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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24753040 / 260쪽 140 x 2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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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디앤루니스 리뷰
최순덕 수필가의 여섯 번째 수필집
그는 거대한 담론보다 작은 존재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평범한 순간 속에서 보편적 진실을 발견한다. 이러한 태도는 시대가 변해도 유효한 수필의 본질이며,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이어 가게 하는 문학적 힘이다. 그의 수필은 지나간 시간을 보존하는 기록이 아니라, 기억을 통해 현재를 새롭게 생성하는 살아 있는 언어이다.
출판사 리뷰
사라지지 않는 삶의 흔적, 기억을 건너는 삶의 여정
- 최순덕론 -
권대근
문학박사, 하북미술대 객좌교수
“타자를 만나는 순간, 나는 나 자신을 넘어서는 책임과 마주한다.”
- 에마뉘엘 레비나스
Ⅰ. 로그인
빛나는 성운을 향해 천천히 걷는 작가 최순덕의 수필은 일상의 작은 장면 속에서 인간 존재의 깊은 울림을 발견하는 문학이다. 그의 여섯 번째 수필집 『바람에도 기댈 곳은 있다』의 작품세계는 거대한 사건이나 극적인 서사보다 삶의 주변부에 머물러 있던 사소한 경험과 기억을 불러내어 그것이 지닌 의미를 확장한다. 들뢰즈는 문학을 차이를 가치화하는 주변부 타자의 담론이라 정의했다. 최순덕 수필에서 맨발로 걷는 사람들의 풍경, 자연과의 마주침, 오래된 기억 속의 흔적처럼 평범해 보이는 소재들은 작가의 섬세한 시선에 의해 삶의 본질을 성찰하게 하는 문학적 사건으로 변환된다. 이러한 점에서 최순덕의 수필은 ‘작은 것의 발견’을 통해 인간과 세계의 관계를 새롭게 읽어내는 서정적 사유의 기록이라 할 수 있겠다.
수필가이기도 문학평론가이기도 한 최순덕의 수필세계를 관통하는 핵심 미학은 관계와 응시의 미학이다. 사물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인간과 교감하는 존재로 등장하며, 자연은 관찰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호흡하는 생명의 공간으로 형상화된다. 타자의 존재를 연민의 대상으로 바꾸어 놓는 작가 최순덕의 문재는 수필로 해양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한 바가 증명한다. 시와 소설이 우세하도록 설계된 해양문학상 공모에서 수필가가 상을 받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작가는 기억 속의 풍경과 현재의 감각을 연결하고, 지나간 시간과 오늘의 삶을 겹쳐 놓으면서 존재의 흔적을 탐색한다. 그의 문장은 화려한 수사보다 절제된 언어 속에 깊은 여운을 남기며, 익숙한 세계를 낯설게 바라보게 하는 힘을 지닌다. 그것은 사물과 인간, 과거와 현재, 나와 타자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적 세계관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무서운 집념과 오기, 범접할 수 없는 기상의 작가 최순덕의 수필을 읽는 일은 단순히 개인적 체험의 기록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기억과 존재가 어떻게 새로운 의미를 생성하는지를 살피는 과정이다. 그의 작품은 리쾨르가 말한 기억의 재구성처럼 과거의 경험을 현재의 의미로 다시 해석하며, 레비나스적 타자 윤리처럼 나 아닌 존재와의 만남 속에서 인간성을 발견한다. 또한 줄리앙의 ‘탈합치’처럼 익숙한 일상을 낯선 시선으로 바라보며 새로운 사유의 길을 연다. 이 서평은 최순덕의 수필을 기억 존재 관계 사유라는 관점에서 살펴보며, 그의 문학이 일상의 풍경을 어떻게 존재론적 성찰의 공간으로 변화시키는지 조명하고자 한다.
Ⅱ. 기억과 존재를 껴안는 최순덕의 수필 여정- 최순덕의 인간세계
바다와 섬, 예술의 기억이 살아 숨 쉬는 통영은 최순덕 문학의 감수성과 깊은 서정의 원천이 되었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기억과 바람처럼 스쳐 가는 삶의 흔적을 품어내는 그의 수필에는 통영의 해양적 정서와 섬세한 생명 의식이 자연스럽게 배어 있다. 최순덕의 문학적 행보는 한 개인의 창작 이력을 넘어, 한 시대의 수필정신이 어떻게 성장하고 확장되어 왔는지를 보여주는 경이로운 기록이다. 2003년 《문예시대》를 통해 수필가로 등단한 그는 일상의 작은 흔적 속에서 인간 존재의 깊이를 탐색하는 작업을 꾸준히 이어왔다. 이후 2025년 《에세이문예》를 통해 평론가로 다시 등단한 것은 단순한 이력의 추가가 아니라, 자신의 문학 세계를 창작에서 해석의 영역으로 확장한 의미 있는 전환이다. 쓰는 자와 읽는 자의 경계를 넘어, 스스로 자신의 문학을 성찰하고 타인의 작품 속에 숨은 의미를 발견하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
문학은 한 사람의 고독한 창작 행위에 머무르지 않고, 서로의 목소리를 연결하며 하나의 문화적 생태계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최순덕은 창작자이면서 동시에 문단을 이끌고 가꾸는 실천가로서, 문학공동체의 가치를 몸소 보여 온 인물이다. 그의 문학적 삶은 개인의 성취에 머물지 않고 지역 문단의 성장과 함께해 온 공동체적 실천의 기록이기도 하다. 사)국제PEN한국본부 부산지역위원회 부회장, 부산문인협회 수필분과 이사, 부산수필문인협회 부회장, 부산여류문인협회 회장, 부산가톨릭문인협회 부회장,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부산수필문학협회 부회장, 유네스코부산 선정 우수잡지 ≪에세이문예≫ 편집3부장 등 다양한 직책을 수행하며 그는 문학을 개인의 명예가 아니라 함께 가꾸어야 할 정신적 터전으로 받아들였다. 특히 여성 문인의 창작 환경을 넓히고 지역 수필문학의 저변을 확장하는 데 기여한 그의 활동은 문학 행정가이자 실천적 문인의 면모를 보여준다.
그는 창작의 길 위에서 거룩한 비상은 아닐지라도 아주 조금씩 진화를 꿈꾸어왔다. 4회 연속 부산문화재단 문화예술지원금 수혜자로 선정된 감사와 기쁨으로 꾸역꾸역 글 소쿠리를 채우다 보니 여섯 권째 수필집을 내게 된 최순덕의 문학적 성취는 다수의 수상 기록에서도 확인된다. 풀꽃수필문학상, 한국해양문학상 우수상, 부산PEN문학 작품상, 부산가톨릭문학 본상, 부산수필문학 작품상, 부산수필문인협회 ‘올해의 작품상’, 제2회 한영문학상, 부산PEN문학상 본상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은 다양한 문학적 평가를 통해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수필로 한국해양문학상 우수상을 받았다는 것과 작품상을 세 개나 수상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수상 경력의 의미는 단순한 숫자의 나열에 있지 않다. 그것은 삶의 구체적 경험을 문학적 사유로 승화시키고, 개인의 기억을 보편적 인간의 이야기로 전환해 온 한 작가의 지속적인 탐구 과정에 대한 증명이다.(히략)
〈소년의 공〉
맨발로 걷는 사람들이 파도처럼 넘실거린다. 해운대 백사장에도 어싱 바람이 한창이다. 맨발로 걷는 사람들이 해안선을 따라 긴 줄을 잇는다. 숲속의 황톳길에서 파도가 잘박거리는 백사장까지 유행처럼 번지는 어싱 바람이 해운대를 비켜 갈 리가 없다. 길에 시멘트를 바르고 신발에 고무 밑창을 깔면서 지력을 차단할 때는 언제고, 다시 원시인으로 돌아가고 싶은 것일까. 흙이나 물에 발을 직접 접촉하여 더욱 건강해지고자 하는 간절함 때문이리라. 신문에 대서특필된 어싱으로 건강을 되찾은 사연이 나의 신발을 벗겼다. 늘어진 긴 줄의 꼬리에 합류한다. 접지만 하면 단번에 엄청난 효과를 얻기라도 할 듯, 결과에만 군침을 흘리며 팔랑귀를 쫑긋 세운다.
어싱 바람이 불고있는 해운대 백사장에 낯선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사진을 찍거나 바다를 보고 앉아서 멍때리기를 하는 일상의 풍경이 아니다. 어린 아들과 아빠가 간절한 눈으로 바다를 보고 있다. 안절부절 애태우며 어찌할 바를 모르고 서성인다. 무심코 곁을 지나다 그들의 시선이 닿는 곳을 따라 눈길이 간다. 그들이 보는 것은 바다가 아니라 파도를 타고 있는 공이었다. 아뿔싸. 모래사장에서 공놀이하다가 바다로 차버렸나 보다. 금방이라도 바다로 뛰어들 듯 팔딱거리는 아들과 저지하는 아빠의 비장한 표정은 말 없어도 충분히 눈길을 끈다.
속수무책이다. 순간의 헛발질로 아이는 기가 차는지 눈밭의 강아지처럼 설친다. 반은 체념한 듯 애타는 몸짓에 힘이 빠진다. 뛰어들기에 파도가 만만하지 않다. 몇 걸음으로 닿을 것 같은 거리지만 물 위의 거리는 가늠하기 어렵지 않던가. 보기엔 가까운 것 같아도 쉽게 다가갈 수 없음을 인식한 어른들이 멀뚱히 쳐다만 볼 뿐 누구도 손 쓸 수가 없다. 애타는 아이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조류에 밀려 두둥실 춤을 추는 공은 혼자 신난다. 차이고 멍들었던 분노를 식히면서 해방의 기쁨을 누리는지, 아끼며 함께 놀았던 주인과의 이별을 슬퍼하는지 알 수 없는 몸짓으로 여유롭다. 멈춘 듯 흐르는 듯 동동 떠있는 물새처럼 유유히 파도를 탄다.
발을 동동 굴리는 아이 옆에서 얼어붙은 듯 멍하니 바다만 쳐다보는 아빠를 본다. 진퇴양난에 처한 아빠의 심정이 부모라는 공통된 마음으로 내게 전해진다. 문득 운동복 밑에 수영복을 입고 있다는 생각이 솟는다. 물에 뛰어들어 공을 건져주고 싶은 생각이 불쑥 튀어나온다. 몇 걸음 가지 않아 넓은 백사장을 넘실거리는 파도가 순간 무서워진다. 무슨 변을 당할지 어찌 알겠는가. 무모한 짓일 수도 있겠다. 아이가 물에 빠진 것도 아닌데 고작 축구공 하나에 목숨 걸 일이 아니지 않는가. 아이 아빠도 못하고 서성이는데 무슨 영웅심리일까. 고개 숙이고 파도의 끝자락을 밟으며 걷다 보니 멀어진 아이가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처럼 가뭇해진다.
파도처럼 끝없이 밀려오는 갈등을 밟으며 걷는다. 용기가 없는 것이 오히려 다행인가. 술에 취해 철길에 떨어진 일본인의 목숨을 구하려고 철길에 뛰어들어 같이 죽은 이수현 의인이 생각난다. 자칫하다간 그렇게 함께 죽을 수도 있는 일이 아니겠는가. 비뚤어진 영웅심리로 뛰어들기는 어리석은 일이라고 결론을 내렸지만, 마음 한쪽에 들앉은 갈등의 자국은 묵직하다. 누군가의 작은 배려와 노력으로 아름답게 돌아가는 사회를 생각하면 발동하지 못한 나의 밑바닥 의협심이 부끄럽다. 사람의 힘으로 아무리 용을 써도 절대 안 되는 일이 있음을 그 아이는 터득했을까.
한참을 가다가 돌아보니 여전히 아이와 아빠는 서성이며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있다. 쉽게 포기하고 돌아서기에는 아깝고 특별한 공이었는지도 모른다. 과감하게 미련을 버리고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아이를 달래고 있을까. 해류에 밀려서 올 것 같은 요행을 바라고 발길을 돌리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살면서 요행을 바라는 일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일러주고 싶은데 다시 돌아보니 파도를 타던 공은 작은 점으로도 보이지 않는다. 아이의 실수도 안타까움도 아빠의 애태움도 흔적 없이 사라진 점에 불과하지 않은가. 나와 너의 오점도 좀 더 거리를 두고 보면 점 하나도 못 되는 것을, 집착인지 미련인지 알 수 없는 욕심 때문에 무의미한 헛발질만 해댄 나를 돌아본다. 헛헛한 발자국을 부지런히 뭉개고 있는 파도를 꾸역꾸역 밟는다.
성아우구스투스의 전설 같은 일화가 떠오른다. 성인은 해변 산책길에서 작은 모래 구덩이에 조가비로 바닷물을 다 옮겨 담으려고 하는 소년을 만난다. 불가능한 일이라고 타이르자 꼬마는 하느님의 신비를 인간의 작은 머리로 이해하려고 하는 것도 똑같이 불가능한 일이라 말하고는 사라졌다는 이야기다. 도저히 이해되지 않던 ‘삼위일체’의 신비를 인간의 머리로 이해하려고 한 자신의 교만을 깨닫고 더욱 겸손하게 하느님께 경외심을 갖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성인의 일화는 그의 저서 ??삼위일체론??에 직접적으로 쓴 사실은 아니지만 후대에 전해지는 교훈적인 울림은 크다.
우리들 생의 마지막도 저런 모습이지 않을까. 성인이 만난 해변의 소년처럼 오늘 내가 만난 소년에게서 ‘떠나보내는 이’와 ‘떠나가는 이’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진다. 울며불며 눈물로 붙잡으려 해도 이미 떠난 공은 유유히 물결에 흔들리며 떠날 뿐이다. 공을 잘못 찬 소년도 어쩔 수 없는 이별 앞에 주저앉아야 하는 보내는 이의 허탈함이다. 공처럼 둥근 세상에서 구르고 구르다가 저렇게 허무하게 떠나야 하는 공을 생각한다. 한 점 생으로 이 세상에 와서 비록 고통이 동행하더라도 유희를 즐기다가 미련 없이 떠나는 소년의 공과 같은 생이 아닌가.
다음날 해변을 걸으며 아무리 찾아도 소년의 공은 보이지 않는다. 그 소년이 어떤 방법으로 건져 갔을까. 결국 포기하고 돌아섰으리라. 풍요로운 물질 세상을 사는 요즘 아이들이니 지금쯤 새로운 공을 안고 있을지도 모른다. 주인과 이별한 공은 어디로 떠나갔을까. 해류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떠돌다 어느 바닷가 바위틈에 끼어 있는지, 아직도 망망대해를 떠돌고 있을지 공의 최후는 알 수 없다. 한순간의 앞도 알 수 없는 세상에서 얼마나 더 오래 이 짧은 생을 유영할지 모르면서 어싱에 진심이다. 최후를 알 수 없는 내 삶의 마지막을 소년의 공에 새기고 보듬는다. 어싱으로 지력을 흡입하여 남은 생의 밧줄을 튼튼하게 붙잡으려는 얄팍한 속내를 앞세우고 오늘도 열심히 파도를 밟는다. 시원한 파도가 애무하는 맨발이 간지럽다.
책머리에|고치를 뚫고 나온 누에나방처럼 04
서평|사라지지 않는 삶의 흔적, 기억을 건너는 삶의 여정
권대근(문학박사, 중국 하북미술대학 객좌교수) 223
1부 일상이 영혼을 깨우는 순간
소년의 공·13
클로버의 눈물·18
얼굴, 기미를 말하다·23
어머님의 어록·28
월요일의 만남·33
하얀 눈물·38
D라인의 변辯·42
맨발의 영성체·47
불면의 날들·52
영원한 순간·57
2부 사람은 서로의 풍경이 된다
그들의 왕국·65
라스트 퍼포먼스·71
칼 갑니다·76
오전 10시의 고요 속으로·81
새로운 시작·86
감나무 아래에 서면·91
가방 정리·96
숲의 환희·100
고춧대를 다듬으며·104
마인츠 하우스의 덩굴장미·108
3부 길은 세상을 배우게 한다
여왕의 길·115
달빛처럼·120
레바다 워킹·125
프리덤 트레일·130
티 파티·135
취옥백채·140
방울 소리 울리며·145
에피소드 원·150
티롤의 작은 동네, 고사우에서·155
휘떼로 가는 길·161
4부 시간은 다시 봄으로 흐른다
다시 찾은 노도에서·169
유배의 승화昇華·174
검은 눈물의 길, 운탄고도·180
방지원도와 꽃무릇·186
키 낮은 굴뚝·190
비밀의 숲·195
충절의 해안길·200
고동과 시인·205
공생·211
다시 봄, 봄이다·2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