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 20일 오늘의 책
권여선 | 문학동네 | 2020.02
분류 :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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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희는 강변을 달리는 통근버스 차창에 바짝 붙어앉아 아침햇살에 반짝이는 강물을 본다. 슬프면서 좋은 거, 그런 게 왜 있는지 소희는 알지 못한다.” 찌를 듯 무자비하면서도 따스한 햇빛처럼 황량한 폐허 속에서도 무언가를 찾아내는 손길처럼 끝인 듯 시작을 예고하는, 아직은 무엇도 끝나지 않았다는 말 소설집의 제목인 ‘아직 멀었다는 말’은 「손톱」 속의 “문득 소희는 새처럼 목을 빼고 어디까지 왔나 확인하듯 창밖의 거리를 내려다본다...
보통 단편소설집 제목은 수록된 단편의 이름을 가져오기 마련인데요. 『아직 멀었다는 말』은 책 전체를 위해 새로 지어진 제목입니다. ‘아직 멀었다’는 문장은 그 말을 하는 사람에 따라서 다르게 읽힙니다. 나를 앞지른 누군가에게 듣는 말이라면 기분이 나쁘겠지요. 고생할 일이 한참 남았다는 것처럼 들리니까요. 하지만 나이가 지긋이 드신 할머니께서 해주시는 말이라고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인생이란 아직 멀었다고, 살아가기에 충분하고도 넘치는 시간이 남아있으니 포기하지 말라는 묵직한 위로로 들리지 않으신가요. 두 의미 사이에서 진동하고 있는 이 소설집은 비참한 삶일지라도 인간이 살아가는 이유를 탐구합니다.
권여선의 소설 세계는 침울하고 답답한 잿빛입니다. 그는 소설에서 벼랑 끝 인생을 살고 있는 인물들의 삶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 그들의 애처로운 모습을 잔인하리만치 명확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손톱」에선 월 170만원을 벌기 위해서 매일 같이 백화점 신발 매장으로 출근하는 소희가 등장합니다. 소희는 엄마와 언니가 남긴 빚을 모두 갚는 날만을 상상하며 살아갑니다. 이번 달에는 얼마를 쓰게 될지 계산을 하다 보면 소희는 ‘뭔가 벅차오르다 금세 풀이 죽고 갑자기 조급증이 났다 울렁거렸다 종잡을 수 없는 흥분 상태’가 됩니다. 예상치 못한 사고 때문에 돈을 쓰게 되면 소희는 아픈 것보다도 화가 납니다. 그리곤 다시 계산을 시작하는데요. 하루, 한 달, 일 년씩 늘어나는 계산에 소희는 조급함을 느낍니다. 그래서 소희는 한 끼에 6000원 하는 짬뽕을 포기하고 몇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돼지고기 한 근을 선택합니다. 소희가 지금 순간의 행복을 참는 건, 과연 더 나은 내일을 꿈꾸며 인내하는 걸까요? 아님, 더 괴로운 내일을 피하려는 악착같은 인간의 생존 본능일까요? 가난은 각박한 세상에서 살아남으려 애쓰는 소희의 삶을 비참한 모양새로 일그러뜨립니다.
「너머」에 등장하는 기간제 교사 N의 삶도 다르지 않습니다. 계약 만료가 다가오자 아량을 베푸는 듯 계약을 한 달만 더 연장하자고 제안하는 교장 선생님에게 N은 소심한 복수를 상상하다가 이내 포기합니다. N은 한 달 봉급이 나와 상대에게 줄 수 있는 득과 실을 계산해 보다가 결국 교장 선생님을 귀찮게 할 수는 있어도, 비참하게 할 수는 없구나, 비참해지는 건 결국 나구나, 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권여선의 소설에는 세대를 막론하고 세상의 온갖 비참을 겪고 있는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결코 그들의 불행은 개인의 문제로부터 발생한 것이 아닙니다. 약한 이들을 더욱 벼랑 끝으로 몰고 가는 건 불공평한 사회의 구조입니다. 소설을 읽으며 그들의 고통을 읽고 사회의 구조적 문제에 비판을 던지는 것은 분명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이들의 삶을 그저 차별, 폭력, 가난, 외로움, 부당함으로 요약할 수 있을까요? 여기서 권여선은 한발 더 나아가 그들의 삶 속에서 비참함을 넘어서는 생명력을 발견하고 있습니다.
중년에 접어든 미술가인 「낮달」의 서술자는 더 이상 예전만큼 생기 넘치는 삶을 살지 못한 채, 외로움에 사로잡혀 있는 인물입니다. 애써 먼 길을 돌아 딸을 만나러 갔지만 일은 갈수록 꼬이기만 합니다. 잠시 일하는 동안에 다영은 아빠에게 ‘저수지’에 꼭 가보았음 좋겠다고 말하는데요. 시큰둥한 태도로 방문한 저수지에서 서술자는 잊지 못할 장면을 목격합니다.
어디선가 새가 날아와 나뭇가지에 내려앉았다. (중략) 새는 돌연 가지를 박차고 날았고 그 바람에 연한 잎을 소복하게 매단 나뭇가지는 다시 흔들리다 멈추었다. 멍하니 서서 새가 몰고 온 작은 파문과 고요의 회복을 지켜보던 그는 지금 무언가 자신의 내부에서 엄청난 것이 살짝 벌어졌다 다물렸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새가 날아와 앉는 순간부터 나뭇가지가 느꼈을 흥분과 불길한 예감을 고스란히 맛보았다. 새여, 너의 작은 고리 같은 두 발이 나를 움켜잡는 착지로 이만큼 흔들렸으니 네가 나를 놓고 떠나는 순간 나는 또 그만큼 흔들려야하리. (28~29쪽)
그는 새가 나뭇가지에 앉아있다 떠나는 순간을 전부 지켜보면서, 그 단 한 번의 순간이 자신에게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어쩌면 인간을 살게 하는 힘은 이런 잊히지 않는 경험으로부터 오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삶이 지속되는 건, 매 순간이 생동감 넘치고 의미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초월적이고 비현실적인 순간에 경험한 충만함을 평생 잊을 수 없기 때문인 것이죠. 마치 태양이 떠 있는 동안만 보이는 낮달처럼 우리는 희미하게 비치는 상태로, 가장자리 너무도 선명하지만 나머지는 전부 희미하고 모호하게 물들어가는 모양새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분명한 건 내가 그 말을 할 때, 그 말을 계속 진행시킬 때, 무언가 드러나기보다 사라진다는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다. 걷는 행위 속으로 사라지는 무엇이 보인다. 그렇다고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작게, 점점 작게, 주먹 쥔 손의 작은 어둠 속에서 무언가 희미하게 점멸하며 살아있다. 모든 건 사라지지만 점멸하는 동안은 살아있다. 지금은 그 모호한 뜻만으로 충분하다. (250쪽)
마지막 소설인 「전갱이의 맛」에서 저는 권여선이 계속해서 비참한 인간의 삶을 문학이라는 형식으로 담아내는 이유를 어렴풋이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권여선의 소설 속 인물들은 결코 죽지 않고, 지금을 살고, 내일을 살려고 애쓰고, 나아질 거라는 희망을, 아주 조그마한 모양새의 희망을 들고 있습니다. 그 희망은 희미하게 점멸하며 살아있는 것이기 때문에 말과 글로 쉽게 설명하거나 묘사할 수 없습니다. 다만 그 무언가의 존재를 느끼는 ‘나’에게만큼은 모호한 뜻만으로도 충분히 설명되는 것입니다. 말로 설명할 수 없지만, 느낄 수 있는 것. 모호한 뜻만으로도 충분한 것이 바로 권여선의 문학이 아닐까 하고 저는 생각해 보았습니다. 비참하기만 한 누군가의 삶이 작가의 세심한 시선을 통과할 때, 그들의 삶에서 찰나의 빛이 포착됩니다. 그리고 소설가의 언어를 경유해 그 삶이 문학이 될 때, 그 빛은 증폭됩니다. 그렇게 빛은 한 단어로 요약될 수 없고 글로 설명될 수 없는 방식으로 문학 속에 스며듭니다. 독자의 몫은 이를 발견하는 데에 있습니다. 마치 영화 『녹생광선』의 마지막 장면에서 델핀이 기적처럼 마주한 녹색광선처럼, 권여선의 문학 속에서 ‘생’은 사라지며 빛나는 빛입니다.
마지막으로 책을 덮으며 표지를 바라봅니다. ‘아직 멀었다는 말’이라는 잠잠하고 단단한 제목, 그리고 어디론가 향하는 한강 철교 위 지하철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해가 지는 듯, 해가 뜨는 듯 하늘이 붉게 물들어 있습니다. 열차가 앞으로 나아가는 듯, 다시 돌아가는 듯 지나갑니다. 삶이란 항상 즐거운 축제라고 믿고 있는 저에게, 하루라도 더 성실히, 더 열심히 의미를 가득 채우며 살아야 한다고 스스로 보채는 저에게 따끔한 충고와 따뜻한 위로 되는 책입니다. 『아직 멀었다는 말』은 우리에게 여전히 많은 날들이 아직 남아 있다고, 그러니까 괜찮다고 어깨를 토닥이고 있습니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펜벗 10기 짐짐'님은?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