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10일 오늘의 책
기타모리 고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4.03
분류 : 장르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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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수수께끼의 끝에 인생의 비애가 있다. 뒷골목 맥주바 '가나리야'의 마스터, 구도 데쓰야가 단골손님들의 삶의 비애와 수수께끼를 해결하는 다섯 가지 이야기. 아유카와 데쓰야상과 일본추리작가협회상 수상 작가, 기타모리 고의 '가나리야' 마스터 시리즈 두 번째 단편집!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다. ‘언제 한번 들러 보세요. 내가 당신에게 보내는 마지막 선물을 부탁해 두었습니다.’ 죽은 아내가 남긴 편지를 실마리로 맥주바 ‘가나리야’를 찾아...
지난 2월 말, 텔레비전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여행 채널에 시선이 빼앗겼다. 화면엔 제주도의 풍광이 가득했다. 어느 곳보다 봄이 빨리 찾아오는 제주도의 아름다운 모습이 해설 하나 없이 클래식 음악에 맞춰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화면 속 2월의 제주도는 완연한 봄이었다. 유채꽃이 피었고, 바다에 낀 물거품은 봄소식을 전하는 하얀색 편지지 그 자체였다. 그때만 해도 서울은 아직도, 아니 제주도의 봄소식을 눈으로 좇고 있는 나는 여전히 겨울이었다. 내복과 ‘깔깔이’를 껴입고 멍하니 화면에 눈을 고정했다. 봄은 다가오는데 3월 내내 그렇게 미처 떠나 보내지 못한 겨울을 붙들었다. 그런데 이런 내게도 결국 봄은 오더라. 이상기온으로 벚꽃이 피니 내 방에도 꽃향기를 머금은 봄의 정취가 무작정 밀고 들어왔다. 마음이 바빠졌다. 늦게 마중했기에 봄은 꽃이 피는 순간 ‘아듀’를 말해야 하는 계절이었다.
짧은 봄을 온전히 느끼려고 나는 봄밤의 기운을 닮은 책이 읽고 싶었다. 그래서 벚꽃이 활짝 핀 그 날 밤, 기타모리 고의 《벚꽃 흩날리는 밤》을 펼쳤다. 제목이 지금과 딱 맞는다는 촌스런 감상에 빠져 선택했다. 다섯 개의 연작 단편으로 구성된 책을 다 읽고 나서 봄에 어울리는 독서를 마쳤다고 만족했다. 2010년, 마흔여덟 살의 나이로 타계한 기타모리 고. 그의 연작 소설 네 편 중 두 번째로 나온 이번 책은 비밀스러운 요리사 ‘구도 데쓰야’가 맥주 가게 ‘가나리야’를 운영하면서 손님들에게 벌어진 일상의 미스터리를 해결해주는 내용이다. 주인공 구도 데쓰야가 만든 음식은 과 다섯 편의 이야기에서 사랑과 이별, 용서와 복수라는 강한 맛을 내고 있다. 《벚꽃 흩날리는 밤》의 이야기는 가나리야의 풍경 묘사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이곳을 방문하는 손님들이 일상에서 겪은 소소한 미스터리가 수수께끼처럼 펼쳐진다. 특히 요리사 구도 데쓰야가 만든 군침 도는 요리들은 그들의 평범한 일상을 비밀스럽게 바꾸어 버린다. 절대 미각에 입각해 만든, 말로 형언할 수 없는 풍미를 자랑하는 그의 요리들처럼 우리의 일상도 형언할 수 없는 신비함으로 가득하다고 대변하듯 말이다.
와인 레드빛 앞치마에 수놓은 요크셔테리어가 그대로 인간으로 변한 듯한 외모에 나이도 이력도 짐작할 수 없는 미스터리한 남자, 잘 닦인 새 글라스를 비어서버의 꼭지에 대고 부드러운 거품을 미세하게 조절해 가며 맥주를 따르는 손놀림만으로도 손님들의 마음을 평온하게 만드는 남자, 메뉴판을 볼 필요도 없이 이 남자가 해주는 요리라면 무엇이든 믿고 먹을 수 있을 만큼 요리 솜씨가 일품인 남자, 무엇보다도 무심하게 던지는 한마디로 단골손님의 고민을 해결해 주는 남자 구도 데쓰야가 운영하는 ‘가나리야’ 맥주바는 입지 조건이 좋지 않은 외진 골목길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골손님들이 끊이지 않는다. (편집자의 말 중)
맥주 가게 ‘가나리야’와 주인장 구도 데쓰야의 모습을 단박에 이해시켜주는 편집자의 말에서 짐작 가듯, 그곳에 가면 손님들은 자신에 관해 자연스럽게 이야기한다. 어제와 다름없는 오늘이지만, 그렇게 오고 가는 말들 속에서 어제와 다른 ‘순간’을 손님들은 스스로 찾아낸다. 구도가 내온 요리의 맛을 탐미하는 과정에서 이런 순간이 빚어지고 있다는 것이 《벚꽃 흩날리는 밤》의 묘미다.
‘15주년’, ‘벚꽃 흩날리는 밤’, ‘개의 통보’, ‘나그네의 진실’, ‘약속’으로 이어지는 단편은 모두 이런 방식으로 흘러간다. 음식을 오고 내가며 손님들의 담소를 듣던 구도 데쓰야가 혼잣말로 한마디 던지면, 그들의 소소한 이야기는 단숨에 해결해야 할 사건으로 변해간다. 신기한 통찰력으로 인간의 이면을 짚어내는 구도의 수수께끼 풀이는, 그가 내온 맛있는 요리들과 달리 씁쓸한 맛을 낼 때가 많다. 주인공이 만들어낸 진미와는 다르게 인생이 그렇게 맛있지 않다는 사실 앞에서, 순간순간 나는 입맛을 잃었다. 인생이 달콤하게만 흘러가지 않는다는 걸 오래전에 이미 깨달았지만, 적어도 맛난 음식을 상상하는 자리에서 이런 사실을 새삼 떠올리기 싫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15주년’은 고향에 있는 음식점 폐업 기념 파티에 초대받아, 고향을 5년 만에 방문한 택시 기사의 이야기다. 그의 사연은 사람 사이에 놓인 벽을 허무는 과정이었다. 다른 말로 ‘고립감’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데, 일상에서 흔히 겪게 되는 감정이기도 한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게 한다.
두 번째 이야기, 책의 제목이기도 한 ‘벚꽃 흩날리는 밤’은 불치병으로 아내를 잃은 한 형사가 아내의 유언에 따라 구도 데쓰야의 가게를 찾아온 뒤 직면하게 된 사랑과 용서의 이야기다. 자신이 감시하던 용의자 여성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남자는 아내가 죽기 전에 이미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걸 구도 데쓰야가 내온 ‘사쿠라메시’라는 요리를 통해 뒤늦게 알게 된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복수하는 걸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사랑했기에 복수하고 싶었던 마음과 사랑했기에 자신이 떠난 뒤에도 남편의 행복을 응원하는 마음이 절묘하게 반전된다. 청 벚꽃(쿄이코)이 핀 계절에 일어난 사랑과 용서, 재회의 이야기야말로, 인생이 연출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미스터리가 아닐까.
‘개의 통보’는 참으로 번거로운 방법으로 아내에게 복수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여기에 회사 권력 싸움의 암투가 구도 데쓰야의 조화로운 요리에 대비되면서, ‘개의 통보’는 책에 실린 다섯 개의 이야기 중 가장 긴장감이 있다. 참고로 말하자면 구도 데쓰야 미스터리 연작 시리즈는 시간과 정성을 들인 그의 요리처럼 사건도 천천히 흐른다. 천천히 회복되는 것이다.
‘나그네의 진실’은 의존증에 관한 이야기이다. 누군가를 의지하지 않으면 자신의 능력을 펼칠 수 없는 한 남자의 집착과도 같은 도시 방랑기. 이야기는 비극으로 끝나고야 만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서 관계를 맺지 않고는 인간다운 삶을 누리지 못한다. 하지만 이 관계들이 현 사회의 복잡한 단면들 때문에 의존과 기생이라는 형태로 변질하는 경우가 있다.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집착과 의존심을 목격한 것만 같아 입안 가득 쓴맛이 퍼져 나갔다.
‘약속’은 행복과 불행의 쌍곡선을 그린 한 남녀의 10년에 걸친 이별 이야기다. 사랑했지만 자신이 행복해지기 위해 남자의 불행을 10년 동안 바란 여자의 그 잔혹한 마음 때문에 나는 봄철 입맛이 떨어질 정도였다. 더욱이 자신은 불행한데, 남자는 성공해서 행복해지려고 하니까, 10년 만에 만난 해후의 장소에서 남자를 죽이려고까지 한 여자의 모습은 자신의 행복을 위해 타인을 불행에 빠트리는 일에 서슴없는 현대인들의 극단적인 초상화와 같다.
기타모리 고의 이야기는 마음을 치유해준다. 마치 벚꽃 흩날리는 봄밤의 포근한 기운이 문장마다 배어 있는 것 같다. 따뜻한 기운에 겨우내 얼었던 마음이 녹는다. 살면서 많은 사람을 마주친다. 만남과 이별은 당시에는 알 수 없던 수수께끼 같은 일상의 단면과 감정을 남긴다. 그런 것들이 모여 인생에 열매를 맺는다. 특히 인생을 가장 돋보이게 해주는 재료는 사랑이다. 최고의 향신료인 사랑이 일상에 가미하는 향에 따라 인생도 추하거나 아름다운 맛을 낸다. 이것이 맥주 가게 ‘가나리야’의 주인장 구도 데쓰야의 요리비법이기도 하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봄밤, 《벚꽃 흩날리는 밤》을 읽고 나는 내 인생을 어떤 맛으로 요리하고 있는가 가만히 생각해 봤다. 문득 내 인생의 봄날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음을 깨닫고 안도한다. 꽃 같은 젊음은 저 멀리 떠나 보냈는데, 아직도 꽃을 피우지 못했다는 절망감과 함께. 창밖에 피어있는 벚꽃은 피자마자 봄날의 안녕을 고한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진격의두통’님은?
솔직히 독서를 즐기는 스타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책 모으기가 취미 아닌 취미라서 좋은 책, 특이한 책 골라내는 데 소질을 보이고 있습니다. 북러버보다 북콜렉터를 꿈꾸는, 어찌됐든 책과 가까이 하는 삶을 지향하는 사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