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17일 오늘의 책
밀란 쿤데라 | 민음사 | 2011.11
분류 :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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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아무것도 용서되지 않는 세상, 구원이 거부된 세상에서 산다는 것은 지옥에서 사는 것과 같으니까요. 무엇을 바로잡는 일은 망각이 담당할 것이다. 그 누구도 이미 저질러진 잘못을 바로잡지는 못하?겠지만 모든 잘못이 잊혀 갈 것이다. 농담 한마디 잘못 했다 “삶의 길 밖으로 내던져진” 루드비크는 십오 년 만에 고향을 찾았다가 한때 그토록 사랑했던 여인 루치에와 마주치지만 그녀는 루드비크를 알아보지 못한다. 당에 자신의 공적인 삶과 사적인...
누군가 인생은 종착역에 서야만 비로소 전체 맥락을 이해하게 되는 여행이라고 말했다. 삶이란 결국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 시간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결합해 전개된다. 살아있는 순간순간에 행하는 행동이 어떻게 전개될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인생이란 짧든 길든 돌이켜 생각하는, 즉 반추로 재구성되는 것 아니겠는가? 재구성된 이야기 역시 명확한 진실이라 우겨 말하기 힘들다. 기억은 항상 명확한 진실을 담고 있는 투명한 유리잔이 아니라 순전히 자의적으로 재구성되기 때문이다.
밀란 쿤데라는 이러한 인생의 진실을 알아차렸다. 밀란 쿤데라뿐 아니라 우리도 안다. 어느 순간 무심히 행한 행동 하나가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리는 비극을 한국 현대사에서 수없이 목격했기 때문이다. 억압과 권위주의적인 시절에는 특정 철학자나 작가의 책을 가방에 가지고 다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암실에 끌려갔다. 어떤 사람은 술에 취해 절대권력자를 욕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죽도록 고생하기도 했다.
밀란 쿤데라는 체코슬라바키아에서 태어나 프랑스에 정착하였다. 『농담』은 공산당이 지배하던 체코슬라바키아에서 일어났을 법한 비극을 다루고 있지만, 이러한 비극은 자본주의 체제에서도 수없이 일어났다. 체제의 문제도 문제지만, 체제를 뛰어넘어 보편적으로 개인은 체제와 긴장 관계에 있을 수밖에 없다. 관계에서 개인은 줄곧 약자일 수밖에 없다.
대학생이었던 루드비크는 순전히 여자 친구의 주의를 끌려고 연애편지에 "낙관주의는 인류의 아편이다! 건전한 정신은 어리석음의 악취를 풍긴다. 트로츠키 만세!"라는 문구를 적어 보낸다. 하지만 동구권의 초기 공산주의 사회는 특유의 혁명적 낙관주의적에 젖어 있었다. 소수파 공산당원인 트로츠키를 축출하고 끝내 암살한 주류 공산주의 세력이 장악하던 그 시대에 루드비크의 농담 한 마디는 그를 대학과 사회로부터 몰아내는 구실이 되기에 충분했다. 그는 강제 징집당해 석탄 캐는 일을 하며 청춘을 소진한다. 이 시기에 만난 여인 루치에와의 관계도 틀어지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루드비크는 그를 비극의 주인공으로 만들었던 사람들을 만난다. 그들에게 복수한들 흘러간 루드비크의 인생은 이미 흘러가 버렸다. 남은 것은 인생의 상처뿐이다. 이 상처를 껴안을 사람도 루드비크 자신이다.
복수심과 증오는 변하지 않는 인생과 인간을 전제로 한다. 인생의 어느 지점에서 느꼈던 모욕, 불타올랐던 복수심도 생각해보면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 바로 그때의 맥락과 주변 환경 안에서만 유효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한번 망가진 인생을 복원할 방법이 없으니 다시 체제와 시대가 중요하다. 어떤 경우에든 개인을 그가 뱉은 한마디 말이나 농담 때문에 핍박하고 아무렇지 않게 '처분'해버려서는 안 된다. 지나간 세월을 다시 바로 잡을 수 없으니 오늘을 자유롭게 살 수 있어야 한다. 농담 같은 인생이라도 스스로 선택한 것이라면 한 세상 잘 놀다 갈 수 있지만, 타인에 의해 강요된 농담 같은 비극은 그저 비극일 뿐이다. 그런데 어쩌자고 오늘, 이 시대에도 농담 같은 일들은 자꾸 벌어질까.
‘연필과 노트가 있는 여행’이라는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평소 책 읽기를 좋아하고, 시집이나 산문집을 직접 만들어 보고 있습니다. 누구나 시인이 된다면 지금보다 더 좋은 세상이 되리라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