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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게 아니라 틀린 겁니다

2019년 10월 15일 오늘의 책

다른 게 아니라 틀린 겁니다

위근우 | 시대의창 | 2019.05

분류 : 사회/정치/법률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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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요된 화해, 그 이퀄리즘은 틀렸다 최근 한국사회에서 페미니즘을 과격하다고 말하며 각광받았던 ‘이퀄리즘’이라는 개념(?)이 있다. 사실상 나무위키를 통해 날조된 이 개념은, 그러나 “싸우지 말고 지내요” 같은 정서에 기대어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한다. 하지만 억압과 차별이 실제로 존재하는 사회에서 왜 싸움(Fight)을 평화(Peace)로 대체하자는 논리가 힘을 얻는가? 기울어진 기본 틀을 의심하지 않는 평화는 억압의 다른 이름일 수밖에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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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한 공론장을 위하여

 

다양성을 존중하는 공정한 사회를 만들자는 의미로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거다’라는 논리는 익숙하다. 각자의 차이를 인식하고 포용력있게 받아들이며 강자가 약자를 이해하는 태도로 서로 날 세우지말고 화해하면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의미로도 들린다. 어쩐지 살짝 미심쩍기도 하고 그게 현실화될지는 모르겠지만 화해와 이해, 평화에 도달하는 것은 좋은 것처럼 여겨지니 넘어가기로 한다.

 

그런데 이 책은 반대로 『다른 게 아니라 틀린 겁니다』라고 말한다. ‘괄호 안의 불의와 싸우는 법’이라는 부제를 달고 틀린 것들에 대해 이건 이런 점에서 잘못한 것이라고 분명히 지적하며 싸울 태세로 날을 세운다. 이미 안락함을 누리며 사는 데 불편함 없고 자신은 태연히 발밑에 있는 이들을 밟고 우월한 채 서있다고 믿는 이들에게는 이런 날선 화두들이 피곤한 이야기처럼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저자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나 역시 느꼈던 불편함, 당시에는 분명히 잘 몰랐지만 어쩐지 석연치 않던 찜찜함, 의심하지 않고 기꺼이 받아들였던  ‘대중문화’ 속에 숨겨진 차별과 불의에 대해 실체들의 이면에 대해 조목조목 따지고 바로 잡고 가자는 그의 목소리에 힘을 싣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이슈가 힘을 받기 위해서는 논쟁의 압도적인 지분이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잘못된 주장에 과도한 지분과 발언권을 주는 것은 논쟁자체를 왜곡시킨다. 불합리에 대한 날 선 배제와 비판이 규칙적으로 통용될 수 없다면 논쟁을 통한 합리적 합의를 기대하기 어렵다. 

 

월경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피의 연대기』에서 월경에 대한 ‘그날’이라는 표현 때문에 정말 한달에 하루만 겪는다고 생각하거나 참으면 되는 일이 아니냐고 인식하는 남성들이 있으며, 이 보편적인 경험에 대해 당사자를 포함해 무지하거나 부정적인 오해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나 소설 『82년생 김지영』에서 나를 비롯 많은 여성들이 너무 익숙하고 뻔해 진부하다고 느껴질 정도인 이 상황들이 어떤 남성들에게는 편향적이고 왜곡된 사회인식을 드러낸 작품이라며 분노하며 평가절하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이 땅에서 여성의 위치가 어떠하며 그래서 왜 이러한 문제가 시민으로 책임감을 느끼며 사회공동체의 논의가 필요한 것인지 깨닫게 한다.

 

그렇다면 이제야 겨우 문화나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무비판적으로 사용하던 여성혐오와 차별적언어를 지적하는 이들에게, 마녀사냥이니 문화혁명이니 하는 말로 침묵을 강요하고 비판의 자유를 축소시키려는 이들이야말로 실제로 마녀에게 불을 붙이고 반대파를 숙청하는 가해자들에게 가깝지 않은가? (…) 그러니 권력은 정말 좋은 거다. 원한다면, 피해자의 자리까지도 빼앗을 수 있다.

 

공적 연대란 힘의 집중이기도 하지만 부담의 분산이기도 하다. (…) 안전한 거리에서만 유지되는 남자들의 선의와 다짐은 믿을 게 못된다는 경험적 사실 앞에서 여성들에겐 생존과 실존을 위한 더 많은 용기가 요구된다. 누군가 더 많은 용기를 내야 하는 것 자체가 불평등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이러한 용기에 대한 감탄은 또다른 기만일 뿐이다.

 

흔히 비겁함을 단순히 사적인 양심이나 무관심의 문제로만 보지만 그것을 사회적 책임의 분담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얼마든지 공적인 문제로 접근할 수 있다. 물론 그들에게 발언을 강제할 수는 없다. 다만 그것이 비겁함을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일 수는 없다.

 

웹툰 ‘며느라기’, 홍상수의 영화 속 남성 캐릭터, TV 프로그램 ‘나혼자산다’나 ‘안녕하세요’, ‘전지적작가시점’, 배려라곤 없이 센척하고 무례한 폭력성을 로맨스로 포장해버리고 장애인 차별을 웃음으로 덮어버리는 무심한 인권감수성 등 찜찜하고 불편하지만 잠깐 흥분하다 말고 남의 이야기니 그냥 예능으로 보고 지나쳐 공고히 되고 마는 사례들을 언급한다.

 

안일한 접근 안에서 실재하는 혐오는 반복될 뿐이다. (…) 작가의 성실한 직업 윤리는 이처럼 작품의 정치적 윤리까지로 이어진다. 올바른 작품이 더 잘 만든 작품이다. (…) 웹툰 특유의 핍진성은 묘사된 현실에 대한 반성적 전유를 거치지 않을 때 자칫 세상의 통념들을 재생산 하는 데 그치게 된다. 현실에 일진이 있으니 일진이 나오고, 현실에 폭력이 있으니 폭력이 나오며, 현실에 여성혐오가 있으니 여성혐오가 나온다. 많은 경우 핍진성과 재현의 윤리 사이에 반목이 생기는 건 그래서다. (…) 창작에 있어 동시대에 대한 민감성이란, 단순히 지금 이곳의 풍경을 담아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숨어있는 여러 구조적 모순과 부조리까지 인식하는 능력이다. 즉 현실을 더 온전히 담아내기 위해서라도 현실의 이면에 작동하는 구조와 권력의 메커니즘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리얼리티란 결국 세상을 읽는 성실성에 달렸다.

 

가끔 사실 관계도 분명하지 않은 사안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것에 대해 망설여기지도 하고 내 판단이 경솔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주저한 적도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언론보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듯이 소수 의견이라 말살되거나 권력을 지니지 못한 사실이 과도한 가짜뉴스의 폭격을 당하는 것을 보자면, 적어도 의혹이 있는 것에 공론의 장을 만들고 사실관계를 밝힐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게 얼마나 의미있는 일인지 새삼 깨닫는다.

 

당연히 약자의 폭로는 곧 사실도, 모두 정의도 아니다. 그리고 나를 비롯한 성폭력 피해 호소인 연대자들이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전파하는 건, 약자의 폭로가 곧 사실이고 모두 정의라서가 아니라 그조차 없다면 그것이 사실인지 정의인지 가려보기도 전에 묻혀버릴 것을 알기 때문이다.

 

통념의 관성, 그 물리적 힘 앞에서 프로불편러의 민감함이란 소수의견으로 쉽게 무시되거나 배제된다. 나의 민감함이 관념적 독백이 되지 않기 위해선 상대에게 '인식’되는 것이 우선이다. 하여 공적 논의안에서의 비판적인 글은 일종의 거슬림을 통해 물질적 존재감을 획득할 필요가 있다. 안온한 통념의 세상에 이물감을 줄 수 있는 그런 언어. 무시하자니 뾰족해서 신경쓰이고 부수자니 생각보단 단단한 그런 언어로.

 

저자가 남성이라는 사실이 새삼 고맙다. 함께 사는 와이프분은 어떻게 느끼실지 모르겠는데 여성들이 처한 부당한 차별과 불의에 대해 피곤하게 만드는 여성만의 문제인 것처럼 무시해버리는 일부 무지한 인간들 앞에서 남녀가 함께 고민해봐야 할 공적 논의의 장을 만들어 주어 고맙다. 진정한 이해와 화해를 위해 더 많은 남성들과 여성들과 함께 읽고 이야기하고 싶은 책이다. 


강자가 안전한 곳에서 낄낄댈 자유를 위해 약자들의 실존적 자유가 억압된다면, 무엇을 억제해야 할지는 꽤 명확하지 않을까.

 

한때 유행한 ‘과격한 페미니즘’이란 표현이 그러하듯, 과도한 PC(political correctness, 정치적 공정성)함이란 표현 역시 일부의 과도한 행태만을 비난하는 척하면서도 사실은 ‘과도한’이라는 관형어로 PC함 전체를 수식하는 문법적 사기 혹은 속임수에 불과하다. 이 속임수는 정치적 올바름을 폭력으로 규정하려 한다는 점에서도 기만적이지만, 무엇보다 한국에 만연단 폭력이 정치적 올바름의 과잉보다는 결여에 있다는 사실을 은폐한다는 점에서 기만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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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더 이해하고 사랑하고 위해 읽습니다. 읽고 나서 모조리 잊지 않기 위해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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