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다자이 오사무
1909년 일본 아오모리현 기타쓰가루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쓰시마 슈지. 명망 있는 집안에서 유복하게 자랐을 뿐만 아니라 언제나 1등을 놓치지 않는 수재였다. 선택받은 환경에 뛰어난 머리까지 타고났지만, 서른아홉 해의 짧은 생애 중 다섯 번 자살을 기도했다. 스무 살이던 1929년 칼모틴을 복용한 후 의식불명에 빠졌던 것을 시작으로, 1930년에는 술집 종업원 다나베 시메코와 가마쿠라 바다에 함께 투신했다. 그러나 다나베만 사망하고 홀로 살아남아 자살방조죄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광대의 꽃〉(1935)은 대표작인 〈인간 실격〉(1948)의 모태이자 이때의 자책감을 드러낸 작품이다. 〈도쿄 팔경〉(1941)에도 이때의 일이 자세히 서술돼 있다. 좌익 운동을 하며 유치장을 들락거리던 다자이는 〈교겐의 신〉(1936)에 그려진 대로 1935년 가마쿠라에서 목을 매 세 번째 자살을 시도했다. 미수에 그쳤지만 맹장염 수술 후 진통제로 쓰인 파비날에 중독되었다. 약값을 대기 위해 아쿠타가와상 수상에 욕심을 냈지만 실패하고는 깊은 절망에 빠졌다. 거기에 약혼 관계였던 게이샤 오야마 하쓰요와 절친한 친구의 불륜을 눈치채고 큰 충격을 받았다. 1937년 다자이와 오야마는 미나카미 온천에서 칼모틴을 먹고 네 번째 자살을 기도하지만 둘 다 살아남았고, 이때의 일은 〈우바스테〉(1938)에 녹아들었다. 1948년 결핵 증세로 인한 객혈이 심해진 다자이는 불륜 관계였던 야마자키 도미에와 다마가와조스이에 몸을 던져 함께 생을 마감했다. 처음이자 마지막 자살의 성공이었고, 두 사람의 사체는 기모노 허리띠에 묶인 채 다자이의 생일인 6월 19일에 발견되었다.
저자 : 사카구치 안고
일본의 문학가. 본명은 사카구치 헤이고(炳五へいご). 다자이 오사무, 오다 사쿠노스케와 함께 일본의 전후 문학을 대표하는 무뢰파(無賴派) 소설가이자 평론가로 평가된다. 본명은 사카구치 헤이고.
1906년 10월 20일 니가타현에서 태어났다. 니이치로의 전처와 첩의 아이까지 합한 열세 명의 형제 중 열두 번째 아이로 태어난 안고는 어린시절부터 방랑벽과 방황이 심했다.
1919년 니가타 중학교에 입학했으나 이 무렵부터 집과 학교를 싫어해서 수업을 빠지고 홀로 방황하는 날들을 보내다 낙제하게 되고, 다니자키 준이치로와 발자크 등의 소설을 탐독하며 지내다가 결국 1922년에 퇴학당했다. 그해 가을 상경해 부잔 중학교에 입학했고 에드거 앨런 포와 이시카와 다쿠보쿠 등을 인생의 낙오자로서 사랑하며 그들의 작품을 숙독했다. 막연하게 엄격한 구도자의 삶을 동경하여 1926년, 도요 대학 인도철학윤리과에 입학한다. 불교서와 철학서를 섭렵하는 데 몸을 혹사하며 공부에 매진한 탓에 생긴 신경쇠약 증세를 극복하기 위해 다시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티베트어, 라틴어, 프랑스어 등 어학을 맹렬히 공부한다. 1930년, 대학을 졸업한 후 동인지 <말>과 <청마>를 창간했다.
1931년 소설가 데뷔. 단편소설들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단편소설 <바람 박사>와 <구로타니 마을>이 소설가 마키노 신이치의 극찬을 받음으로써 신진 작가로 급부상한후 1946년 2차대전이 끝난 후 패전 직후의 시대를 분석한 '타락론'과 '백치'로 당대를 대표하는 대표적인 작가가 된다. 1931년에 발표한 1932년 작가 야다 쓰세코를 알고 사랑에 빠지지만 1936년 절교한 후 신생을 기하며 교토를 방랑하면서 그녀와의 사랑을 소재로 한 장편소설 ≪눈보라 이야기≫를 썼다. 1947년 가지 미치요와 결혼하고, 전후의 시대상을 반영한 소설과 에세이, 탐정소설, 역사 연구, 문명 비평 르포르타주 등 다채로운 집필 활동을 전개하여 전후의 난세에 문화와 역사 및 사회의 흐름에 대한 대중의 지적 갈증을 해소해 주는 역할을 한다.
추리소설을 좋아했고 직접 [明治開化 新十郎探偵帖]을 쓰기도 했다. 이를 원작으로 한 UN-GO가 애니메이션화되었고, 2020년 5월에 NHK에서 시대극으로 드라마화한다. 그 밖에도 여러 편의 추리소설을 썼고, 매스컴에서 스캔들에 대해 서투른 추측를 하면 아예 내 밑으로 들어와서 추리 소설을 배우라고 일갈한 적도 여러번 있다. 국내에 번역 출판된 작품은 『투수살인사건(投手殺人事件)』, 『난킨무시살인사건(南京虫殺人事件)』, 『그림자 없는 살인(影のない犯人)』, 선거 살인사건, 불연속 살인사건 등이 있다. 시인 나카하라 츄야와 가까웠다.
사카구치 안고는 세무 당국을 상대로 한 소송, 경륜 부정 사건 고발, 각성제와 수면제 중독에 의한 정신착란 발작 등 실생활 면에서도 언제나 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1955년 2월 17일 지방 취재 여행에서 돌아온 후 자택에서 뇌일혈로 급사했다. 향년 50세였다.
수상 : 1949년 일본 추리작가 협회상
저자 : 다케다 린타로
1930년대 프롤레타리아문학운동에서 출발하여 점차 화려한 도시의 그늘에 가려진 뒷골목 서민들의 삶과 쇠락해가는 인간 군상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일본 최고의 번화가이자 동시에 가장 밑바닥 인생들이 모여들었던 도쿄 아사쿠사의 밤거리를 영원한 무대로 삼은 작품들은 무뢰파의 선구적 성격을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화려한 네온사인 뒤편에서 꿈틀거리는 부랑자와 사기꾼, 매춘부들과 함께 호흡하고 뒹굴며 그들의 땀내 나는 이야기를 날것 그대로 건져 올린 그의 삶은 가히 그 자체로 치열한 문학적 실험이었다.
저자 : 오다 사쿠노스케
오다사쿠(織田作)라는 애칭으로 널리 불리는 오다 사쿠노스케는 1913년 오사카 덴노지 근처 뒷골목 튀김집의 1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학업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어 1931년 제3고등학교, 현 교토대학에 입학하나 졸업시험 도중 객혈하여 졸업하지 못한 채 1934년 오사카를 떠나 전지요양에 나선다. 그리고 이때부터 극작가를 지망하며 극본 집필에 몰두한다. 하지만 이윽고 스탕달에게 큰 영향을 받아 1938년 단편 「비」를 발표하며 소설의 세계에 발을 들인다. 이후 오사카로 돌아와 기자 생활을 시작함과 동시에 꾸준히 소설 집필을 이어간다. 1939년 발표한 「속취」가 최고권위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 후보로 지명되고, 이듬해 7월 발표한 「부부단팥죽」이 제1회 가이조샤 문예추천작에 당선되며 소설가로서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된다. 전쟁이 시작되어 장편 『청춘의 역설』이 발매 금지 처분을 당하는 등 큰 어려움을 겪지만 다자이 오사무, 사카구치 안고 등과 함께 사회통념, 기성 사상 일체에 반발하며 고유의 직관을 추구하는 무뢰파 작가로서 활동을 꾸준히 이어간다. 1946년 12월 대량의 각혈을 일으키며 점차 상태가 악화하여 이듬해인 1947년 1월 33세 나이로 요절한다. 빠르고 경쾌하면서도 날카로운 문체와 희극을 보는 듯한 생동감 넘치는 이야기가 돋보이는 오다사쿠의 작품은 7년밖에 안 되는 짧은 활동 기간에도 불구하고 오다 사쿠노스케 문학상이 제정되는 등 많은 사랑을 받았다. 2007년, 사후 60년 이 지난 뒤에야 전시 중 발표하지 못한 단편 「부부단팥죽 속편」 원고가 발견되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저자 : 다나카 히데미쓰
도쿄에서 출생하여 어머니의 집안인 다나카 가에 호적을 올렸다. 가마쿠라에서 성장했으며 와세다(早?田) 대학 정치경제학부 졸업. 대학 재학 중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조정선수로 출장했다. 당시의 체험을 바탕으로 「올림포스의 과실」을 썼다. 주재원으로 있던 당시 경성(현, 서울)에서의 체험, 형님의 영향으로 입당한 공산당에서의 체험, 애인과의 신주쿠에서의 생활이 문학의 배경에 있다. 다자이 오사무의 자살에 커다란 충격을 받아 수면제 중독에 걸렸으며 1949년 11월 3일에 다자이의 무덤 앞에서 자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