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 5일 오늘의 책
이순신 | 서해문집 | 2004.09
분류 : 역사/신화/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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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의 마음
그는 내게 익숙한 풍경이었다. 회사 창밖을 내다보면, 그는 항상 어제와 다름없이 짜증스러운 교통체증과 어딘가로 바삐 걸음을 옮기는 사람들 사이에 우뚝 서 있었다. 충무공 이순신 동상. 청동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조형물은 거리를 정면으로 응시한 채 위풍당당한 위세를 과시하고 있다. 그 거리의 모든 것들과 모든 사람을 굽어보고 있다. 하지만 누구 하나 가던 길을 멈추고 조형물을 바라보거나 하물며 존경 어린 시선으로 그를 우러러보지 않는다. 거리에서는 누구도 그것을 신경 쓰지 않는다. 나 역시 그랬다. 이순신 장군은 내게 광화문 사거리에 지루한 표정을 더하는 이정표였을 뿐이다. 그러나 오래전부터 읽으려고 마음먹었던 난중일기를 읽는 동안, 광화문 대로에 홀로 서 있는 그가 걱정스러워졌다. 아니 무척이나 보고 싶어졌다.
달빛이 비단처럼 바다를 비출 때마다 이순신은 수루나 뱃머리에 앉아 밤새도록 만 갈래로 갈라지는 생각에 빠져 잠 못 이루기 일쑤였다. 난중일기를 며칠 나눠 읽는 동안, 내 작은 방 창가에도 밤마다 달빛이 환하게 드리워졌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그의 고독이 5세기라는 멀고도 긴 시간의 강을 건너 내게도 짙게 물들어왔다. 그의 일기에서 눈길을 잡는 건, 누구에게도 드러낼 수 없었던 한 개인의 고독이다. “하루 내내 혼자 앉아 있었다.”(1593.6.12. 일기 중에서)처럼 짧게 적은 그날그날의 일기에서 그의 심정을 헤아려 본다. 많은 이들은 전쟁터에서 한 나라의 운명을 쥔 이순신의 책임을 바라보았다. 나는 그의 마음에 어느 때보다 깊이 동화되고 싶었다.
매일 동헌에 나가 집무를 보고 활을 쏘았던 이순신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전쟁이 발발한 뒤에도 그는 시간 나는 대로 활을 쏘았고, 집무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생사의 고비를 넘는 전시 상황 속에서도 일상은 이처럼 반복됐다. 그리고 그는 밤마다 일기를 썼다. 일상이 그렇듯 일기에도 반복되는 내용이 많다. 하지만 행간에 숨은 감정은 매일 달랐다. 그것을 고독이라는 말로 뭉뚱그려 표현할 수밖에 없지만, 한편으로 고독은 전쟁이라는 특수상황에서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만남과 이별이 불러온 감정이기도 했다. 난중일기는 내게 정 많은 한 남자의 애달픈 장한가로 읽혔다. 우직한 한 남자가 만남의 기쁨을 표현한 노래로도 들렸다. 유성룡, 권준, 어영담, 이억기, 이홍명, 정운, 나대용, 이설, 배흥립, 최천보, 선거이, 황세득, 이영남……. 난중일기는 헤아리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수많은 이름이 등장한다. 전쟁 통에서 몇몇은 죽음이라는 이유로 일기 속에서 퇴장한다. 그때마다 이순신은 정직하게 일기에다가 이렇게 썼다. 슬프다고. 그는 자신의 부하가 아니었는데도 진주에서 전사한 장병들의 명부를 받아 읽고 가슴이 아파 견디기 어려워한 사람이었다(1593.7.19. 일기). 나는 이 단순명료한 표현에 서린 슬픔의 깊이를 짐작하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그의 이 슬픔과 기쁨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충무공 이순신에게 가까이 다가설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순신은 아산에 계신 늙은 노모를 걱정하고, 며칠 있으면 돌아올 줄 알면서도 심부름을 떠난 보낸 아들과 조카 걱정에 밤잠을 설친다. 몸이 아픈 부하는 물론, 거느리던 노비의 안위까지 걱정한다. 그의 일기는 걱정거리 천지다. 하루라도 걱정하지 않고 넘어간 적이 없다. 이름 없는 백성의 삶마저 걱정했다. 오직 자신의 안위만 생각하는 사람은 그때나 지금이나 흔하다. 현대인 대다수가 그런 삶을 살고 있다. 자기만 생각한다. 이에 대해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다. 텔레비전만 틀어도 타인을 무시하거나 짓밟아가면서 승리를 쟁취하는 모습이 승자의 논리로 인정받으며 여과 없이 방영된다. 충무공은 흔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리워했기에 매일 같이 만나는 전우들인데도 만날 때마다 기쁘게 전우들과 술잔을 기울였고, 백성의 참혹한 삶 앞에서 진심으로 눈물을 흘릴 수 있었다. 끊임없이 걱정했기에 이순신은 7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적들 앞에서 절대로 물러서지 않고 나라를 지킬 수 있었다.
전쟁이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극한의 상황이다. 내일을 기약하기 어렵다. 이순신은 누구보다 이 사실을 잘 알았다. 지금 당장 누가 죽어도 이상할 것 하나 없는 상황이어서 이순신은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 모두를 소홀히 대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볼수록 그리워지는 사람들, 전쟁은 그렇게 그의 마음에 그리움을 가득 채웠다. 고독은 그에게 밤마다 불면증과 같은 가혹한 시간을 안겨주었지만, 고독 때문에 이순신은 전쟁의 공포를 이길 수도 있었다. 난중일기에서는 물에 비친 달빛에 자신의 마음을 달래는 이순신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생각은 각각 누군가에게 가닿았다. 꿈속에서 유성룡과 대화를 나눈 장면을 묘사(1596.1.12. 일기)한 대목, 며칠 함께 보낸 순찰사가 떠날 때 “멀어지도록 바라보면서 서로 인사”(1596.7.4. 일기)했다는 대목에서 그의 그리움이 고스란히 느껴져 눈물이 났다.
혹자는 난중일기를 통해 인간 이순신을 만난다고 한다. ‘인간’이라는 말은 ‘보통의(평범한, 세속적) 인간’이라는 뜻이 아니다.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재물과 부를 좇기보다 사람을 그리워하는 그 마음을 좇은 이순신이야말로 가장 인간다운 인간이다. 그는 패색이 짙었던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나라를 구했다. 문득 그가 자신만을 위해 사는 지금의 인간을 본다면 뭐라고 표현할까 궁금해졌다. 원균 장군을 표현했던 그 말처럼 우리를 “음흉하고 흉악한 자”라고 불렀을지도 모르겠다. 한산도 대첩이 세계 4대 해전에 포함돼 있어서 이순신은 해외에서도 영웅이자 전설로 불린다. 영웅의 맨얼굴은 달빛이 기운 바다를 바라보며 남몰래 눈물을 훔치는 사람이었다. 그리움을 멈출 수 없어 그가 지금도 우리를 굽어보고 있다. 나에게 광화문 대로에 서 있는 충무공 이순신 동상은 이제 지루한 일상의 이정표가 아니다. 오늘도 동상 위로 떠오른 달은 그의 그리움을 비춘다. 이제는 내가 더 그를 그리워할 것이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진격의 두통'님은?
솔직히 독서를 즐기지 않지만, 어찌됐든 책과 가까이 하는 삶을 지향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