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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2016년 3월 22일 오늘의 책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안톤체호픈. | 신원문화사 | 2004.03

분류 : 소설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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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그 달콤한 광야


영화과 실기를 준비하던 시절에 체홉을 처음 알게 됐다. 당시 아무 생각 없이 읽었던 희곡이 「벚꽃 동산」이었고 '지루하지만 아름답다', '왠지 모르게 끌린다'라고만 느꼈다. 왜 좋은지도 모르고 마냥 좋아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지금과 같은 이유였다. 사랑과 사람의 아름다움과 부질없음을 덤덤하게 발화하는, 체홉의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이 좋다.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에 실린 단편은 대부분 서정적이고 예쁜 제목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한없이 냉철한 작가의 시선이 저변에 깔려 있다. 역설적이게도 그 덤덤함 속에서 지고지순함에 가까운 인류애가 느껴진다.

가장 인상적인 단편은 표제작인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이다. 유부남과 유부녀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라 자칫 불륜 소설이라는 오해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삼류 소설이라기엔 이들의 사랑의 풍경은 차라리 '광야'에 가깝다. 그들은 결국 재회했고 그 사랑은 어떤 결실을 맺었지만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눈 먼 사랑의 달콤한 뒤에, 서로를 끌어안을수록 깊어지는 황폐한 고독과 아픔이 있을것만 같다.

체홉은 냉철한 이성과 냉소의 시선으로 자칫 진부해질 수 있는 감정을 다시 재단한다. 이 소설을 읽은 후, 나는 단순히 서사나 인물만으로 그 소설을 판단하는 독서법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인물과 사건을 작가가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가에 대해 먼저 고민하게 됐다. 체홉의 소설 또한 이를 염두에 두었을 때 그 진가가 드러난다.

표제작 이외에는 「약혼녀」를 꼽고 싶다. 이야기만으로는 「귀여운 여인」이 좋았지만 「약혼녀」가 내게 남다르게 다가온 것은, 약혼을 하고 미국으로 떠난 친구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십여 년이 넘도록 자매보다 가깝게 지내온 친구였기에 친구의 미국행은 나에게 큰 의미였다. 친구 또한 「약혼녀」의 '나자'처럼 아직 어리고 결혼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다행히 지금은 서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무사히 출국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확신과 기쁨에 찬 사랑이 어디 있으랴. 사랑에는 가혹한 무엇이 있어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경이 존재하나보다.

이 책은 실패하거나 실패중인 사랑, 또는 남들의 축복을 결코 받을 수 없는 사랑에 귀 기울인다. 그러나 그 또한 단면일 뿐, 그들의 사랑을 한 마디로 정의할 수는 없다. 그 사랑도 어느 평범한 사랑 못지않게 일정한 단계를 거친다. 우연히 마주쳐 서로에게 빠져들고, 한낮의 키스와 같은 몽롱함에 젖어들기도 하고, 애써 덤덤한 이별과 눈물겨운 재회의 순간을 맞는다.

문득 사랑의 범주에 대해 생각해본다. 사람의 감정을 정상과 비정상으로 명확하게 나눌 수 없고 '이것도 사랑일까' 고민하게 만드는 것 또한 사랑이다. 사랑의 범주는 무한하기에 이야기의 가능성 또한 무한하다. 그리고 나는 그런 이야기가 내게 찾아오기를 기다린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기모'님은?

좋아하는 것이 너무 많아 영원히 살고 싶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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