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3월 12일 오늘의 책
박영규 | 김영사 | 2018.01
분류 : 역사/신화/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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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만 아는 조선 명저들을 가장 실감나게 즐기는 고전 가이드북! 조선은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읽었는가? 왜 이순신은 《난중일기》에서 한산도대첩을 누락시켰는가? 노비 제사문을 통해 인간에 대한 진한 연민을 보여주는 《성호사설》. 박지원이 《열하일기》에서 평양은 여러 곳에 있다고 주장한 이유는 무엇인가? 청나라 의사들이 출간을 위해 집단 탄원서까지 냈던 동양의학의 보물 《동의보감》. 《목민심서》에서 《동의보감》까지 조선을 빛낸 16종의 명저를 담...
우리가 익히 아는 고전은 그 뒤에 방대한 역사와 배경을 품고 있다. 쉽게 손을 뻗을 수 없다. 친구에게 고전을 읽는다고 하니 자기는 도저히 읽기가 어렵단다. '책이 가지고 있는 역사를 모르면 이해가 가지 않을 것 같아서'가 그 이유다. 과거에는 필자 또한 같은 이유로 고전을 멀리하다가 찾아 읽는 도서의 장르가 너무 편협하다고 느껴 항상 '지루한 필독도서'로 치부하던 책들을 꺼내 읽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시도는 가치 있었다.
그럼에도 애독하는 고전은 항상 '국외'에 맞춰져 있었다. 딱히 우리나라 옛 서적이 거북해서가 아니라 지금과는 생김새가 다른 단어나 문장의 향연이 '번역'된 외국 소설보다 낯설게 느껴지던 까닭이었다. 그래서 항상 '읽어야지' 생각은 하면서도 차마 구매하지는 못했다. 그러다 우연히 이 책을 만나게 되어 조선의 명저를 여행하게 되었다. 소중한 기회인 만큼 글자 하나하나 정성스레 마음에 담았다.
고전은 많은 편견에 싸여 있다. 누구나 아는 서적이지만 쉽게 읽을 수는 없는 책들이다. 그렇기에 서문에서부터 작가의 안타까움과 애정이 느껴진다.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명저들에 대한 작가의 열정이 필자에게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명저에 대한 정보를 나열하는 서적이었다면 분명 중간에 덮었을 것이다. 이 책이 결코 지루하지 않았던 이유는 '작가'에게 있다.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자격증을 중급과 고급 둘 다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역사를 나름 얇지만 오래 공부해왔기에, 정약용, 이순신, 박제가 등 책에 나오는 인물들이 눈에 익었다. 하지만 시험 내용이 많기 때문에 하나하나 자세히 따져가며 공부하진 못했다. 이 책은 필자가 공부하면서 느꼈던 아쉬움을 시원하게 해소해 주었다.
책이 두껍진 않지만 여행지는 길다. 그렇기에 대표적으로 기억에 남는 내용을 몇 가지 짚어보고자 한다.
잘나서 힘들다!
1부 '역사 명저' 이순신의 <난중일기>
이순신하면 연관 검색어로 떠올릴 만한 사람 중 한 명이 16세기 선조의 뒤를 잇는 열등감의 아이콘 '원균'이다. 원균은 쉽게 말하면 이순신보다는 선배인데 직급은 그보다 아래이다. 그래서 그는 이순신을 상사가 아니라 후배 대하듯이 하며 항상 그를 시기하고 질투하는데 이에 이순신은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계사년 1593년
5월 30일 "원수사가 송응창이 보낸 불화살을 혼자만 쓰려고 꾀하기에 병사의 공문을 통해 나누어 보내라고 하니, 그는 공문을 내는 것을 심히 못마땅해하고 무리한 말만 많이 했다. 가소롭다."
6월 5일 "경상 수사(원균)가 웅천의 적들이 혹 감동포(부산 감천동)로 들어올지도 모른다면서 공문을 보내어 토벌하자고 했다. 그 흉계가 가소롭다.
6월 9일: 원균의 공문이 왓는데 '내일 새벽에 나아가 싸우자'는 것이었다. 그 흉악하고 음험하고 시기하는 마음은 이루 말로 하지 못하겠다."
7월 28일: "원균이 음흉하게 속임수를 쓰는 것은 아주 형편없다."
1595년 2월 27일
"원균이 포구에 있는 수사 배설과 교대하려 여기에 왔다. 교서에 숙배하라고 했더니, 불평하는 기색이 많아 두세 번 타이른 후에 힘써 따르고 마지못해 행했다고 한다. 그 무지함이 심한 것이 우습다."
그가 원균을 얘기할 때 자주 쓰는 말은 '가소롭다', '형편없다', '우습다'였고 이 외에도 '그의 거짓된 것은 차마 말로 할 수 없다' 혹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등이 있었다. 하지만 이순신을 질투하는 것은 비단 원균뿐만이 아니어서 이 말들은 이 책에 나오는 난중일기 곳곳에 등장한다. 전쟁 얘기만 나올 거라고 예상했던 난중일기에 마치 오늘날 주변에서 일어날 법한 모습이 연상되자 꽤 흥미롭게 다가왔다. 누군가를 시기해서 헐뜯는 이들은 예나 지금이나 존재한다.
흔히 임진왜란하면 이순신의 '난중일기'와 유성룡의 '징비록'이 거론된다. 이는 그때의 전란사가 잘 담겨 있기도 하지만 어떻게든 나라를 지키고자 힘썼던 그들의 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난중일기는 영웅이라 칭송되던 이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고 처참했던 그 시대의 상황을 상상하게 만든다.
우리의 역사를 고찰한다
2부 '역사 명저' 유득공의 <발해고>
한국사를 공부할 때 유득공의 '발해고'는 발해사를 다루었으며, 최초로 '남북국'이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우리의 시야를 만주까지 확대한 역사서라고 배웠다. 여기서 끝이었다. 곧 근현대를 공부하게 되면서 '발해고'는 그저 어쩌다 시험에 나오는 서적이었을 뿐이었다. 부끄럽게도 그랬다. '발해고'가 이 책에 나왔을 때 책의 이름이 품고 있는 저자의 겸손함과 안타까움에 도리어 필자가 부끄러워졌다. '발해고'에 나온 그의 말을 들어보자.
아, 문헌이 흩어진 지 수백 년이 지난 뒤에 역사서를 만들려 해도 자료를 얻을 수가 없구나. 내가 내각(규장각)의 관료로 있으면서 궁중 도서를 많이 읽었으므로 발해 역사를 편찬하여 군(軍), 신(臣), 지리, 직관, 의장, 물산, 국어, 국서 속국의 9고(考)를 만들었다. 이를 세가, 전(傳), 지(志)로 삼지 않고 고(考)라 부른 것은 아직 역사서를 완성하지 못하여 정식 역사서로 감히 자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사료가 지극히 부족하여 어쩔 수 없이 공백이 생기자 그는 '발해사를 고찰한다'는 뜻으로 발해'사'가 아니라 발해'고'라고 한 것이다. 책은 저자의 성품과 사상을 담아낸다. 그가 '사'가 아닌 '고'를 쓴 것은 단순히 사료가 부족해서가 아닐 것이다.
미덕이 비웃음을 사던 시대
4부 '실학 명저' 이익의 <성호사설>
'성호사설'의 '성호'는 이익의 호이며, '사설'은 '자잘하고 사소한 것들'이라는 의미이다. 풀어쓰자면 '성호(이익)가 쓴 자잘한 것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성호사설'은 『조선명저기행』의 작가가 말했듯 결코 '사설(辭說)'이 아니다. 책을 보면 이익이 혼천설뿐만 아니라 중력의 존재 또한 이해하고 있었던, 그 시대에 극히 드문 지식인이었음을 알 수 있다. 더군다나 일본에 독도가 조선의 땅임을 알린 군함의 노군(노를 젓는 병사) 안용복이 겨우 사형을 면하며 귀양 보내질 것이 아니라 마땅히 더욱 뜻을 펼쳐야 했던 인물이라고 기록했다. 이는 신분제의 틀 안에 완전히 갇혀있는 사대부들과는 달리 신분과는 상관없이 사람을 바라보던 인물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의 겸손함과 미덕은 '노비'편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우리나라 노비의 법은 천하 고금에 없는 것이다. ……까마득하게 멀리 핏줄이 이어진 외손으로 하여금 하늘과 땅이 다하도록 한량없는 고뇌를 받으면서 벗어날 수가 없게 한다.
또한 그의 땅을 돌보던 외거 노비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묘에 가서 제사를 지내준 장면에서도 그의 성품을 알 수 있다.
임금이 어질면 신하가 반드시 은혜를 갚는 것은 당연하지만, 주인이 박대하면서 종에게 충성을 바라는 것이 어찌 이치겠는가? 너는 평생 부지런히 윗사람을 받들었으니, 내 사실 네 덕을 많이 보았다.……살아서 고생이 심했는데, 죽어 귀신이 되어서도 굶주리니, 어찌 슬프지 않으랴?……네 비록 문자를 모르지만, 귀신이 이치로 보면 통할 수 있는 법, 정성이 있으면 반드시 느끼리니, 너는 이 음식을 흠향하거라.
노비가 하나의 재산으로서 '매매'가 이루어지던 시대에 노비의 묘에서 제사를 지내주는 선비의 모습은 쉽게 상상하기 힘들다. 남이 알면 비웃고 수군거릴 일이었지만 이익은 개의치 않고 종의 넋을 위로해 주었다.
성호'사설'인 이유는 발해'고'처럼 저자의 올곧은 성품이 묻어있기 때문이다. 물론 '유교'를 숭배하는 '양반'의 모습에서 아주 벗어나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 시대의 절대적인 틀에서 온전히 벗어나기란 힘들었을 것이다.
『조선명저기행』은 쉽게 읽기는 어렵다. 서적의 내용을 요약하여 독자를 이끌지만 시대의 간극을 무시할 수는 없다. 특히 허준의 <동의보감>과 허임의 <침구경험방>은 의학 서적이기 때문에 같은 부분을 몇 번이나 읽었다. 이 책이 아니면 어디서 이 서적들에 대한 정보를 알차게 얻을 수 있을까. 물론 인터넷에 수많은 정보가 넘쳐나지만 맑은 물인지 더러운 물인지 구분도 안 되는 정보의 폭포 속에 있기보다, 맑은 강에서 편하게 뛰놀련다.
조선의 명저들이 가깝고도 멀게 느껴진다면 아름답고도 강렬한 기행을 떠나보자. 『조선명저기행』을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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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의 리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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