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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73323935 / 1096쪽 / 1,534g / 150 x 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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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디앤루니스 리뷰
동양고전과 현대를 잇는 사유의 거장, 한형조 교수의 유작
《논어》를 두고 펼쳐지는 주자와 다산의 경학적 대결
3년간의 치열하고 치밀한 연구 끝에 원고 집필을 거의 마무리할 무렵, 안타깝게도 작고한 한형조 교수(1958-2024)의 유작 《두 개의 논어》가 1년간의 편집 끝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 책은 주자와 다산의 《논어》 해석 차이에서 진정한 공자의 가르침을 가늠해보는 인문교양서이자, 한형조 교수가 평생에 걸쳐 천착해온 ‘동양적 사유의 본질’을 집약한 평생 연구의 결실이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그의 학구적 열정과 사유의 깊이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논어》는 조선조 500년을 주도한 주자의 해석이다. 현재에도 많은 사람이 주자의 해석을 정통 《논어》로 알고 있다. 하지만 다산이 해석한 《논어》는 주자의 풀이와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심지어 다산은 주자의 해석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하며 다양한 문헌을 바탕으로 고증해 나갔다. 철학자ㆍ명상가로서의 주자와 정치가ㆍ역사가로서의 다산, 이 둘의 해석 차이는 그들이 처한 환경과 문제, 그리고 개성의 산물이다.
이 흥미로운 주제를 저자는 모던하고 과감한 언어와 감성으로, 자칫 무겁게 느껴질 수 있는 《논어》를 경쾌하고 신선하게 풀어냈으며, 독자들에게 생각할 여지를 주기 위해 간결하면서도 함축을 살리는 문장으로 다듬어냈다.
또한 논어 속에 흩어져 있는 당시의 사건과 정황을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사마천의 〈공자세가〉 번역과 다산을 ‘숨은 가톨릭 신자’라고 바라본 정민 교수의 2023년 발제를 논평한 글도 부록으로 실었다.
출판사 리뷰
책 속에서
* 주자와 다산의 《논어》 해석은 ‘전혀’ 다르다. 같은 책을 두고 이렇게 서로 다른, 많이는 상반된 해석을 내리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런 점에서 《논어》는 하나가 아니다. “티베트에는 승려 수만큼의 불교가 있고”, “아버지의 집에는 수많은 방이 있다”고 하지 않던가? 그처럼 여러 《논어》가 밤하늘의 별처럼 빛나고 있다. _p. 34
* 공자는 정공에게 말한다. 정치의 흥망은 쉽사리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이것 하나는 분명하다. 군주가 그 지위를 ‘권력’으로 감각할 때 하고 싶은 대로 폭정을 휘두르고, 거기 아무도 토를 달거나 반발하지 않을 때 그 나라는 확실히 망조에 들어선 것이다. 그렇지 않고 군주의 지위를 ‘책임’으로 이해할 때, 즉 백성들의 안정과 복지 걱정에 밤잠을 설칠 때, 그 나라는 틀림없이 흥륭의 트랙으로 올라선다. 이를 위해 군주와 신하의 관계 또한 일방적 지배와 종속이 아닌 상호 존중과 협력으로 맺어져야 한다. _p. 95
* 다산은 유교의 ‘원리’를 우주론적 형이상학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 속에서 되찾고 싶어 한다. 그것이 비조 공자를 축으로 내려온 유교의 유구한 전통이다. 그런데 주자를 위시한 송대 유학이 이 프레임을 왜곡해버렸다고 주먹을 쥔다. “하나의 이치가 인간과 우주를 섞음으로써 형이상학의 늪에 빠졌고, 인간은 일상에서 무엇을 성취해 나가야 할지 모르게 되었다.” _p. 273
* 주자는 ‘자연’을 중시한다. 그것을 삶의 이념으로 설정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교를 도덕적 규범으로 알고들 있지만, 그것은 과정 혹은 초보로 이해된다. 목공의 솜씨나 자동차 운전처럼, 처음에는 의도와 노력이 필요하지만, 익숙해지면 모든 유위(有爲)가 떨어져 나가고 손과 몸의 자연스러운 동작이 절로 표현된다. 그것처럼 도덕은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 않도록 유의해야겠다’로부터 이 모든 일이 시작되지만, 그것이 완전해졌을 때 우리는 그것을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실천하게 된다. 주자는 노력의 단계를 서(恕), 자연스러운 탈각의 상태를 인(仁)으로 구분했다. _p. 350-351
* 주자학과 다산은 오로지 대립적으로만 볼 수 없다. 두 체계 모두 거시적 전망에서 이학(理學)에 속한다. 이학은 삶의 의미를 세속적 관행 너머에서 찾는다. 개인의 감각과 욕망을 제어해서 타자를 배려하고, 전체의 질서에 협력하는 것을 권고한다. 덕성의 내재와 축적을 두고 격렬한 전투를 벌이고 있지만, ‘사회적 도덕’의 기획인 점에서 둘은 서로 다르지 않다. _p. 492
* 부모의 뜻을 그대로 따르고 언제나 복종하는 것이 효(孝)가 아니다. 부모의 판단이 틀릴 수도 있고, 전혀 의롭지 않은 선택을 강요할 수도 있다. 자식은 스스로의 판단으로 아니다 싶으면 저항하고 거부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 대놓고 삿대질하고 전쟁을 벌이지는 말라고 충고한다. 가정 안에서는 효를 다하고, 집을 나서면 사람들을 존중하고 모실 것. 그것이 인간이 학(學)을 해야 할 기초적 훈련이다. _p. 515
* 다산의 윤리학은 주자보다 더 험준하다. 나날의 전쟁터 앞에 서 있는 듯할 것이다. 주자는 천도(天道)의 자연성을 회복한다는 점에서 훨씬 평탄하다. 다만 기질과 물욕으로 인한 일탈에 유의하고, 자신을 잘 보존해 나가면 될 것이다. 다산은 그렇지 않다. 인간 속에 상반되는 욕구들이 주도권을 갖고 다툰다. 흡사 천사와 악마가 인간 내부에서 끊임없이 싸우는 것으로 윤리적 정황을 소묘했다. 주자가 천리(天理)를 말하고, 다산이 천명(天命)의 본연을 강조할 때, 이 서로 다른 윤리학의 방향이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다. _p. 600
* 다산은 주자의 합리적 설명이 공자가 말한 ‘하늘’의 리얼한 의미를 전해주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신은 자연이 아닌 것을…. 그분은 자연을 만드신 분이고, 그리하여 그보다 높이 계신 분이다. 보이지 않는 그분의 모습, 들리지 않는 그분의 목소리를 두렵고 조심스럽게 받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그분의 뜻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고 태만한 삶을 영위한다면, 그분의 분노가 머리에 떨어질 것이다. 그때는 어디 도망갈 곳도 없다. _p. 676
* 공자는 자주색을 싫어했다. 빨간색이라면 새빨간 핏빛이어야 하는데, 어정쩡하고 애매한 자주색이 웬 말이냐는 것. 이 구절이 앞의 교언영색(巧言令色) 장에 바로 붙어 있는 것도 내 눈에는 예사롭지 않다. 공자는 이 비유를 통해, 진정한 군자와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사람 사이에, 큰 심연이 파여 있음을 일러주는 듯하다. 이를 일러 ‘사이비(似而非)’라고 한다. 겉으로 보면 유덕한 사람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德과 가장 먼 사람들. 다산은 이들 ‘덕(德)의 도둑들’, 즉 위선자들을 뭉뚱그려 ‘향원(鄕原)’이라고 부른다. _p. 744
* 사람 사이에 가로막힌 벽을 허물면 너와 나 사이에 진정한 소통이 이루어지고, 그 기맥은 온 나라를 넘어 세계로 그리고 우주로 퍼져나갈 것이라고 주자는 말한다. 그때 나는 자연이 되고, 더 이상의 인위적 노력은 필요 없다. 바람직한 정치적 행동, 리더십 또한 그 안에 있을 것이었다. 내가 나를 고집하지 않음으로써 나의 벽이 허물어졌으므로, 그때의 행동은 나의 것이 아니라 자연의 것이 되고 우주의 것으로 피어난다. 그것을 주자는 “천리(天理)가 유행(流行)한다”라고 적었다. _p. 769
* 충서(忠恕)란 무엇일까? 주자는 명상의 철학자답게, 충(忠)을 내향적 자기 본질의 확보로, 서(恕)를 외적 사물과 일에의 연장으로 읽었다. 그러나 다산은 이 체용적 발상에 브레이크를 건다. 그렇다면 원리가 하나가 아니라 둘이 되지 않는가? 그는 충(忠)은 ‘충심으로, 진실하게’라는 부사이고, 핵심 키워드는 서(恕) 한 글자라고 단언했다. 자공과 나눈 다음의 대화가 저간의 안개를 한 번에 걷어주고, 공자의 생각과 유교의 정신을 천둥처럼 일깨운다 _p. 773
* 다시 말하지만, 유교의 원론은 ‘세습’이 아니다.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자질도 묻지 않고, 단순히 피를 이어받았다는 사실 하나로 군주가 되고 귀족이 되어 권력을 행사하는 체제는 유교의 공적주의 원칙에 어긋난다. 선양에서 세습으로의 분수령은 우임금이었다. 자신은 순임금으로부터 왕위를 ‘선양’받아 놓고, 정작 후계는 아들에게 물려준 것이다. _p. 800

서설
치마를 걷고 이 강을 | 남쪽 끝에 내던져진 유배객 | 왜 경학인가? | 명상에서 정치로 | 어떻게 읽을 것인가?
1부. 사건과 인물들
1장. 노 소공의 망명
2장. 제 경공과의 대화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군주 | 네 번의 만남 | 군주의 德, 정치의 책임
3장. 양호와 반란자들
양호와의 질긴 인연
4장. 위 영공과 부인 남자
아리따운 부인 남자와의 대화
5장. 초 섭공과 은둔자들, 진채의 고난
초 섭공과의 대화 | 은둔자들 | 진채의 고난
2부. 공자의 제자들
1장. 자로, 포호빙하
까투리 한 마리 | 뗏목을 타고 바다로 | 성격과 공부 | 자로의 정치적 포부 | 자로의 기도 | 자로의 죽음
2장. 자공, 박시제중
화려한 그릇 | 부자 자공 | 자공의 비평적 감식안 | 자공, 정치를 논하다 | 忠恕, 공자의 일이관지 | 공자의 내면과 종교적 심층 | 자공, 당신이 공자보다 뛰어나오
3장. 안회, 극기복례
안회의 학습 | 안회의 풍모 | 안회의 죽음 | 학문의 경지 | 유교의 최고 이념
3부. 공자의 사상
1장. 學
어떡해야 하나? | 나는 알고 태어난 사람이 아니다 | 學, 삶의 기술을 익히다 | 섬김의 가르침 | 제자 3명의 터득한 學의 경지 | 전통과 고전, 책을 통한 학습 | 공자, 학습의 사람 | 《논어》 첫 구절 | 學이란 무엇인가? | 태어나면서 아는 자 | 배우기만 하거나 생각만 하거나 | 공자, 학습의 길 회고 | 下學과 上達
2장. 天
부귀 | 天理를 말하는 주자 | 天命을 듣는 다산 | 무엇을 두려워할 것인가? | 나는 오십에 天命을 알았다 | 제사와 신들의 세계 | 하늘의 징벌 | 하늘은 속일 수 없다 | 일이관지는 하늘에 닿아 있다
3장. 仁
仁을 너희 집으로 삼아라 | 왜 仁을 말하지 않았을까? | 짐은 무겁고, 길은 멀다 | 仁을 향해 나아가는 방법 | 배려와 전체성 | 상호성의 원리 | 克己의 훈련, 爲己의 기쁨 | 仁의 지속성 | 은나라의 세 현자 | 백이와 숙제 | 德의 배반자들 | 배반 혹은 위선 | 仁은 안인가, 밖인가? | 仁에서 聖으로, 정치의 문명화 | 나는 다만 학습의 사람일 뿐 | 공자의 일이관지
4장. 政
고향을 떠나다 | 스승의 道는 너무 높습니다 | 공자의 정치 혁명 | 심정윤리와 책임윤리 | 不欲이란? | 덕치의 이상, 유가와 법가 | 無爲냐, 有爲냐? | 요순의 정치, 그 실상에 대하여 | 敬, 자각적 주시냐, 직무적 책임이냐? | 정치의 목표 | 신뢰, 정치의 기반 | 군사와 군대 | 감옥과 형벌 | 재정을 다루는 기술 | 다산의 정치적 현실주의
결어
사건과 정황 | 공자의 제자들 | 공자의 사상 | 의미와 전망
참고 문헌
부록
1. 〈공자세가〉 번역
조상, 어린 시절, 그리고 청년기(기원전 551-523년) | 제나라에서 돌아온 후(기원전 522-503년) | 노나라 정치의 한가운데에서(기원전 502-497년) | 첫 방랑 5년(기원전 496-492년) | 진나라와 채나라 사이에서의 곤경(기원전 491-489년) | 계속되는 유랑(기원전 488-484년) | 학자로서의 활동, 그리고 개인적 습관(기원전 484-481년) | 공자의 죽음 그리고 평가
2. 다산을 위한 변명(정민 교수 발제 논평)
강이원의 누설 | 이가환은 邪學의 교주인가? | 성호 이익의 서학관 | 다산의 4종 저작, 면피 혹은 반성? | 유학의 별파 혹은 유교적 유신론자 | 허황되고 괴이하며 하늘을 거스르고 신을 모독하다 | 이성의 법정 | 마무리 | 후기
3. 내가 좋아하는 고전 구절
추모사. 한형조의 바다와 삶, 학문과 철학
바다 사람 한형조 | 한국학대학원 시절의 몇 가지 추억 | 참으로 아름다운 시절 | 주자학과 다산학의 차이 | 《두 개의 논어》 혹은 ‘세상만사’라는 바다 | 불교와 광자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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