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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참나무 숲에서 아이들이 온다 - 문학과지성 시인선 218

2014년 2월 5일 오늘의 책

굴참나무 숲에서 아이들이 온다 - 문학과지성 시인선 218

최하림 | 문학과지성사 | 1998.09

분류 : 시/에세이/기행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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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굴참나무숲에서 아이들이 온다]에서 시인의 목소리는 세계와 사물을 향해서 한껏 열려 있다. 시인의 시선은 너무나 투명하여 사물에 닿으면 시선은 사라지고 사물의 본 모습만이 오롯이 떠오른다. 그리?고 시인의 귀는 툭 터져 있어 그 어떤 소리도 걸러내지 않고 온전한 소리를 듣는다. 이때 시인은 고독 그 자체이다.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시인은 고독이라는 말 안에 자신을 숨기고 지운다. 그리하여 세계와 사물은 이 고독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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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너무 멀리 있다

 

시 쓰기를 멈추려 했던 시인은 가만히 앉아 풍경만 바라봤다. 아무런 힘도 쥐지 않고 풍경 속에 뛰어들었다. 최하림 시인은 1991년 고혈압으로 쓰러진 후 충청북도 영동 호탄리에 내려갔다. 그곳에서 7년 동안 썼던 시가 《굴참나무숲에서 아이들이 온다》에 담겨 있다. 총 4부로 나뉜 시들은 한 편의 시처럼 보인다. 시에 바친 7년은 ‘무명의 시간’ 같다. “7년 동안 누에가 시를 뽑듯이 한편 한편 써왔다.” 시집의 첫 장에 쓰여 있는 시인의 말이 애처로운 고백처럼 들린다. 그는 병상에서 관성적인 ‘시 쓰기’를 하며 병마와 지냈다. ‘바라본다’는 시선조차 의식하지 않은 채 텅 빈 몸과 마음으로 계절의 곳곳을 방문했다.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시를 잠재우고 싶던 시인은 풍경 속에 이불을 깔고, 다시 ‘시를 쓰고 싶다’는 간절한 염원과 마주했다. 시인이 시를 다시 쓸 수 있게끔 풍경도 기다려줬다는 듯. 

 

날이 흐리고 가랑비 내리자 북쪽으로 가려던 새들이 날기를 멈추고 서 있다 오리나무숲 새로 저녁은 죽음보다 조금 길게 내리고 산 밑으로는 사람들이 두엇 두런두런 얘기하며 가고 있다 어떤 충격이 없이도 사람의 모습은 아름답다 바람도 그들의 머리칼을 날리며 그들식으로 말을 건넨다 바람의 친화력은 놀랍다 나는 바람의 말을 들으려고 귀를 모으지만 소리들은 예까지 오지 않고 중도에서 사라져버린다 나는 그것으로 됐다 다는 너무 멀리 있다 나는 유리창 너머로 마른 나무들이 일어서고 반향하며 골짜기를 이루어 흘러가는 것을 보고 있다 나는 모두를 알 수 없다 나는 너무 멀리 있다 새들이 다시 날기를 멈추고 시간들이 어디로인지 달려가고 그림자들이 길 위에서 사라지는 것을 나는 보고 있다 이제 유리창 밖에는 새로 나무도 보이지 않는다 유리창 밖에는 유령처럼 내가 떠오르고 있다 (37쪽, ‘나는 너무 멀리 있다’ 전문)

 

그는 멀리 있다. “근력이 소진되는 만큼 내 생각도 소진되는 것이 제일 좋은 일”이라 말했던 시인 최하림은 2010년 4월 22일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나는 너무 멀리 있다’는 시를 남기고 정말로 멀리 갔다. 그가 상처처럼 바라봤던 노을과 가까워졌다. 시인이 지금 잠든 곳에선 아무런 말도 들리지 않는다. 시인만이 세상의 풍경이 내는 숨소리를 듣고 있을 뿐이다. 최하림이 귀를 모아 그토록 듣고 싶던 바람의 말들도 이제 최하림의 언어를 통해선 들을 수 없다. 지금 여기엔 시인이 남겼던 깨끗한 말들만이 남았다.

 

나는 시쓰기를 멈춘다
(나는 아주 시쓰기를
멈추고 싶다)
시가 잠들면 고단한 하루도 잠들고
무명의 시간 속을 나는 가게 되리니
무명의 꽃인들 어느 길목에 피어
기다려주지 않으랴 (92쪽, ‘겨울 어느 날’ 중에서)

 

- 컨텐츠팀 에디터 정혜원 (hyewonjung@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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