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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92884585 / 44쪽 / 450g / 220 x 2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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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디앤루니스 리뷰
이해를 강요하지 않는 무궁한 사랑의 그림책
침묵조차 결핍이 아닌 새로운 시의 언어로 길어 올리다
안 에르보의 그림책 『왜냐하면 왜냐하면 왜냐하면』이 봄날의책에서 출간됐다. 사랑에 빠진 모든 존재를 위한 연애시 그림책 『나는 너를 너무나 사랑해』에 이어, 이해를 강요하지 않는 무궁한 사랑의 그림책 『왜냐하면 왜냐하면 왜냐하면』이 독자들을 만난다.
서정적인 이미지와 시적인 텍스트가 견고하게 어우러진 작품을 선보여온 작가 안 에르보는 관계와 시간, 말로 하기 어려운 감정에 주목해왔다. 이번 작품에서 그는 끝내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타자와 함께하는 시간, 그리고 그 곁에서 배우는 무궁무진한 사랑을 이야기한다.
이 책에 나오는 동생은 자기 안에 숨거나 운다. 말보다는 침묵이나 몸짓으로 감정을 드러낸다. 반복해서 내뱉는 말 “왜냐하면 왜냐하면 왜냐하면”은 그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는다. 그림에는 인물이 등장하지 않는다. 노란빛으로 빛나는 표지와 책 곳곳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감추기를 반복하며 위태로움과 평온이 교차하는 나날을 비춘다.
출판사 리뷰
그림책의 첫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눈 감은 고양이 얼굴이 화면 가득 그려져 있다. 감은 눈으로 고양이는 무엇을 볼까. 풀숲이 난무하고 나뭇가지가 사납게 뻗는다. 낮에 뛰놀던 기억을 떠올리는 중일까. 부드럽게 풀린 표정과 위로 치솟은 가지들이 대비되어 긴장감을 남긴다.
이 책에서 글과 그림은 서로를 설명하지 않는다. “동생은 운다”라고 적혀 있지만 그림에는 인물이 등장하지 않는다. 풍경 혹은 고양이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글에서 말하는 동생은 고양이일까, 아니라면 누구일까, 어디에 있을까. 이러한 어긋남은 독자가 보이지 않는 존재와 관계를 감각하도록 이끈다. 한편 작가가 우리를 위해 화면 오른쪽에 고양이의 꼬리를 남겼다. 자연스럽게 독자의 시선은 꼬리를 따라 실내에서 바깥으로 움직인다. 고양이 뒤를 살금살금 따라가면서 이야기를 읽어 나가는 즐거움이 크다.
동생은 조금 다르다. 세상에 다르게 반응한다. 동생의 머릿속은 “아주 가파른 정원”, “난무하는 풀숲”, “야생과 다름없는 사과나무 과수원”으로 비유된다. 어쩔 줄 몰라 무서워 울거나 말을 한달음에 쏟아내거나 돌연 부루퉁해진 채 침묵한다. “왜냐하면 왜냐하면 왜냐하면” 하고 반복할 뿐이다. 작가는 이런 순간을 숨기거나 꾸미지 않는다. 우리가 서로를 다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고양이에게 왜 의자를 쓰러뜨리는지, 왜 화초를 짓밟는지, 왜 철조망 사이로 빠져나가 새를 사냥하는지 물어도 들려오는 것은, 먀옹 먀옹 먀아옹이니까.
안 에르보의 작업은 단순히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 머무르지 않는다. 그는 페이지의 흐름과 여백, 타이포그래피, 종이의 질감까지 서사의 일부로 끌어들이며 책 자체를 하나의 경험으로 확장한다. 반복되는 말의 리듬, 사물이나 풍경 속에서 설명 불가한 감정이나 생각을 천천히 드러낸다. 환한 노랑이 주색으로 쓰인 이 책에서 푸른 하늘이 눈에 한가득 들어오는 장면을 마주하면 마음이 갠다. 의자와 고양이, 나비와 열매 등의 변주도 눈여겨보면 즐겁다.
고양이의 뒷모습을 간결하게 보여준 원서와 달리 이번 한국어판 표지는 넘어진 의자와 고양이의 움직임을 강조해 다른 느낌을 준다. 디자이너 김리윤은 제작 후기에서 “곳곳에서 튀어나오는 고양이의 몸은 글자와 여백, 반복과 변화를 느슨하게 엮는다. 그것은 반복되는 “왜냐하면” 위를 가볍게 건너다니며 우리를 다르게 보기 위한 리듬으로 이끈다”고 밝혔다. 제목은 무작위로 찢은 종이 조각을 배열해 한 글자씩 구성하여 한층 또렷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본문에 사용된 서체 지백은 ‘가공하지 않은 종이 그대로의 백색’이라는 이름처럼 언어에 덧입혀진 해석을 덜어내어 책을 한층 맑은 시선으로 읽게 한다.
번역을 맡은 윤경희는 해설에서 “에르보의 동생 이야기는 관찰한 사실을 판별과 진단의 언술로 재현하는 게 아니라 시의 영역으로 상승시킨다”고 말했다. 반복해서 등장하는 “왜냐하면 왜냐하면 왜냐하면”이라는 말은 단순한 반향 습관의 묘사가 아니다. 작가는 이를 문장 앞머리에 동일한 어구를 되풀이하는 ‘아나포라(anaphora)’의 형식으로 옮겨 받아 하나의 시적 리듬으로 작동하게 했다. 이러한 방식은 말이 이어지지 않는 침묵조차 결핍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법임을 일깨운다. 안 에르보가 들려주는 이 깨끗하고 커다란 사랑, 한 번으로 그치지 않을 것이다. 왜 아니겠는가.
책 속에서
해설에서
안 에르보는 이 숨은그림찾기 책에서 동생 이야기를 한다. 동생의 머릿속은 위태롭게 비탈져, 헤치고 걸으면 발목이 베일 듯 얇고 가칠한 사초가 무성하고, 가느다란 나뭇가지들이 성마르게 뻗어 서로 찌르는 듯하다고 한다. 인적 희미한 과목밭에서 나무들이 저 홀로 살아간다고도 한다. 눈 감은 고양이 얼굴이 화면을 한가득 채우므로, 독자는 작가가 이 동물을 인격화한다고 추론하게 된다. 목적을 모르게 헤매고, 원인을 모르게 겁에 질리고, 이유를 모르게 우는 동물의 정신과 행동을, 동생처럼 아끼고 사랑하되, 인간 타자로서 함부로 안다고 자신하지 않으며 관찰하고 서술하는 것이다.
(…)
에르보의 동생 이야기는 관찰한 사실을 판별과 진단의 언술로 재현하는 게 아니라 시의 영역으로 상승시킨다. 일례로, 왜냐하면 왜냐하면 왜냐하면, 팔리랄리아(palilalia)라는 명칭을 지닌 동생의 반향 습관을, 동생은, 동생은, 동생은, 에르보는 시행이나 문장의 서두에서 동일한 어구를 반복하는 아나포라(anaphora)로 옮겨 받는다. 왜냐하면 다음에 다른 말을 안 하는 동생의 함묵은 언어 능력의 결핍이나 발달 장애가 아니라 엄연한 시작법임을 일깨우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고 동생은, 프랑스어 음가를 그대로 표기하자면, 팍스크 팍스크 팍스크…… 마 쇠르…… 마 쇠르…… 마 쇠르…… 흡사 캐논의 시적 변주일까. 책은 동생과 언니가 주고받는 이중창의 악보가 된다.
(…)
에르보에게 동생은 무엇보다 사랑의 존재이다. 동생의 사랑은, 옥시모론의 사랑은, 선을 그어 나누기를 모르기에, 한달음으로 말하고 한입에 먹는 크나큰 사람의 이 사랑을 번역하려면, 온과 한, 두 소리가 열어 이끄는 낱말들을 전부 그러모으고 싶어진다. 온통, 온몸, 온밤, 온음, 온갖, 온누리, 한껏, 한숨, 한참, 한결, 한낮, 한아름, 한마음, 한꺼번, 한바탕, 한가득……
그리고 가없음.
무궁.
_ 윤경희, 「옥시모론의 사랑을 위하여」 부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