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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잎으로 피어나다

정훈모 저 | 선우미디어 | 2024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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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56587561 / 136쪽 / 314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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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책 속에서 <시간의 잎으로 피어나다> 이미경 작가는 구멍가게를 그리는 작가다. 작고 소소한 그곳에 애정을 담고 소중한 가치를 불어넣는다. 그림을 보고 있으면 지나간 시간의 기억이 스쳐 지나간다. 동전 하나로 행복을 살 수 있었던 어린 날이 생각나고, 요즈음 편의점과는 다른 이야기와 사연들이 신작로 가게마다 있을 것 같다. 나는 그녀의 그림 중에서 ‘신의상회’가 좋아 모사(模寫)를 시작했다. 그림을 그리다가 문득 영희가 떠올랐다. 늘 아기를 업고 있던 11살의 영희, 중학교 입학시험에 시달리던 나. 늘 살림하느라 바빠 친구가 없던 영희에게 나는 왠지 말을 걸었고, 친구가 되었다. 우리 반 아이들은 학교 가는 길에 있는 영희네 구멍가게를 기웃거리곤 했다. 무슨 맛있는 과자나 신기한 상품이 새로 들어온 것이 있나 궁금해서였다. 초록색 기와에 양철 차양이 달린 그곳에는 마법 상자처럼 진기한 물건들이 많았다. 동네에서 유일하게 빨간 공중전화가 있었고, 가게 앞에는 평상이 놓여 있어 아저씨들은 막걸리를 마셨다. 우리는 학교 수업이 끝나자마자 가방을 풀어놓고 술래잡기와 공기놀이, 고무줄놀이를 했다. 가게 옆에는 살림집이 붙어 있었다. 거기에서 영희가 살았다. 어머니가 장사를 하고, 아버지는 늘 술에 절어있었다. 형제가 5남매였는데 자고 나면 동생이 한 명씩 느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 집 앞에는 항상 기저귀가 펄럭거렸다. 영희는 언제나 동생을 돌봐줘야 해서 등에 업고 학교에 오는 날도 잦았다. 맏딸이라 당연히 어머니를 도와야 했고, 동생들은 고스란히 영희 차지였다. 파란 대문이 달린 그 집은 언제나 문이 열려 있었다. 아이들은 쉴 새 없이 들락거렸다. 영희 어머니 합천댁은 고주망태인 남편을 온종일 욕했다. 나는 그 욕을 들을 때마다 아줌마는 어디서 그런 말을 생각해내는지 궁금했다. 친구들과 놀고 있으면 우리를 향해 욕을 하기도 했다. “어서 집에 싸게 싸게 돌아가라고 ××” 11살 답지 않게 손끝이 야무졌던 영희는 그 조그만 손으로 밥을 해서 동생들을 먹였고 빨래를 했다. 그래도 우리가 놀고 있으면 틈틈이 공기놀이를 같이하고, 술래잡기도 하며 놀았다. 가게 평상 앞은 우리들의 놀이터였고 동네 사랑방이었다. 집 뒤에는 커다란 은행나무가 있어 초가을이면 집 뒤에 환한 불이 켜진 듯 눈부셨다. 노란 잎마다 전등불이 달린 듯 우리들의 마음까지 밝아졌다. 고약한 냄새가 났지만 우리는 은행을 매년 주웠고, 물에 담가 씻어서 구워 먹으면 맛이 있었다. 평상 옆에는 아저씨 자전거가 놓여 있었는데 배달용인 그것은 늘 휴점 상태였다. 나는 영희를 보면 속상했다. 공부도 못하고 늘 동생을 봐야 하는 모습이 딱해서 과자를 사서 먹을 때마다 나눠주곤 했다. 요즘 편의점에는 맥주와 담배를 사러 오는 젊은이들, 음료수와 커피를 사는 사람들로 붐빈다. 한 집 건너 편의점이 즐비한 동네에는 특히 경쟁이 심하다. 택배는 물론 은행 업무까지 할 수 있고, 도시락과 라면 등으로 요기를 할 수 있어 젊은이들은 자주 이용한다. 그들은 아지트처럼 모여서 담배를 피우기도 하고, 맥주를 한 캔씩 마시며 그들만의 문화를 만들어 간다. 몇십 년이 흐른 후 편의점도 구멍가게처럼 추억이 있는 장소가 될 수 있을까. 편의점에는 무표정한 알바생과 바쁜 사람들만이 왔다 갔다 하는데…. 이미경 작가의 그림을 모사(模寫)하다가 11살의 나를 만났다. 중학교 입시를 위해 과외공부를 하고 돌아오는 길, 친구들은 다 집에 가고 합천댁 아줌마만 남아 가게를 지키고 있다. 나는 그곳을 지나며 영희를 잠시 생각한다. 만일 내가 영희같이 동생을 봐야 하고, 집안일을 해야 했다면 잘해 낼 수 있을까. 못할 것 같다. 자식 공부에 열심이신 내 어머니는 시험지 하나만 틀려도 야단을 치고 나무라셨고, 나는 그런 어머니가 싫어서 원망하곤 했다. 지나고 보니 그 시대의 어머니들은 각자의 생활 형편대로 치열하게 삶을 살아내신 것 같다. 나는 ‘신의상회’ 기와 하나하나의 선을 그리고, 나뭇잎 하나를 노란색과 연둣빛으로 색칠했다. 시간이 기억 속에서 잎으로 피어난다. 내 안에서 과거의 일들이 고개를 들고 나의 손길로 피워내 주기를 기다리는 게 느껴진다. 미술 수업은 정물을 보고 그대로 그리거나, 기존작가의 작품을 모방하며 연습을 한다. 자꾸 따라 그리다 보면 각자 그만의 창작품이 실현된다고 한다. 지금은 보고 따라 그리고 있는 수준이지만, 나중에는 나만의 구멍가게 이야기를 글과 그림으로 피워내고 싶다. <고추장 단지를 보내니> 밥 먹을 때마다 먹으면 좋을 게다 1776년 정월에 시작되어 이듬해 8월에 끝난 편지글로 지금으로부터 2백 년 전 글이다. 주로 개인적인 일상을 담고 있어 가식과 꾸밈이 없고 그의 인간적 체취를 접할 수 있다. 이 책은 『연암 선생 서간첩』을 번역한 것이다. 연암은 호방하고 활달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는데 정사년(1797년 4월 18일)에 쓴 편지를 보면 대단히 사려가 깊고 꼭닥스러운 면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자물쇠 잘 잠그고 문단속도 잘하는 게 어떻겠니?’라는 말에서 자상한 성품을 엿볼 수 있다. 자식 공부에 대한 걱정이 글 가득 담겨있는 <아이들에게>의 편지는 읽으면서 현세의 어머니들이 자식들에게 잔소리하는 것 같아 슬며시 웃음이 났다. 마지막에 손수 담근 고추장 단지를 보내며 ‘밥 먹을 때마다 먹으면 좋을 게다’라고 쓰인 문구는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연암은 51세 때 부인을 저세상으로 보내고 죽을 때까지 혼자 살았다. 이 때문에 자식들을 더욱 각별히 챙기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공무 틈틈이 글을 짓기도 하고 혹 법첩을 갖다 놓고 글씨 연습을 하기도 한다고 적으면서 “너희들은 해가 다 가도록 무슨 일을 하느냐”고 나무란다. 연로하여 책을 덮으면 잊어버리는지라 부득불 작은 초록(필요한 부분만을 가려 뽑아 적은 것)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한다. 현대에서도 문장 연습할 때 쓰는 방법이라 흥미로웠다. 친정아버지는 군인이었지만 잔정이 많으신 분이다. 자식을 사랑하면서도 표현하는 법을 배우지 못해 엄하게 우리를 다스렸지만, 그 당시의 다른 아버지와 다르셨다. 학년이 올라가면 형제들을 앞세워 백화점에 가서 새 옷을 사입히곤 자랑스러워했다. 그리고 맛있는 음식을 대접받고 오시면 다음에 온 식구들을 데리고 가서 먹였다. 봄이 되면 꽃모종을 사다 마당에 심었고, 여름이면 형제들을 데리고 해수욕장으로 휴가를 떠났다. 그때는 엄한 아버지가 싫어서 결혼을 빨리해 떠나고 싶었지만, 지금은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지고 아련해진다. 뭇 산이 멀리 아스라하여 “밤비가 마치 부견(符堅)이 강물을 채찍으로 내리치는 것처럼 후드득후드득 집을 흔들어 대는 바람에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사외다.” “사방의 들판이 아득하고 뭇 산이 멀리 아스라하여 비록 서령(瑞寧)이 어느 쪽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반백 리 안에 있을 테니 저기 구름이 더 있는 바닷가 물억새 근처에서 만나게 되겠지.” 윗글은 현대의 문장처럼 아름답고 처연하다. 면면히 심정을 토로하는 문장들이 아름답고 섬세하다. 이 서간첩을 읽다 보면 처음 들어보는 단어들도 많다. “무람없다, 찐덥잖다” 등이다. ‘연암체’라는 문체가 느껴진다. 그리고 수필(手筆)을 구한다는 말이 나오는데 수필이란 편지든 서예 작품이든 원고든 간에 자필로 된 것을 이르는 말이다. 연암은 특히 산문을 잘 썼는데 그의 산문은 마치 잘 빚은 항아리처럼 완정미(完整美)를 보여준다고 한다. 그의 글은 세상을 바라보는 놀라운 반성력과 자기 응시가 자리하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해박한 그의 지식과 창조적인 형식과 자기성찰 그리고 만민에 대한 선비로서의 경세적 책임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은 그의 일상과 살림살이 가족애 등을 볼 수 있다. 200여 년 전의 조선 사대부의 사상과 학식과 그의 문장 등을 보면서 새삼 나의 공부의 부족함에 머리가 숙연해졌다. 무더위 속에서 책을 보고 있자니 잠시 대나무숲에서 산림욕을 하는 것처럼 상쾌하고, ‘쏴쏴’ 하는 파도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연암의 『열하일기』는 중국을 여행한 기행문이자 사회적 보고서다. 25권의 글 중에서 제3책 권3의, <일신수필(馹?隋筆)>에 주목하여 그 글이 시작된 7월 15일을 ‘수필의 날’로 정했다는 말을 들었다. 기록을 읽어보면 중국의 무엇을 볼 것인가? 라는 명제를 던지고 청나라의 발전된 문명의 좋은 점을 보아 그것을 배워야 하고 힘을 길러야 한다는 의지가 담겨있다. 교과서에서 배운 연암과는 다른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볼 수 있어 편지글이 더 좋았다. <곱다랗게 기다리다> 요즘은 시집을 많이 읽는다. 부족한 어휘 공부를 위하여, 사람들은 각자 언어 보따리가 있어 그곳에서 단어들을 주워 글을 쓴다고 한다. 나이가 드니 자꾸 알고 있었던 단어들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책을 읽거나 시를 읽어야 감성이 죽지 않는다고 한다. 라이너 쿤체의 『나와 마주하는 시간』을 보며 <은엉겅퀴> 같은 시를 쓰는 시인이라는 말에 귀를 쫑긋한다. 은엉겅퀴는 키가 작고 메마른 땅에 자라며, 딱 한 송이 은색 꽃을 피우는 귀한 보호종 식물이다. 쿤체는 세상의 모든 생명에게 귀 기울이고 인간의 불의와 폭력에 저항하는 올곧은 시인이다. 짧은 그의 시에서 나는 생명의 소중함과 자아 성찰을 한다. 오은의 『없음의 대명사』라는 시집은 무수한 그곳, 그것들, 그것, 그들, 그, 우리, 너, 나로 시들이 쓰여 있다. 시인은 ‘그것’이라는 텅 빈 대명사 하나를 던져놓고 많은 의미를 찾게 한다. 누구보다도 언어의 물성 및 자기 지시성에 관심을 가지고 자신만의 고유한 시작법을 만들고 있다. 그에게서 많은 어휘를 줍는다. ‘모닥모닥, 올레줄레, 이냥저냥’ 등등. 황인숙의 『슬픔이 나를 깨운다』. 그녀는 80년대의 대표적인 시인 중의 하나다. 황막하고 메마른 세계를 윤택하고 탄력 있는 세계로 전도시키는 일종의 긍정적 방법에 따라 그녀의 시적 독자성을 확보하고 있다. 그녀의 자유분방한 상상력을 배우고 싶다. 언덕을 오르내리며 삶에 대해 생각했다는 시인은 해방촌 출신이다, 슬픔이 나를 깨우고 소리 없이 지켜주고 흔들고 있지만, 방안 가득히 웅크리고 곱다랗게 기다리고 있음을 아는 시인이다. 복효근의 『허수아비는 허수아비다』. 사소한 일상에서 시를 발견하고 사진에 담아 디카 시집을 만들었다. 발견과 깨달음의 작은 기쁨이 함께 있다는 시집 곳곳에는 서정시인답게 짧은 시속에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꽃 아닌 것 없다>에서는 가만히 들여다보면 슬픔 아닌 꽃이 없다고 하면서 눈을 닦고 보라고 한다. 김사인 시인은 시를 제대로 보려면 겸허하고 공경스럽게 보라고 말하지만, 매직아이를 볼 때처럼 언어를 2차원의 평면에서 일으켜 세워 볼 때 시의 아름다운 세계를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시를 일으켜 세운다는 말을 한참 생각했다. 여름, 숲으로 가면 나무들의 아우성을 들을 수 있고 바다로 가면 파도들의 함성을 들을 수 있다. 시집들 속에서 어휘들을 낚고 있는 나는 이 무더위가 덥지 않다. 가끔 눈물도 찔끔거리고 슬며시 웃기도 하면서 행복하다. 오늘도 책상 위의 곱다랗게 기다리는 책들 속에서 어휘를 주워 보따리에 담는다.

저자 소개

  • 저자 : 정훈모
저자 : 정훈모
경남 울산 출생
이화여중. 고, 이화여자대학교 국문과 졸업
<자유문학>(2001) 신인상으로 등단
수필문우회 사무국장, 한국문인협회 회원
국제pen 한국본부 회원, 이대동창문인회 이사
남태령문인회 회원, 수수회 회원
작품집 《시장에서 영희를 만나다》(2014)
《푸른 빛깔은 늘》(2022)
《시간의 잎으로 피어나다》(2024)

목차

책머리에

1부 곱다랗게 기다리다
4월의 바람 10
우리를 견디게 하는 것들 13
시간의 잎으로 피어나다 17
고추장 단지를 보내니 22
곱다랗게 기다리다 27
거울에게 묻다 30
크레이지 하우스 34
습지와 늪지 사이에서 37
연꽃 터지는 소리 40
인어공주 45
기억의 바다에서 건져 올린 48

2부 손끝에서 가장 먼 곳까지
바람 소리가 들려주는 이야기 52
골목을 걷는 시간 56
펴져라 주름살 60
날아라 실버보드 63
나는 가끔 도망치고 싶다 67
손끝에서 가장 먼 곳까지 70
누우 떼가 강을 건널 때 73
마지막 농담 76
포옹 82
슬쩍슬쩍 가슴을 때리다 85
그러지 뭐 89

3부 畵, 푸른 달을 그리다
점이 나를 만나다 95
오드리처럼 99
나비의 깊은 잠 103
도라지꽃이 피었다 109
적당한 죄 115
푸른 달에 닿다 121
선(線)이 달린다 125
오타 인생 129
인체의 신비 131
수필을 스케치하다 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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