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26일 오늘의 책
니콜라이 고골 | 문학동네 | 2011.11
분류 :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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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러시아 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비판적 리얼리즘의 대가 고골 그가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서 그려낸 러시아 문학의 정수! 리얼리즘 문학의 창시자라 불리는 니콜라이 바실리예비치 고골은 러시아 문학사에서 중단편소설의 시대를 연 작가로 평가받는다. 이전까지의 러시아 문학이 주콥스키, 푸시킨 등이 주도하는 ‘시의 시대’였다면 고골은 ‘산문의 시대’라는 새로운 역사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고골의 작품 중에서도 특히 『외투』는 이후 대부분의...
중학생 시절, 학교 도서관에서 처음 접했던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은 나를 깊은 절망 속으로 빠뜨렸다. 그가 벼려낸 난해하고 어려운 문장을 읽으며 나는 나의 무지함에 기함했다. 도통 넘어가지 않는 책장을 바라보며 이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채 반도 읽지 못하고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고 돌아오던 그 순간의 초라함은 한동안 나를 괴롭혔다. 그때의 기억이 워낙 강렬했던 탓인지 20대에 접어든 후에도 러시아 문학에는 쉽게 손을 뻗칠 수 없었다.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내가 그리 달라진 두뇌를 갖고 있지 않다면, 그 절망감은 배가 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시 용기를 낸 것은 한없이 정체되어 있는 책 읽기에 깊은 회의감을 느껴서였다. 한동안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독서를 미루고 또 미루었다. 기나긴 장편 소설을 손에 쥐고 흔들리는 마음을 잡아보려 애썼지만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해 괴로워하던 무렵, 대책을 세워야겠다는 생각에 단편 소설 한 편을 골랐다. 그렇게 운명적으로 만난 작품이 니콜라이 고골의 『외투』였다.
일러스트가 가미된 세계 단편 문학이라는 점이 가장 큰 끌림으로 다가왔지만, 그보다 더 이목을 사로잡은 것은 책 표지에 적혀있던 도스토예프스키의 한마디였다. "우리 모두는 고골의 외투에서 나왔다"라는 그의 말은 두려움을 가볍게 잠식시켰고, 나의 오랜 고민을 단번에 무너뜨려준 계기가 되었다. 고골의 외투를 읽고 나면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에 재도전할 수 있겠다는 묘한 희망이 생겼기 때문이다.
첫 도입부터 두루뭉술하면서도 날카로운 해학을 선사하는 고골은 자신이 하려는 이야기가 '특정 국'이 아닌 '어느 국'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말한다. 뒤이어 '어느 국'에서 서류를 정서하는 9급 관리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를 소개하는데 그는 늙고 볼품없는 외모에 항상 낡은 외투를 입고 다니는 사람이라고 덧붙이며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한다.
물질적 빈곤의 상징이자 절망과 희망의 교차로에 놓인 '외투'는 주인공의 심리 변화와 그 주변을 둘러싼 권력계층의 부패함과 위선을 꼬집는다. 특히 단순하고도 흥미진진한 플롯을 통해 사회 문제의 본질을 꿰뚫는 시선이 자연스레 스며들어 있는데, 그 단계는 주인공이 '낡은 외투를 입고 다닐 때', '새 외투 입고 다닐 때', '어렵게 구입한 새 외투를 강탈당했을 때' 로 구분지어 볼 수 있었다. 먼저 이야기의 초반부인 '낡은 외투를 입고 다닐 때'에 핵심은 다음의 문장에서 찾아볼 수 있다.
최근에 국에 들어온 한 젊은이는 다른 동료들을 따라 그를 조롱하려다 마치 뭔가에 찔리기라도 한 듯 갑자기 그만두었다. 그때부터 그의 앞에 있는 모든 것이 변한 것 같았고 다른 모습으로 보이는 것 같았다. 어떤 이상한 힘 때문인지 그는 지금껏 점잖은 사교계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며 알고 지내던 동료들과도 멀어졌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가장 즐거운 순간에, 이마가 벗어진 작달막한 관리가 가슴을 찌르는 듯한 목소리로 "날 내버려 둬요. 왜 날 모욕하는 거요?"라고 말하는 모습이 그 젊은이의 눈앞에 떠오르곤 했다. 이 가슴을 찌르는 듯한 말속에서 "나는 당신의 형제요."라는 또 다른 말이 울렸다. (14쪽)
급료 400루블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9급 문관 '아카키 아카키예비치'에게 있어 삶은 천국도 지옥도 아닌 그저 살아가는 날들 중에 하나였다. 그는 서류를 베껴 쓰는 일 외에는 그 어떤 것도 관심이 없었고, 낡아빠진 자신의 외투는 덧대고 또 덧대서 재활용했을 뿐, 새 외투를 사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에게 있어 '외투'는 아무런 희망 없이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일상의 대변인이자, 물질적 빈곤의 상징이었고, 이는 곧 주변의 따가운 눈초리와 멸시로 이어진다. 그는 외적인 것을 빌미로 자신에게 가해지는 주위의 폭력을 애써 모른 척하며 서류에 파묻혔지만, 더 이상 외투를 수선할 수 없는 상황이 돼서야 그 초라함을 직시하고 새로운 목표를 세운다. 절망의 상징이었던 '외투'가 희망과 목표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새 외투를 입고 다닐 때부터 외투를 강탈당한 후를 그리는 과정에서 고골의 기이하고도 통통튀는 상상력은 빛을 발한다. 그 기이한 리얼리즘은 정수를 찍는다. 읽다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오고 그 안에 내포된 유머와 강렬함은 비극이 비극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특히 피지배계층이자 소외 받은 인간의 대표주자로 손꼽히는 주인공이 새 외투를 장만하기까지의 생생한 묘사는 목표 성취를 위한 처절함과 물질적 사치를 향한 인간의 욕구가 모순되며 이야기의 활기를 돋운다.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는 생각하고 또 생각한 끝에 적어도 일 년 동안 일상의 지출을 줄일 필요가 있다고 결정했다. 저녁마다 마시던 차를 끊고, 저녁마다 켜던 촛불도 켜지 않고, 뭔가 해야 할 일이 있으면 주인 여자의 방으로 가서 그녀가 켜놓은 촛불 밑에서 하기로 했다. 길을 걸을 때는 구두 밑창이 빨리 닳지 않도록 가능한 한 가볍고 조심스럽게 거의 발 끝으로 돌과 판석을 밟고, 속옷이 빨리 해지지 않도록 세탁부에 가능하면 속옷 빨래를 덜 맡기고, 집에 돌아오면 매번 속옷을 벗고 아주 오래됐지만 잘 보관해온 목면 실내복만 걸치기로 했다. (33쪽)
발췌된 문장에서 드러나듯이 외투는 그의 삶을 변화시킨 만큼 고통을 안겨준 요소이기도 하다. 무려 1년 동안 인간이 당연히 누려야 할 기본적인 혜택을 '외투' 하나와 맞바꾼 그는 단조로운 일상에서 찾은 작은 변화와 이전보다 더 극심한 괴로움이라는 두 가지의 감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이 감정들은 서로 상충될 수밖에 없는 관계에 놓여있다는 걸 암시한다. 이 문장은 후일, 그가 새 외투를 잃고 난 후에 그 의미가 더욱 깊어진다. 외투는 한 인간의 삶을 넘어 사회 전반에 깔린 인간 소외 현상을 직조해준다.
어느 누구의 보호도 받지 못하고 어느 누구의 애정도 받지 못하고 어느 누구의 관심도 끌지 못한 존재, 심지어 흔한 파리 한 마리도 놓치지 않고 핀에 꽂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자연관찰자의 주의조차 끌지 못한 존재가 사라지고 자취를 감춘 것이다. 동료 관리들의 조소를 묵묵히 견뎌낸 그 존재는 어떤 특별한 일도 없이 무덤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런 존재에게도, 비록 생이 끝나기 직전이었지만, 외투의 모습을 한 명랑한 손님이 갑자기 나타나 짧은 순간이나마 가련한 인생에 생기를 불어넣어주었다. (60쪽)
그에게 외투는 명랑한 손님을 가장한 백일몽 같은 존재인 듯했다. 집으로 귀가하던 길에 괴한의 습격을 받고 너무도 허망하게 외투를 강탈당한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는 입초 근무경관을 찾아가 도움을 청해보지만 돌아오는 말은 '괴한이 친구인 줄 알았다'는 궁색한 변명뿐이었다. 뒤이어 파출소장을 찾아가보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고, 이에 경찰서장에게 달려갔지만 사건의 본질은 회피한 채 '왜 늦은 시간에 돌아다니다가 외투를 잊어버렸느냐?'라는 핀잔만 들어야 했다. 그렇게 자신의 외투를 찾으려 사방팔방 뛰어다니다 최종 목적지로 고관을 찾아간 그는 일이 해결될 수 있다는 작은 소망을 품어보기도 전에 구박을 받고 쫓겨나는 수모를 겪는다. 특별할 것 없는 삶 속에 날아든 외투 한 벌은 그에게 희극과 비극을 동시에 안기며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투가 사라짐에 따라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도 죽음의 턱에 발을 내딛게 되면서 한바탕 소동은 막을 내리는 것 같았다.
만일, 죽음으로 모든 것이 마무리되었다면 고골의 『외투』는 고전으로 칭송 받지는 못했을 것이다. 고골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주인공의 죽음 이후 더욱 명확해지는데, 억울함을 풀지 못하고 유령이 된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는 인간의 외투를 훔치러 다니며 고관을 찾아 헤맨다. 사람들은 그의 원혼이 아직 이승에 남아있다며 두려움에 떨게 되고, 그 사이에 그는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자신에게 모멸감을 안긴 고관을 찾아 내어 그의 외투를 뺏은 후, 영영 자취를 감춰버린다. 헌데, 어찌 된 영문인지 그가 사라진 후에도 유령을 봤다는 이들의 증언은 여전히 유효했고, 실재했다. 고골이 전한 오싹한 마무리가 빛났던 이유는 아마도 '소외된 인간'에 대한 연민과 그들의 반복되는 운명을 조용히 응시할 줄 알았던 능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비단 소외계층뿐만 아니라 바뀌지 않는 인간 본성에 대한 고백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고골은 마치 고백하듯 부패하고 위선적인 권력계층의 심리를 묘사한다. 중간중간 깃든 말장난과 관리들의 행동에 따른 심리묘사는 분명 심각한 상황임에도 웃음이 난다. 화가 나는 듯하면서도 진한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이야기의 재미를 한껏 끌어올린다. 게다가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상황을 통해 긴장감을 첨가하는 그의 필력은 강한 흡인력을 지니고 있었다.
흔하디 흔한 '외투'라는 소재를 통해 주인공의 삶이 어떤 변화를 맞았고, 그 변화 속에서 드러나는 개인의 속물 근성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 추측할 수 있는 몇몇 장면은 설득력 있게 그려졌다. 하지만, 외적 요소인 '외투'를 통해 모든 정황을 설명하다 보니 소외된 자의 내면을 상세하게 그려내는 과정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단서를 제공하여 독자들의 해석에 맡겼을 뿐, 얽힌 상황들을 자신이 직접 설명하려 하진 않았다.
어쩌면 고골이 남긴 여백이 후일, 많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끼쳐 '소외된 인간'과 '사회'에 대한 내적 통찰력으로 발전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아쉬움이 남는 것은 그의 글을 읽은 독자로서 어쩔 수 없는 마음인 듯하다. 이토록 무거운 이야기를 경쾌하면서도 진중하게 풀어나가며 찬란하고 뜻깊은 문장을 만들어낸 고골의 매력에 빠진 나로서는 말이다.
글쓰기를 좋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