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 25일 오늘의 책
리처드 라이트 | 창비 | 2012.10
분류 :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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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미국 사회의 모순을 날카롭게 해부한 고전 도시 빈민층이 되어버린 흑인들의 집단적 체험과 개인적 환멸 “사람이 살인을 할 땐 무언가를 위해서지요…… 그것 때문에 살인을 할 만큼 절실한 느낌이 들기 전까지는, 전 제가 이 세상에 정말 살아 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본문 中 비거 토머스라는 한 흑인 청년이 상류층 백인 여성을 우발적으로 살해하고 백인 경찰과 자경단에 쫓기게 된다. 죽음과 파국의 공포에 직면한 주인공은 자신을 공고하...
한 흑인 청년이 어느 돈 많은 백인 가정집에 운전수로 취직한다. 일을 시작하기로 한 날 저녁, 청년은 그 집 딸의 요청에 따라 그녀가 남자친구를 만나는 곳에 데려다 준다. 애인과 술을 마신 그녀는 집에 도착하자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취한 상태가 된다. 청년은 집안사람들이 깨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그녀를 방까지 부축한다. 침대에 누운 그녀를 청년은 잠시 바라본다. 그녀를 향한 욕망과 증오가 서로 얽힌 채 마음속에서 들끓는다. 하지만 아무 짓도 하지 않는다. 그때 여자의 엄마이자 그를 고용한 노부인이 방에 들어선다. 장님인 노부인은 딸이 보이지 않기에 그녀의 이름을 부른다. 딸은 무언가 답하려는 듯 웅얼거린다. 청년은 저도 모르게 베개로 그녀의 얼굴을 덮고 힘을 준다. 노부인은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 아가씨는 술에 취해 정신이 없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흑인’ 청년은 두려웠고, 여자의 입을 막고 싶었다. 노부인이 나가고 베개를 치우자 청년은 여자가 죽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리처드 라이트의 장편 소설 《미국의 아들》은 미국 사회 내 인종과 계급의 문제를 날카롭게 파헤친 작품이다. 살인을 저지른 주인공 ‘비거’는 어느 정도 죄책감에 시달리긴 하지만, 백인 여자를 살해했다는 사실에서 일종의 해방감을 맛보기도 한다. 이런 주인공을 좋아하고 공감하는 건 사실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리처드 라이트는 고도의 심리 묘사를 통해 독자로 하여금 비거가 가진 ‘분노의 원인’을 이해하도록 만든다. 비거는 자신이 백인 부부의 딸을 죽인 이유를 온당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살해 동기를 밝히려면 아마 자신의 삶 전부를 털어놓아야 할 것이라 얘기한다. 그의 삶은 검은 피부색을 가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숨이 막힐 만큼 이리저리 내몰려야 했다. 그를 고용한 돌턴 부부는 흑인 사회에 많은 기부를 함으로써 인성이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지만, 사실 그들의 기부는 위선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돌턴은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는데, 흑인들이 사는 구역을 따로 정해놓았을 뿐 아니라 그들에게 더 높은 집값을 요구한다. 한 구역에 끼리끼리 모인 흑인들은 그 안에서 꿈도 희망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일에만 매달린다. 여기서 의미심장한 것은 돌턴이 자신의 행동이 어떤 점에서 잘못된 것인지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미국에서 흑인이 같은 흑인을 죽이는 건 별일이 아니지만, 흑인이 백인을 죽이는 건 한 지역을 발칵 뒤집어 놓을 정도의 특종이다. 비거는 자신의 죄를 감추기 위해 ‘베시’라는 한 흑인 여자를 한 번 더 살해하지만 누구도 비거에게 그 여인의 죗값을 묻지 않는다. 같은 희생자지만 베시는 백인 여성의 죽음을 위한 증거 ‘도구’로 쓰이며, 그녀의 시신은 사람들에게 공개된다. 리처드 라이트는 인종 문제 못지않게 사회 계급에 대한 문제점도 꼬집는다. 백인 ‘상류’ 사회뿐 아니라 흑인의 지도자라 하는 사람도 돈이 있으면 같은 흑인을 무시하는 것이다.
같은 흑인 문학계열에 속하는 토니 모리슨의 소설이 예민하고 감성적이라면, 리처드 라이트의 작품은 좀 더 역동적이며 분노에 가득 차 있다. 사실 문학 작품이라기보다 고발서에 가까운 느낌이 들기도 한다. 특히 3부에서 비거의 재판 장면 중, 그를 변호하는 한 유대인 변호사의 호소는 등장인물의 것이라기보다 작가의 말, 그가 직접 하고 싶은 말처럼 느껴진다.
《미국의 아들》에서 우러러 나오는 어떤 격양된 감정은 나를 너무 놀라게 했다. 남성 작가의 필치에서 두드러져 나온 어떤 단단한 힘이 나를 이야기 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책을 읽으며 나는 때로 너무 놀랐고 두려웠으며 한없이 심각해졌다. 하지만 슬픔은 느끼지 못했다. 나는 오로지 분노, 분노, 분노로 점철된 이 소설에 대해 최종적으로 어떤 입장을 가져야 할지 잘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 소설의 억양이 위협적일지라도 여기 묘사된 사건들은 모두 현실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과장은 없다. 이건 미국의 과거였으며 현재라 해도 무방하다.
호밀밭을 뛰놀고픈 자유로운 영혼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