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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2019년 11월 12일 오늘의 책

묵상

승효상 | 돌베개 | 2019.06

분류 : 예술/대중문화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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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자를 꿈꾼 건축가 승효상, 수도원 기행을 떠나다 왜 수도원인가. 이 질문에 대답을 얻으려면 그의 유년기를 들여다봐야 한다. 부산 피난민촌에서 태어나 부모님이 만들다시피 한 구덕 교회의 마당을 놀이터 삼고 교회 골방을 공부방 삼아 성장한 건축가. 찬송과 기도 소리를 몸 안팎에 새기며 신과 신앙에 관해 끝없이 질문하고 방황하다 신학자가 되고자 결심했으나, 피난민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갑작스레 건축의 길로 들어서야 했던 건축가. ‘빈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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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승효상의 수도원 순례

 

책을 읽으며 우둘투둘 걸리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죠. 승효상은 자기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입니다. 그러니 조금 덜 친절해도 그럴 만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개신교인입니다. 가톨릭과 수도원에 대해 조금 경사진 시선을 보낸다 해도 그 또한 도리 없는 일이죠. 책을 펼치고 금방 그런 느낌을 받아서 살짝 긴장했습니다. 그렇게 시작했어요.​

 

“멀리서 보던 것과는 분명히 다를 것이다. 예컨대 노 대통령의 묘역과 얼마 전 하양교회 설계 같은 단편만을 만났을 때 무척 반갑고 아름답고 좋았다. 하지만 이 사람의 생각을 제대로 들여다본 적은 없었다. 이제 2500킬로미터의 거리 곳곳에서 멈춰 가톨릭 수도원을 순례하는 일행을 따라가 보기로 한다. 나는 무엇을 만날까. 무엇을 얻을까. 무엇을 알게 될까.”

 

하지만 그런 느낌에는 더욱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저자에게 이 여정은 자신의 내면과 만나는 여행이자 오랜 추억을 만나는 여행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그는 ‘함께하면서도 홀로이듯이’ 순례하기를 원했어요. 자신에게도, 일행에게도. ‘스스로 추방당한 자들의 공간인 수도원’을 찾아가는 순례자답게 거리를 유지하며 자신의 순례에 충실하기를요. 그러니 독자에게 조금 덜 친절하고 덜 다정해뵈는 인상은 불가피한 거였더군요.

 

이 책은 승효상이 연 ‘동숭학당’의 연례행사 같은 여행의 결과물이기도 합니다. 동숭학당의 족적이 참 멋지더군요. 첫해 주제부터 ‘죽음’이었어요. ‘거주’, ‘죽은 자의 거주 풍경’을 좇아 묘역을 순례했답니다. 예쁘고 상큼한 드레스를 선물 받은 주인집 딸을 엿보는 천덕꾸러기 같은 표정으로 책을 읽어갔습니다. 좋겠다, 좋았겠다, 부럽다. ​

 

2017년 주제는 ‘기억’이었고 ‘기억과 신화 속, 자유를 향한 행선’이 가이드북의 표제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찾아간 곳은 그리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이 나옵니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한도 없이 멋진 말이지만, 내가 탐하기에는 턱도 없이 멀고 먼 말입니다. 나는 그리 크지도 않은 ‘바람’조차 채우지 못한 채 살고, 나는 너무나 사소한 것까지 두려움을 떨쳐내지 못하며 살고, 그래서 너무나 부자유하다는 걸 새삼 돌아보게 만드네요, 이 묘비명은요.

 

그리고 2018년 ‘공간’을 주제로 공부한 이들이 실행한 것이 바로 수도원 순례랍니다. ‘스스로 추방당한 자들의 공간, 그 순례’가 이 여행의 제목이었습니다.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여러 수도원을 순례하면서 스스로 지상에서의 삶으로부터 자신을 추방한 자들과 그들이 머문 지상의 거주지 수도원에 대해, 그러니까 수도 생활과 수도원이라는 공간을 살펴보며 ‘묵상’을, 내면의 순례를 하는 여정입니다.

 

저자가 소개하는 바에 따르면, 이 책은 여섯 개의 세부 주제가 있어요. 사상적 바탕이 된 ‘기독교’, 시대적 배경인 ‘중세도시’, 그 무대인 ‘수도원’, 그리고 그 각본이라고 할 수 있는 ‘베네딕토 수도 규칙서’. 여기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수도사’이며, 특별히 20세기 최고의 건축가 ‘르코르뷔지에’가 카메오로 등장합니다.

 

술술 읽힙니다. 종종 이견도 생깁니다. 당연한 일이죠. 예를 들면 이런 거예요. ‘여행의 기술’이라는 문단에서 저자는 “현실에서 만나는 노여움과 천박한 욕망을 벗어나기 위해 하는 것”이 여행이라는 알랭 드 보통의 견해에 동의하지 못한다고 씁니다. “그의 말이 옳다면, 여행은 도피 수단밖에 되지 않으며 일상을 증오로 몰 뿐이어서 불건전하다. 내 생각으로는 여행은 일상으로 다시 돌아올 힘을 얻고자 떠나는 것”이라는 겁니다.

 

우리가 현실에 살면서 얻는 정보나 지식으로 나도 모르게 어떤 사물이나 장소에 대해 환상을 쌓게 되는데, 그 환상은 부서지기 쉬운 달걀 껍데기 같아 힘이 없다. 심지어 우리의 삶을 허위로 내몰 위험도 있다. 믿건대, 힘은 진실로부터 나오며 진실은 늘 현장에 있어, 현장에 가는 일인 여행은 그 장소가 가진 진실을 목도하게 하여 결국 우리에게 현실로 돌아가 일상을 다시 시작할 힘을 얻게 한다. 적어도 나에게 이 말은 항상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현장’을 찾아가 보지 못한 이들은 어떻게 진리를 목도하고 현실로 돌아와 일상을 다시 시작할 힘을 얻게 될까요. 그렇다면 그들은 어떤 힘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걸까요. ‘바로 그곳’에만 어떤 힘이 있다면 대체 떠나지 못하는 이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건가요.

 

어떤 장소에 그곳만의 힘이 있다는 건 분명해 보입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그 장소이기 때문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 건 아닐 거예요. 그 장소에 선 그가 그럴 만하므로 어떤 힘을 얻는 것 아닐까요.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장소가 있다고 할 때 그곳에 가기만 하면 누구나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게 되나요?

 

반대로 고양된 정신으로 사는 이에게는 이미 장소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가시적인 공간 자체도 장애가 되지 않는데 대체 무엇이 문제가 될 수 있겠어요? 너무 억지를 부리는 걸까 싶기도 했지만 이런 생각에는 조금씩 딴지도 걸며 승효상과 그 일행의 뒤를 따라나섰습니다. 

 

이 순례자들은 단단히 준비하고 길에 오릅니다. 가이드북이 있음에도 평균 일주일에 한 번씩 모두 여덟 차례의 글을 보내 스스로 순례를 준비하도록 했답니다. 그리고도 여정의 곳곳에서 어떤 주제들에 대해 전문가들의 ‘강의’가 버스 안에서 진행되구요. 머리를 채울 것은 충분히 제공이 되었고, 이제 ‘묵상’은 동행한 이들 각각의 몫이었겠죠.

 

그 자체로도 순례의 여정인 사진들이 있어서 더 부담 없이 읽힙니다. 순례가, 영성이, 이렇게 물 흐르듯 만나고 습득되는 거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순례가 막바지에 다다를 즈음 자꾸 주저하며 책장을 넘기는 시간이 길어졌습니다. 순례를 끝내기 싫은 마음이었죠. 순례에서 돌아올 때의 심정이었습니다.

하지만 결국은 마지막 페이지를 펼쳐 이제민 신부의 추천사를 읽으며 안녕을 고합니다.

 

네 개의 레이어. '수도원과 건축, 여행,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얽히고설키면서 전체 글을 형성한다. (…)


“진리란 무엇인가?”


승효상이 줄곧 던지는 이 질문이 아마 그런 안목으로 승화했을지 모른다.
그래서 이 책이 건축의 아름다움이나 의미에 관한 설명을 넘어 수도자의 내면과 영성에 접속할 기회를 제공하고 그 속에 깃든 깊은 평화를 체험하도록 도움을 주는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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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처럼, 세상도 사람도 만나고 알아가는 동안 사랑하게 되고 그리워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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