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 15일 오늘의 책
뿌리 이야기 외 - 제39회 이상문학상 작품집(2015)
김숨 외 | 문학사상 | 2015.01
분류 :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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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산업화와 기계문명으로 인해 뿌리를 상실해가는 현대인의 불안과 방황을 새로운 삶의 가능성으로 승화한 대작! “[뿌리 이야기]는 인간을 나무에 비유해, 산업화와 개발로 인한 현대사회의 황폐함과 현대인의 뿌리 뽑힘, 그리고 다른 곳으로의 이주가 초래하는 고통을 문학적으로 승화하는 데 성공한 명작이다. 작가는 다른 곳으로 이식되는 나무의 불안과 고통을 자신의 삶의 터전을 떠난 뿌리 들린 사람들의 삶과 긴밀하게 병치하고 있다. 작가는 현대인...
금년도 이상문학상 수상작 김숨의 「뿌리 이야기」는 그녀의 전작들에 비하면 안정적이고 낯설지 않은 작품이다. 전하고자 하는 주제와 ‘뿌리’의 상징적 의미도 명확하다. 그는 인간의 삶을 뿌리에 비유하여, 뿌리가 허공에 들린 자, 뿌리를 상실한 자들의 아픔과 심리적 불안을 밀도 있게 그려낸다
이야기엔 뿌리를 오브제로 삼아 작업하는 ‘미술가’가 등장한다. 그는 참신함과 전위를 요하는 창작세계와는 어울리지 않는 뿌리를 고집한다. ‘뿌리’에 그가 집착하는 이유는 ‘입양아’였다는 그의 근원적 상실감에서 비롯된다. 그가 작업하는 뿌리들은 “천재지변의 화를 입었거나, 개발이라는 명목하에 내쫓겨진 철거민들처럼 굴착기로 파헤쳐진(29쪽)” 것들로, “하루아침에 제자리에서 들려 내쫓긴 뿌리(29쪽)”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 뿌리들은 그의 존재 양태를 상징적으로 대변하는 것들이다. 작업의 당위는 ‘그 자신의 존재 찾기’이자 ‘뿌리 뽑힌 자들의 얼굴’ 보이기가 된다.
특히 패널에 나무뿌리를 ‘고정’시키는 작업 과정 중에, 그가 필요 이상으로 과도하게 ‘못 박음’하는 것 역시 그의 삶이 ‘고정되지 못한 채 다른 가정으로 이양’되었다는 피해의식에서 비롯된 행위로 보인다. 또한 그가 자신과는 다른 성장 배경을 가진 여성과 관계하고 있다는 점 역시 눈여겨볼 만하다. 소설의 화자이자 남자가 관계를 맺고 있는 여성인 ‘나’는 태어난 곳에서 한 번의 이사 없이 나고 자란 서울 토박이로, 그와는 대조적인 삶을 살았다. 남자가 태생적으로 뿌리 뻗음이 수평으로 얕은 천근성 식물을 닮았다면 여자는 수직으로 깊게 뿌리 내리는 심근성 식물에 가깝다. 남자는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가진 여자에게 자연스레 이끌렸을 것이다.
남자는 자신이 유기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 이후, 수차례 던졌을 실존적 질문을 여성에게 던진다. ‘혹시 스스로에게 그런 질문을 던진 적 있어? 내가 왜 여기에 있는 것인지, 내가 왜 없는 게 아니라 있는 것인지. 그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한 적 없어? 내가 왜 여기에 있는 지 말이야. 신기하지 않아? 수백 수천 번을 해도 모자란 그 질문을, 수만 번을 해도 모자란 그 질문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을 때까지 자기 자신에게 하지 않는다는 게 말이야.(31쪽)’ ‘여기 있는 게…… 없지 않고 있는 게…… 그냥 당연한 것인가? 어떻게 그게 당연하게 생각될 수 있지?(31쪽)’ 그는 화자에게 ’생과 사의 자리가 같은 나무들은 스스로에게 존재의 의미를 물을까’하고 묻는다. 그에게 있어 그녀는 자신과는 태생이 다른 심근성 뿌리였다.
‘정체성의 혼란’, ‘근원의 상실’을 겪은 그는 일반인들이라면 쉽게 간과하고 지나치는 나무들의 공포까지도 끌어 앉는다. 그는 메타세콰이아 나무들은 태어난 자리에서 천이백 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 강제 이식된 존재들임을 안다. 그는 ‘뿌리가 들릴 때 나무가 감당해야 하는 공포에 대해서 생각하지 못하는(35쪽) 인간들’의 무심함에 자주 의문을 던진다. 남자의 생각이 다른 이들의 인식이 가닿지 못한 지점에 미치는 것은 그 역시 상실을 알기 때문이다.
반면 여자가 스스로 ‘내가 왜 여기에 있는 것일까’하는 질문을 던진 건, 몸담고 있던 직장을 잃은 후였다. 평범한 삶을 살아왔던 그녀는 실직 후에야 뿌리 들림으로 인한 상실감을 체험하며, 종군위안부였던 고모할머니의 삶을 다시 보기 시작한다. 함께 한 방을 썼던 시절, 밤마다 이불 속으로 뿌리를 휘감듯 어린 장조카의 손을 잡아와 그녀를 소스라치게 놀라게 만들었던 할머니의 손, 포도나무 뿌리를 닮은 그녀의 손이 어둠 속에서 찾고 있었던 건, ‘메말라가던 자신의 존재를 받아줄 흙’이었다는 걸 화자는 비로소 알게 된다.
사실 한곳에 뿌리 박혀 안정적인 삶을 살아온 이들에게 ‘뿌리 들린 자’의 공허한 내면을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원뿌리가 깊게 뿌리 내린 자들에게 ‘존재론적 질문’이 생소할 수 밖에 없는 이유도 당연하다. 자신의 존재에 한 번도 회의를 품어볼 만한 이변이 없었기에 일생에 가져보지 못한 의문이며, 앞으로도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잊고 살 질문이다. 하지만 실존적 질문을 숙명처럼 앉고 살아가야 하는 이들에게는 그 질문이 죽기 전까지 일대의 과제로 남는다. 간혹 TV에서 성인이 된 입양아들이 자신의 생모와 가족을 찾는 모습을 볼 때가 있는데, 책을 읽으면서 그들의 떨리던 목소리가 생각났다. 다큐에서 여러 차례 본 위안부 할머니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빛바랜 흑백 사진 속 그녀들의 공허하고 깊은 눈빛이 보였다.
작가가 보여주는 ‘뿌리’는 익숙하지만 낯설다. 작가는 중심의 존재들이 의문을 전혀 품어보지 않은 삶, 상처 입은 뿌리들이 전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자아 중심적 세계 안에서 형성된 중심-주변, 자연-인간 이분법적 경계를 돌아보게 만든다. 작가는 일상에서 무심코 자아냈을 소외의 공기를, 무관심으로 방조했을 폭력의 소리를 기록한다. 이질적이고 때론 불편한 기운은 ‘김숨’의 윤리다. 「뿌리 이야기」는 익숙해서 미처 돌아보지 못한 장면을 일깨운다. 그녀의 시선은 낮은 곳에 머문다. 그것이 작가 김숨이 가진 힘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상의 독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