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2일 오늘의 책
에쿠니 가오리 | 소담 | 2017.02
분류 :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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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섬세한 문장들이 능숙하게 이끄는 대로…… 문학 팬들의 마음을 춤추게 할 에쿠니 가오리 신작 소설 2017년 첫 에쿠니 가오리의 신작이 출간되었다. 이 책 『벌거숭이들』은 읽기 조심스러우리만큼 예리한 책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 다 알 것 같으면서도 어느 순간 생전 처음 보는 사람처럼 낯설게 느껴지는 관계 속 민감한 역학을 섬세한 필치로 그려냈다. 등장인물 하나하나의 심리를 깊이 파고드는 작풍이 이번 작품에서도 역시 빛을 발한다. ...
퇴근해 집에 불을 켤 때나, 늦은 일요일 저녁 쓰레기를 버리러 나갈 때 문득 영화 <곡성>의 장면들이 떠오른다. 정신을 놓고 경찰서 앞에 서 있던 나신의 마을 여자 같은, 무언가 아주 낯선 것이 있을 것만 같아 오싹한 기분이 든다. 전등이 켜면 사라질 잠깐의 어둠, 계단을 오르내리는 고작 몇 분일 따름인데.
그 영화의 장면들이 잊히지 않는 건 안다고 생각했던 것이 미지의 영역으로 바뀌는 공포 때문이다. 우리는 모르는 걸 알아가는 일에는 아주 익숙하지만, 그 역은 전혀 익숙하지가 않다. 그러니 잘 알고 있다고 여긴 세계가 한순간에 미지로 바뀌는 건, 시간이 거꾸로 흐른다거나 강물이 거꾸로 솟구치는 일처럼 일어나지 않을 일로 생각된다.
에쿠니 가오리 『벌거숭이들』은 사람과 사람 사이 그 틈에 관한 이야기다. 친밀하고 잘 안다고 생각한 관계도 극심한 무지를 포함하고 있음을, 관계란 낯섦과 낯익음의 긴장된 조합임을 에쿠니 가오리는 담담하게 그려낸다. 그 낯섦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건 혈연으로 이어진 가족 관계다.
몸은 얼음장처럼 차가운데 얼굴의 중심만은 뜨거워져서 정신을 차려보니 히비키는 오열하고 있었다. 어른스럽지 않다는 걸 알고는 있지만 슬프고 화나고 분했다.
“뭐야, 왜 우는데.”
조심조심 말하고 일어선 하야토의 전신주 같은 몸에 매달리자, 온가족이 사용하는 바디샴푸와 따뜻한 수증기 냄새가 났다.
“이제 싫어. 나, 그 아이가 무서워. 당신은 몰라.” (299쪽)
아이 넷의 엄마인 히비키는 초등학생인 큰딸 미쿠가 도저히 편하지 않다. 미쿠는 자신이 하는 일에 일일이 반항하고, 비협조적이며, 가출했다 돌아온 날에도 기계적인 사과로 신경을 거스른다. 결국 히비키는 아이처럼 오열하며 딸에 대한 부담감을 토로한다.
유키와 그 딸인 요우, 모모의 관계에서 그 삐걱거림은 더욱 선명하다. 노부인 유키는 30대 후반과 40대 초반인 두 딸을 마치 이물처럼 대한다. 유키는 제도 안에서 안정을 찾는 세속적 삶을 추구하며, 자신이 꾸린 새장에 도취되어 있다. 그러니 자신처럼 아름다운 새장을 택하지 않고 제도 바깥을 맴도는 두 딸의 속을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유키는 위태로운 삶을 택하는 딸들을 보며 ‘통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통 모르겠다. 모르겠다. 이것이야말로 모든 관계 속에 들어있는 필수성분 같은 것이다. 부모는 자식을 모르고, 자식은 부모를 모른다. 사랑, 관계, 함께 보낸 시간을 분해하면, ‘모름’은 해체된 장기에서 흘러나오는 혈액처럼 반드시 배어나올 것이다.
이것을 우리는 혈육, 부부, 애인, 친구라는 관계 안에서 뭉뚱그린다. 사랑과 우정 혹은 편함이라는 감정으로 통합한다. 갑자기 오열하는 아내는 낯설지만 하야토는 아내에게 잘 통하는 방법으로 그녀를 위로하고, 이시와는 옛 연인 모모가 9살 어린 남자를 만나고 있음에도 그녀의 친숙한 전화 목소리에 안심한다.
벌거숭이란 이런 익숙함을 벗어던진 후 발견하는 솔직한 자신을 의미할 것이다. 이 책에서 벌거숭이는 누구일까. 아마도 야마구치가 아닐까. 야마구치는 익숙함을 택하지 않고 새로운 삶을 찾아간다. 가정을 버리고 인터넷 채팅으로 알게 된 57세 여성 카즈에와 동거를 시작하지만, 그 카즈에마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 오갈 데 없어진 초로의 남자, 그는 도시생활을 버리고 시즈오카 농원의 일꾼으로 새 삶을 꾸린다.
계절노동자, 그것도 (지금 현재) 무수입인. 그렇게 생각하니 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나는 자유롭다. 병이 나도 의지할 사람 하나 없고 그 전에 죽을지도 모르지만 그때 일은 그때 가서 생각하자. 나른한 두 팔을 앞으로 쭉 뻗고 위아래로 흔들흔들 흔들어본다. ‘손끝이 물고기가 되어 활발하게 헤엄치는 이미지’로.(290쪽)
그는 이전과는 다른 자신만의 삶을 시작한다. 노상 어지르기만 하고 TV 리모컨 하나 제자리에 갖다놓을 줄 모르는 남자였지만 스스로 집안을 정돈하고, 거실 바닥에 온종일 드러누워 꼼짝하지 않는 남자였지만 가뿐하게 돌아다닌다. 비록 그에게 남은 것은 없지만, 그는 기꺼이 벌거숭이가 되어 맨손으로 삶을 일군다. 껍데기뿐이라 여겼던 과거의 방식이 아닌 스스로 찾은 자유로운 삶의 방식으로.
우리가 안다고 여긴 것들을 우리는 과연 알고 있을까. 견고하다고 자신하는 일상에도 때로 두려움과 낯섦이 튀어나온다. 그것을 낯익음의 영역으로 다시 꾹꾹 눌러 봉인한들, 그 봉인이 영원할 수 있을까. 우리가 해야 할 것은 그 낯섦을 탐구하고, 그 낯섦에서 기꺼이 자신의 미지를 발견하는 게 아닐까.
일생에 한 번은 그렇게 벌거숭이가 되어야 한다.
| Editor - 송보배
10rim@bnl.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