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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해의 마지막

2021년 1월 5일 오늘의 책

일곱 해의 마지막

김연수 | 문학동네 | 2020.07

분류 : 소설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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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을 매혹시킨 불행이란 흥성하고 눈부셨던 시절, 그가 사랑했던 모든 것들의 결과물이었다. 다시 시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사랑을 증명할 수만 있다면 불행해지는 것쯤이야 두렵지 않아서.” 순하고 여린 것들로 북적대던 아름다운 시절이 끝나고 찾아온 적막 그 세상에서 끝내 버릴 수 없던 어떤 마음과 그 마음이 남긴 몇 줄의 시 1958년 여름, 번역실에 출근한 기행은 한 통의 편지봉투를 받게 된다. 누군가가 먼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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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담하지 말고, 지치지 말고. 계속되는 삶을 위해!

 

“나는 왜 시를 다시 쓰기 시작했을까?”
그건 어쩌면 불행 때문일지도 몰랐다.
그는 언제나 불행에 끌렸다. (32쪽)

 

1956년부터 다시 시를 쓰기 시작한 백석은, 1962년 5월 『아동문학』에 「나루터」라는 동시를 발표했다. 이 시는 시인이 “압록강 변에서 나무를 심고 길을 닦는 어린아이들을 바라보며 사십여 년 전 그 아이들과 비슷한 나이에 그 강을 건너가던 ‘나이 어리신 원수님’을 떠올”리며 쓴 것이다. 당시 북한 문학잡지에 실린 다른 시에 비하자면 노골적인 찬양시는 아니었다고 하지만, 그 일곱 해 동안 무슨 일이 있어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노래하던 시인은 어디 가고 찬양시만 남았을까?

 

조선일보를 통해 등단한 백석은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도쿄로 유학을 떠난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백석은 해방이 될 때까지 조선일보사와 영생여자고등보통학교에서 근무하는데, 이때 여러 편의 시들을 발표하게 된다. 당시 ‘모던보이’였던 그의 시들은 인기가 많았지만, 1940년대 들어서면서 일본의 조선어 말살 정책이 극에 달하자, 그는 만주로 가 몇 편의 시를 발표하고 절필한다. 해방이 되자 고향인 평안북도 정주로 돌아간 기행(그러니까 그는 ‘월북’한 게 아니라 그저 고향으로 돌아간 것이었고, ‘월북시인’이라는 표현은 맞지 않다)은 소박한 삶을 꿈꾸지만, 평양에서 조선민주당을 이끌던 고당 선생이 통역 겸 비서로 그를 부른다. 그때만 해도 기행은 곧 좋은 시절이 오리라 믿었고, 정국이 안정되면 선생으로 살면서 적어도 한 달에 한 편 정도의 시를 꼭 쓰리라 다짐했다.

 

당시 소련에서도 해빙의 물결이 일어 세계가 바뀌고 있었고,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해방 후 십여 년 동안의 경직된 도식주의에서 벗어나 문학의 감동과 개성을 되찾자”(106쪽)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었다. 기행은 작가동맹 기관지에 ‘나의 항의, 나의 제의’라는 제목의 글을 발표했다. “이 글은 협동조합과 공장에 관한 것이라면, 내면을 깊이 추구하지 않아도, 문학도 감동이 없어도 무조건 좋은 시라고 말하는 당시의 시단에 대한 정면공격이었다.”(105쪽)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판단이었다. “이 년간의 짧고도 그나마 어렴풋했던 해빙 분위기는 완전히 사라지고”(132쪽) 말았고, 당은 이 글을 트집 삼아 그의 사상 검증에 나선다.

 

노동자가 되지 않고서는 부르주아 사상 잔재를 청산하고 노동계급의 사상으로 무장하기 힘들기 때문에 사상 검토 위원회를 열어 모든 작가들을 심사, 분류한 뒤 현지 파견 등 적절한 조치를 통해 개조할 것을 결의했다.(133쪽) 기행 역시 천리마 작업반에 투신하겠다며 지원서를 쓸 수밖에 없었는데, 다른 작가들처럼 희망하는 생산 현장을 고향으로 적어 냈다. 그런데 정작 기행이 파견된 곳은 생판 낯선 삼수의 협동조합이었다.(삼수는 예로부터 벽지였고, 유배지로 자주 언급됐던 곳이다. 이곳으로 유배를 갔다가 살아 돌아온 사람은 윤선도가 유일하다고 할 정도 악명 높은 곳이었다.)

 

삼수에 도착한 첫날. 출근 통지만 받았을 뿐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하는지 알 수 없어서 역에서 난감해하고 있는 기행에게 한 사람이 알은체를 한다. 삼수읍에 있는 인민학교의 교원 진서희라며 자신을 소개한 그녀는 작가동맹에서 파견한 시인이 온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자신이 안내하겠다고 한다. 그녀는 여학교 시절, 흠모하던 국어 선생이 수업시간이면 줄줄 외던 시를 쓴 시인을 만나게 되어 반갑다며 사람들로 북적대는 대합실 한켠에서, 어떤 두려움이나 부끄러움도 없는 선한 표정으로 시를 낭송하기 시작한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일 년 동안 삼수에서 ‘노동을 통한 개조시간’을 가지고 있는 기행에게 마지막 기회가 주어진다. 최근 완성된 삼지연 스키장에 관한 오체르크, 즉 현장 보고의 집필이 맡겨진 것이다. 어떤 관점으로 써야 되는지는 알지만, 기행은 결국 쓰지 못한다. 삼수에 남은 기행은 자신만을 위해서 시를 쓴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현실에서 실현되지 못한 일들은 소설이 된다고 믿고 있었다. 소망했으나 이뤄지지 않은 일들, 마지막 순간에 차마 선택하지 못한 일들, 밤이면 두고두고 생각나는 일들은 모두 이야기가 되고 소설이 된다. (「작가의 말」, 245쪽)

 

8년 만에 만나는 김연수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이 책에는 백석 시인의 7년(1956~1962년)이 담겨 있다.

 

가난한 내가 /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우리에게 이렇게 아름다운 시를 남긴 백석 시인은, 전쟁이 끝난 후 땅도, 몸도, 마음까지 모두 황폐한 곳에서 더 이상 시를 쓸 수가 없었다. 그는 시를 쓸 수가 없어서 러시아 문학을 번역하며 근근이 살고 있었는데, 사람들은 그에게 기필코 시를 다시 쓰라고 한다. 시인의 마음속에서 움튼 시어가 아닌, 그들의 사상을 담은, 그들이 원하는 시를 쓰라는 것이다.

 

일곱 해의 마지막(1962년)에 쓴 시를 마지막으로, 1996년 생을 다할 때까지 더 이상 시를 발표하지 않았던 시인. 그의 실제 삶을 우리가 알 수 없기 때문에, 그를 사랑하는 소설가의 손끝에서 그의 삶이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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