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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7376619 / 300쪽 / 390g / 135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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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디앤루니스 리뷰
“우리 사회의 미래가 하나씩 꺼져가고 있다”
‘안전한’ 외로움과 각자도생이 생존 방식이 된 사회에서
청년들의 고립은 ‘나약함’이 아닌 저항의 몸부림이다
“성실한 취재는 말할 것도 없고, 날카롭게 살피면서도
함부로 재단하지 않으려는 저자들의 태도에도 탄복했다.”
_장강명(소설가 《먼저 온 미래》 저자)
“서로를 목격하고 경청하며 벌어진 어떤 꿈틀거림을
나는 감히 희망적으로 느꼈다.”
_하미나(작가 《나를 갈라 나를 꺼내기》 저자)
은둔청년 54만. 그마저도 2024년에 확인한 숫자다. 청년 스무 명 중 한 명은 방에서 나오지 않은 지 벌써 2년 넘게 지났다는 뜻이다. 그사이 청년을 은둔 상태로 몰아넣은 주원인인 ‘취업난’은 나아지기는커녕 심각해졌고, ‘쉬었음’ 청년은 매해 증가하고 있으며,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은둔하고 있는 청년들 상당수는 통계에 잡히지도 않는 실정이다. ‘세상이 얼마나 살기 좋아졌는데, 편하고 살라고 배부른 소리나 하고 있다’는 부정적인 시선도 있지만, 사회와 정부는 은둔청년을 ‘응원’한다.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줄 테니, 다시 사회로 나오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은둔청년이 줄어들고 있지 않은 이유는 간단하다. 사회가 청년들을 고립과 은둔으로 내몰고 있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나도 은둔청년이 될 수 있겠다’라고 느낀 두 청년 기자가 굳게 닫힌 방문 너머의 청년들을 만났다. 《은둔하는 청년들》은 지워지고고립·은둔청년 당사자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기록하고 한국 사회가 청년들을 고립·은둔으로 내밀고 있음을 밝힌 날카로운 탐사의 기록이다. 그들은 고립·은둔청년들을 만나며 기자로서 살아가는 자신들이 ‘운이 좋았음’을 느끼고 서늘해진다. 학교와 가정에서 폭력을 당해서, 대학 입시에 실패해서, 취업 준비 기간이 길어져서, 일자리를 잃어서,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해서…. 청년들은 생의 모든 순간에 은둔으로 내몰릴 위험을 겪고 있었고, 그 모든 위험은 나날이 늘어나고 있었다. ‘멀쩡하게 사회생활’을 하려면 불운한 고난을 견뎌내거나 운 좋게 겪지 않는 수밖에 없었다. 청년들은 언제 바닥으로 추락할지 모르는, 낭떠러지 위의 ‘징검다리 게임’을 하고 있다.
출판사 리뷰
추천사
한국 사회는 증상이 외부로 잘 드러나지 않는 중병에 걸렸고, 이 책은 성능 좋은 내시경이다. 저자들은 유능한 소화기내과 전문의처럼 바깥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사각지대를 깊숙이 살피고, 내출혈이 진행 중인 현장을 분석한다. 성실한 취재는 말할 것도 없고, 날카롭게 살피면서도 함부로 재단하지 않으려는 저자들의 태도에도 탄복했다. ‘완전고립’과 ‘은둔중년 사회’라는 디스토피아를 피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지금 필요한 것은 손쉬운 낙인이나 처방이 아니라, 똑바로 바라보고 이해하려는 노력이다. 바로 이 책처럼.
_장강명 소설가, 《먼저 온 미래》 저자
어떤 책은, 책의 표면이 전달하는 내용 너머 좀 더 깊은 지점에 잠재된 저자의 마음이 전해진다. 그리고 그 마음에 두려움이 포함되어 있을 때, 두려운데도 불구하고 무언가를 해보기로 결심할 때, 나는 그 글을 신뢰하게 된다.
이 책에 수많은 만남이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기자로서 직접 목격했을 현장. 은둔 청년들과 가족들과 나누었을 대화. 두려워하면서도 방법을 모색했을 시간들. 서로를 경청하고 목격하느라 무언가가 벌어지기 시작한 어떤 꿈틀거림이 일견 건조해 보이는 신문체의 문장들 사이를 비집고 내게 전해졌고, 감히 희망적으로 느꼈다.
은둔청년의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쉬이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들여보려 애쓰는 동안 그 모든 제스처들은 최소한 듣는 이를 변화시켜 놓기 마련이다. 우리가 가진 공포와 두려움을 타인을 향한 연민과 진지한 관심으로 굴절시킬 때, 어떤 작은 기적이 벌어지는지 이 책이 존재로서 입증하고 있다.
_하미나 작가, 《나를 갈라 나를 꺼내기》 저자
책 속에서
방 안의 고통을 낱낱이 기록하고 질문을 던지는 과정은 결국 내 삶에 도사린 고립의 징후들을 직시하는 일이 됐다. 매일 무수한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가지만, 나는 정말 그들과정서적으로 연결되어 있을까. 동료와의 점심시간이 노동이 되면서, 일 때문에 친구와의 만남을 줄이면서, 전화 대신 카카오톡으로 가족에게 안부를 물으면서, 속마음을 인공지능에게만 쏟아내면서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야만 하는 이유가 희미해지지 않았나. 우리 모두는 보이지 않는 고립의 위기를 품고 사는 예비 고립자일지도 모른다.
_9~10쪽, 〈우리는 모두 고립의 위기를 품고 있다〉에서
소연, 수철, 진원 씨처럼 이 시대를 버티는 청년들은 곳곳에 있지만, 세상은 그들의 죽음을 바꾸어야 할 부조리가 아닌 ‘공정한’ 경쟁의 안타까운 측면으로 다룬다. 남들에게 기대거나 제도의 도움을 받는 것을 ‘무임승차’로 낙인찍고, 개인의노력으로 난관을 넘어서는 것만을 ‘능력’이라 규정하는 세상에서 그들의 고통은 통과해야 할 관문처럼 여겨진다. 그 과정에서 넘어진 청년들은 외부와 차단된 방에서 삶의 의지마저 잃어버린 채 침잠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너무 늦게, 그 문을 두드렸다.
_28쪽, 〈세상을 떠난 청년의 방〉에서
생존 경쟁에 시달리는 청년들에게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을 살리는 자기돌봄은 낯선 일이 된다. 치열한 대학 입시와 취업 준비 과정을 거쳐 회사에 들어가면 고강도 노동이 기다리고 있다. 그 긴 궤도를 쉴 틈 없이 달리는 동안 요리, 청소, 빨래와 같은 가사노동을 비롯한 (자기)돌봄은 ‘불필요한 것’이 된다. 오찬호 사회학자의 말대로 “모든 경쟁은, 목표를 정해놓고 ‘목표와 무관한 것을 하지 않는’ 형태”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여가 시간에도 발전과 생산성을 추구해야 하니 가사 노동은 효율을 저해하는 일로, 정신적·정서적 안정을 위한 휴식은 죄책감을 주는 ‘게으름’으로 치부된다.
_40쪽, 〈쓰레기와 동거하는 청년들〉에서
쉬었음 청년의 수가 역대 최대를 갱신하는 청년 세대는 사실 가장 치열하게 자신을 소모하는 세대다. 오늘을 살아내는 청년에게 기회의 문이 지나치게 좁아지고 있을 뿐이다. 기업이 요구하는 구직자의 조건과 청년들이 갖출 수 있는 역량의격차는, 이제 개인의 노력으로 메울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설상가상으로 ‘인공지능이 신입보다 낫다’는 말처럼 기술마저 청년들의 기회를 앗아가고 있다.
결국 못 쉬었음 청년이 쉬지 못하는 이유와 쉬었음 청년이 쉬는 이유는 똑같다. 일자리의 양극화가 극심한 가운데 청년들에게 양질의 일자리가 너무 적게 주어지기 때문이다. 청년들이 좋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불안정 노동에 허덕이며 미래를 꿈꾸면, 못 쉬었음 청년이 된다. 그나마 불안정 노동을 하지 않으며 자신의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면, 그 시간까지 미래를 위해 ‘쉬지 않고’ 노력하는 쉬었음 청년이 될 뿐이다.
_70쪽, 〈‘쉬었음’ 청년은 쉬지 않는다〉에서
결국 우리가 직면할 미래는 ‘풍요로운 고립’이라는 역설입니다. 첨단 기술로 혼자서도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편리한 세상이 되겠지만, 정작 내가 쓰러졌을 때 119를 불러줄 이웃도, 나의 죽음을 진심으로 애도해줄 동료도 없는 사회가 되는 것이죠. 고립청년이 늘어난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미래라는 엔진이 하나둘씩 꺼져가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_113쪽, 〈‘풍요로운 고립의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에서
정부의 지원 정책은 근본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고립·은둔청년들을 다시 ‘건강한 노동력’으로 ‘수정’해 생산 인구에 편입하려는 관점에 가깝다. 일부 고립·은둔청년에게는 회복의 기회를 줄 수 있겠지만, 고립·은둔청년이 계속해서 늘어나는 현실을 바꿀 수는 없다. 고립·은둔 상태의 청년들에게 사다리 몇 개를 내려주는 것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마저도 ‘청년’이라는 시한이 붙어 있는 기회다.
박재영 팀장이 말한 인식 개선과 장기적인 관점의 지원이란, 한두 번의 실패로 빠지기 십상인 고립·은둔이라는 ‘수렁’
을 메우는 일과 같다. 그것은 20대에 4년제 대학을 졸업해서정규직으로 취직하지 못해도, 그렇게 서른이 넘고 마흔이 되어도 다시 원하는 일을 찾고 행복한 삶을 상상할 수 있는 사회 안전망을 구축하는 일이다.
_158쪽, 〈노력으로는 고립을 예방할 수도, 극복할 수도 없다〉에서
‘청년의 서사’는 더 이상 의미가 없어졌다. 청년이 청년답게 도전하고 성취하고 실패하면 또 일어나고 했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 부작용’이 너무 크다. 청년 고립은 대표적인 부작용 중 하나일 거다. 청년의 서사가 너무 거창했기에 나타난 결과다. 거창했기에, ‘스스로를 부족하게’ 느끼는 경우도 많다. 이런 거대 청년 서사에게 벗어난다면 ‘상처’도 견딜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사회는 지금껏 이런 청년 서사를 이용해 직무유기나 다름없는 접근을 했다. 최근에 지원의 범위가 커졌지만 큰 줄기는 여전히 “파이팅할 기회를 주겠다!”는 식이다. 사회도 단순해져야 한다. 현상을 그대로 직시해야 한다. 내 집 마련이 힘들다고 청년들이 힘들어하면, ‘내 집 마련이 어려운 현상’을 직시하고 개선해야 한다. 잠재력을 키워서 역량을 발휘해 부자가 되라는 식의 조언을 더 이상 해서는 안 된다.
_226쪽, 〈‘요람에서 무덤까지’ 경쟁하는 사회〉에서
청년의 은둔은 가족에게 부담과 고통으로 다가온다. 무거운 돌봄의 무게를 감당해야 하니 가족은 은둔하는 청년에게 답답함을 토로하거나 가시 돋친 말을 하게 될 수밖에 없다. ‘남들만큼만’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지울 수도 없다. 그러나 은둔하는 청년이 가족의 기대, 혹은 ‘압박’에 부응하지 못할수록 자신을 탓하거나 서로를 원망하며 감정의 골이 깊어진다. 결국 은둔청년은 드러내서는 안 될 가족의 ‘수치’가 되고, 가족이 사회로부터 서서히 단절될 수 있다. 이 상황이 장기화되면 김수영 교수가 말한 ‘동반 몰락’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_247쪽, 〈사랑과 압박 사이 가족〉에서
그것은 매우 위험하고 근시안적인 생각입니다. 사회는 다양한 사람들이 연결된 유기체입니다. 내가 당장 문제가 있지 않아도 옆에서 문제가 있다면, 내 삶도 영향받는다는 점을 깨달아야 합니다. 누군가의 고립은 장기적으로 더 큰 사회적 비용(의료, 복지, 범죄, 생산성 저하)을 발생시킬 수 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각자가 잠재적 고립자’ 라는 사실입니다. 나라고 해서 영원무궁토록 문제가 없을 수는 없습니다. 오늘의 성취자가 내일의 낙오자가 될 수 있는 불안한 구조 속에서, 고립청년을 돕는 것은 결국 나를 위한 ‘사회적 보험’을 드는 것과 같습니다.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능력’, 즉 ‘책임Response-Ability’ 은 공동체를 지탱하는 최후의 보루입니다.
_282~283쪽, 〈우리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의존한다〉에서

들어가며
1부 ‘절전 상태’의 청년들: 고독 사각지대에 갇히다
세상을 떠난 청년 방 | 쓰레기와 동거하는 청년들 |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고립을 선택하다 | ‘쉬었음’ 청년은 쉬지 않는다 | 외롭거나, 서서히 외로워지거나 | 이토록 평범한 고립
[전문가 인터뷰] ‘풍요로운 고립의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김수영 교수
2부 벼랑 위 ‘징검다리 게임’: 은둔·고립에 빠지는 무수한 경로들
‘성공 공식’은 어떻게 ‘생존 공식’이 되었나 | IMF로 무너진 가정, 10년의 ‘은둔 공백’ | 노력으로는 고립을 예방할 수도, 극복할 수도 없다 | 고립·은둔은 교실에서 시작된다 | 조용히 고립되는 여성들 | 차별이 쌓은 이중 담장
[전문가 인터뷰] ‘요람에서 무덤까지’ 경쟁하는 사회 오찬호 사회학자
3부 ‘완전 고립’과 환대의 기로에서
사랑과 압박 사이의 가족 | 은둔청년은 어떻게 은둔중년으로 이어지는가 | 고립된 우리가 연결되려면
[전문가 인터뷰] 우리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의존한다 서울대학교 인류학과 이현정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