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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멜 수녀들의 대화

조르주 베르나노스 저 | 정영란 역 | 문학과지성사 | 2026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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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32045177 / 256쪽 / 256g / 120 x 1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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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반디앤루니스 리뷰

“그런데 지금은 내 죽음,
참으로 보잘것없는 죽음밖에 줄 수 없군요……”

프랑스 문학의 독보적 작가 조르주 베르나노스가 남긴 최후의 작품이자
영적 유언 『가르멜 수녀들의 대화』 출간!

프랑스대혁명에 이은 공포정치 종식 열흘 전에 일어난 비극적 실화를 바탕으로
격동하는 역사에 휘말린 인간의 죽음 앞 공포를 깊이 있게 탐구한 역작

깊은 영적 성찰로 죄와 은총, 악과 구원 등 초월적 문제를 탐구해온 ‘글 쓰는 그리스도인’ 조르주 베르나노스의 유작 『가르멜 수녀들의 대화』(정영란 옮김)가 ‘문지 스펙트럼’ 시리즈로 출간되었다. 작가 서거 이듬해(1949년)에 발표된 이 작품은 프랑스대혁명에 이은 공포정치의 종식(1797년 7월 27일) 불과 열흘 전에 벌어진 비극적 사건을 바탕으로 쓰였으며, 격동하는 역사의 흐름 속에 증폭된 인간의 불안과 공포라는 존재론적 문제를 희생적 죽음과 구원이라는 종교적 관점에서 응시하며 강렬한 문학적 언어로 형상화한 역작이다.

1794년 7월 17일, 국민공회 정부 공안위원회의 명으로 체포된 콩피에뉴의 가르멜 수도원 소속 열여섯 명의 수녀들은 한 명 한 명 차례로 단두대에서 사라진다. 한 작은 수도 공동체가 겪은 이 사건은, 독일 작가 게르트루트 폰 르포르의 『단두대의 최후 여인』(1931)이라는 서간체 역사소설로 앞서 형상화되었다. 베르나노스는 바로 르포르의 이 작품을 영화화하기 위한 시나리오 대사 집필을 위촉받아 대사 작가로서의 작업에 착수했으나 육필원고만 남긴 채 그만 타계한다. “작가의 가방 안에 그냥 들어” 있던 이 원고는 그의 죽음 이듬해인 1949년, 평생의 후원자였던 평론가 알베르 베갱의 손질을 거쳐 『가르멜 수녀들의 대화』라는 연극 형식의 대본으로 출간된다. 인물들의 영혼을 통과한 고백의 언어들로 교직되어 작가 특유의 영적 탐구를 더없이 강한 밀도로 응집하고 있는 이 작품은 작가 사후 그를 그리워하던 독자들의 호응을 받았다. 더하여 1952년 연극으로 먼저 큰 성공을 거둔 후 프랑시스 풀랑크의 오페라를 비롯해 영화 및 영상화, 무수한 연극무대로 끊임없이 변주되었다. 국내에도 1960년에 안응렬의 번역으로 소개된 바 있다.

1949년 베갱에 의해 처음 발표되고 장장 66년이 지난 2015년, 여섯 명의 공동연구진이 작가의 육필원고를 전면 검토해 새롭게 펴낸 개정판이 그 결실을 맺는다. 이번에 출간된 『가르멜 수녀들의 대화』는 새 판본을 따른 것으로, 베르나노스 전공자인 옮긴이 정영란의 섬세한 번역과 프랑스 역사와 사회, 종교, 가톨릭 용어 등을 두루 아우르는 상세한 각주로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덧붙여 베갱이 예전에 덧달았던 의미 있는 첨부 내용까지 잊지 않고 환기해두고 있다.

 

 

출판사 리뷰

책 속으로

블랑슈 저는 세상을 경멸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그것을 두려워한다는 것도 영 맞는 말이 아니겠고요. 제게 세상이란 그 안에서 살 수 없는 환경일 뿐입니다. 아버지, 정말 그래요, 저는 그 소음과 번잡함을 생리적으로 견디지 못합니다. 제일가는 친구들과 있어도 마음이 기껍지 않아요. 길거리의 웅성거림에 벌써 정신이 얼떨떨하고요. 밤중에 깨면 두꺼운 커튼과 침대 휘장을 뚫고 들려오는 이 대도시의 끊임없는 소음, 새벽녘이나 돼야 좀 가라앉을 그 웅성거림에 싫어도 귀를 기울이고 지새우게 됩니다. 제 신경이 이런 시련을 겪지 않게 되면, 제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게 되겠지요. 그래요! 아버지는 젊은 장교가 바다를 견뎌내지 못해 왕의 군함에서 복무하기를 단념하는 것을 비난하시겠습니까?
--- pp.26-27

블랑슈 자매는 죽음을 무서워한 적이 한 번도 없나요?

콩스탕스 수녀 없다고 생각해요…… 아니, 어쩌면 있었던 것 같아요…… 아주 오래전, 그게 무엇인지 알지 못하던 때에.

블랑슈 그 후에는요……

콩스탕스 수녀 어휴! 블랑슈 자매님! 인생이 이내 너무나 재미있는 것으로 보였어요! 그래서 죽음도 역시 그러리라 생각했지요……

블랑슈 그럼 지금은요?

콩스탕스 수녀 음, 지금은 죽음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나도 모르겠어요. 그러나 삶은 언제나처럼 재미있어 보여요. 나는 분부받은 것은 할 수 있는 한 잘해보려고 하는데 그런 하명 자체가 재미있어요…… 사실, 천주를 섬기는 일을 재미있게 받아들인다고 야단맞아야 할까요?…… 아이들이 매일같이 보여주듯 재미나게 하는 일은 온전히 진심으로 할 수 있지요…… 쉽지 않은 일도 기꺼운 맘으로 할 수 있는 것과 꼭 같이……
--- pp.44-45

원장 〔……〕 나의 따님, 무슨 일이 있더라도 순박함에서 벗어나지 말기 바랍니다. 좋은 책들을 읽어보면, 천주께서 성인들을 시험하시는 것이 마치 대장장이가 쇳덩이의 강도를 가늠하려고 그것을 내려치는 것과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가죽 다루는 이는 사슴 가죽이 얼마나 부드러운지 알아보려고 손바닥으로 당겨보기도 하죠. 〔……〕 무엇보다 당신 자신을 절대로 경멸하지 마시오! 우리 안에 계신 천주를 거역하지 않으면서 자기를 경멸하기란 대단히 어렵습니다. 이 점에 있어서 우리는 성인들의 어떤 말씀은 문자 그대로 해석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경멸하면 곧장 절망으로 미끄러져 들게 될 겁니다. 이 말들, 지금은 알기 어렵더라도 잘 간직하세요.
--- pp.59-60

콩스탕스 오! 내가 아무리 어려도 행과 불행이 마냥 마땅하게 분배된다기보다는, 오히려 제비뽑기 같다는 걸 알고 있어요! 그러나 우리가 우연이라고 하는 것이 어쩜 천주의 논리일 수 있지 않겠어요? 우리 사랑하는 원장님의 죽음을 생각해봐요, 블랑슈 자매! 그분이 그렇게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이하리라고, 그렇게 잘못되어 고약하게 돌아가시리라고 누가 생각했겠어요! 좋으신 주님께서 그분에게 죽음을 주실 적에, 마치 옷장에서 딴 사람 옷을 잘못 주듯이 죽음을 잘못 골라주신 것 같아요. 그래요, 그건 다른 사람의 죽음이었을 거예요. 우리 원장님에게 맞지 않는, 그분에게는 너무 작은 죽음이었어요. 그래서 그분은 소매도 제대로 낄 수가 없으셨던 거죠……
--- pp.74-75

전속 사제 어이쿠! 나는 강물이 순리의 흐름을 되찾기 전에 양 기슭을 휩쓸어버릴 것만 같아 아주 겁이 납니다. 기사님이 돌아오신다면, 먼 길을 떠나면서까지 지키고자 했던 것 중에서 무얼 되찾을 수 있을 거라고 보십니까?

기사 글쎄요! 격류라 해도 바로 앞을 가로막는 것이 아니라면 내동댕이치지 않을 겁니다. 신부님은 여기서 무엇이 걱정되시는지요?

전속 사제 내 아들이여, 프랑스 사람들은 타인을 위하여 그를 돕는다는 명분이 있을 때만 서로 싸워왔지요. 언제나 신념 때문이라고 믿고 싶어 하면서 말입니다. 그래서 어떤 내란이건 종교전쟁이 되고 말지요.
--- p.107-108

마리아 수녀 두려운 것이 아니라 두렵다고 상상하는 겁니다. 공포심은 마귀가 낳는 환상입니다……

블랑슈 수녀 (여전히 이상한 목소리로) 그러면 용기는요?

마리아 수녀 용기도 얼마든지 마귀의 환상일 수 있지요. 또 하나의 환상. 그래서 우리 각자는 마치 제 그림자와 장난치는 미친 사람처럼 자신의 용기나 공포심을 상대로 발버둥질하는 처지에 빠질 수 있지요. 다만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용감하건 비겁하건, 우리는 언제나 천주께서 원하시는 곳에 있어야 하며 나머지는 ‘그분’께 맡기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냥개에 몰린 수사슴이 시커먼 찬물 속에 뛰어드는 것처럼, 공포심 앞에서는 천주의 거룩한 뜻에 전적으로 투신하는 것밖에 다른 처방이 없습니다.
--- p.143

블랑슈 〔……〕 (갑자기 격한 말투로) 왜 다들 저를 뭐라 하는지요! 제가 무슨 해를 끼친단 말입니까? 저는 천주를 거역하지 않습니다. 공포심이 천주를 거역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공포 속에서 났고 공포 속에서 살았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어요. 누구나 공포심을 경멸합니다. 그러니까 저도 경멸당하며 사는 것이 맞겠지요. 이런 식으로 생각한 게 오래됐어요. 제게 이 말을 입에 담지 못하게 할 수 있었던 분은 아버지뿐이셨어요. 아버지는 돌아가셨습니다. 며칠 전에 단두대에서 돌아가셨어요.
--- pp.195-196

노수녀 어린 자매들, 아직 여러분 나이에는 순명이라는 것이 그저 머리만 갖다 뉘면 되는 푹신푹신한 베개같이 생각될 수도 있겠죠. 그러나 우리는 순명이 명령과 아주 딴판 같아 보여도 역시 하나의 책무라는 것을 잘 압니다. 네, 정말 그렇습니다, 젊은 자매님들, 순명하기를 배우는 것도 명령하기를 배우는 것만큼 어렵습니다. 순명한다는 것은 마치 눈먼 이가 안내견을 따라가듯 수동적으로 끌려가는 것이 아닙니다. 나같이 늙은 수녀는 순명하면서 죽는 것 외에는 원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능동적이고 의식적으로 말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맘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건 동의하시죠? 그래도 우리의 죽음은 우리의 죽음이고, 아무도 나 대신 죽을 수 없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한 젊은 수녀 (더 못 참고) 아니, 늘 죽는다는 말만 들어야 합니까? 왜 죽어야 합니까? 우리는 무죄하지 않아요?
--- pp.195-196

저자 소개

  • 저자 : 조르주 베르나노스
1888년 파리에서 태어나 프랑스 북부의 작은 시골마을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예수회에서 경영하는 학교와 소신학교 등, 네 번 전학을 거치며 초중등 교육을 마치고 소르본 대학교에서 문학과 법학을 공부하였다.
병역 면제를 받았는데도 1차 세계대전이 벌어지자 지원병으로 참전했다. 잔 다르크가의 후손인 잘 탈베르 다르크와 혼인하고 보험회사 지방 감독관으로 일하면서 출장 중 틈틈이 기차와 카페, 호텔 등에서 소설을 집필하다가 1926년 『사탄의 태양 아래』를 발표하여 문단에 돌풍을 일으켰다. 이후 베르나노스는 전업 작가의 길을 가기로 결심하고 보험 회사를 퇴직했다. 1933년 오토바이 사고로 한쪽 다리를 못 쓰는 중상을 입고 평생 목발에 의지하게 되었다. 이후 생활고로 프랑스 내 여러 지방을 전전하다가 스페인으로 이주했다. 스페인에서 집필한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로 1936년,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 대상을 수상했지만 곧이어 소설 집필을 중단하고 시대의 직접적 증언이 될 정치 비평을 쓰기 시작했다. 드골 장군의 부름을 받고 프랑스로 귀국하나, 입각 제의는 뿌리치고 유럽 순회 강연을 떠났다.
소설 『무셰트의 새로운 이야기』, 『기쁨』, 『윈 씨』 등과 정치 비평집 『진리의 스캔들』, 『우리들 프랑스인』, 『로봇에 대항하는 프랑스』 등이 있다. 파시즘과 정치적 야합이 판치는 유럽의 정신적 위기에 환멸을 느껴 떠난 튀니지에서 간경변을 얻고 1948년 7월 파리 근교의 병원에서 숨을 거두었다.

역자 소개

  • 역자 : 정영란
서울대학교 인문대학과 대학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푸아티에대학교에서 수학한 후(D.E.A. 취득), 파리 제10대학교에서 「베르나노스 소설 세계의 풍경과 인물 ― 惡의 해석학에서 希望의 해석학으로」라는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5년 이래 한국방송통신대학교 프랑스언어문화학과(전 불어불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번역서로는 가스통 바슐라르의 『대지 그리고 휴식의 몽상』(2002), 조르주 베르나노스의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2009), 앙리 보스코의 『반바지 당나귀』(2014), 『이아생트의 정원』(출간 예정) 등이 있다. 공저 논문집으로는 『프랑스 현대소설 연구』(1987), 『프루스트와 현대 프랑스 소설』(1998) 등이 있다.

목차

가르멜 수녀들의 대화

옮긴이의 말
작가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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