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 26일 오늘의 책
영지 | 허밍버드 | 2020.07
분류 : 시/에세이/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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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차 현직 공무원이 전하는 공무원의 땀과 눈물 《애썼다, 오늘의 공무원》은 11년차 현직 공무원이 공직 생활을 하며 지켜본 공무원의 모습들을 '있는 그대로' 풀어낸 책이다. 이 책에는 저자가 겪었던 개인적인 경험에서부터 공무원이 되면 누구나 겪게 되는 경험들이 솔직하게 담겨있다. 철밥통, 워라밸, 세금만 축내는, 편한 직업. 공직 바깥의 사람들이 흔히 가지고 있는 공무원이라는 직업에 대한 편견들. 이 편견들로 인해 누군가는 공무원들에게 ...
고등학교 시절, 나름 확고한 꿈이 있었다. 코앞에 놓인 대학 입시 덕에 좀 더 진지하고 현실적인 청사진을 그려야 했던 10대. 그 무렵 한창 빠져있던 책도 직업이나 직군을 소개하는 시리즈 도서였다. 희망하는 직업군을 먼저 읽고, 동경하는 직업군도 보고, 전혀 다른 세계의 직업군도 호기심에 실컷 기웃대보고. 공무원도 그렇게 기웃거린 직업 중 하나였다. 그때부터 나는 나와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좋아했다. 흐르고 떠밀려 살다 보니, 지금의 나는 드넓은 세상 안에서 복작복작하게 사는 수많은 이의 이야기를 보고 듣는 걸 업으로 삼고 있다. 내심 감사한 일을 직업 삼고 있음을 알면서도 매너리즘에 한껏 절어있는 지금, 한 책을 만났다. 아주 오랜만에 어린 그때를 떠올리게 하는 이 책을. 동시에 긴 수험 기간을 보내고 이번 주 공직에 첫발을 내디딘 친구를 위해 선물하고 싶었던 책을 말이다.
『애썼다, 오늘의 공무원』이라는 직관적인 책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은 공무원을 직업으로 가진 이의 에세이다. 평범한 IT 기업을 다니던 지은이 영지는 2008년 어쩌다 9급 공무원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11년 차 재직 중인 7급 공무원이다. 한 조직의 ‘허리’쯤 되는 위치에서 그간 걸어온 길에 대한 ‘돌아보기’가 담겨 있다. 저자는 이제 그 조직 내에서 안정을 느끼며 사는 한 명의 직업인이다. 안정을 갖기까지 겪었을 치열한 직업적 고민과 처세, 공무원으로서 사명 등 11년 어치의 공직생활이 무겁지 않게 적혀 있다.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다. 개인이 10여 년간 사회에 몸담으며 직면했을 수많은 위기와 고민이 결코 가벼울 리 없다.
나는 어떤 책이든 읽기 전에 목차를 꼭 보고 시작한다. 앞으로 나올 이야기를 적당히 짐작할 수 있다. 어느 정도 예상을 하고, 혹은 마음의 준비를 하고 내용을 맞닥뜨려야 마음이 편하다. 왠지 기다려지는 목차로 가기 위해 열심히 읽기도 한다. 좀 놓고 싶어질 때도 골인을 앞둔 마라토너가 된 기분으로 발처럼 눈을 굴린다. 모든 페이지를 같은 힘으로 읽을 수 없기에 나름 나 혼자 정해둔 강약 같은 것일까. 목차를 쭉 훑는데 모든 장에서 호기심 솟았다. 한 번쯤 생각해봤던 호기심, 공무원에 대해 가지고 있던 막연한 환상이나 밖에선 절대 알 수 없는 조직의 은밀한 이야기의 티저처럼 목차가 적혀 있었다. 단, 주의할 것. 이 책에는 ‘공무원이 되는 법’이나 ‘공시 팁’ 같은 수험 정보는 나오지 않는다!
아직도 공무원이 편한 직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나도 한때 그렇게 생각했다. 적어도 10년 전 이 조직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공직에 들어와서 가장 힘들었던 이유가 바로 이 생각 때문이었다. 밖에서 바라본 공직자의 모습과 막상 그 속에 내가 들어가서 직접 겪어본 모습이 너무 달라서 오는 실망감과 허무함은 상당히 컸다. _「공무원은 왜 편한 직업이라고 생각할까」 중에서
우리는 타인의 직업에 얼마나 편견을 갖고 있을까. 모르는 만큼 그 편견은 더 단단해진다. 나 역시 공무원은 칼퇴근하고, 공휴일과 주말엔 어김없이 쉬는, 최상의 워라밸을 보장하는, 높은 경쟁률에도 너나 할 것 없이 죽자 살자 달려드는, 정년 보장! 철밥통! 직업이라고 무심코 생각해왔더랬다. IT기업 출신인 지은이 역시 같은 내용을 일부분 언급한다. 왜 다들 그렇게 느끼는지 나름의 고찰이 담겨 있다. 그리고 왜 본인은 ‘공무원스럽지 않은 공무원’이라고 일컫는지.
한 사회의 구성원인 동시에 한 조직에 속한 사람으로서 공감하기도 하고, 정반대의 특질을 가지는 내 직업과 비교하게 되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우리 모두는 어떤 편견 속에서도 제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직업의 종류와 상관없이 대한민국 직장인이라면 느껴보았을 애환, 직업적 고민, 그 사이에서 균형을 찾기 위한 고군분투까지. 공무원이라면 더더욱 이입할 것이며,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스며있다. 이 책이 공무원이 아닌 나 같은 보통의 독자에게 관통하는 주제는 ‘선입견의 격파’일 수도 있겠다. 수십 년 동안 다져진 무지에서 온 굳은살. 그 굳은살은 책장을 넘길수록 무르고 약해진다.
이 책을 괜찮게 읽은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저자가 자신의 직업이라는 이유로 좋은 점만 적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떤 일이든 장단점이 있기 마련인데, 공무원을 염두로 두는 사람 입장에선 이러한 부분에 더욱 눈길이 갈 것도 같다. 이 책엔 그런 부분이 아주 곳곳에 있다. 9급에서 기술직이 아닌 이상 일반 행정은 예산, 복지, 민원 등 여러 업무를 두루 거친다고 한다. 특정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어 전문성을 기르거나, 또는 욕심이 있다면 하나에 매이지 않고 다양한 업무를 해볼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진단 건, 사실 달리 보면 또 하나의 장점일 것도 같다. 타 직업군인 나도 몹시 공감하며 읽었던 부분 중 파트다.
하지만 내가 들어와 직접 겪은 공무원 조직은 사실 애매한 아이러니함이 존재하는 곳이다. 두루두루 잘하는 제너럴리스트만큼 특정 분야에서 소질을 인정받아 ‘완전’ 잘나가는 스페셜리스트가 많다. _「아이러니 가득한 공무원 조직」 중에서
PC방, 체육시설, 헬스장, 교회 등등 공무원들은 주민들이 모이는 곳이면 주중이고 주말이고 가리지 않고 담당부서에서 만들어준 점검표를 출력해서 찾아갔다. 코로나 때문에 장사도 안돼서 사람도 없는데 무슨 ‘거리두기’ 점검이냐며 가게 주인들에게 욕도 많이 먹었다. 그럼에도 공무원이기에 감수해야 한다. 매뉴얼에 적힌 절차와 점검 항목은 모두 확인해야 한다. _「시민의 일상을 지키기 위한 공무원의 일상」 중에서
이렇게까지 길어질 줄 몰랐지만, 길어져서 앞으로도 많은 이를 힘겹게 할 그 이름, 코로나19도 제법 등장한다. 이 책을 쓸 당시에도 확산 중이었나 보다. 총선에 이어 긴급재난지원금 신청 당시를 공무원 입장에서 간접 체험할 수 있는 챕터도 있다. (개인적으로 제일 흥미롭게 읽은 파트이기도 했다.) 투표도 투표지만, 거리두기 등 방역에 만전을 기하던 모습. 그 당시, 전 세계에서 코로나 시국에도 불구하고 유일하게 투표를 치른 국가일 수 있던 건 공무원분들의 노고가 컸다. 막연히 한 시민으로서가 아닌, 코로나를 마주한 그들의 나날 속 단면. 이런 매뉴얼이 있구나, 그래서 민원을 이렇게 대응했구나, 싶었다. 전지적 공무원 시점에서 내 모습을 상기하며, 민원인으로서 지녀야 할 기본적인 예의도 다져본다. “내가 낸 세금으로 일하면서!”라며 갑질 아닌 갑질을 하는 민원인을 곳곳에서 보는 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공무원은 공문서와 결혼한다, 행복할까?」 챕터는 개인적으로도 하고 싶은 말이 많다. 제목에 ‘결혼’이라는 단어가 너무 로맨틱한 게 아닐까, 혼자 잠시 멈칫하긴 했지만… 아주 예전에 한 중앙행정기관의 홍보를 대행하며, 많은 공문서를 만들곤 했다. 지은이도 거듭 이야기하지만, 공무원의 공문서는 정말 디테일의 끝을 달려야 한다. ‘단순 보고용인데 이렇게까지 해야 한다고?’ 싶을 정도로 열심히 만들었던 것 같다. 정말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해야 ‘공문서’로 탄생한다. 문서 작업은 비교적 자유자재로 하고, 한 편집증 한다고 여기던 나였는데… 나는 그들과 일을 하며 한글 다루는 실력이 단기간에 눈부시게 발전했다. (그리고 오래 지나지 않아 퇴사했다.)
사실 공무원과 공문서의 관계는 ‘결혼’이라는 단어보다는 부대껴 사는 동안 생기는 ‘애증’ 같은 게 아닐까? 그러나 이런 단어에서도 작가가 자신의 직업을 향한 애정 어린 시선마저 느껴지는 것 같다. 업무적으로 마주했던 공무원들은 문서 작성의 달인들이다. 아마 우리나라에서 한글 프로그램을 제일 잘 다루는 직업군 역시 바로 공무원이 아닐까. 내가 공무원 알못이어도 이것만큼은 단언할 수 있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 들었던 생각은 저자에게 공무원이 잘 맞는 직업이란 것이었다. 공무원을 10년쯤 하니 직업을 애정하게 됐다고 하는, 결론으로만 놓고 보자면 직업과 성공적인 조화를 이룬 사례이지 않을까. 지은이는 두 번의 이유 있는 휴직을 한다. 공무원으로 지내온 세월이 순탄치만은 않았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그 받아들임이 가치 있고 성공적인 듯싶다. 자신의 직업에 대한 자부심과 책임감이 책 곳곳에서 묻어난다. 공무원에게 요구되는 직업적 소양과 덕목이 어떤 것인지 이 책을 통해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다. 관계자나 동료들과의 커뮤니케이션 등 인간관계에 대한 모습도 담겨 있다. 그런 모습들이 이 책을 더 담백하고, 진실로 공감을 불러일으키게 만든다.
나 역시 적지 않은 나이에 어느덧 사회생활 수년 차이지만, 아직도 적지 않은 순간마다 일희일비한다. 기분이 오르락내리락한다. 작은 실수나 업무적 확신이 들지 않을 때, 당장 세상이 터져버렸으면 좋겠다가도, 칭찬과 인정에 야근도 불사할 수 있는 힘이 솟는다. 사회 선배인 저자처럼 나도 언젠가 내 일을 온전히 나의 것으로 만들고, 멘티들에게 힘을 주는 든든한 선배가 될 수 있을까? 막연히 되물어본다.
오늘도 묵묵히 일하는 전국의 공무원분들 덕에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여러 편의를 누린다. 주위의 나랏일 하는 지인들이 새삼 생각나는 밤이다. 이 이야기를 시작하게 된, 매우 고된 곳으로 발령받은 친구도 그리고 전국의 모든 공무원들 파이팅!
오늘의 책을 리뷰한 'breezelike_e'님은?
책을 많이, 잘 읽고 싶지만 마음과 발맞추지 못하는 실상에 늘 아쉬워하는 나날만 보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잘’ 읽기라도 하고 싶은 자칭 애독자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