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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라, 타락하라 무뢰파 작품선

원제 : 生きよ堕ちよ

다자이 오사무, 사카구치 안고, 다케다 린타로, 오다 사쿠노스케, 다나카 히데미쓰 저 | 이제민 역 | 덤불프레스 | 2026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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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97158728 / 256쪽 / 256g / 115 x 1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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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반디앤루니스 리뷰

‘무뢰파’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일본에서 다자이 오사무를 비롯한 일단의 젊은 작가들이 주창하고 일으킨 문학 운동이다. 이들은 전쟁을 일으킨 일본의 기성세대와 그들의 위선을 ‘원죄’로 규정하고 패전 후 폐허가 된 일본을 다시 재건하기 위해선 일본인 스스로 철저히 추락하고 타락하여 밑바닥으로부터 진실한 자신의 모습을 건져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무뢰파 작품선 『살아라, 타락하라』는 우리에게는 다만 전범국가인 20세기 초 일본의 좌절한 지식인들이 무뢰파 운동을 통해 전쟁 중과 패전 후에 어떤 자아 성찰을 하고 어떤 저항의 의식으로써 반항의 실천을 이어갔는지, 그럼으로써 기성세대가 일본 열도와 동아시아에 전쟁의 상처로 길게 드리워놓은 죄악과 위선의 그림자로부터 어떻게 벗어나려 했는지 그 치열한 몸부림을 목도할 수 있는 생생한 기록이다.

 

출판사 리뷰

다자이 오사무가 이끈 우울과 파멸의 문학
‘무뢰파(無賴派)’

기성의 권위와 위선을 거부하며 절망의
밑바닥으로부터 건져 올린 진실한 인간의 초상

“나는 자유인입니다. 무뢰파입니다. 모든 속박에 반항합니다.
시류에 영합하여 득의양양한 자들을 비웃습니다.”_다자이 오사무

‘무뢰파’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일본에서 다자이 오사무를 비롯한 일단의 젊은 작가들이 주창하고 일으킨 문학 운동이다. 이들은 전쟁을 일으킨 일본의 기성세대와 그들의 위선을 ‘원죄’로 규정하고 패전 후 폐허가 된 일본을 다시 재건하기 위해선 일본인 스스로 철저히 추락하고 타락하여 밑바닥으로부터 진실한 자신의 모습을 건져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무뢰파 작품선 『살아라, 타락하라』는 우리에게는 다만 전범국가인 20세기 초 일본의 좌절한 지식인들이 무뢰파 운동을 통해 전쟁 중과 패전 후에 어떤 자아 성찰을 하고 어떤 저항의 의식으로써 반항의 실천을 이어갔는지, 그럼으로써 기성세대가 일본 열도와 동아시아에 전쟁의 상처로 길게 드리워놓은 죄악과 위선의 그림자로부터 어떻게 벗어나려 했는지 그 치열한 몸부림을 목도할 수 있는 생생한 기록이다.

무뢰파는 이를 이끌었던 작가 다자이 오사무에 비해 한국에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무뢰파’라는 말조차 생소하게 받아들여질 정도다. 하지만 무뢰파 문학이 가진 가치와 의미는 물론이거니와 다자이 오사무의 문학을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무뢰파의 중요성은 결코 작지 않다. 이 책에는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을 비롯하여 무뢰파를 대표하는 작가들인 사카구치 안고, 다케다 린타로, 오다 사쿠노스케, 다나카 히데미쓰의 작품을 실었다. 각 작가마다 대표작인 단편소설과 함께 그들의 사상을 보다 명징하게 읽어낼 수 있는 에세이를 한 편씩 함께 수록했다.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작품들, 그리고 국내에 이미 소개된 바 있으나 무뢰파의 핵심 사상을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읽어야 할 작품들을 선정했으며, 한 권의 선집 안에서의 흐름 등을 고려하여 작가와 작품들을 적절한 순서로 배치, 구성하고자 했다.

무뢰파 작가들의 급진적인 주장은 때로 사회의 밑바닥으로 스스로 떨어지는 듯한 윤리적, 도덕적 타락의 모습을 보이는 등 허무와 절망의 자기 파괴적인 형태로 나타나기도 했다. 심지어 그들은 스스로 거부한 기성세대가 되지 않으려는 양 젊은 나이에 병과 자살로 삶을 마감함으로써, 죽음으로마저 무뢰파의 사상을 증명하려는 듯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무뢰파는 기성의 권위가 만든 사회규범과 관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노력 및 태도야말로 자신들의 사상과 문학의 실천이었음을 여전히 살아 있는 작품들을 통해 입증하고 있다. 그들이 남긴 사상은 오늘날의 한국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기성의 권위와 사상에 반기를 든
젊은 저항자들의 문학사조, 무뢰파

“서로 서투른 거짓말은 하지 말기로 합시다. 나는 당신의 문장을 서점 매대에서 읽고 몹시 불쾌했습니다. 이 글만 보면 마치 당신 혼자서 수상자를 결정한 것 같습니다. 이것은, 당신의 문장이 아닙니다. 분명 누군가에게 강요받아 쓴 글임에 틀림없습니다. 게다가 당신은 그걸 노골적으로 과시하려고 애쓰기까지 하는군요.”
이 인용문은 현대의 어느 문학상 응모자가 심사 결과에 실망하여 불만을 품고 쓴 글처럼 읽힌다. 그러나 이 글의 작자는 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작가, 다자이 오사무다. 1935년 제1회 아쿠타가와상 공모에 낙선한 그는 당시 특정 심사위원을 향한 이와 같은 노골적인 항의의 글을 《문예통신》이라는 문예지에 공개서한 형식으로 발표했다. 이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인신공격성 발언은 물론 협박에 가까운 과격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조그만 새를 기르고 무용을 구경하는 게 그리도 고상한 삶인가? 확 찔러버릴까 보다.’ 그런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천하의 몹쓸 놈이라고도 생각했습니다.”
다자이 오사무가 실명을 거론하며 ‘저격’한 인물은 훗날(196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게 되는 당대의 문호이자 『설국』의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였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에게」는 아쿠타가와상 최종심에 오른 그의 작품을 두고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작가의 현재 생활에 불쾌한 구름이 끼어 있는 탓에 재능이 온전히 발휘되지 못한 안타까움이 있었다”며 사생활을 이유로 낙선시킨 데 대해 다자이 오사무가 울분에 차서 쓴 당돌하기 그지없는 도발적 선언문이었다. 다자이 오사무를 한없는 자기혐오와 우울의 늪에 빠져들다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만 허무와 파멸의 작가로 알고 있는 오늘날의 독자라면 생경하게 느껴질 만한 일화다. 그러나 그가 이끌었던 문학사조인 ‘무뢰파’의 사상을 이보다 명료하게 보여주는 사례도 없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일본의 젊은 세대가 느낀 열패감과 소외감은 컸다. 무뢰파 문학의 작가 세대는 사실상 일본이 일으킨 전쟁의 또 다른 피해자나 다름없었다. 그들의 위 세대, 즉 당대의 기성세대가 전쟁을 일으켰고, 전선에 내몰려 죽임을 당하거나 국가의 대의 아래 폭력을 강요당한 것은 젊은 세대였음에도 전쟁으로 폐허가 된 일본을 다시 일으켜야 하는 과업도 결국 그들의 몫이 되었다. 일본은 망했어도 일본을 망하게 한 장본인들은 망하지 않고 살아남았다. 그러한 전후의 절망적인 상황에서 주변부로 밀려난 채 노역에 가까운 국가 재건의 대업을 떠맡은 젊은이들의 암담한 심정은 말로 헤아릴 수 없었으리라. 당시 문단의 젊은 지식인들은 그러한 패배의 그림자 속에서 기성의 가치와 도덕을 부정하며 무뢰파라는, 일단의 문학 운동을 전개한 것이었다.

세상의 가식과 위선에의 거부
철저한 타락을 통한 구원을 부르짖다

무뢰파는 기성세대의 자기기만이 세상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다고 보았다. 전쟁도 패전 후의 비극도 바로 그들의 위선과 가식이 불러온 결과라고 말이다. 그리하여 스스로의 삶을 “부끄러움 많은 생애”라고 고백하는 등 내밀하고 부끄러운 자아를 숨김없이 말함으로써 오히려 자신을 실토하지 못하는 기성 사회의 수치를 비꼬았다. 하지만 가와바타 야스나리에게 보내는 다자이 오사무의 공개서한에서도 드러나듯이 노골적인 적대감의 발산을 굳이 감추려 들지도 않았다. 이는 오롯이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행동이었다기보다는 기성세대의 도덕적 허영, 즉 진정 비열한 윤리적 타락이라 여긴 그것을 세상에 까발려 그들 스스로 치부를 돌아보게끔 하려는 젊은 세대 나름의 당돌한 시도였을지도 모른다.
무뢰파 작가들은 끊임없이 타락하라며 부르짖었다. 그들이 기성 사회의 허위의식을 무엇보다도 혐오했다는 사실을 안다면 이 타락이 오늘날에 생각하는 단순한 도덕적, 윤리적 타락이 아님은 명백해진다. 비록 무뢰파 작가가 자신의 실제 인생에서나 작품 속에서 술과 약물에 취해 기행을 일삼고 방탕한 삶을 살았다 할지라도, 이를 통한 개인적 구원을 세상에 설파하려 했다고는 볼 수 없다. 그들 삶에서의 타락과 그들이 세상에 요청한 타락은 언뜻 모순되어 보일지 모르겠으나, 세상의 기망으로부터 먼저 자유로워지는 것이야말로 추악하고 무너진 세계에서 승리하는 것임을 공통되게 피력하고 있다. 그들의 방탕한 삶이란 그러한 주장의 다소 과장되고 자기 파괴적이기까지 한 ‘퍼포먼스’를 희생을 감내하면서까지 실제 자신의 인생에 적용해 보여준 일종의 실천으로 보아야 할 터다.

허무와 절망의 사도들이 남긴 승리의 묘표들
모든 시대의 젊은 세대를 위한 영원한 경전

이제껏 한국에서 다자이 오사무의 문학과 그의 자살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만 예민한 영혼이 거쳐 온 지난한 내면적 고뇌의 종착역이라는 데 그쳐 있었다. 그러나 이제 젊은이들은 다자이 오사무의 문학이 그려낸 우울과 파멸로부터, 오묘한 타락의 시선으로 들여다본 인생의 통찰과 저항의 의지를 읽는다. 작가의 자살로 귀결되는, 절망의 끝이라는 처절한 영역도 외려 숭고한 저항의 실현으로 여겨지고 있다. 스스로를 기성세대와 그들이 바꾸려 하지 않는 사회구조의 피해자라고 느끼며 출구 없는 불안과 우울의 지하도를 헤매는 세대에게 다자이 오사무가 소구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우울과 절망을 교감할 수 있는 귀중한 파멸의 전거가 문학이라는 이름의 경전으로 이미 존재하는 까닭이다.
무뢰파 작가들은 병으로, 또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방식으로 단명했다. 그리하여 기성 사회의 구성원이 되지 않은 채 저항하는 젊은 세대의 일원으로 영원히 남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옛 일본의 작가들이 취한 타락의 태도는 치열한 저항의 기록으로서, 새로이 절망하기 시작한 모든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감정적으로 격한’ 위로를 줄 우울과 파멸의 경전으로 세상에 남게 되었다.

 

저자 소개

  • 저자 : 다자이 오사무, 사카구치 안고, 다케다 린타로, 오다 사쿠노스케, 다나카 히데미쓰

저자 : 다자이 오사무
1909년 일본 아오모리현 기타쓰가루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쓰시마 슈지. 명망 있는 집안에서 유복하게 자랐을 뿐만 아니라 언제나 1등을 놓치지 않는 수재였다. 선택받은 환경에 뛰어난 머리까지 타고났지만, 서른아홉 해의 짧은 생애 중 다섯 번 자살을 기도했다. 스무 살이던 1929년 칼모틴을 복용한 후 의식불명에 빠졌던 것을 시작으로, 1930년에는 술집 종업원 다나베 시메코와 가마쿠라 바다에 함께 투신했다. 그러나 다나베만 사망하고 홀로 살아남아 자살방조죄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광대의 꽃〉(1935)은 대표작인 〈인간 실격〉(1948)의 모태이자 이때의 자책감을 드러낸 작품이다. 〈도쿄 팔경〉(1941)에도 이때의 일이 자세히 서술돼 있다. 좌익 운동을 하며 유치장을 들락거리던 다자이는 〈교겐의 신〉(1936)에 그려진 대로 1935년 가마쿠라에서 목을 매 세 번째 자살을 시도했다. 미수에 그쳤지만 맹장염 수술 후 진통제로 쓰인 파비날에 중독되었다. 약값을 대기 위해 아쿠타가와상 수상에 욕심을 냈지만 실패하고는 깊은 절망에 빠졌다. 거기에 약혼 관계였던 게이샤 오야마 하쓰요와 절친한 친구의 불륜을 눈치채고 큰 충격을 받았다. 1937년 다자이와 오야마는 미나카미 온천에서 칼모틴을 먹고 네 번째 자살을 기도하지만 둘 다 살아남았고, 이때의 일은 〈우바스테〉(1938)에 녹아들었다. 1948년 결핵 증세로 인한 객혈이 심해진 다자이는 불륜 관계였던 야마자키 도미에와 다마가와조스이에 몸을 던져 함께 생을 마감했다. 처음이자 마지막 자살의 성공이었고, 두 사람의 사체는 기모노 허리띠에 묶인 채 다자이의 생일인 6월 19일에 발견되었다.

 

저자 : 사카구치 안고
일본의 문학가. 본명은 사카구치 헤이고(炳五へいご). 다자이 오사무, 오다 사쿠노스케와 함께 일본의 전후 문학을 대표하는 무뢰파(無賴派) 소설가이자 평론가로 평가된다. 본명은 사카구치 헤이고.

1906년 10월 20일 니가타현에서 태어났다. 니이치로의 전처와 첩의 아이까지 합한 열세 명의 형제 중 열두 번째 아이로 태어난 안고는 어린시절부터 방랑벽과 방황이 심했다.
1919년 니가타 중학교에 입학했으나 이 무렵부터 집과 학교를 싫어해서 수업을 빠지고 홀로 방황하는 날들을 보내다 낙제하게 되고, 다니자키 준이치로와 발자크 등의 소설을 탐독하며 지내다가 결국 1922년에 퇴학당했다. 그해 가을 상경해 부잔 중학교에 입학했고 에드거 앨런 포와 이시카와 다쿠보쿠 등을 인생의 낙오자로서 사랑하며 그들의 작품을 숙독했다. 막연하게 엄격한 구도자의 삶을 동경하여 1926년, 도요 대학 인도철학윤리과에 입학한다. 불교서와 철학서를 섭렵하는 데 몸을 혹사하며 공부에 매진한 탓에 생긴 신경쇠약 증세를 극복하기 위해 다시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티베트어, 라틴어, 프랑스어 등 어학을 맹렬히 공부한다. 1930년, 대학을 졸업한 후 동인지 <말>과 <청마>를 창간했다.

1931년 소설가 데뷔. 단편소설들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단편소설 <바람 박사>와 <구로타니 마을>이 소설가 마키노 신이치의 극찬을 받음으로써 신진 작가로 급부상한후 1946년 2차대전이 끝난 후 패전 직후의 시대를 분석한 '타락론'과 '백치'로 당대를 대표하는 대표적인 작가가 된다. 1931년에 발표한 1932년 작가 야다 쓰세코를 알고 사랑에 빠지지만 1936년 절교한 후 신생을 기하며 교토를 방랑하면서 그녀와의 사랑을 소재로 한 장편소설 ≪눈보라 이야기≫를 썼다. 1947년 가지 미치요와 결혼하고, 전후의 시대상을 반영한 소설과 에세이, 탐정소설, 역사 연구, 문명 비평 르포르타주 등 다채로운 집필 활동을 전개하여 전후의 난세에 문화와 역사 및 사회의 흐름에 대한 대중의 지적 갈증을 해소해 주는 역할을 한다.

추리소설을 좋아했고 직접 [明治開化 新十郎探偵帖]을 쓰기도 했다. 이를 원작으로 한 UN-GO가 애니메이션화되었고, 2020년 5월에 NHK에서 시대극으로 드라마화한다. 그 밖에도 여러 편의 추리소설을 썼고, 매스컴에서 스캔들에 대해 서투른 추측를 하면 아예 내 밑으로 들어와서 추리 소설을 배우라고 일갈한 적도 여러번 있다. 국내에 번역 출판된 작품은 『투수살인사건(投手殺人事件)』, 『난킨무시살인사건(南京虫殺人事件)』, 『그림자 없는 살인(影のない犯人)』, 선거 살인사건, 불연속 살인사건 등이 있다. 시인 나카하라 츄야와 가까웠다.

사카구치 안고는 세무 당국을 상대로 한 소송, 경륜 부정 사건 고발, 각성제와 수면제 중독에 의한 정신착란 발작 등 실생활 면에서도 언제나 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1955년 2월 17일 지방 취재 여행에서 돌아온 후 자택에서 뇌일혈로 급사했다. 향년 50세였다.
수상 : 1949년 일본 추리작가 협회상

 

저자 : 다케다 린타로
1930년대 프롤레타리아문학운동에서 출발하여 점차 화려한 도시의 그늘에 가려진 뒷골목 서민들의 삶과 쇠락해가는 인간 군상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일본 최고의 번화가이자 동시에 가장 밑바닥 인생들이 모여들었던 도쿄 아사쿠사의 밤거리를 영원한 무대로 삼은 작품들은 무뢰파의 선구적 성격을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화려한 네온사인 뒤편에서 꿈틀거리는 부랑자와 사기꾼, 매춘부들과 함께 호흡하고 뒹굴며 그들의 땀내 나는 이야기를 날것 그대로 건져 올린 그의 삶은 가히 그 자체로 치열한 문학적 실험이었다.

 

저자 : 오다 사쿠노스케
오다사쿠(織田作)라는 애칭으로 널리 불리는 오다 사쿠노스케는 1913년 오사카 덴노지 근처 뒷골목 튀김집의 1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학업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어 1931년 제3고등학교, 현 교토대학에 입학하나 졸업시험 도중 객혈하여 졸업하지 못한 채 1934년 오사카를 떠나 전지요양에 나선다. 그리고 이때부터 극작가를 지망하며 극본 집필에 몰두한다. 하지만 이윽고 스탕달에게 큰 영향을 받아 1938년 단편 「비」를 발표하며 소설의 세계에 발을 들인다. 이후 오사카로 돌아와 기자 생활을 시작함과 동시에 꾸준히 소설 집필을 이어간다. 1939년 발표한 「속취」가 최고권위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 후보로 지명되고, 이듬해 7월 발표한 「부부단팥죽」이 제1회 가이조샤 문예추천작에 당선되며 소설가로서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된다. 전쟁이 시작되어 장편 『청춘의 역설』이 발매 금지 처분을 당하는 등 큰 어려움을 겪지만 다자이 오사무, 사카구치 안고 등과 함께 사회통념, 기성 사상 일체에 반발하며 고유의 직관을 추구하는 무뢰파 작가로서 활동을 꾸준히 이어간다. 1946년 12월 대량의 각혈을 일으키며 점차 상태가 악화하여 이듬해인 1947년 1월 33세 나이로 요절한다. 빠르고 경쾌하면서도 날카로운 문체와 희극을 보는 듯한 생동감 넘치는 이야기가 돋보이는 오다사쿠의 작품은 7년밖에 안 되는 짧은 활동 기간에도 불구하고 오다 사쿠노스케 문학상이 제정되는 등 많은 사랑을 받았다. 2007년, 사후 60년 이 지난 뒤에야 전시 중 발표하지 못한 단편 「부부단팥죽 속편」 원고가 발견되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저자 : 다나카 히데미쓰
도쿄에서 출생하여 어머니의 집안인 다나카 가에 호적을 올렸다. 가마쿠라에서 성장했으며 와세다(早?田) 대학 정치경제학부 졸업. 대학 재학 중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조정선수로 출장했다. 당시의 체험을 바탕으로 「올림포스의 과실」을 썼다. 주재원으로 있던 당시 경성(현, 서울)에서의 체험, 형님의 영향으로 입당한 공산당에서의 체험, 애인과의 신주쿠에서의 생활이 문학의 배경에 있다. 다자이 오사무의 자살에 커다란 충격을 받아 수면제 중독에 걸렸으며 1949년 11월 3일에 다자이의 무덤 앞에서 자살했다.

역자 소개

  • 역자 : 이제민
잠들지 않는 눈으로 고전과 현대를 아우르는 세상의 다양한 텍스트를 지켜보고 이해하려 애쓴다. 그러나 정작 스스로는 단 한 줄의 고백도 적지 못한다는 지독한 아이러니를 안고 살아가는 중이다.

목차

서문
가와바타 야스나리에게

다자이 오사무
수치 / 가정의 행복

사카구치 안고
벚나무 숲 만개한 꽃 아래 / 타락론

다케다 린타로
대흉의 제비 / 그대, 죽지 말지어다

오다 사쿠노스케
길 / 흙발 그대로의 문학

다나카 히데미쓰
야호(野狐) / 사요나라

후기
우울과 파멸의 망령들, 혹은 영원한 저항의 사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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