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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란 무엇인가

2015년 5월 11일 오늘의 책

작가란 무엇인가

파리 리뷰 | 다른 | 2022.06

분류 : 인문/교양/철학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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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여 년 전, 나는 두어 권의 책을 펴낸 삼십 대 초반의 젊은 소설가였다. 그즈음, 나는 재능이 모두 타버리고 난 뒤의 그을음을 보고 있었다. 하지만 서가를 다 뒤져도 그 그을음에 대해서 말해주는 책은 없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노란색 표지의 『파리 리뷰_인터뷰』라는 책을 발견했다. 거기에는 내가 열광했던 소설가들의 인터뷰가 실려 있었다. 그들은 육성으로 자기 직업에 대해, 스스로 터득한 기술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그들에게서 허세라고는 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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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나의 작가들이여


파리 리뷰의 작가 인터뷰 모음집 『작가란 무엇인가』를 다 읽었습니다. 읽고 쓰고 생각하고, 고치고 또 고치고 일단 이 정도면 된 거야_ 그 말을 할 무렵이면 더 이상의 수정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새삼 궁금합니다. 이름만 들어도 벌떡 일어서게 하는 이들, 그런 이들이 바로 눈앞에서 말을 하는 데 왜 자꾸 넋이 나가는지 모르겠습니다.

지나간 제 청춘 기차가 온전하게 이 사람들 고유명사로 만들어진 기찻길로 흘러가더군요. 시간이 넉넉해서 소설을 집어들었던 적도 있고, 가슴이 타들어 갈 듯 고통스러워 시집을 집어 들었던 적도 있습니다. 막 사랑에 빠져 온 세상이 분홍빛 꽃잎들로 너울질할 때도 책을 집어 들고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구절을 읽던 적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없었다면, 그들이 쓴 책이 없었다면 지금 저는 무얼 하고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청춘은 이미 지나갔지만 나는 이들의 책을 여전히 들춥니다. 달리 할 일이 없어서라는 거짓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커피를 내리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고양이에게 밥을 주고, 아침을 준비하고 아이를 유치원으로 보내고 남편을 출근시키고 아침밥을 먹은 흔적을 지우고 세탁물을 집어 들고 탁탁 줄에 내걸 때에도 그들을 생각합니다. 아니 그들이 쓴 소설 속 인물들을 떠올립니다.

책에 사진은 나와 있지 않아요. 작가들의 캐리커처가 있죠. 그 그림과 보이지도 않는 그들의 서재를 떠올립니다. 정확히는 책상 위를 바라보죠. 너저분하게 흩어진 원고 뭉치가 있는 책상도 보이고 강박증이 아닐까 괜스레 염려 될 정도로 먼지 한 톨 보이지 않는 깔끔한 책상도 상상합니다. '마법사들의 책상 같다!' 아무것도 놓여있지 않은데 다만 종이와 펜, 타자기, 혹은 노트북. 이외에는 아무것도 이 작은 공간에서 어마머마한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더 마법사 같습니다. 책을 읽는 내내 그 책상들을 구경했습니다. 실제로 보르헤스의 캐리커처는 마법사 같습니다.

저를 데려가세요, 당신의 안으로.
보르헤스의 프로필을 보면서 저는 그리 중얼거리고 있습니다.

책에는 많은 작가가 나옵니다. 거의 이름을 알기는 하지만 아직 읽지 못한 이들의 책도 많이 있더군요. 그래서 작가의 인터뷰 말미에 실린 주요 작품 연보를 따로 적어 놓았습니다. 이 책은 읽었네, 하지만 기억이 나지 않아, 그러니 또 읽어야겠어_ 하고 밑줄을 긋고 아 이 책은 아직 읽지 못했어,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 줄거리도 이미 알고 있어, 어떤 인물들이 나온다고 했지? 얼른 책을 구해봐야겠어_ 하고 밑줄을 긋습니다. 시대를 거스르고 공간을 거슬러 많은 작가가 나옵니다. 하지만 이 인터뷰집에 실려있지 않은 세상의 작가들을 떠올려보세요. 저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더군요.

우리나라에는 몇 명의 작가들이 있을까요? 현재 창작 활동을 하고 있지 않은 작가들까지 포함한다면 1920, 30년대 작가들까지 떠올린다면 우리나라에는 얼마나 수많은 작가가 있을까요. 그 책들은 또 어떠할까요? 묻혀서 발굴되지 않은 익명의 작가들은 어떻고요. 그들의 서랍 속에 내내 잠들어 있을 원고, 노트북 안에서 생명이 정지된 채 세상 밖으로 빠져나려 안간힘을 쓰는 원고들까지. 책에 실린 그들의 원고를 보셨나요? 황금 덩어리 같구나, 이거야말로 진정한 황금 덩어리야, 혼잣말을 해봅니다. 헤밍웨이의 글씨는 제가 상상하던 것이 아니었어요. 이 거대한 덩치의 남자가 이렇게나 귀엽게 글씨를 썼단 말이야? 필체를 보아하니 헤밍웨이 아저씨 그런 글을 쓸 수 있었던 거로군, 또 중얼거렸죠.

작가들은 그런 사람들이 아닐까요. 보이지 않는 이의 손을 잡아 이끌어주고 앉은뱅이를 벌떡 일어나게 만들어 세계 방방곡곡을 떠돌게 만드는 힘을 주는 마법사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보이지 않는 이들이 되고 앉은뱅이들이 됩니다. 앞이 안보여 아쉬워 죽겠는데 당신 앞이 이리이리 생겼소, 당신 앞에는 이러한 것들이 늘어서 있고 당신 주변에는 이런 사람들이 있고 당신 안에는 또 이런 사람들이 있지요, 하고 알려주는 작가들.

앉은뱅이 신세라 방문 열고 콧바람 쐬는 게 전부인데 방문을 벌컥 열고 "어서 이리 업히시오, 하고 번쩍 업고서 십 리를 가보니 사슴이 있고, 산토끼 펄쩍펄쩍 뛰는 모습 볼 수 있고 천리마처럼 휙휙 날아다녀 낯선 말들이 귓속을 헤집고 들어 와 정신을 못 차리겠는데 기왕지사 이리되었으니 우리 배 타고 저 멀리 바다까지 가서 돌고래들 춤추는 거나 보러 갑시다!" 하고 항구로 들어서게 하는 하나뿐인 친구 말입니다.

그래서 누군가 제게 『작가란 무엇인가』하고 묻는다면 손을 번쩍 들고 이렇게 외치고 싶습니다. 보이지 않는 내 눈을 번쩍 뜨게 만들어주는 마법사요, 내 부실한 다리 대신 강철 다리를 지니고 나를 번쩍 치켜들고 세상이란 이렇게 생겼다네_ 하고 속삭여주는 멋진 친구하고 말입니다. 정답이 아닐 수도 있겠지요. 틀린 답이어도 게이치않습니다. 제게 작가들이란, 책이란 항상 그런 존재였고 앞으로도 계속 같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만나지 않았다면 제가 어찌 보고 걸어 다닐 수 있었을지 상상도 못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이번엔 묻고 싶습니다. 당신에게 『작가란 무엇인가』 하고 말이죠.

오늘의 책을 리뷰한 '야나'님은?

책을 읽으면서 다른 세상을 꿈꾸는 일을 제일 좋아합니다. 고양이 한 마리와 동화책 작가를 꿈꾸는 자그마한 딸아이와 매일 책을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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