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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7375674 / 312쪽 / 406g / 140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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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디앤루니스 리뷰
★ 김정희원 교수, 김인정, 기자, 홍성수 교수 추천! ★
“피해자의 자리는 이제 특권이자 무기이다”
모두가 자신을 ‘진정한 피해자’로 내세우는,
타인의 고통을 잊어버린 억울한 피해자들의 사회에 대하여
“플랫폼마저 권력과 자본에 점령당한 시대,
가장 취약한 사람들에게, 도둑맞은 피해자성을 되돌려줄 책”
_김인정 (저널리스트, 《고통 구경하는 사회》 저자)
“어떻게 특권을 지닌 힘있는 남성들이 ‘진짜 피해자’ 행세를 하게 되었는가?
이 책은 새롭고 설득력 있는 답을 제시한다.”
_에바 일루즈, (《감정 자본주의》 저자)
“악랄한 허위 고발로 저와 가족의 명예는 돌이킬 수 없이 무너졌습니다.” 2018년 가을, 성폭력 혐의를 폭로당한 미국 연방대법원 대법관으로 지명된 브렛 캐버노는 상원 법사위원회에서 눈물을 그렁그렁 머금은 채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 의원들은 그에게 연민을 표하며 “미국의 젊은 남자들에게 아주 힘든 시대”라고 한탄했고, SNS에는 그를 구출하자는 아우성이 들끓었다. 그를 고발한 크리스틴 블래시 포드도 SNS에서 전 세계 여성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으나, 한편으로는 숱한 살해 협박에 시달렸다. 블래시 포드 외에도 세 여성이 용기를 내어 비슷한 증언을 했지만 캐버노는 수사조차 받지 않고 대법관으로 임명되었다. 이처럼 가해자로 지목된 이가 눈물을 흘리며 억울한 피해자라고 호소하는 장면은 우리 사회에서도 당연한 절차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언제부터 가해자는 자신을 피해자라고 호소하기 시작했을까? 그 적반하장은 어째서 가능한가? 무엇보다, 왜 가해자는 피해자를 자처하는 것일까?
‘피해자의 자리는 이제 특권이자 무기’가 되었다고 말하는 런던정치대학교 교수 릴리 출리아라키는 《가해자는 모두 피해자라 말한다》에서 피해자와 피해자성(victimhood)의 역사와 ‘무기화’ 현상을 파헤친다. 현대사회는 소셜미디어와 언론에 고통이 넘실대는 ‘고통의 민주주의’ 사회다. 성폭력 피해 여성, 인종차별에 시달리는 흑인, 이동권을 박탈당한 장애인 등 소수자의 고통도 확산하지만, 동시에 ‘역차별’을 억울해하는 남성, ‘소수자 우대 정책’을 한탄하는 백인, ‘무고’를 호소하는 가해자의 고통도 무차별적으로 확산한다. 그런데 누구나 고통을 호소하는 한, 인권이라는 대의 아래 그들은 모두 공감과 연민을 받아 마땅한, 발언권을 존중받아야 할 ‘피해자’로 보이며,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연대해야 할 시민으로서의 책무가 생기는 듯하다. 누구의 주장이든 ‘나는 억울하고 고통스럽다’라고 호소하는 개인의 호소를 무시하는 것이 원론적으로 윤리적일 수 있겠는가? 저자는 이처럼 개인의 상처와 인권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사회일수록 피해자라는 지위가 공감과 연민, 정당성과 발언권을 얻기 위한 ‘무기’로 남용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피해자’가 되는 것은 언제나 남의 목소리를 짓누르며 목청을 높이는 권력자들이다.
그렇다면 가해자들의 거짓된 피해자 행세를 어떻게 막아낼 수 있을 것인가? 누구의 호소에 귀를 기울이고 연대해야 하는가? 저자는 ‘누가 피해자로 인정받았는가’를 역사적으로 분석하고 현대에 벌어지고 있는 ‘피해자 전쟁’을 파헤치며 취약한 사람들에게 피해자의 지위를 되찾아줄 대안을 모색한다.
출판사 리뷰
책 속에서
첫 번째는 이 이야기가 전 세계로 퍼져 국제 헤드라인을 장식했다는 사실이 시사하듯 피해자성 주장은 미국에 한정된 현상이 아니라 서구 문화권 전체의 관심을 사로잡는 포괄적인 사안이라는 통찰이다. 이는 새로운 시각이 아니다. 25년 전에도 미국 비평가 로버트 휴즈Robert Hughes는 우리가 “모두가 부유하고 유명하지는 않지만 모두가 고난에 시달리는 고통의 민주주의” 속에서 살아간다고 말했다. 10년 후 디디에 파생Didier Fassin과 리샤르 레스만Richard Rechtman의 “트라우마의 제국”에 관한 중대한 연구는 피해자성을 오늘날의 삶에서 핵심적인 도덕적·정치적 조건으로 보았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트라우마는 정신의학 어휘에 한정되지 않는다. 트라우마는 일상 용법으로 깊이 뿌리내렸다. 사실상 그것은 어떤 사건에 대한 새로운 언어를 창조했다.” 캐롤린 딘Carolyn Dean은 최근에 이 주장을 되풀이하며 “트라우마를 입은 피해자는 오늘날 서구 문화의 핵심에 자리한다”고 역설했다. 이 언설들은 피해자성을 서구 문화 일반의 지배 담론으로 보고 있긴 하지만 블래시 포드와 캐버노의 이야기가 제기하는 핵심 문제를 건드리지는 않는다. 모두가 자신의 고난이 상대방의 고난보다 인정받아 마땅하다고 경쟁적으로 내세우는, 피해자가 범람하는 세상은 어떤 종류의 세상인가? 어떻게 세상이 지금처럼 변했을까? 그런 세상은 삶에 어떤 유익을 주는가?더 중요하게는, 그 대가는 무엇일까? 이 책에서는 이런 질문들을 고심해보려고 한다.
_26~27쪽, 〈어째서 피해자성인가?〉에서
고통의 정치라는 틀 안에서 우리는 어째서 피해자성이 자아에 본질적인 정체성을 객관적으로 부여하는 기표가 아니라, 반복해서 말하자면, 자유주의적 근대성에서 개발된 고통의 언어를 차용하여 취약한 자아를 위해 “나 상처 받았어” 또는 “나 억울해”라고 발언하고 가엾어하는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소통 행위인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달리 말해서 피해자는 고정된 특정 사람이 아니라, 자아가 고난에 처했다는 주장을 통해 바로 그 순간 취약한 존재로 생성되는 반복적인 발화행위자이다. 피해자성을 공적 담론에서 일종의 투쟁 현장으로 만드는 것은 트라우마 또는 상해의 주장들이 즐비한 가운데 새로운 자아를 드러냄으로써 그 주위에 있는 다양한 인정의 공동체를 불러내는 수행적인 역량이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정치는 스튜어트 홀Stuart Hall이 말했듯 “늘 필연적이거나 확정적이거나 절대적이거나 본질적이지는 않”지만, 정치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다양한 국면에 피해자의 정체성을 잠정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으로 고통과 자아를 연결시키는 언어적 “체결articulations”이라는 가변성 높은 행위에 크게 의지하는 한 대체로 고통의 정치이다. 그러므로 누가, 어떤 고난의 주장을 가지고, 어느 공동체에 속한 채 피해자로 생성되는가는 당연하게 받아들일 일이 아니라 비판적인 공적 담론 분석을 요구하는 정치적 소통과 관련된 문제이다.
_60~61쪽, 〈어째서 피해자성인가?〉에서
피해자성의 어휘의 과거와 현재를 재고함으로써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바로 피해자성에 대한 비판적 분석에서 공적 담론의 “표면에” 드러난 겉모습만으로는 누가 피해자이고 누가 가해자인지 파악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고난을 소통할 때 고통의 주장과 자아의 조건은 결코 선험적으로 통합되어 있지 않으므로, 피해자성 연구는 피해자 개념의 근본적인 우발성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나는 주장과 조건(또는 맥락)을 재삼 구분하는데, 둘을 가르는 어떤 고정된 경계가 “저 바깥에” 존재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구분을 발견적 수단heuristic device으로 활용할수 있기 때문이다. 이 발견적 수단은 특정한 시공간에서 주장과 조건 사이의 관계를 탐구하는 데 유용한 분석적 틀로 활용할 수 있다. 그러므로 “진짜real” 피해자와 “가짜fake” 피해자를 구분하는 질문 대신, 진실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들을 제기해야 한다. 어떤 조건에서 특정한 고통의 주장이 특정한 자아를 피해자로 여겨지게 하는가? 이런 자아는 어떤 권력의 입장에서 발언하는가? 이들의 주장은 이들에게, 이들이 호명한 공동체에 어떤 유익을 안기는가? 이런 주장은 어떤 종류의 배제를 전제하고 공고히 하는가?
_71~72쪽, 〈어째서 피해자성인가?〉에서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피해자성의 어휘는 이런 배제의 역사에 기초한다. 이는 취약성이 인류의 “보편적인” 속성이 아니라 20세기 근대성의 전형적 피해자로서 백인 남성에게 특별하게 주어진 자격임을 곱씹게 한다. 백인 남성은 싸우다가 고통받고, 살해하다가 고통받고, 보호하다가 살해하고, 보호를 위해 고통받는다. 이 모든 형태의 고통이 상호적 상해의 실행이라는 전쟁의 핵심 목표에 내재되어 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서구 남성 자아가 근본적으로 선하고 오직 우발적으로만 나쁘며 자신이 저지른 모든 폭력 때문에 전문적인 의학적 처치와 공감을 받아 마땅한 유일한 행위자라는 개념을 유지·온존시킨다. 백인 남성의 고통에 이렇게 특권을 부여하고 참혹한 폭력과 치유의 순환 고리가 활성화된 덕에 남성들은 “증언의 자격”이라는 유산을 부분적으로라도 부여받았다. 덕분에 고통을 주장해봤자 역사적으로 인정받은 적이 별로 없는 여성들과는 달리, 남성들은 고통과 고난을 호소할 때 신뢰받을 수 있게 되었다.122 여성들과 유사하게 비백인 자아들은 발언할 권력도 갖지 못하고 그들의 희생, 고통, 상실을 인정·추모받지 못한 채 살아가고 싸우고 죽는다.
_125~126쪽, 〈과거에는 누가 피해자였나?〉에서
힘있는 사람들이 고통의 언어를 사용하는 행위는 이미 “반피해자주의antivictimism”라고 부르는 이론적 연구 대상이다. 앨리슨 콜은 2001년 9월 11일 이후 미국 정치를 연구하면서 극우 세력이 피해자성을 무기화하는 현상을 간결하게 정리한다. 그는 극우 세력이 “인종의 정치, 페미니즘, 그 외 저항적인 정치들을 계속해서 흠집내기 위해” “새로운 피해자 집단을 고안하고 선전함으로써” 자기 고유의 피해자성 브랜드를 내세운다고 말한다. 이어서 “이 운동은 최근 여성을 대상으로 한 폭력을 줄이기 위해 설계된 법을 개정하면서 2004년 ‘태어나지 않은 피해자에 대한 폭력에 관한 법Unborn Victims of Violence Act’을 집어넣는 방식으로 태아의 피해자 지위를 법에 명시하는 데 성공했다”고 덧붙인다.
콜의 연구는 21세기가 시작될 무렵 고개를 든 반피해자주의를 검토하고 있지만, 그를 비롯한 여러 연구자들은 그 뿌리를 1960년대 중반의 미국 민권운동과 페미니즘 투쟁 이후 그때까지 배제되었던 집단에 우호적인 방향으로 이루어진 법적·사회적 개혁에 대한 반동적인 불만에서 찾는다. 보수적이고 백인우월주의적인 일부 중간계급들은 이런 운동들 덕에 흑인과 여성을 민주적으로 포용하는 방향으로 사회구조가 확장된 것에 억울함을 느끼고, 피억압집단들이 “피해자성 카드놀이”를 한다고 공격하면서 대신 자신들을 시스템의 “진정한 피해자”로 내세웠다. 이에 로버트 호위츠Robert Horwitz는 “백인 남성들이 특히 소수자 권리의 증진과 여성 혁명의 여파로 자신들이 누리던 사회구조적 특권 일부를 상실하기 시작하자 그 혁명이 피해자성의 정치라며 날을 세웠다”고 주장한다. 이런 의미에서 ‘로 대 웨이드’ 판례가 뒤집힌 사건은 오래전부터 진행되어 이제야 완성된 반피해자주의 기획이었다. 새뮤얼 J. 알리토 판사의 표현대로 “비판적인 도덕적 질문”을 해결한다는 허울을 쓰고서 복음주의 극우 세력의 당파적인 주장을 많은 주에서 법적인 사실로 현실화하는 데 성공했으므로.
_179~180쪽, 〈피해자성을 어떻게 되찾을 수 있을까?〉에서
흑인 커뮤니티의 트윗에서 유래했지만 이제는 다른 곳에서도 널리 사용되는 “캐런” 비유는 자신의 인종적 특권을 이용해서 자신을 흑인폭력Black violence의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백인 여성 자아를 일컫는 표현으로, “힘퍼시”처럼 기득권 중심의 공감과 동일선상에 있다. “아쉬울 게 없는 백인의 우월함과 계급 특권”49을 지녔다는 설정의 “캐런” 비유는 “힘퍼시”보다 역사가 길지만, 2020년 봄 흑인 남성 크리스천 쿠퍼가 자기 때문에 위협감을 느끼는 척 연기하며 경찰에 신고한 백인 여성이 찍힌 증거 동영상을 올리면서 유명해졌다. “백인 여성의 눈물”을 무기 삼아 인종적 타자를 향해 잔인함의 효과를 유발한 사례였던 것이다.50 여기서 기득권 중심의 공감은 흑인은 범죄자라는 인종주의 서사에서 고난에 처한 여성과 위해를 가하는 남성이라는 전통적인 성역할 이분법에 의지함으로써 백인 여성에게 위협을 가하는 흑인 “폭력배” 고정관념을 중심으로 반피해자주의 주장을 구성한다.
_192쪽, 〈피해자성을 어떻게 되찾을 수 있을까?〉에서
도전하지 못한다. 이런 폭력의 형태에 맞서려면 사회적 고난에 대한 개인주의적 설명 대신 애당초 고난을 유발한 조건을 바꿀 수 있는 단결된 실천을 요구하는 집단주의적 정의의 서사가 필요하다. 오늘날의 미디어 경관과 바이럴리티 주도의 주목경제economies of attention에서 집단주의적 서사는 낡은 것으로 간주될지 모른다. 그렇지만 현시대에 맞춰 현대화된 집단주의적 서사는 반피해자주의와 극우 세력의 잔인함의 정치에 맞서는 투쟁뿐만 아니라 너무나도 절실한 미래지향적인 사회 변화 비전에도 필요하다. 1장에서 확인했듯 오늘날의 미디어 또는 정치 담론들에서는 고통의 소통이 상업화되고 ‘인포테인먼트infotainment’가 주도하는 장르에 잠식되어 트라우마나 인권의 서사를 개별화하고 사람들의 고통을 전적으로 개인의 고생담으로만 재현하는 한편, 고통의 구조적 원인을 중심으로 한 설명적인 주장들을 희석하거나 삭제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자유주의적 담론은 “비아냥irony”이라는 소통 양식을 선호하는 데, 이는 전반적인 메시지는 불의를 집중적으로 겨냥하지만 명시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으며 종종 “다 안다는 듯한 무심함, 모든 진리 주장을 향한 자의식적인 의심… 유희적인 불가지론”으로 가득한 담론을 통해 표현된다. 가령 비정부기구 캠페인이나 유명인사를 앞세워 인권이라는 대의를 브랜드화하는 오늘날의 인도주의적 소통 양식은 미디어 사용자들에게 인기를 얻었지만, 공적인 참여를 소비자의 선택이라는 사적인 문제로 홍보하는 경향을 보여준다. 이는 “연대를 위한 실천을 역설하는 일체의 도덕적 호소에는 회의적이지만 고난에 처한 사람들을 위한 어떤 행동에는 열려 있는” 교양 있는 시민이라는 양가적인 모델을 배양한다.
_213~214쪽, 〈피해자성을 어떻게 되찾을 수 있을까?〉에서

추천의 말
서문과 감사의 말
1장 어째서 피해자성인가?
2장 과거에는 누가 피해자였나?
3장 오늘날에는 누가 피해자인가?
4장 피해자성을 어떻게 되찾을 수 있을까?
참고문헌
미주
색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