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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57957255 / 136쪽 / 177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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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한글의 매력에 빠져, 죽을 때까지 윤동주와 한국을 사랑한 이바라기 노리코!
서정시의 대표작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식탁에 커피 향 흐르고」 「여자의 말」
이바라기 노리코는 2006년에 세상을 떠나기 전 생전에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일본 시는 희로애락 가운데 노가 없다. 그러나 한국시에는 그 노가 있다.” 그리고 “일본에는 서정시인만 있다. 시인의 사회적 영향력도 한국에 비해 미약하다.”고 말한 냉철한 시인이다. 일본 시인들을 향해 이렇게 거침없는 비판을 할 수 있는 지식인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인과 교류하고 한국과 한글과 윤동주를 사랑한 가장 매력적인 일본의 여류시인 이바라기 노리코의 시 한 편부터 소개한다.
(전반부 생략)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내 나라는 전쟁에서 졌다
이런 엉터리 없는 일이 있느냐고
블라우스의 소매를 걷어 올리고 비굴한 거리를 쏘다녔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라디오에서는 재즈가 넘쳤다
담배연기를 처음 마셨을 때처럼 어질어질하면서
나는 이국의 달콤한 음악을 마구 즐겼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나는 아주 불행했다
나는 무척 덤벙거렸고
나는 너무도 쓸쓸했다
그래서 결심했다 될수록 오래 살기로
나이 들어서 굉장히 아름다운 그림을 그린
프랑스의 루오 할아버지처럼
그렇게…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이 시뿐만 아니라 이바라기 노리코가 발표한 많은 시는 역사적인 어둠과 비극적 현장을 생생하고 분명하게 담고 있다. 예를 들면 “조선의 수많은 사람들이 대지진의 도쿄에서/ 왜 죄 없이 살해되었는가”(「쟝 폴 사르트르에게」)라며 1923년 9월 1일에 발생한 관동대지진 당시의 조선인 학살을 증언한 시도 발표한다. 이 시는 “잘 안 되는 것은 모두 저놈들 탓이다”라며 일제 강점기 시절 유대인 못지않은 박해를 받다 온 한국인이 당한 아픔을 누구보다도 뼈저리게 인식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데 이런 표현 속에도 패배주의적인 비장감은 없다. 오히려 낙관적이다. 밝다. 바로 이런 점 덕분에 전쟁의 풍경을 숨 막히는 비극적 어둠으로 표현하는 다른 시인들과 달리, 이바라기 노리코는 이 한 편의 시만으로도 전후 시의 새로운 한 페이지를 열었다는 평을 얻었다.
(전반부 생략)
잘 안되는 것은 모두 저놈 탓이다
조선 사람들이 대지진이 난 동경에서
왜 죄 없이 살해당했는지
흑인 여학생은 왜 칼리지에서 배우면 안 되는지
우리들조차 누군가가 잡은 총에
겨누어지고 있지 않은지
나에게는 한꺼번에 알 수 있는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참혹한 사건의 가지가지가
사르트르씨
나는 당신을 깊이 알고 있지 않다
유대인의 생태(生態)도 표정도 친숙하지는 않다
인간에 대한 전율이 또 하나 늘어났지만
여하튼 지금 있는 것은 순수한 하나의 기쁨!
(후반부 생략)
-「장 폴 사르트르에게」
일본의 한국 식민지 통치의 상흔을 묘사한 또 다른 시도 있다.
한국의 노인은
지금도 변소에 갈 때
조용히 허리를 일으키며
“총독부에 다녀올게”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는데
조선총독부에서 호출장이 오면
가지 않고는 못 배겼던 시대
어쩔 수 없는 사정
-「총독부에 다녀오다」 전문
얼마나 한국인이 겪은 역사의 상흔과 아픔을 잘 만져 주는 시인가. 목소리가 높지도 않으면서, 조곤조곤 풍경 속의 작은 에피소드를 등장시키면서 실감 나게 조선총독부 치하의 한국인들이 겪었을 치욕을 그리고 있다.
또한 「기대지 말고」라는 자의식에 관한 유명한 시도 있다.
더 이상 야합하는 사상에는 기대고 싶지 않다
더 이상 야합하는 종교에는 기대고 싶지 않다
더 이상 야합하는 학문에는 기대고 싶지 않다
더 이상 어떠한 권위에도 기대고 싶지 않다
-「기대지 말고」 전문
사람은 누군가에게 기대고 의지해야 살 수 있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그리고 친구나 연인 같은 동조자와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이바라기 노리코의 시 속의 기댐은 비굴한 야합 수준의 기댐을 말한다. 시인은 사상이나 종교나 학문, 그리고 권위에 기대는 것은 야합이라고 한다. 결국, 이 시는 기대는 데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자신을 믿고 떳떳하게 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하겠다.
최초로 죽는 날 공개하라면서 미리 감사와 함께 이별의 인사말을 남긴 시인
“그 사람이 떠났구나” 하고 한순간, 단지 한순간 생각해 주셨으면 그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오랫동안 당신께서 베풀어 주신 따뜻한 교제는 보이지 않는 보석처럼, 나의 가슴속을 채워서 빛을 발하고, 나의 인생을 얼마만큼 풍부하게 해 주셨는지…. 깊은 감사와 함께 이별의 인사말을 드립니다. 고마웠습니다. 2006년 3월 길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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