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9월 23일 오늘의 책
마크 트웨인 | 민음사 | 2009.03
분류 :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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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미국의 셰익스피어’, ‘미국 문학의 아버지’, ‘미국 문학의 링컨’으로 불리는 마크 트웨인의 대표작 순수한 어린아이들의 신나는 모험을 통해 대자연의 경이로움을 예찬하고 위선에 찬 어른 세계를 비판하며 가식적인 인간 사회를 풍자한 영원한 고전 ▶ 마크 트웨인은 미국 문학의 아버지이다._윌리엄 포크너 ▶ 트웨인은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작가들에게도 새로운 창작 방법을 발견케 한 작가이다._T.S. 엘리엇 미국 문학의 아버지로 ...
천전리에서 밤하늘을 살펴볼까 할 때면 그런 생각을 종종 한다. 내 조카들의 외가인 이곳이, 내 외가였던 사지골만큼 아이들에게 좋은 것을 주지 않을까. 줄 것이니 다행이라고. 내가 유년시절에 본 별들은 거의 대부분 사지골에 있었고, 그런 별들은 어지간한 세월의 때에도 쉽게 지워지지 않으니까. 그러니까 그사이, 짧게 읽은 책이었지만 그런 소중한 것들까지 이어놓진 놓친 못했다. 그러기엔 기차가 너무 빨랐고, 나는 삐딱했으며, 다른 생각에 처해 있었다.
마크 트웨인의 『톰 소여의 모험』을, 모임에서 지정한 출판본이 아닌 짧게 각색된 것을 읽으며, 의외로 흥미진진하게 진행되는, 은근히 치열하게 짜여있다 싶은 줄거리에 자못 감탄하면서도 그랬다. 그리고 실은 거기엔 꽤 설득력 있는 이유가 있었으니. 마크 트웨인은 꽤 유명한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었던가.
그래, 그런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으나 내가 원본 텍스트를 읽지 못했으니 섣불리 단정 짓지 말자. 그런 생각 안에서 소설을 읽다 보니, 톰 소여의 행동은 어린 사내아이들의 막무가내 억지처럼 밉살스러워 보였다. 급기야 이 소설이 유행할 때 영향을 끼쳤을 담론 같은 것에도 생각이 미친 것이다.
어쨌건 『톰 소여의 모험』에서도 갱생의 여지 없는 악인으로 '인디언' 조가 그려지고, 검색해본 바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서는, "다친 사람이 있느냐."는 물음에 허클베리 핀이 "아무도 없다. 깜둥이 한 명이 죽었다"고 답했다고 하지 않는가. 마크 트웨인이 후에 인종차별 등에 대하여 거센 비판을 했다고 하는데, 어쨌거나 이 초기작들에서 나타나는 그의 인종차별적 인식은 명확해 보이고, 그것이 만들어내었을 부정적 영향 또한 명백해 보인다. 그러니까 이 소설의 실제적 문제에 대한 비판지점은 여전히 유효하다.
아마 내 습관과 호흡으론 아무래도 읽지 않았을 『톰 소여의 모험』을 짧게 각색된 판본이나마 읽은 것은 독서 모임에서 지정한 책이었기 때문이다. 모임에서 이 책을 향유한 다른 식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면, 나는 내 비판을 확인하는 것만으로 끝나버렸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으니, 시간을 들여 읽은 책이 자기 확신 같은 갑갑한 벽을 한층 더 쌓아올리는 것으로 그쳐 버릴 것 같아, 은연중에 답답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 책을 고른 이가 적어 놓은, "읽기 전과 읽고 난 후의 내가 똑같은 인간이라면, 그 책은 읽을 필요가 없다."라는 문장을 읽고 무언가 들킨 듯싶었다. 뒤따른 문장들에서, 그이가 이 책을 통해 유년의 자신을 돌아보고 유년의 자신을 한 번 더 살아낼 수 있었던 독서를 했다는 식의 글을 읽곤, 그제야 이것이 내게도 무언가 생산적인 읽기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제야 내 유년을 떠올렸다. 생각하면 어쨌건 웃음 나거나 서글프거나 한 사지골에서의 기억들이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은 해보지 못했을 어떤 짓들…. 큰집 사촌 형과 같이 다니면서 했던 가령, 팔뚝보다 큰 황소개구리를 튀겨 먹은 거라든지, 도롱뇽 서식지를 아작낸 것, 해 질 녘 흑염소를 몰고 돌아오던 일이라든지, 복숭아 따고 낑낑대며 상자 옮기던 일, 닭 먹으라고 개구리 던져주던 일 등등.
적어두자. 버나드 멜러버드(Bernard Malamud)의 『수리공』에는 스피노자의 책을 읽고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라는 구절이 있다. 모든 책이 그러할 수는 없지만, 가능한 많은 책이 그러한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면, 책은 참으로 무용한 것이다. 그럴 바엔 지나가는 아이 머리 한 번 더 쓰다듬어 주는 게 좋다. 들뢰즈가 이렇게 적어둔 걸 또 적어두자. "우리는 유년의 기억을 가지고 글을 쓰는 게 아니라, 현재 아이가 되어가는 생성들인 유년의 집적들을 통해 글을 쓴다."
마크 트웨인의 인종차별적 문장들에 대한 비판을 비판으로 둔 채. 하지만 거기에 경도되어 나는 만나지 못했던 유년을, 만난 사람의 시선으로 책을 다시금 보게 된 것이 다행이다. 그러니 필시 책보다, 사람. 인종차별이라면 그 단어 말고 그때. 그리고 지금 차별받는 사람을 만나는 것. 유년이라면, 유년의 누구를 또는 나를 만나는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