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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검성(王儉城) 황하 이북을 다스린 고조선의 수도

이기훈 저 | 우리역사연구재단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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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85614120 / 480쪽 / 672g / 152 x 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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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반디앤루니스 리뷰

전국시대 황하 이북에서 광활하게 사용된 명도전 분포지가 고조선 영토임을 최초로 증명하다! 황하 이북 문명은 황하 이남의 화하족 문명과 다른 문명으로, 북방 홍산 문명을 이은 고조선 세력의 활동 영역이었다. 이들의 일파인 상(商, 殷)나라는 황하 이남까지 진출하여 황하 문명을 일으킨 뒤, 기원전 11세기 중원 세력(주나라)에 밀려 현재의 하북성 중부 북경(北京) 일대로 이주하여 토착 세력과 연합한다(장가원상층 문화). 이렇게 고조선은 북방 문명과 황하 문명을 흡수한 국가로서, 그 중심지 왕검성은 하북성 중부 북경시, 보정시 일대였다.

 

 

출판사 리뷰

이 책은 갈석산, 발해, 만리장성, 요동, 요수, 패수, 연(燕) 등 고조선 국경에 있던 주요 지표들에 대한 분석을 토대로 고조선의 중심지가 하북성 중부(보정시, 북경시 일대)에 위치했었다는 사실을 문헌 및 고고학적 자료로 논증하였다. 이를 통해 필자는 이 지역의 중국 전국시대 최대 규모의 도성 유적인 북경 남쪽의 보정시 연하도 유적을 고조선 후기 위만조선의 수도 왕검성으로 비정하였다.

『양서』에 신라인은 그 선조가 진한(辰韓) 사람으로서, 진한을 진한(秦韓)이라고도 불렀는데 그 이유가 진한에서 1만 리 떨어진 진시황의 진(秦) 사람들이 노역을 피해 이주해 왔기 때문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기록은 고대인들이 재난을 만났을 때 현대인이 상상하는 것보다 상당히 먼 곳까지 이주했던 사실을 설명하고 있다.
한반도에 살고 있는 한국인이 신라의 후손임을 인정한다면, 3세기 신라(진한)인이 고조선 후국(後國)인 낙랑 사람들을 ‘자신들의 잔여인(樂浪人本其殘餘人)’이라고 밝혔던 정사 『삼국지』의 기록을 주의 깊게 고찰할 필요가 있다. 기록대로라면 낙랑(고조선) 사람들이 대부분 진한(신라)에 이주해 왔다고 해석되는데, 비록 당시 낙랑(고조선) 사람 모두가 북경 일대로 추정되는 낙랑(고조선)에서 진한(신라)으로 이주해 왔다고는 볼 수는 없겠지만, 낙랑(고조선)의 주체 세력이 진한(신라)으로 대거 이주했다는 사실은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따라서 한반도뿐 아니라 고조선(낙랑)이 있던 곳으로 추정되는 현 하북성 북부 지역(보정시, 북경시 일대) 역시 한국인의 기원지 중 한 곳일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학계의 편견 없는 고찰이 요구된다.

현재 아시아대륙 서쪽 끝 아나톨리아 반도에 있는 튀르키예(터키)는 고구려와 전략적 협력관계에 있던 중앙아시아 돌궐국의 역사를 자신들 정체성의 중요한 요소로 간주하여 연구 중이다. 실제로 튀르키예(터키)는 민족적으로 기원전 2000년 경에 중앙아시아 동남부에서 기원한 훈족(혹은 돌궐족)으로서 서기 10세기 내지 11세기부터 아나톨리아 반도에 정착하였으며, 현재까지도 한국의 풍습과 언어면에서 근본적으로 비슷한 면이 적지 않다고 알려져 있다. 따라서 그들은 고대 약 30개의 민족이 거주했던 ‘아나톨리아 영토사’를 중앙아시아에서 기원한 자신들의 ‘민족사’와 구분하고 있다.

필자가 고조선 후기 중심지로 밝힌 하북성 중부 지역을 포함한 화북 지역(황하 이북)은 고대에 한반도인과 같은 민족이 살았으나 약 1,200년 전인 8세기 당(唐)나라 시기 이후로 한국인과 다른 민족으로 대체되면서 서로 유전적으로 달라진다. 따라서 한국인 역시 튀르키예와 마찬가지로, 현재는 중국 영토에 있지만 과거 다른 민족에 비해 같은 혈연과 문화를 공유한 선조들이 살았던 화북 지역(황하 이북)의 역사와 문화에 관해 더 많은 고찰과 포용적 자세를 취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한국인의 문화적, 정신적 정체성의 흐름을 밝히는 ‘한국 문명사(민족 정체성 역사)’와 한반도 영토 내에서 이루어졌던 ‘한반도 역사(한반도 영토 내 역사)’를 이원화하여 연구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는 한국인의 정체성에 대한 과장이나 폄하가 아닌, 미래 주변국과의 불필요한 갈등을 줄이는 객관성을 찾아가는 과정이 될 것이며, 이 책은 그러한 의미 있는 여정의 첫발을 떼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저자 소개

  • 저자 : 이기훈

저자는 중국어 전공자로서 고대 한자인 갑골문을 연구하던 중 중국 최초의 공인 왕조인 3,000년 전 상(은)나라의 문자(갑골문)가 뜻밖에도 중국보다 한국과 문화적으로 긴밀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저자는 이러한 사실을 증명한 논문을 북경어언대학교(北京語言大學校)에 제출하여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나아가 3,000년 전 고대 황하 문명이 왜 한국 문화와 유사한지를 밝히기 위해 인하대학교 대학원 융합고고학과에서 연구를 지속했다. 이를 통해 황하 문명의 창시자인 상(은)나라가 북방 고조선과 민족적, 문화적으로 가까운 국가이며, 그 기원지였던 고조선의 위치가 어디였는지를 밝힘으로써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 책은 저자의 박사논문을 바탕으로 고조선이 황하 이남의 중원 민족(화하족)과 어떻게 갈등해 왔는지를 문헌적‧고고학적으로 분석하여, 황하 이북(화북)을 다스렸던 고조선의 중심 위치를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약력]

충남 공주 출생(1972)

공주 한일고등학교 졸업

연세대학교 중어중문과 학사

북경어언대학교 고대중외문화교류(古代中外文化交流) 전공 석사

인하대학교 대학원 융합고고학과 박사

LG전자 해외영업 근무

현재 서울 명덕외국어고등학교 근무

 

[주요 논문]

殷商文化對朝鮮半島的影響研究(2013)

The Location of the Bohai Sea(2023)

평양과 발해만 북부 갈석산 비정의 문제점(2023)

한(漢)부터 당(唐)까지의 발해(渤海, 勃澥) 위치 재고(2024)

고조선 후기 수도 왕검성의 위치에 관한 新考(2025)

 

[주요 저서]

쓰지 않고 읽는 한자(2013)

동이한국사(2014)

우리한자808(2017)

The Origin of Chinese Characters(2018)

중국이 쓴 한국사(2019)

실크로드 다시 보기(공저)(2023)

중‧고등학교 중국어 교과서(민중서림, YBM 대표저자)

목차

발간사
서문

Ⅰ. 고조선을 찾아서
1. 고조선 위치와 한국 문명
2. 왕검성을 찾는 방법

Ⅱ. 원전(原典)을 벗어난 기존 학설들
1. 고조선 중심이 한반도가 될 수 없는 이유
2. 고조선 중심이 요녕이나 하북성 동북이 될 수 없는 이유

Ⅲ. 황하에 있었던 고조선 국경 갈석산(碣石山)
1. 중국과 한국의 갈석(碣石) 위치 주장
(1) 중국의 갈석(碣石) 위치 주장
(2) 한국의 갈석(碣石) 위치 주장
2. 갈석산 관련 제설(諸說)의 문제점
(1) 평양 낙랑군 수성현 갈석산 설(說)
(2) 하북성 진황도시 창려현 인근 갈석산 설(說)
(3) 하북성 보정시 내원현 백석산 설(說)
(4) 하북성 석가장시(石家莊市) 고성구(藁城區) 무차산(無此山) 설(說)
(5) 산동성 빈주시(濱州市) 무체현(無縣) 설(說)
(6) 하남성 형양시(滎陽市) 광무산(廣武山) 설(說)의 타당성 검토

Ⅳ. 하북성 내륙에 있었던 발해(渤海)
1. 내륙해 발해(渤海)에 관한 기록들
2. 현재보다 12m 낮았던 중원 땅
3. 한무제가 설치하려 했던 창해군은 하북성 남부 고발해(古渤海)

Ⅴ. 산서성에 있었던 만리장성과 요동(遼東)
1. 만리장성 서쪽 끝은 바다, 동쪽 끝은 산서성 요동(요수)
(1) 동쪽이 아닌 서남쪽 바다에 이른 장성
(2) 요동(遼東)의 기준인 요(遼: 요주遼州)의 위치
(3) 후한(後漢) 시기 중산(中山) 지역에 있던 장성과 연(燕)의 위치
2. ‘요수(遼水)?요동(遼東)’과 ‘요서(遼西)’의 구체적 위치
(1) 동쪽으로 곧게 흐르던 요수(遼水)
(2) 요동(遼東)은 하북성 남부 장하(河) 인근
(3) 요서(遼西)는 산서성(山西省) 태원시(太原市) 동남

Ⅵ. 하북성 석가장시에 있었던 패수(浿水)
1. 낙랑군의 이주와 패수
2. 패수 관련 기록 분석

Ⅶ. 황하 이남에서 산서성으로 이주한 연(燕)나라
1. 문헌에 등장하는 연(燕)의 위치
2. 연(燕)의 시기별 위치 분석
3. 연(燕)이 공격한 조선 서부는 기자조선=중산=동호=오환
4. 연(燕)이 차지한 조선 서방(동호, 중산)의 위치

Ⅷ. 고조선과 왕검성(王儉城) 중심지 하북성
1. 상(은)나라 북쪽에 있던 고조선과 예맥계 국가들
2. 상족(商族)이 이주한 조선 위치 추정
3. 왕검성(왕험성)과 관련된 초기 기록과 왕검성 비정의 전제 조건
(1) 왕험성이 있던 창려(昌黎)와 관련된 기록
(2) 왕검성(왕험성)과 관련된 기록
(3) 왕험성(王儉城) 비정의 전제 조건 정리
4. 고조선의 위치에 관한 기록과 고조선 위치 비정

Ⅸ. 고조선 중심지(1) - 북경 유리하 유적(서주연도 유적)
1. 유리하 유적(琉璃河遺蹟, 서주西周燕都遺蹟) 개황(槪況)
2. 유리하 유적을 서주(西周)의 연나라 도성(燕都)으로 비정한 문제점 - 문명문 분석
(1) 연(燕) 소공(召公)의 봉지(封地)는 북경이 아닌 황하 이남
(2) 극뢰(克 ) 명문(銘文) 해석 문제
(3) 언( )을 연(燕)과 동일시 한 문제
(4) 한(漢)과 다른 고조선 고유 문자의 존재
(5) 필자의 반론 정리
3. 유리하 유적을 서주(西周)의 연나라 도성(燕都)으로 비정한 문제점 - 고고학적 분석
(1) 북경은 북방 빗살무늬(승문繩紋, 지자문之字紋) 도기 문화권
(2) 북경은 서주(西周) 문화와 구분되는 토착 문화(張家園上層文化) 지역
(3) 서주(西周) 초기 북경 지역 민족 분석
4. ‘주나라 초 연나라가 북경에 있었다는 주장(주초연국북경설周初燕國北京說)’ 재고의 필요성

Ⅹ. 고조선 중심지(2) - 보정시 연하도 유적
1. 연하도 유적(燕下都遺蹟) 개황(槪況)
2. 전국시대 연나라 도성(戰國 燕都) 비정의 문제점
(1) 명도전(明刀錢) 분석
(2) 동검(銅劍)과 동모(銅) 분석

XI. 유리하 유적과 연하도 유적의 왕검성 가능성 검토
1. 상(商) 서주(西周) 시기 화북 지역 중심지 북경 유리하(琉璃河) 유적지
2. 전국시대 화북 지역 중심지 보정시 연하도 유적지

XII. 맺음말

XIII. 부록
1. 기존 학설과 본 책의 관점(차이점) 정리
2. 진(秦) 한(漢) 시기 형세도(본 책 내용 기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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