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17일 오늘의 책
서경식, 다카하시 데쓰야 | 돌베개 | 2019.08
분류 : 사회/정치/법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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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민주주의는 한낱 ‘도금’에 불과했다! 총 4부로 구성된 이 책의 전체 대담을 관통하는 핵심 개념은 단연 ‘도금’(メッキ·鍍金)과 ‘본성’(地金)이다. 두 저자는 1945년 패전 이후 전후 민주주의라는 도금이 과거의 식민주의, 군국주의, 제국주의라는 일본의 본성을 덮고 있었다 말한다. 1990년대 후반 이후의 지난 20여 년 동안 일본이 보인 우경화와 과거사 인식의 퇴행은, 바로 전후 민주주의의 껍질이 벗겨지면서 드러난 본성이라는 것...
이 책을 쓴 자이니치 조선인인 서경식은 “일본 사회에 사는 조선인 마이너리티의 관점에서 이 대화에 임했다.”고 한다. 그는 자이니치(재일) 조선인이 일본에서 태어나 여기서 살고 있는 근본적인 원인이 “일본의 조선 식민지배”(p.7)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그와 대담을 진행한 다카하시 데쓰야는 일본 내 역사 인식과 인권 문제에 대해 통렬하게 비판하는 철학자이자 역사학자다. 그는 “국가와 사회를 위험한 방향으로 크게 틀 때, 학자, 연구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다.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자신의 인식과 사상을 말하면서 계속 쓸 수밖에 없는 고독한 작업임”(p.15)을 한국어판 서문에서 이야기한다. 그런 작업을 하긴 위한 믿을 수 있는 벗의 존재가 각별히 귀중하며 그 벗이 일본과 세계가 날로 크게 변하는 중에도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서경식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책은 한일 양국의 관계를 다루면서 일본 내의 움직임에 대한 여러 시각을 제공한다. 서경식과 다카하시 데쓰야의 대담을 적은 이 책은 두 지식인의 고뇌와 신념을 동시에 읽게 한다. 두 사람이 분석하는 전후 민주주의의 변화와 일본 내 지식인들의 내셔널리즘과 일본 리버럴파의 오류는 그대로 바다를 건너와 우리의 근대역사관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특히 두 사람이 언급하는 ‘여성국제전범 법정’의 문제는 위안부 문제와 더불어 생각해보게 한다.
일본의 민족주의적 입장과 그에 영향 받은 한국 내 역사인식이 아직도 청산되지 않은 과거사로 남아 현재까지 혼란을 야기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 점에서 다카하시 데쓰야의 말은 한일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다. “과거 역사의 잘못을 직시하며 그것에 대해 스스로 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없는 점이 전후 일본의 근본 문제가 아니냐는 것이지요.”(p.46) 그는 “누가 어떤 범죄에 대해 어느 정도의 책임을 지느냐를 우리가 스스로의 판단력으로 판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p.52)고 덧붙이기도 한다.
2장 ‘일본의 본성’에서는 일본의 근현대사를 깊이 알지 못하더라도 그들이 어떤 식으로 변모하여 지금에 이르렀는지를 알 수 있게 한다. “식민지배 시대를 넘어서는 것은 인류사가 조일 두 민족에게 부탁한 사명이다”라고 쓴 2002년의 글이 점차 현실화되어 간다는 서경식 선생의 우려에 공감하게 되는 건, 20여년의 세월을 거쳐 일본의 군국주의가 다시 부활하고 있기 때문일 터다.
대담에서 두 사람은 명예훼손으로 고발당해 법정에 서야 했던 ‘제국의 위안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나는 피해자는 완전한 존재가 아니며, 반드시 선한 사람이어야만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 그 이야기가 사실이든 아니든, 결코 ‘위안부’제도에 대한 면죄부는 될 수 없지요.”(p.101)
다카하시는 일본의 리버럴파가 결국은 ‘적당주의’로 기울며, 그것이 자신의 면책을 주는 결과를 낳는다고 보고 있다. “정의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의 아픔에 대해서는 왜 상상해 주지 않느냐는 것” “식민주의를 비판당해 고통 받는 것은 ’나‘인데 그런 ’나‘의 고통, ’나의 아픔은 어떻게 하겠느냐”(p.152)는 결국 자기 면책으로 기울기 마련인 현재의 일본 기득권층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음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3장의 ‘희생시스템과 식민주의’에서는 후쿠오카 원전 사고 이후의 일본의 정치적 해결 구조를 ‘희생의 시스템’으로 분석한다. 서경식 선생은 “원전 사고가 가해행위라는 점을 분명히 해 두어야 합니다. 같은 국민 가운데 누군가 불행한 사람이 피해를 당했지만 그 사람이 참고 견디는 것은 국가 때문이다.-그런 식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더불어 후쿠오카 원전 사고가 명확한 가해 행위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1945년 패전 당시의 커다란 착오나 실패가 고착화되어 일상화의 반증이라고 본다. 다카하시 데쓰야는 가해 행위를 말할 때에 결국 전후 일본의 오키나와 문제, 일본군의 전쟁 범죄, 위안부 문제에 모두 걸쳐 있으며, 일본 사회가 철저히 간과해 온 문제라고 판단한다.
서경식은 “미국의 핵 우산을 전제로 해서 자신들은 평화주의라는 인식을 갖고, 북조선에 대한 비난 결의 같은 것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키는 의식의 이중성”을 ‘허구의 평화주의’라고 말한다. 더불어 “저항하는 사람들이야 말로 화해를 방해하는 세력인 양 왜곡한 인상이 정착되고 있는데. ‘소녀상’을 철거하려는 쪽이 아니라 그것을 지키려는 쪽과 연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카히시 데쓰야 또한 “동아시아의 평화를 생각 할 때, 미국에 의존하지 않는 안정 보장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그 전제로 연대를 확대해 가야 한다.”(p.233)고 덧붙인다.
“이런 상황을 극복해서 상호 신뢰를 높여 가지 않으면 안전 보장 환경을 바꾸고 평화의 질서를 창출하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른바 ‘역사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야 합니다.” (p.233)
서경식과 다카하시 데쓰야의 대담은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한 일본 현대사의 여러 면과 일본천황제가 가지는 상징성 및 그 속성, 역사를 바라보는 일본인과 일본의 지식인들을 면밀하게 들여다보면서 그들의 역사인식이 무엇으로부터 비롯되었는지 생각해보게 한다. 이 책에서 전하는 일본의 수정주의 역사관이나 군국주의, 그리고 아직도 도처에 널려 있는 욱일기 등을 떠올려 본다면 일본의 과거사 인정과 사죄, 동아시아 정세가 결코 낙관적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두 사람의 대담을 통해 고뇌하는 사람들만이 결국 실천적 삶의 광장에 모일 수 있음을 믿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어떤 ‘어두운 시대’에도 어둠에 저항하며 사과하고, 말을 만들고, 어둠 속에서 길을 잃은 타자들을 향해 목소리를 낸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 사고, 말, 목소리에 용기를 얻어 우리도 사고하고, 말을 만들고, 목소리를 내려 살아가고자 한다.” (p.239)
오늘의 책을 리뷰한 'lhry0'님은?
이혜령 독서 공동체 ‘숭례문학당’의 강사 , 마을공동체활동가, 밝은작은도서관운영자 , 동네에서 책과 사람들이 있는 곳에 달려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