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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유환

2018년 4월 26일 오늘의 책

무비유환

이재익, 이승훈, 김훈종 | 박하 | 2017.12

분류 : 예술/대중문화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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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몰래 낄낄거리다 어느새 지인에게 추천하게 되는 영화 팟캐스트 씨네타운 나인틴! 그 매력을 고스란히 담아 퇴근길에 영화나 한 편 볼까 하는 사람들에게 기꺼이 친구가 되어줄 책! 이 책 《무비유환movie-有歡》은 말 그대로 ‘영화에는 인생의 기쁨이 있다’는 뜻이다. 저자들은 말한다.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조심스러워하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그럴 필요 있나? 영화는 즐기는 것이다. 즐기는 방법도 대상도 무궁무진하다. 내가 용기 있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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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존재하는 인생 영화


타인에게 “영화 좋아하세요?” 라고 묻는 것은 의미가 없다. 지금까지 살면서 극장에서 영화 보는 것이 싫다는 사람은 봤어도, 영화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그러니 영화로 대화를 하고자할 때에는 “어떤 장르를 좋아하세요?” 라고 물어야 한다. 이미 영화는 일상다반사 같은 존재이다.


공포는 영화로만 맛보는 인생 - 「컨저링」

나는 이 영화만큼 내 감각을 예민하게 만드는 영화를 본 적이 없다. 감동과는 또 다른 체험이다. 꽤 여러 번 이 영화를 봤는데 그때마다 반응은 비슷하다. 악령 들린 소녀가 괴이한 언어를 내뱉고, 몸이 기괴하게 꺾이고, 주위 물건들이 날아다니는 장면을 볼 때면 미지의 세계에 대한 경외심이 생긴다. 나는 아직 악령 들린 사람을 본 적이 없고, 귀신과 맞닥뜨린 적도 없지만, 마치 곧 그런 일이 생길 것만 같은 두려움에 움츠러드는 것이다. 난 뭐든지 할 수 있고 내 삶은 아무 문제도 없다며 나태하게 풀어져 있던 긴장의 끈이 바짝 조여드는 것이다. 그 느낌이 정말 좋다. (62, 63쪽)

 

어린 시절 주말마다 TV에서 방영해주는 영화를 보는 정도가 기회였지만, 지금은 집에서도 쉽게 영화를 볼 수 있는 환경에 살고 있다. 그러니 우울하면 보고, 심심하면 보고, 즐거워서 보고, 궁금해서 보고, 화가 나서 보고, 슬퍼서 보고, 그냥 주인공 존재 자체가 좋아서 보고, 심지어는 영어공부라는 목적을 위해서도 본다. 보는 감정과 이유가 다른 것 같아도 결국 모든 것은 영화를 본다는 행위의 귀결이다.

 

자발적으로 영화를 찾아가며 정말 열심히 봤던 것은 사춘기 시절이었다. 비디오테이프로 영화를 빌려보는 것이 더 대중화된 시절 속에서 교복을 입고 비디오가게를 도서관보다 더 많이 다녔다. 예민한 사춘기였다. 자신을 위로할 수 없다고 여긴 모든 것들을 차단했었는데 영화에게만 그 자리를 내어주었다. 성장하는 모든 아픔을 또 다른 자아가 스크린 안에서 공감해주는 것만 같았다.

 

어른인 지금도 사춘기는 여전하다. 다만 사춘기 소녀와는 주제가 달라졌을 뿐이다. 영화와 대화하는 자신을 유지함이 조금은 견고해졌다는 것이 다를까. ‘현실 친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것들을 나누는 ‘비밀 친구’가 영화라는 것은 변함이 없다.

 
왜 사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  「밀양」

삶. ‘왜 사느냐’고 묻는다면 ‘죽지 못해 산다’가 정답이다. 굳이 하이데거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는 것을 우리는 체득하고 있다. 왜 사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어떤 이유에서든 우리는 태어났으니까 사는 것이다. 그냥 사는 것이란 말이다. 인생에서 ‘왜’는 중요하지 않다. ‘어떻게’가 남을 뿐이다. ‘즐겁게 살 것이냐 괴롭게 살 것이냐’만 오롯이 우리의 실존 앞에 남는다. ‘베풀려고 산다’ 혹은 ‘인류 발전에 이바지 하기 위해 산다’ 이런 말은 모두 개소리다. 뭘 위해 사는 사람은 거짓이고 가식이다. 삶은 삶을 위해서만 존재해야 한다. (259쪽)

 

하지만 아무리 비밀 친구라 할지라도 채워지지 않는 것이 있었다. 영화는 내게 말을 걸어주지만, 내가 하는 말을 듣지 못한다. 독백에 멈춰버린 말들이 부지기수로 늘어 가니 역시 인간은 소통하며 살지 않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나면 꼭 관람한 영화가 재미있건 없건 다른 사람들이 남긴 영화평을 살펴본다. 다양한 사람들의 시선 속에 해석된 이야기를 읽으면, 이름 모를 그들과 공감하고 감정을 나누면서 다시 현실과 마주할 수 있는 지점으로 돌아올 수 있다. 하지만 이것도 영화로 얻은 감정을 정리하기에는 유야무야 흩어지는 언어로 그치고 만다.

 

그래서 영화 이야기를 담은 책을 많이 보는 편이다. 책을 읽는다는 핑계로 다시 한 번 영화를 곱씹을 수도 있다. 『무비유환』도 이런 이유이다. 사실 처음에는 인문학과 영화의 조합을 기대했던지라 뭔가가 부족한 느낌이었다. 소개된 목록을 봐도 누구나 알만한 영화들이라 진흙 속에서 진주를 찾은 듯한 느낌은 아니었다. 적확한 비평을 찾으려 했던 것은 아니었더라도, 다른 영화 서적과는 달라서 의심이 들었다. 그래도 영화 이야기는 역시 끝까지 책을 읽게 만들었다. 책을 덮은 후에야 뒤늦게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인가 대단한 내용을 본 것 같지는 않은데, 좋다.

 

나는 영화 평론가의 평을 잘 믿지 않는다. 대중성을 본다면 보통 사람들의 평가가 더 맞아떨어진다는 쪽을 따른다. 간혹 영화를 배운 사람이라는 듯 분석적인 태도로 쓰여진 영화 리뷰를 보면, 즐거운 시간을 만들고 싶어 영화를 관람하려했던 것뿐인 마음에 죄책감을 가지게 만든다. 보통 사람인 나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어디까지나 재미가 충족된 다음에 분석적 관람이 따라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비유환』은 이러한 대중적인 선택과 감상에 가까웠기 때문에 좋았다. 그리고 그 안에서 이재익, 이승훈, 김훈종 세 사람의 인생 영화 배경을 들으면서, 친구들과 세상 걱정 떨치고 밤새 좋아하는 영화를 이야기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인생의 순간순간이 우리를 붙잡는다 - 「보이후드」

영화 마지막에 주인공이 “Seize the moment.”라고 말하자 친구는 자기 생각은 좀 다르다며 “The moment seize.”라고 답한다. 우리는 우리가 순간을 붙잡는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 순간순간들이 우리를 붙잡는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다른 영화에서는 감독이 순간을 붙잡는 것을 목표로 삼지만,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은 「보이후드」에서 순간들이 자기를 붙잡아주기를 기다리며 12년이라는 세월을 보냈고 마침내 성공했다. 이것이 이 영화가 다른 영화들과 가장 근본적으로 구별되는 점이다.

 

순간이 감독을 붙잡아주기를 기다린다는 제작 방식 때문에 벌어지는 재미있는 점이 또 하나 있다. 이 영화는 등장인물들이 나이를 먹고 나면 이전에 찍었던 장면을 다시 찍거나 보충해서 찍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야말로 그 순간에만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의 인생 또한 닮은꼴이 아닌가? (165, 166쪽)

 

최근에도 꾸준히 영화를 본다. 신작보다는 과거에 봤던 작품들을 많이 봤다. 추억 여행이다. 작품이 좋아서라기보다는 그 작품들을 볼 때의 내 시절이 떠오른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이다. 자연스럽게 시간이 흘러가면서 변화한 취향 속에 그 취향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영화들이 있다. 어렸을 때 보았던 판타지 영화들을 현재에 보면 조악한 CG가 촌스럽게 보인다. 사춘기 시절 본 예술영화들을 다시 보면 졸음이 밀려와 두 눈이 감긴다. 삼류 코미디라 생각했던 영화를 보면서는 폭소하며 웃었다. ‘나’이지만 내가 아닌듯한 과거의 나를 만나면서 충돌하는 것이다. 영화는 보는 시간에 따라 달리 보이게 되었지만, 그 영화 속에 담긴 과거의 나는 여전히 변하지 않는 감정으로 현재의 나에게 찾아온다. 좋은 영화가 반드시 인생 영화가 되지 않는 이유는 이러한 이유 때문이지 않을까.

 

저마다 각자의 인생 영화가 있을 것이다. 그 선택이 어떠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영화라는 것과 연결된 자신의 끈에 자신이 담겨진 이야기가 있다는 것은 아름답다. 영화 속 주인공이 될 수는 없어도, 그 영화를 기억하는 자신은 주인공으로 남아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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