져온 가장 근본적인 원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종교적이고 인간 본성의 깊은 곳에 심어진 내재적인 문제를 신이 아닌 우리가 어떻게 바꿀 수 있으랴? 그럼에도 헨리 조지는 그냥 손을 놓고 주저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이 가진 지성과 이성을 최대한 발휘하여 사회의 부조리와 불의한 사회제도에 과감하게 개혁의 메스를 들이대고자 한 용기 있는 실천적 도덕주의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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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을 선점한 지주들이 그 땅을 임대하여 농사를 짓는 노동자들에 대해 비싼 지대를 받아 챙기기에 노동자들은 상대적으로 턱없이 적은 임금으로 살아가야 하는 이 끝이 보이지 않는 빈곤의 악순환. 토지 이익을 통해 지주들은 계속해서 엄청난 부를 쌓아가고, 가난한 노동자들은 빈곤이라는 나락으로 끝없이 내몰리는 이 비극적인 상황 속에서 탄생한 『진보와 빈곤』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참으로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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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초등학생들에게 장래 희망이 뭐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그들의 답변은 대동소이했다. 남자아이들은 대통령, 과학자, 장군, 의사 등등… 여자아이들은 선생님, 간호사, 연예인 등등… 그러나 요즘 초등학생들에게 장래 희망이 뭐냐고 물어보면 부동의 1위가 무엇인 줄 아는가? 바로 건물 임대업자라고 한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마냥 웃고만 있을 수 없는 신조어는 요즘의 천박한 세태를 여과 없이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말이다. 부동산 불패 신화, 나라가 망하지 않는 한 부동산업은 결코 해가 지지 않는다는 이 웃픈 현실이 대한민국의 현주소이다. 가진 자들은 계속해서 부동산 투기를 통해 엄청난 금액의 시세차익을 거두어들이고 속칭 졸부의 반열에 오르는 반면, 못 배우고 가진 것 없는 사회 취약계층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 벅찬 지긋지긋한 가난의 굴레 속에서 그 가난을 자식들에게까지 고스란히 물려주는 빈곤의 대물림 현상이 벌어진다.


​헨리 조지가 살던 당시 토지를 소유한 자들이 요구했던 버거운 지대는 노동자들을 계속되는 가난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만들었다. 먹고 살기 위해서 등골 빠지게 일해도 지주들에게 모든 것을 갖다 바친 뒤 그들에게 돌아오는 임금은 하루를 근근이 버틸 수밖에 없는 푼돈이었다. 이런 부조리한 제도에서 비롯되는 빈곤을 타파하기 위해 헨리 조지는 토지의 공유화를 주장한다. 이미 오랜 시간 토지의 선점을 통해 자신의 토지 소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지주들(사회의 지도층과 상류층)의 땅을 국가가 일방적으로 뺏어올 수도 없는 노릇일뿐더러 설령 그렇게 한다면 그것은 마르크스와 같은 사회주의자들과 별반 다름없는 모습이기에 헨리 조지는 토지의 공유화에 대한 실제적인 해결책을 제시한다. 바로 ‘토지 가치세’다. 즉 토지의 소유는 개별 지주에게 그대로 주되 땅을 통해 얻게 되는 불로소득인 막대한 양의 지대 수입을 개인 지주가 착복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토지 가치세라는 명목으로 일괄 거두어들여 세입 수입을 늘리고, 그것을 사회의 절대 빈곤층에게 사회복지 차원에서 재분배하자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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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조지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자기 입밖에 모르는 극도로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기득권층은 당연히 반대했지만 당시 아일랜드와 영국에서는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그의 이론이 마냥 유토피아적인 환상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항상 사회를 개혁하려는 주장은 자신들의 밥그릇을 지키려는 인간의 탈을 쓴 짐승들에 의해 반대에 부딪히게 된다. 안타깝지만 헨리 조지의 사상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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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강원도 태백의 예수원을 방문한 적이 있다. 예수원을 올라가면 길가의 큰 돌비석에 ‘토지는 하나님의 것이라’라는 글귀가 적혀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구약성경 레위기 25장 23절에 나오는 말씀인데 예수원의 설립자이신 故 대천덕 신부께서 생전에 항상 주장하셨던 그의 신앙과 삶의 철학이었다. 이것은 성경의 희년 개념에서 파생된다. 50년에 한 번씩 선포되는 희년을 통해 노예들이 자유를 얻고, 땅이 쉼을 얻는다는 희년의 정신은 땅이 일개 개인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사적 도구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것이라는 토지 공개념을 표방한다. 그렇다. 성경도 땅은 어느 누구의 독점적인 소유물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인간의 타락과 죄 된 본성으로 인한 탐욕이 성경의 가르침대로 살아가지 못하도록 인류의 모든 제도를 불의로 물들여 놓았기에 우리는 서평의 서두에서 언급한 끔찍하고 비참한 빈곤의 현장을 목도할 수밖에 없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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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0여 페이지의 제법 묵직한 분량의 정치경제학 저작 한 권이 10여 일간 내 마음을 뜨겁게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인간 지성이 어쩜 이렇게 따뜻할 수 있을까? 사회 불의와 부조리, 불균형에 대해 아무도 입을 열지 않고 가난 속에 죽어가는 자들을 외면한 채 자신들이 가진 기득권을 받아 누리는 데만 혈안이 되어있던 이 탐욕과 야만의 시대에 헨리 조지와 같은 깨어있는 지성, 바른 양심과 굳센 용기를 가진 그야말로 마샬이 말한 ‘차가운 머리와 따뜻한 마음’의 경제학자가 쓴 보물과 같은 저작을 만나게 된 건 근래 들어 나의 독서 생활에 가장 큰 유익이었다. 사실 그의 주장과 이론, 사상은 현실 정치와 경제에 쉽사리 접목되어 실현되지 못했다. 아마 앞으로도 쉽지 않을 것이다. 이미 땅을 선점한 사람들과 그 땅을 통해서 막대한 이익을 취하는 1%의 탐욕스러운 기득권층이 존재하는 한 헨리 조지의 사상과 이론은 그들 기득권층에게는 힘없는 자들의 빈약한 투정으로밖에 들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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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스미스나 존 스튜어트 밀과 같은 고전 경제학자들의 반열에 들 수 없기에 헨리 조지 그를 가리켜 재야의 경제학자라고 한다. 그러나 부의 불균형, 그로 인한 가난한 자들의 아픔과 작은 신음에 귀 기울이며 평생 사회의 가난을 퇴치하기 위해 온 삶을 불태웠던 헨리 조지에게는 기득권의 눈치나 살피며 경제학자로서 입바른 말을 해야 할 때 하지 않는 비겁한 고전 경제학자들과 나란한 반열에 들지 않고, 오히려 용기 있고 깨끗한 재야의 경제학자로 영원히 남는 편이 분명 더 명예스러운 일이리라.

 

 

오늘의 책을 리뷰한 '올라프'님은?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꿈꾸는 평범한 개신교 목회자 김 오네시모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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