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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7170746 / 288쪽 / 574g / 152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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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형(별별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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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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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K 제2차 세계대전 편집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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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디앤루니스 리뷰
비밀에서 역사로: 대한민국 해군의 십자성 작전
「1975 사이공 대탈출」은 1975년 4월, 남베트남 패망을 앞두고 대한민국 정부가 수행한 ‘십자성 작전’의 전말을 최초로 공개한 역사 기록서이다. 이 작전은 대한민국 해군이 남베트남 교민과 현지 피란민 1,902명을 안전하게 철수시킨 대규모 민간인 구출 작전으로, 30년 이상 군사 기밀로 묶여 있다가 최근에야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저자인 이문학 선생은 당시 해군 작전과장으로서 십자성 작전을 기획하고 수행한 핵심 관계자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생생한 증언과 미공개 자료를 바탕으로, 대한민국 해군의 치밀한 작전 수행 과정과 극적인 탈출 순간들을 기록했다. 특히, 미군조차 실패한 철수 작전 속에서 대한민국 해군이 단 한 명의 사상자 없이 작전을 성공시킨 과정은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역사적 성과로 평가된다.
이 책은 단순한 전쟁사가 아니라, 국가의 책무와 군인의 사명감, 그리고 대한민국 해군의 작전 능력을 재조명하는 기록이다. 특히, 대한민국 정부와 군이 전시 상황에서 자국민 보호를 위해 수행한 최초의 해외 철수 작전이라는 점에서, 이후 진행된 ‘미라클 작전’(2021년 아프가니스탄 철수)과 ‘프라미스 작전’(2023년 수단 철수)과도 연결되는 중요한 선례를 제공한다. 당시 대한민국 해군은 적의 포위망 속에서도 교민과 난민들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으며, 정부의 철수 지시가 내려진 후에도 작전 성공 가능성이 희박한 상황에서 끝까지 임무를 수행했다.
오랜 시간 역사 속에 묻혀 있던 십자성 작전이 이 책을 통해 비로소 전 국민 앞에 공개된다. 대한민국 군과 해군이 수행한 역사적 임무가 널리 알려지고, 후대에 기억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또한, 한국군의 전투병 파병 60주년을 맞아 베트남전쟁의 발발 배경과 과정, 한국군 파병에 얽힌 모든 것을 독자들이 쉽게 이해하고 재미있게 볼수 있도록 부록으로 수록했다. 이 책은 전쟁과 평화, 그리고 국가의 역할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만드는 계기가 될 것이다.
출판사 리뷰
책 속에서
1975년 4월 30일 남베트남이 패망하던 그날, 나는 남베트남의 수도 사이공 시내 한복판에 있었다. ‘동양의 파리’로 불렸던 사이공이 적에게 포위되어 함락되기 직전, 나는 군복을 입고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임무 수행에 방점을 찍는 마지막을 위해 몸부림쳤다.… (4쪽)
새벽 5시경, 박 중령은 세상 모르게 잠자고 있는 가족들을 뒤에 남기고 조용히 집을 나섰다. 함에 도착한 그는 소집된 인원을 파악한 후 각 부서별로 출항 상태를 최종 점검했다.박 중령은 정각 7시에 함대사령관에게 전 승조원에 대한 출동 신고를 마쳤다. 마침내 오전 8시가 되자 박 중령이 지휘하는 계봉함은 일요일의 조용한 바다를 향해 진해를 떠났다. (46쪽)
“함 내에 알린다. 우리는 북베트남 공산군에게 공격을 받고 있는 월남공화국에 인도적인 지원을 위해 미화 450만 달러에 해당하는 비군사적인 군수물자를 적재하고 다낭으로 향한다. 이 작전은 대한민국이 남베트남을 지원하는 마지막 작전이 될지도 모른다.…” (52쪽)
순간 요란한 폭발음이 귀청을 울렸다. 갑판이 충격으로 와르르 떨렸고, 희뿌연 화약 연기 속에 한 대원이 단말마의 비명을 질렀다. 사수인 김의배 중사가 피투성이가 되어 갑판 위를 뒹굴었다. 화약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66쪽)
“한국의 LST-810(계봉함)은 지금 즉시 출항을 중지하라. 만일 불복하면 공격하겠다.” 남베트남 해군의 강경한 통보였다. 통신장이 두려운 얼굴로 계봉함 함장을 바라봤다. 박인석 중령은 단호한 어조로 지시했다. “일체 응답하지 마라. 철저하게 침묵하라.” 함장인 박 중령은 등골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설마 했는데, 정말로 나포 명령이 떨어지자 절로 한숨이 나왔다. 조금이라도 더 지체했더라면 뉴포트항에 꼼짝없이 묶여있을 뻔했다는 생각에 오금이 저렸다. (110쪽)
승선자 중 한국 국적을 가진 교민은 319명이었다. 이 가운데 172명은 여권을 소지하고 있었고, 147명은 소지하지 않았다. 14세 이하 114명은 부모의 여권에 등재되어 있었다. 교민 33명은 여권을 분실했거나, 여권이 없는 상태였다. (145쪽)
통문은 꽤 오랫동안 열리지 않았다. 헬기도 보이지 않았다. 새벽이 다가올수록 헬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마음은 ‘탈 수 있다’라는 희망보다는 ‘타지 못할 수 있다’라는 비관으로 점차 기울었다. (161쪽)
헬기는 요란한 굉음을 울리며 이륙했다. 시계를 보니 새벽 4시 10분이었다. 이제 비로소 사이공을 탈출하게 된 것이었다. 긴장 속에 밤을 지새우다가 가까스로 헬기를 타자 이내 피로감이 엄습하며 졸음이 쏟아졌다. (163쪽)
짜빈동 전투가 끝난 직후, 주월 미군 사령부는 한국군이 그토록 원했던 M-16 자동소총을 신속히 지급했다. 또한, 한국군의 중대전술기지에 의구심을 품고 있던 미군 사령부는 이를 미군의 현실에 맞게 도입하는 한편 전술적 운용 확대를 위한 연구개발에 착수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훗날 이라크전과 아프가니스탄전에서 미군이 구축한 화력 거점기지(Fire Base)였다. 세계 최강국인 미군의 기지전술 교리를 바꾸게 한 것이 바로 베트남전에서 한국군이 최초로 고안해 짜빈동 전투와 둑꼬 전투 등 실전에서 검증한 중대전술기지였다. (245쪽)
베트남 파병은 암울했던 당시, 한국군의 현대화와 자주국방을 위한 방위산업 건설을 가능케 해준 요술 방망이였다. 미국의 대규모 군사 및 경제적 지원은 베트남 파병이 없었더라면 애초에 불가능했다. 그 속에서 절박함으로 매진하여 오늘날 세계 군사력 5위와 글로벌 방위산업 국가로 우뚝 서게 되는 결실을 이룬 것이다. (282~283쪽)
서문 1 1975년 4월, 사이공에서 펼쳐진 운명의 작전
서문 2 비밀에서 역사로, 해군의 십자성 작전 기록
side 01 사이공을 탈출하라
1975년 4월 2일 예고 없는 사이공 출장 ㆍ 십자성 계획의 서막
1975년 4월 3일 군함으로 교민 철수 논의 ㆍ 대한민국 정부의 대책 회의
1975년 4월 6일 파월 특수수송분대 편성 ㆍ 수송분대 계봉함 함장의 다짐
1975년 4월 7일 파월 수송분대 출국 신고 ㆍ 주월남 한국대사관 철수대책본부 설치
1975년 4월 9일 수송분대 베트남으로 출항 ㆍ 비상 걸린 주월남 한국대사관
1975년 4월 17일 계봉함 기관 고장 나다 ㆍ 늪에 빠진 남베트남 정세
1975년 4월 19일 목적지 변경 속 폭발 사고 ㆍ 미국대사, 한국에 철수계획 통보 ㆍ LST 입항, 사이공으로 변경 요청
1975년 4월 21일 해군 수송분대, 사이공 외항 도착 ㆍ 김영관 대사의 승부수, ‘위장 철수’
1975년 4월 22일 한국 해군, 남베트남에 구호품 전달 ㆍ 수송분대와 대사관 통신망 가동
1975년 4월 23일 한국 해군, 사이공서 구호물자 하역 ㆍ 남베트남인들의 탈출 타진
1975년 4월 24일 해군 장병, 하역 작업 투입 ㆍ 대사관, 현지 교민에게 철수 종용
1975년 4월 25일 본국의 사이공 탈출 지시 ㆍ LST로 교민들 탈출시켜라
1975년 4월 26일 LST, 교민 태우고 사이공 출항 ㆍ 어둠 속 메콩강을 항진하다 ㆍ 대사관, 교민 철수작전에 총력
1975년 4월 27일 LST 2척 붕따우에서 합류 ㆍ 대사관, LST 못 탄 교민에 골치
1975년 4월 28일 난민과 험난한 함상 생활 ㆍ 대사관, 사이공 철수작전 돌입 ㆍ 대사관 직원, 각자도생 나서 ㆍ 대사관, 잔류 교민 철수에 최선
1975년 4월 29일 푸꾸옥에서 난민 하선 ㆍ 기함 바뀌고, 교민 분승하다 ㆍ 대사관, 운명의 사이공 탈출 ㆍ 늦게 온 헬기에 탈출 아우성 ㆍ조급한 판단이 빚은 탈출 참사
1975년 4월 30일 수송분대, 푸꾸옥서 신속 철수 ㆍ 헬기 탑승자와 타지 못한 자 ㆍ 실패로 끝난 대사관 탈출
1975년 5월 1일 베트남 방송, 긴급 철수 경고 ㆍ 민간 선박에서 전보 보내
1975년 5월 2일 동료 전우 무사 소식에 환호
1975년 5월 5일 함상의 남베트남 난민 금괴 소동 ㆍ 난민수용소서 남베트남 수상 만나
1975년 5월 10일 항공기 편으로 고국에 도착
1975년 5월 13일 해군 수송분대, 부산으로 귀국
에필로그
side 02 베트남전쟁과 한국군 파병
멀지만 가까운 나라
반도국 베트남의 역사
베트민의 정부 수립
제1차 베트남전쟁 발발
제네바 협정과 베트남의 분단
미국의 베트남 개입
남베트남의 혼란과 베트콩 등장
미국의 참전과 제2차 베트남전쟁
미국의 한국군 파병 요청
한국군의 베트남 파병
한국군 작전통제권 확보
한국군 첫 승리, 카투산 전투
한국군의 중대기지전술
북베트남군과 대규모 전투
전설의 서막, 둑꼬 전투
해병의 신화, 짜빈동 전투
전쟁의 분수령 된 구정 공세
전략적으로 승리한 구정 공세
닉슨 대통령의 철군 정책
미군의 베트남 철수
철군의 비극, 안케패스 전투
파리평화협정과 철군
파병이 한국 정치에 끼친 영향
파병이 한국 경제에 끼친 영향
파병이 한국의 안보에 끼친 영향
파병이 한국의 자주국방에 끼친 영향
한국의 군사력과 방위산업
베트남 파병 60주년 재평가
추천사 하나님의 보호와 대한민국 해군의 영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