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16일 오늘의 책
추적단 불꽃 | 이봄 | 2020.09
분류 : 사회/정치/법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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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년 전 그들은 취업을 준비하던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1년전인 2019년 7월, ‘불’과 ‘단’은 취업을 준비하던 대학생이었다. 기자지망생이었던 불과 단은 대한민국의 여느 대학생들과 다름없이 취업스펙쌓기를 위해 공모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뉴스통신진흥회의 ‘탐사 심층 르포 취재물’ 공모전에 응모하기로 하고, 그동안 관심있게 지켜보던 ‘불법촬영’을 주제로 취재를 시작한다. 취재팀 이름은 ‘불꽃.’ ‘불법촬영’이 주제가 된 이상, 불꽃의 취재현...
2020년 3월, 이른바 ‘N번방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주동자들이 속속히 잡혔다. 현대 인간의 평균 수명에 기대어 보았을 때 너무나 어린 축에 드는 사람들이 그런 극악무도한 짓을 저지르고도 반성의 눈빛조차 보이지 않던 충격적인 모습에 나는 기겁했다. 경악을 금하지 못했지만 그들이 잡힘으로써 거진 다 해결되었으리란 착각 속에 살았던 나는 오늘 나 자신에게 또 한 번 기함했다. 왜냐하면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를 읽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너무도 충격적이었다. 내가 몰랐던 엄청난 일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어린이를 상대로 자행된 성착취 사례 앞에서 나는 무너졌다. 겨우 사례만, 책으로 읽었을 뿐인데 가슴이 울렁거리고 손이 달달 떨렸다. 증거를 모으기 위해 채팅방에 입장한 두 명의 대학생들은 어땠겠는가. 여과 없이 들어야 했던 온갖 더럽고 모욕적인 언사들 속에서 어떻게 정신을 차릴 수 있었을까.
이 책을 읽고 나니 너무 미안했다. 일단 나는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았다. 불편한 뉴스였다. 주동자 조 씨를 포함해 악한들의 얼굴이 카메라 세례를 받으며 대서특필 될 때 화면을 애써 외면했다. 소름 끼치고 무서웠기 때문이다. 인간이 인간에게 어떻게 저런 일을 벌일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누군가의 인생을 그야말로 조지고도 전혀 죄책감을 갖지 않는 그들을 보면서 오히려 내가 눈길을 피했다. 너무너무 불편했다.
누군가는 왜 그리 힘들게 인생을 사냐고 묻기도 한다. 왜 별것도 아닌 일을 예민하게 받아들이냐고. 웃기는 말이다. 내가 불편하고 싶어서 불편한가. 여러 사회문제를 인지하고 불편해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예민하게 구는 것’으로 여겨선 안 된다. 나의 예민함이 사회를 좀더 나은 방향으로 이끈다고 믿는다. (157쪽)
이 책을 접하게 된 것도 우연이었다. 뉴스조차 피했던 나는 그들의 만행을 세상에 알린 것이 ‘추적단 불꽃’인 줄도 몰랐다. 나처럼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추적단 불꽃을 짧게 소개한다. ‘불’과 ‘단’ 두 사람으로 이루어진 추적단 불꽃은 원래 언론학을 전공하는 취준생이었다. 이들은 공모전에 참가하기 위해 ‘불법촬영’을 주제로 조사를 하다가 우연히 텔레그램방 운영자인 와치맨의 블로그를 찾게 되면서 이 일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책의 앞부분은 N번방을 조사하게 된 계기와 과정에 대해 담았고, 중간 부분은 ‘불’과 ‘단’의 이야기가 교차하며 전개되는 에세이로 이루어졌다. 저자 두 사람은 한국여성으로 살면서 어떤 피해를 겪었는지, 우리가 부지불식간에 당한 유사 강간은 무엇인지에 대해 적어두었다. 책의 말미에서는 이 엄청난 사건이 도마 위로 오르면서 언론이 어떤 일을 행했는지와 추적단 불꽃이 얼마나 고초를 겪었는지에 관해 말한다.
나는 엄청난 페미니스트도 아니고 평범한 기혼여성일 뿐이지만, 요즘 이런 류의 책을 자꾸만 읽는다. 이 시대의 여성주의에 대해 말하고 기록한 책들을 말이다. 누군가는 극단적인 측면만 보면서 혐오의 울타리를 덧씌우는 ‘페미니즘’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어서, 또 나는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자꾸 찾아서 읽는다. 무엇보다 이 책은 페미니즘을 떠나 모두가 꼭 알아야 하는 내용이고, 이 두 대학생의 용기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많은 사람이 알아야 하기 때문에 읽고 리뷰를 남긴다.
이 책에 의하면 지금도 텔레그램 채팅방에서는 소아나 청소년들의 성착취 동영상이 유포되고 있고, 그 동영상을 본 사람들이 후기를 쓰며 피해자를 조롱하고 있단다. 텔레그램 채팅방은 단계가 있는데, 누구나 가입할 수 있는 단계에서는 저질 동영상을 보고 서로 후기를 이야기하고, 높은 단계로 갈수록 수위가 높고 유료로 운영되는 방이라고 한다. 조주빈 일당은 일부 부적절한 행동을 일삼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유인, 협박 등을 통해 성착취 동영상을 상납받았고 이를 거래해왔다. 추적단 불꽃은 증거를 잡기 위해 잠입했다. 동시에 엄청난 정신적 피해에 시달려야만 했다.
가장 충격적인 사실은 그들이 알고 있는 사람의 얼굴이 나체 사진과 합성돼 떠돌고 있었다는 부분이었다. 나와 관련이 있는 사람이 버젓이 조롱받고 있는데 제대로 된 증거를 잡아 그들의 수장을 구속하려면 참아야 한다. 이만큼 개 같은 상황이 또 있단 말인가.
조사를 진행하면서도 혹시 신상이 털리지 않았을까, 어둔 밤 집에 들어가면 옷장에 누가 숨어 있지 않을까 악몽과 트라우마에 시달려 결국 심리 상담까지 받아야 했던 대학생 두 명.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결국 공론화하는 데 성공한 추적단 불꽃이 정말 대단하고 용감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들이 진심으로 존경스럽다.
어려운 점이야 왜 없겠느냐마는 나의 희생으로 이 사회가 조금이라도 달라질 수 있다면 기꺼이 총대를 메겠다는 그 젊음이 부럽다가도 부끄럽고 그랬다. 나는 얼마나 용기 있게 내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왜 내가 느끼는 부당함의 반경은 그리도 좁았을까. 나는 사소한 것에만 분노하고 정말 움직여야 할 때는 가만히 있지 않았는지 돌아보게 된다.
‘지인 능욕’이라는 거, 정말 무섭다. 지금도 어느 채팅방에서인가 일어나고 있을지 모르는 범죄. 마음에 안 드는 지인의 얼굴과 다른 사람의 나체를 합성하거나, 그 사진을 가지고 얼마든지 조롱할 수 있다는 사실에 소름이 끼쳤다. 매일같이 아무렇지 않게 이루어지는 일이다. 당장 나도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우리는 흔히 디지털 범죄를 현실에서 일어나는 범죄보다 가볍게 생각하곤 한다. 누군가 죽거나 다치는 것처럼 피해가 직접적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매 순간 손쉽게 생산되는 영상들이 피해자의 평생을 옥죈다. 한 피해자는 친구에게 메시지만 와도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단다. 본인의 사진을 봤다는 말일까 봐. 이거 혹시 너 아니냐고 묻는 말일까 봐. 코끝이 시큰했다. 디지털 성범죄는 대단히 심각한 범죄이며 주동자뿐 아니라 유통에 가담한 모든 사람을 엄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솜방망이 처벌, 이제는 좌시할 수 없을 것 같다.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언론에서 말해주는 것만 들었다. 주변의 어른들이 아무렇지 않게 “저놈들이 쳐죽일 만 하긴 한데, 피해자도 일반적이진 않다”며 ‘당할 만했다’는 이론을 펼칠 때 한마디 쏘아붙이지도 못했다. 그렇지 않은데. 무조건 가해자 잘못이고, 피해자는 피해자일 뿐인데.
추적단 불꽃이 멋진 이유 중에 또 하나는 피해자들이 살 수 있는 세상이 될 수 있게 노력한다는 것이다. 위험을 무릅쓰고 강연도 다니고, 피해자들의 인권 보호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깊게 감명받았다. 나는 흘리는 말로도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뒤집어씌우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해봤다.
공개 SNS에 올렸던 아이들 사진을 싹 지웠다. 나와 지인들의 얼굴 노출도 자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엄마라도 아이들 허락 없이는 아이의 사진을 함부로 올려선 안 된다. 범죄에 악용될 수 있는 소지는 내가 알아서 차단하겠다고 생각했다. 세상에는 나쁜 사람이 너무도 많다.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사회에 살고 싶지 않다. 사람이 사람을 믿으며 살고 싶다. 그러려면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극성스러워 보인다고,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분란을 일으키지 말고 넘어가자고 하는 사회는 끝났다. 내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좀 번거로워도 내가 먼저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작은 책 한 권을 읽으며 엄청나게 많은 걸 깨달았다. 비로소 어른이 된 것 같은 느낌이다.
여성의 성착취를 놀이, 돈벌이 수단으로 소비하는 나라에서 여성으로 태어난 순간, 불법촬영과 디지털 성범죄를 당하지 않으려면, 혹은 가해자를 처벌하려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디지털 성범죄에서 자유로운 여성은 대한민국에 하나도 없다. (233쪽)
오늘의 책을 리뷰한 'qkrkskfk'님은?
10월 2주 주간 베스트리뷰에 선정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