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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녹는 온도

2018년 2월 26일 오늘의 책

우리가 녹는 온도

정이현 | 달 | 2017.12

분류 : 시/에세이/기행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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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것들은 불쑥 우리 곁으로 돌아온다 처음과 끝, 그것을 어는점과 녹는점으로 표현해도 좋을까. 다만 1도의 차이에도 물은 액체가 되었다가 고체가 되었다가 한다. 눈이 되었다가 비가 되기도 하고, 구름으로 뭉쳐 있기도 한다. 꽝꽝 얼어붙은 우리의 마음도 아주 미세한 온기에 흐물흐물 녹아내리기도 하고, 작디작은 균열에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와장창 허물어지기도 한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생기고 말이다. 다만 ‘우리가 녹는 온도’는 하나로 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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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는점과 녹는점이 같듯이


정이현의 책 『우리가 녹는 온도』의 띠지에 이런 말이 적혀 있다. ‘녹을 줄 알면서도 눈사람을 만드는 당신을 위하여’. 녹아서 곧 사라질 눈사람이지만, 그 눈사람에게  ‘기어코 모자와 목도리를 씌어 주는 그 마음에 대하여’ 작가는 쓰고 있다. 너와 나, 우리의 관계도 눈사람이 녹듯 어느 순간 스르르 소멸해버리겠지만, 함께한 순간들은 분명 아름다웠다.
10편의 이야기와 산문이 담겨있다. ‘그들은’으로 시작되는 이야기와 그 다음 ‘나는’으로 이어지는 산문은 한 짝처럼 읽힌다. ‘그들’에 관한 이야기에 작가 ‘나’가 덧붙인 후일담으로 읽어도 좋다.

이를테면, 반려견 사슴이를 잃은 은우의 이야기를 담은 ‘그들의’ 이야기는 작가 '나’가 어릴 적 잃어버린 반려견 이야기와 포개어진다. (「화요일의 기린」) 같이 살지 않는 엄마와 딸의 이야기 「장미」에는 일부러 만날 약속을 하고 만나야 하는 서먹한 모녀의 사이가 나타난다. “다시는 나한테 연락하지 말라”고 말하는 딸 장미의 마음은 한없이 차갑고 딸을 향한 엄마 지숙의 마음은 뜨겁기만 하다. 차가움과 뜨거움의 온도차는 좁혀지지 않는다. 작가는 이 모녀의 이야기가 딸 장미에게 직접 들은 것임을 밝힌다. ‘그들의’ 이야기에서 들을 수 없었던 딸의 목소리를 전한다. 10편의 이야기와 산문 중 유일하게 눈물을 뚝뚝 흘리며 읽었다.

너와 나의 마음의 온도가 같으면 좋으련만, 한 쪽이 먼저 녹아버리면, 아프다. 내 곁에서 이미 녹아 없어진 너를 나는 떠나보낼 수밖에 없다. 은이를 떠나보낸 그는 뒤늦게서야 회한을 느끼고 그제서야 진짜 이별이 시작되었다고 느낀다. 하지만 이별 후에 오랜만에 만나는 연인에게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말하는 일은 녹아버린 눈사람을 다시 되돌릴 수 없는 것처럼 아득해 보인다. (책 안에서) 「괜찮다는 말 , 괜찮지 않다는 말」

한편, 얼어버린 마음을 무장 해제시키고 마음을 순식간에 녹이는 말이 있다. “속이 상할 때는요. 따뜻하고 달콤한 걸 먹으면 도움이 좀 되더라고요.”라고 트레이너는 해미에게 말한다. “그렇다고 상한 마음이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잠시 잊을 수 있으니까요.” 해미는 그 말을 듣고 처음으로 웃는다. (「눈 +사람」) 직장에서 퇴사하고 오래 사귀었던 연인과 헤어져 망가져있던 마음을 위로하는 말이었다.

어쩌면 그 위로의 말은 나에게 딱 맞는 커피의 온도와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마다 혀끝의 온도가 다 다른 것처럼. 한 사람을 순식간에 무장 해제시키고 위안을 주는 온도가 제각각이기에. 이 넓고 넓은 세상에서 나 말고 단 한사람쯤 나만의 그 온도를 기억해 준다면,’(「커피 두 잔」) 나는 다시 일어설 수 있을 테니. 아마도 해미는 트레이너의 그 말을 듣고 상한 마음을 잠시 잊을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의 관계는 언제 녹아버리고, 혹은 언제부터 팽팽해지면서 유지되는 걸까. 물의 어는점과 녹는점이 같듯이, 관계가 소멸하고 시작되는 이유는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한쪽이 조금만 차가워지거나 조금만 뜨거워져도 엇갈리기 시작하는 아슬아슬한 어떤 지점을 작가는 포착한다. 녹아버린 눈사람이 남긴 어떤 흔적처럼, 이별이 남긴 크고 작은 후유증에 관해 이 책은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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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는 것을 즐기며, 블로그 휘발성 기억의 저장고, ‘시간의 기록’을 운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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