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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 삶의 여백 (양장)

이춘희 저 | 선우미디어 | 2024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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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56587547 / 230쪽 / 230g / 135 x 2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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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책 속에서 <우연, 삶의 여백>-파스칼 메르시어 『리스본행 야간열차』 영상이 어릿해도 흑백 텔레비전을 컬러텔레비전보다 더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튼튼한 횡목 같은 무거운 안경을 쓴, 육십을 눈앞에 둔 남자. 무릎이 나온 바지에 성글게 짠 스웨터와 낡은 재킷을 입고도 그것이 텅 빈 우아함과 맞선다고 믿는 느슨한 사람이다. 우연히 만난 그와 함께 나는 리스본의 골목을 오르내리고 폐허가 되어 이따금 박쥐와 들쥐가 돌아다니는 중등학교의 적막 속에서 얼어붙은 밤을 지새웠고 병원으로 들어가는 그를 배웅했다. 그와 나 사이에는 파스칼 메르시어의 책 『리스본행 야간열차』가 있다. 비와 함께 세차게 돌풍이 불어온 날, 고전 문헌학 교사 그레고리우스가 다리 난간에 위태롭게 선 한 여인이 강에 몸을 던지려 한다고 생각해 가방과 우산을 던지고 급하게 다가가는 것으로 시작하는 책이다. ‘절망에 빠져 분노와 사랑 사이’에 있는 듯 보인 여자가 허공으로 날려버린 종이에 있던 전화번호를 얼떨결에 그의 이마에 적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불현듯 스며든 낯선 예감이 그것을 지우려던 그의 손을 막는다. 학문의 세계 속에서 건조한 삶을 살아 ‘문두스’로, 더러는 ‘파피루스’로 불려온 그레고리우스. 동화 속에서처럼 속삭이는 듯하던 그녀의 ‘포르투게스’에 끌려 그의 인생이 고스란히 담긴 학교를 뒤로한다. 그녀를 다시 만날 수는 없었지만, 우연히 헌책방에서 포르투갈어로 된 아마데우 프라두의 『언어의 연금술사』를 얻는다. 사전을 뒤적이고 어학 CD에 귀 기울이며 몇 페이지를 읽고 작가를 찾아 무작정 리스본행 야간열차에 오르는 그. 책에 실린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것들 가운데 아주 작은 부분만을 경험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라는 생에 대한 깊은 사유가 그를 사로잡았던 것이다. 이런 문장을 만난다면 누군들 무심히 지나칠 수 있겠는가. 나 역시 그를 따라나서며 운동화 끈을 조여 매듯 마음을 다잡았다. 책을 들고 작가의 일생을 쫓는 그레고리우스는 『언어의 연금술사』를 출간한 프라두의 동생을 찾아간다. 그녀는 우상이었던 오빠가 숨진 시각을 그대로 고정시킨 채 삼십여 년을 과거의 수렁 속에서 붉은 신호등이 켜진 것처럼 머물러 있다. 박제된 듯 멈추어 있는 시간을 현재의 시각으로 맞추는 일은 그에게도 어지럼증을 일으킬 만큼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지만 마침내 돌처럼 굳어있던 그녀의 마음이 흔들리는 ‘조용한 지진’이 일어난다. 다른 하나. 그는 아마데우와 함께 독재 저항운동을 하다가 체포되었던 동지를 찾아간다. 석방 후 자신을 요양원에 유폐시킨 팔순 노인이다. 피아노를 치던 그의 손은 고문으로 손톱 두 개는 아예 없고, 온통 담뱃불로 지져져 파킨슨병에 걸린 것처럼 떨며 살아왔다. 노인에게 다가가기 위해 처음으로 담배를 피우고 목구멍이 델 것 같은 뜨거운 차를 주저 없이 마시는, 학대받은 노인에 대한 예우. 노인은 ‘기억에 깊숙이 파고드는 눈빛’으로 오랫동안 그를 바라본다. 그레고리우스의 깊은 시선과 따뜻한 심성이 드러나는 장면이다. 인품의 향기랄까. 감동 외에는 달리 표현할 말을 찾을 수가 없다. “뚜렷하지 않은 심연, 인간 행위의 표면 아래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비밀이 있을까?”라 묻던 프라두의 끝없는 사색과 치열했던 일생, 그의 삶을 관통한 철학 서적을 방불케 한 생각의 더미들은 나같이 단순한 사람까지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그러나 풍성한 사유의 세계는 때로 칼끝같이 예리해 그를 위태롭고 힘든 생의 여정으로 이끌지 않던가. 나이 탓일까. 나는 명철한 지성보다 마음을 감싸는 따뜻함에 더 뭉클해진다. 놓쳐버린 꿈을 찾는 그의 독특한 행적에서는 그레고리우스에 설레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게 느껴질 정도다. 어린 시절 페르시아를 그리며 동양학자가 되려 했으나 뜨거운 사막의 모래가 안경에 부딪히는 꿈이 반복되어 희망을 접어야 했던 그레고리우스다. 프라두가 고뇌와 혼란에 빠질 때면 찾곤 했던 허물어져 가는 중등학교의 교장실 벽에 이스파한의 사진을 붙여놓고 프라두의 글을 읽으며 캠핑을 하는 것으로 비켜 가야 했던 날들을 만회한다. ‘상상력은 우리의 마지막 성소다’라 한 프라두를 쫓아, 폐허가 된 학교를 사막으로 만드는 상상력은 그의 안에 있던 또 하나의 삶을 살아볼 수 있게 하지 않았겠는가. 따뜻하고 사려 깊은 그라면 내면의 벽에 갇힌 프라두의 영혼이라도 그곳으로 초대하지 않았을까 싶다. 맑고 깊은 우물 같았던 그레고리우스. 파피루스로 불리던 그에게 우연은 두레박으로 왔을까. 타성적 일상에서 빠져나와 타인의 삶에 봄날 이슬비처럼 스며들어, 돌처럼 굳어있던 마음을 풀어놓으며 자신도 변해가지 않던가. 리스본으로 향하며 그레고리우스가 떠올린 ‘자기 영혼의 떨림에 따르지 않는 사람은 불행할 수밖에 없다.’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말. 나는 떨림을 낯선 예감과 설렘으로 읽는다. 우리는 종종 아무런 징후 없이 삶에 불쑥 끼어들곤 하는 우연과 마주한다. 그 파장은 예사롭지 않아 오랜 여운을 남기기도 하고 때론 예상치 않던 길로 들어서게도 만든다. 그 우연이 언제나 영혼의 떨림을 동반했던가. 그레고리우스에게 다가온 우연이 웅숭깊은 그의 내면이 만들었을 공간, 그 여백에 담기는 순간 낯선 예감이 일지 않았던가. 그것을 감지하는 것 역시 예비된 사람만의 몫일 터. 낯선 예감으로 제 안에 있는 다른 삶을 경험하면서 자신에게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었으리라. 책을 읽으며 내 삶에 다가오고 떠난 사람들을, 성급하게 내디딘 걸음들을 돌아보곤 했다. 어느 날 우연히 눈에 띈 수필 강좌 안내. 시를 향하던 어린 날의 꿈이 문득 떠올랐던 일. 나에게도 우연이 두레박으로 왔을까, 글은 내 속에 든 나를 들여다보게 하지 않던가. 삼십 년도 더 지난 이야기를 다시 꺼내 보았다. 내 삶에도 영혼에 떨림을 줄 여백이 있었던가.

저자 소개

  • 저자 : 이춘희
저자 : 이춘희
부산에서 출생하여
포항여고,
이화여대 문리대 독어독문학과 졸업하고
최근에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문화교양학과 졸업했다.
<에세이문학>(1996년, 수필공원)으로 등단하였다.
산영수필문학회, 에세이문학작가회
수필문우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작품집으로 《구름은 좋겠다》(2015),
《우연, 삶의 여백》이 있다

목차

책을 내며 4

1부 쉬엄쉬엄(8편)
쉬엄쉬엄 12
꿈, 나의 해석 17
우울한 장마 22
미안, 지워지지 않는 부끄러움 27
삶, 하루를 담는 그릇 32
마음이 머무는 자리 37
Are you all right? 43
지구의 기침 소리 48

사유의 능력(12편)
허영심의 다른 얼굴 56
기억에 대한 예우 61
우연, 삶의 여백 66
시각적 산문 72
사랑이 비껴가는 길에서 77
사유의 능력 82
꿈속의 사랑 87
잉카의 눈물 92
회상에 대한 소고(小考) 97
장쾌한 유린, 소나기 102
저녁노을 108
나를 사로잡는 사람들 113

3부 희망이라는 이정표(10편)
희망이라는 이정표 120
보고 싶은 내 강아지들 125
지워진 1순위 130
그들의 모정 136
웅진 가는 길 141
태몽, 그 긍정의 씨앗 146
빗나간 계획 151
아버지와 사각모 156
어머니의 겨울 161
오지 않는 내일 165

4부 짓다 만 집(12편)
짓다 만 집 172
시간의 힘과 사용 논리 177
하얀 가면 182
지구야 미안해! 187
솔방울 192
라면 냄비 받침 197
자아의 감옥 202
멍에, 사랑의 다른 이름 207
후줄근한 장갑 212
어깨동무 216
인생 뭐 있나요? 221
미소, 그 경이로운 언어 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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