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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기, 괴물

2017년 3월 22일 오늘의 책

연대기, 괴물

임철우 | 문학과지성사 | 2017.03

분류 : 소설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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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울음은 목숨을 가진 지상의 모든 것들에게서 흘러나오는 소리였다” 역사의 악몽을 되짚어 살아내는 생생한 기억 체험 더 이상 해원도 위안도 없을 고통의 연대기 198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개도둑」으로 등단한 이래 지난 36년간 이상문학상, 단재상, 요산문학상, 대산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활발하게 활동해온 작가 임철우의 다섯번째 소설집 『연대기, 괴물』이 출간되었다. “사건들의 기록자” “기억의 발굴자”(문학평론가 김형중)이자 “탁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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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괴물로 만든 것은


『연대기, 괴물』은 기존에 읽었던 작품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분량도 길었고, 내용 또한 묵직하고 단단했다. 마치 어둡고 외롭고, 칙칙하고, 굳게 닫힌 문을 조심스럽게 열어가는 느낌이었다. ‘60대 노숙자 지하철 투신자살’이라는 다소 자극적인 글의 도입부는 주인공 송진태 일대기의 종결이었다. 작가는 그의 일대기를 순서대로 나열하지 않고, 뒤집어 역행하기도 하고, 다시 현재 노숙자의 삶으로, 어느새 17살 군인의 모습으로 돌려놓기도 한다. 뒤죽박죽 얽혀있는 사건의 순서는 마치 그의 혼란스러운 심리적 상태를 대변하는 것 같다.

책 한 장 한 장을 넘기는 것이 불편하고 힘들었던 까닭은 단순히 잔인하고 적나라한 글의 표현 방식 때문은 아니었다. 책에 등장하는 ‘괴물’과 같은 존재가 어쩌면 우리 안에도, 이 사회 속에도 그 형태만 달리한 채 실존하고 있으리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가 7살 어린 아이였던 시절부터 인생의 마지막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괴물은 그가 ‘죽음’에 관련된 일을 생각하고, 경험할 때마다 등장해 그를 괴롭히며 육신과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그때마다 그는 흡사 ‘죽음’의 그것처럼 편안하면서도 무거운 잠에 깊이 빠져들곤 했다. 그에게 괴물은 자신의 아버지이자 피 묻은 쇠갈고리를 쥔 사내였고, 베트남 파병 중 그의 손에 죽어간 아이와 여자들이었으며, 300명을 집어 삼킨 바다 속 그림자, 그리고 악마 놈의 씨앗으로 태어나 숱한 고통과 죄의식으로 평생을 보낸 자기 자신이기도 했다.

주인공 송진태의 일대기는 한국 역사의 연대기와 맞물려 흘러간다. 그가 세상에 발을 딛기 전에 발발한 한국전쟁, 그로 인해 고통 받고 지금까지도 고통 받고 있는 존재들. 바로 송진태의 가족들이었고, ‘악마 놈의 씨앗’으로 낙인찍힌 그의 출생 배경이었다. 수많은 희생자를 낳은 베트남 파병 사건 속에서 그는 가해자이자 또 다른 피해자였다. 세월호 사건으로 스러져간 꽃과 같은 목숨들을 애도하며 그는 기시감과 죄책감을 느꼈다. 교수님께서는 ‘애도’가 죽은 자를 내 마음 속에서 다시 한 번 떠나보내는 일이라고 하셨다. 즉, 애도는 두 번의 죽음과도 같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살아남아 있는 내가 죽거나 혹은 죽음과 별반 다르지 않은 괴로운 삶을 살아가게 될지 모른다고.

작품 속 주인공 송진태는 이러한 ‘애도’를 제대로 실행하지 못했던 것 같다. 죽음과 그 자신에 대한 기시감, 죄책감의 감정을 분리시키지 못한 채 그는 죽음과 동일시되어 죽는 그 순간까지 일평생을 괴로움과 죄책감으로 지새웠다.
수많은 폭력과 죽음, 광기, 고통, 상처, 애도의 경험들은 그의 일대기였고, 현대사의 연대기였다. 60대의 한 노인이 지하철에서 투신자살을 한 사건은 현대 사회에서 자극적인 사회 이슈 정도로만 치부되고 말았을 흔한 소재일지도 모른다. 노인이 어떤 이유로 그러한 행동을 저질렀고, 그의 긴 삶에는 도대체 어떤 고통이 자리 잡고 있었을지 어느 누가 입을 열어 소리 내줄 수 있을까. 끔찍한 사건이지만 그보다 더욱 기상천외한 일이 일어나는 세상에서는 ‘별스럽고 자극적이지만 그저 그런 사회이슈’일 뿐이다.

임철우 작가는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를 풀어내고 죽은 자의 말을 대신 전달하고자 했다. 『연대기, 괴물』의 전 작품이었던 『선긋기』의 이은희 작가 또한 제 몫이 없는 자들을 위해 대신 목소리를 내주는 글을 쓰고자 했다. 이렇게 보면 그들의 대변인은 이 시대의 문학인들이다.
독자 역시 주인공 송진태가 겪어왔고, 역사가 겪어온 모든 폭력적 사건들을 ‘별스럽고 자극적이지만 이제는 그저 그런 이슈’라고 외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소리 내고 분노 하고 애도하지만 이제 그만 할 때도 되지 않았냐고. 송진태와 같이 기시감과 죄책감을 한평생 짊어지고 살아갈 사람들이 몇이나 될는지 모르겠다. 그가 마지막으로 괴물과 만나던 날, 전철에 몸을 부딪치기 직전. 그는 전 생애의 시간이 강물처럼 아득히 흘러가는 광경을 오롯이 지켜보았다. 죽음 직전에 인생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진다고 하지 않은가. 그도 오늘이 괴물과의 마지막 만남이자, 인생의 종결점이 되리라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는 그토록 끔찍한 굴욕과 같은 시간들을 끈질기게 견뎌온 세월을 통해 깨달았던 것이다. ‘죄책감’과 ‘괴물’, 그리고 그 ‘자신’은 결국 한 몸이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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