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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 벚꽃

2019년 3월 5일 오늘의 책

적의 벚꽃

왕딩궈 | 박하 | 2018.12

분류 : 소설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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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가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서 언급한 글을 무기로 싸울 수 있는 몇 안 되는 작가가 바로 왕딩궈이며 그 총체가《적의 벚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올해의 소설 】 【올해의 좋은 책 10 】 【올해의 책 】 【가장 팔고 싶은 책 1위 】 【타이페이국제도서전 대상】 “《위대한 개츠비》에 비견될 만한 처연한 아름다움이 놀랍도록 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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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하리만큼 슬픈 이야기

 

내게는 그저 까마득한 어둠밖에 없다는 걸, 이 세상이 더 이상 나를 위해 불을 켜주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소리 없는 어둠이 밀물처럼, 조용하지만 세차게 나를 덮쳤다. 울고 싶었지만 콧구멍 위까지 차오른 어둠에 제대로 된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짙은 우울함이 나를 감쌌다. 하루 또 하루가 빠르고도 느리게 흘렀다. 빠를 때는 악몽처럼 눈 깜빡 하는 사이에 지나가버리고, 느려지면 내 생명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것 같았다. (246~247쪽)

 

여기 지독하리만큼 슬픈 이야기 한 편이 있습니다. 왕딩궈 작가의 『적의 벚꽃』. 소설은 주인공인 ‘나’의 바람을 자세하게 기술하다가, 그 기대를 잔인하게 무너뜨리는 방식으로 독자에게 슬픔을 전합니다. 이를테면, ‘아버지와 함께 등교하게 될 것’이라는 설렘은 ‘학교에서 잡일을 하는 아버지’라는 부끄러움으로 바뀌고, 야심차게 기획한 프로젝트가 바이러스 확산 등의 악재를 만나 어려움에 빠지며, 물질적인 안정을 눈앞에 두고 ‘적’(원수 敵)에게 아내를 빼앗기는 식으로 말입니다. 행복의 문 앞까지 갔다가 다시 뒤로 밀려난 ‘나’는 그 허무함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저께 오색조를 처음 봤어. 정말 예쁜 오색조가 나뭇가지 틈에서 날아왔어. 눈 깜짝할 사이에 날아가 버렸지만.” (238쪽)

 

아내를 빼앗은 ‘적의 벚꽃’이 시들어버린 뒤에도 주인공인 ‘나’의 슬픔은 계속됩니다. 적이 무너졌다고 해서 떠나버린 아내가 돌아오는 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적의 파멸 뒤에 찾아온 잠깐의 안정은 이내 주인공인 ‘나’의 머릿속을 흔들어 놓습니다.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적을 파멸시키고 마침내 벚꽃이 나만을 위해 피도록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내게 얼마나 위안이 되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다락방으로 올라가 누웠을 때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운 것은 그 동이 트지 않은 새벽이었다. 추쯔가 또다시 어둠을 더듬어 나가고 있었다. 그녀의 가방은 가벼웠다. 옷가지 몇 벌로 어떻게 평생을 살까? 눈가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다시 내려가 테이블에 앉아 그 (시들어버린 적의 벚꽃) 사진을 앞에 놓고 멍한 시선으로 응시했다. 그리고 몇 시간 몇 분인지 알 수 없는 슬픔 속에서 사진을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292쪽~293쪽)

 

그렇게 소설 『적의 벚꽃』은 슬픔으로 시작해, 슬픔으로 마무리됩니다. 등장인물 모두가 끝내 웃지 못하는 처절한 비극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인 ‘나’는 오늘도 ‘슬픈 소설’을 찾아 읽습니다. 그 이유를 주인공인 ‘나’는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를 인용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내가 비극을 좋아해서 『노인과 바다』를 읽은 것은 아니었다. 나와 그 노인 사이에 늘 어떤 선 하나가 이어져 있었다. 그건 아버지에게서 느낄 수 없는 감정이었다.” (221쪽) “(노인이) 겨우 잡은 청새치가 상어에게 잡아먹혔다. 헤밍웨이는 처음부터 청새치가 상어에게 잡아먹히는 결말을 정해놓고 『노인과 바다』를 쓰기 시작했을 것이다. 비극이 일어나야 인간의 가치가 드러나는 법이니까.” (226쪽)

 

소설 『노인과 바다』에서 청새치의 뼈만 가지고 뭍으로 돌아온 노인은 다시 한 번 바다로 나가겠다고 아이와 약속합니다. 두 사람의 약속에서 독자인 ‘나’는 희망을 읽습니다. 『적의 벚꽃』도 마찬가지입니다. 소설은 비극으로 끝나지만, 왕딩궈 작가는 독자인 내게 이렇게 말합니다.

 

겉으로는 진정한 사랑을 잃고 사랑을 찾아 헤매는 남자의 이야기지만, 사실은 녹록치 않은 인생에서 사랑을 빼앗기고 이상이 무너지고 미래가 박탈당한 순간의 이야기다. 이 비루하고 순수한 이야기를 인생의 은유로 삼아, 피할 수 없는 그 길에서 더 이상 빼앗기고 무너지고 박탈당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썼다. 짧게 말하자면, 내가 쓰려고 한 것은 슬픔이 아니었다. (13쪽)

 

그러니까, 저의 『적의 벚꽃』 추천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슬픈 소설’에 대한 추천이기도 합니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펜벗 8기 타매호'님은?
쉽고 친절한 글로 선한 영향력을 주고 싶은 30대 아저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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