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2일 오늘의 책
허먼 멜빌 | 바다출판사 | 2012.04
분류 :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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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서구 지성계의 거목 보르헤스가 안내하는 환상적인 문학의 세계 〈바벨의 도서관을 펴내며〉 성서는 인류의 모든 혼돈의 기원을 바벨이라 명명한다. ‘바벨의 도서관’은 ‘혼돈으로서의 세계’?에 대한 은유이지만 또한 보르헤스에게 바벨의 도서관은 우주, 영원, 무한, 인류의 수수께끼를 풀 수 있는 암호를 상징한다. 보르헤스는 ‘모든 책들의 암호임과 동시에 그것들에 대한 완전한 해석인’ 단 한 권의 ‘총체적인’ 책에 다가가고자 했고 설레...
1920년대에 프란츠 카프카는 유명한 환상문학 장르를 시작했다. 『심판(Der Prozess)』에서 주인공은 어떤 권위도 없는 재판을 받고 형을 언도 받는다. 그 잊을 수 없는 작품에서 믿기 어려운 것은 사건보다 인물들의 태도에 있었다. 주인공은 항의 한 번 하지 않고 재판 결과를 받아들인다. 멜빌은 카프카보다도 반세기전에 바틀비의 이상한 사건을 만들어 냈다. 바틀비는 모든 논리에 반하여 행동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그의 혼란스런 공범자로 만든다.
-보르헤스의 작품 해제, (15쪽)
읽고 나면 어딘가 멍하다. 무언가 풀리지 않은 채로 책장을 덮지만 그 알 수 없음조차 자연스러운, 끊임없이 읽어가겠지만 결코 미스터리를 풀 수 없을 것만 같다. 『필경사 바틀비』는 그런 소설이다. 다시 읽고 곱씹어 봐도 바틀비에 대해서는 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대체 누구인지 알 수 없다. "창백할 정도로 말끔하고, 가련할 정도로 점잖고, 구제할 수 없을 정도로 쓸쓸한"(31~32쪽) 모습의 바틀비는 단지 이렇게 말할 뿐이다. “하지 않는 편이 낫겠습니다. (I would prefer not to)”
이 엄청난 소설에 대해서는 재차 말하기가 조심스러울 만큼 많은 철학자와 작가들의 논의와 이야기들이 있었다. 그런데 단순히 보면 이 소설은 꽤 친절한 편이다. 공통적으로 이상증세를 보이지만 동시에 서로 대조적인 사무실 직원들과 이성적인 안전주의자 변호사의 캐릭터는 스스럼없이 생생하다. 벽으로 일관된 배경 묘사는 삭막하기 그지없고, 필경사라는 직업이 주는 비자발성, 반복성 또한 쉽게 드러나는 요소다. 심지어 ‘월(Wall)가 이야기’라는 부재 또한 붙어있다. 펼쳐질 무대가 생생히 그려지고 상징하는 바도 어렵지 않게 감지된다. 하지만 이 소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수께끼다. 이 모든 것의 중심에는 바틀비라는 인물이 있고, 우리는 그의 생각이나 행위의 동기를 결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바틀비가 변호사나 다른 직원들과 대비되는 인물임은 분명하지만 그 이상의 것은 독자가 찾아내고 유추해야 한다. 『필경사 바틀비』는 그렇게 독자의 사유를 불러온다.
소설은 변호사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변호사는 바틀비를 관찰했고, 그에 따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점은 소설의 시작 부분에서 분명하게 제시된다. 변호사는 말한다. "내가 알기로 이 남자에 대해서는 완전하고 충분한 일대기를 쓸 만한 자료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 내가 바틀비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나 자신의 눈으로 본 놀라운 것들이 전부이다."(20쪽) 독자는 바틀비의 모든 것을 변호사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의지해 판단해 나가야 한다. 변호사는 제법 균형 감각을 갖춘 인물처럼 보이지만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야기를 전할 수도 있으며 무언가 중요한 이야기를 빠트릴 수도 있다. 게다가 그가 보지 못했거나 알지 못하는 측면 또한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이 점은 바틀비라는 문제적 인물에 대해 여러 가지 가능성과 여지들을 남겨준다. 소설이 나온 뒤 세기가 바뀐 지금까지도 여전히 그렇다.
소각된 편지들의 세계
배달 불능 우편물이라니! 꼭 죽은 사람처럼 들리지 않는가? (86쪽)
막다른 길에 몰린 뒤에도 매번 그 무엇도 하지 않는 편을 택한 바틀비는 툼즈(Tombs) 교도소의 사각의 벽에 갇힌 채 죽음을 맞는다. 그리고 변호사에게는 마지막으로 들려줄 이야기가 남아 있다. 유일하게 알려진 바틀비의 과거사다. 그 이야기는 소설의 모호한 구석을 다소간 정리해 준다. 이 모던한 소설에서 작가가 제시해준 바틀비의 과거는 단 하나다. 이것이 없어도 『필경사 바틀비』는 이미 충분히 성립되는 이야기지만, 멜빌은 어쩌면 시대를 앞서간 소설에 해가 될지도 모를 전사를 마지막 장에 적어두었다. 사실 소설은 바틀비의 죽음과 함께 이미 할 말을 다 한 것처럼 보였고, 덧붙여놓은 사연은 이야기를 하나의 인과관계 안에 가둬놓고 말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아직 남은 이야기가 있다고 하니 궁금하지 않은가?
바틀비는 배달 불능 우편물 취급소에서 일했고 해고당했다. 바틀비가 묵묵히 수행했던 서기 업무의 정확히 반대지점에 편지가 있을 법하다. 지극히 사적이고, 감정적이고, 개인적인 편지들. "그런 우편물들은 매년 대량으로 태워진다."(87쪽) 편지가 점점 사라지는 세계에 살고 있는 지금, 편지의 의미를 다시 묻고 만다. 누군가에게 진심어린 편지를 쓴 게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누군가가 건네준 길고 긴 편지를 외면하기도 했었다. 바틀비는 어떤 편지들을 읽었던 것일까. 그곳에서 무엇을 보았던 것일까. 이에 대한 변호사의 서술에서 핵심 낱말은 ‘죽음’일 것이다. 편지를 받아야 하지만 받지 못한 이들은 모두 죽은 자들이다. 그러니까, "생명의 임무를 받아 나섰건만 편지들은 죽음으로 질주한다."(87쪽) 한 창백한 인간에게 죽은 편지는 곧 죽은 사람들의 존재를 각인시켰다. 바틀비는 자신의 죽음 또한 빠른 속도로 이루어지고 말 거라고 생각했을까?
편지를 받아야 하지만 받지 못한 이들은 사실 죽은 게 아닐 수도 있다. 지금 시대에는 특히나 그렇다. 산업사회의 시스템에 대한 앞선 혜안으로 평가받는 소설에서 그 주인공의 행동 뒤편에 ‘죽은 편지’가 있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세계가 빨라지고 거대해질수록 개인들은 각각의 개별성을 잃어간다. 빠르게 죽어간다. 편지는 메일로, 블로그로, SNS로 그 영역을 계속 넘겨주고 있다. 동시다발로, 초고속으로 메시지 전달이 가능한 통신세계에는 수많은 말들이 떠돈다. 그 안에서 장황한 편지글은 누군가에겐 부담스러운 텍스트일 뿐이기도 할 테다. 한 개인이 한 개인에게 보내는 장문의 편지는 점점 더 불편하고 쓸모없는 가치가 되어갈지도 모른다. 생활이 편리해지면 그 편리를 이용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편리에 따라 마음도 변한다면 어떡해야 하나. 소설의 마지막 한 줄은 카프카만큼이나 고독했던 사내 멜빌의 한탄일 것이다.
아, 바틀비여! 아, 인간이여! (87쪽)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없다는 말을 앞서 했지만, 바틀비는 그냥 바틀비다. 혹은 위에 인용한 소설의 마지막 문장을 떠올리자면 ‘인간’이라고 답할 수도 있겠다.)
좋은 책과 서평을 나누고자 반디앤루니스 '오늘의 책'을 펜벗과 함께 만들어 갑니다.
펜벗이란 서평을 쓰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를 의미합니다.
매주 월요일, 성실한 서평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3월의 펜벗 서평 주제는 '오늘의 편지'입니다.
| 펜벗 일문일답
● 이번 달, paper25님이 펜벗을 위해 쓴 두 편의 서평은 자연스럽게 내용이 이어졌습니다. 『필경사 바틀비』와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는 공통적으로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안 할 권리’가 인간에게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Paper25님은 두 책을 읽고 ‘나름대로 잘 살 방법’을 찾으셨나요?
두 책은 읽는 이로 하여금 생각하게 하고 의심하게 해요. 그만큼 좋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개인적인 성향은 무언가 하는 쪽 보다 안 하는 편이어서, ‘하지 않음’에 대해 긍정하기가 조심스러워요. 스스로 잘 살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있거든요. 십 년 뒤, 이십년 뒤에 무언가 해버린 일 때문에 후회하거나 혹은 하지 못한 일 때문에 아쉬워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 바틀비가 ‘하지 않는 편’을 택함으로써 혹여 놓친 것은 무엇일까요?
사실 변호사가 바틀비를 달리 어떻게 대할 수 있었을까 싶죠. 바틀비는 많은 것을 놓쳤을 것 같아요. 누군가와 함께 즐기는 삶, 맛있는 음식을 먹는 즐거움, 일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보람이나 성취감 등이요. 그런데도 ‘하지 않는 편’에 서는 것에는 초월적인 면이 있는 것 같아요. 결과적으로 ‘생명’까지도 잃게 되었죠. 바틀비는 스스로 배달 불능 우편물이 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 요즘은 무슨 책을 읽고 계세요?
『작가란 무엇인가 3』을 틈틈이 읽고 있어요. 앨리스 먼로의 인터뷰가 궁금해서 2권보다 먼저 집어 들었다가 쭉 읽어나가는 중입니다. 이번에 펜벗 테마 때문에 찾아보게 된 조르주 상드의 『편지』도 있어요. 총 여섯 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저는 플로베르와 투르게네프에게 보낸 편지가 있는 6권을 골랐습니다. 상드가 보낸 편지만큼의 답장을 받지는 않았다는 점, 플로베르, 투르게네프 등 편지를 받았던 이들이 이제는 모두 죽은 이들이라는 점들이 바틀비의 우편물 취급소를 떠오르게 해서 기분이 묘합니다. 마르고 창백한 남자가 상드의 편지를 태우는 상상을 하게 돼요.
● 4개월 동안 펜벗 1기로 활동해 주신 덕에 울림이 깊은 서평들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펜벗이 끝나도 서평은 꾸준히 쓰실 건가요?
펜벗 활동을 하면서 사려 깊은 좋은 친구를 얻은 기분이었어요. 펜벗 1기 활동을 곧 마치는데요, 그래도 계속 친구로 남을 것 같습니다. 서평, 꾸준히 써야지요! 다만, ‘마감’이 주는 긴장감이 없으면 아무래도 게을러질까 봐 걱정입니다.
책, 영화, 커피, 모르는 동네 산책하기를 좋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