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퐁스 도데, 빌헬름 하우프, 니콜라이 바실리예비치 고골, 에른스트 테오도어 아마데우스 호프만, 기 드 모파상
저자 : 알퐁스 도데
프랑스의 소설가, 극작가. 프로방스의 님 출생. 1857년 파리에서 시집 『사랑하는 여자』로문단에 데뷔하였다. 1866년에 발표한 걸작 단편집 『풍차방앗간 편지』는 고향 프로방스 지방의 인물과 풍토를 추억하며 쓴 작품이며,「프티 쇼즈」또한 자전적인 이야기를 쓴 것이다. 그 후에 발표한 「쾌활한 타르타랭」은 「알프스의 타르타랭」과 「타라스콩 항구」등과 함께 3부작을 이룬다. 그는 자연주의 사실주의 작가로 불리기도 하나, 어느 유파에도 속하지 않는 독자적 경지를 이룩하였다. 그의 작품은 재치 있고 가벼운 아이러니와 인생에 대한 온정적인 공감과 유연한 감수성을 풍긴다. 그의 회상록 『어느 문필가의 회상』은 당시의 문단을 알 수 있는 귀중한 문헌이다. 주요 작품으로 「월요 이야기」「젊은 프로몽과 형 리슬레스」「자크」「나바브」「파리 30년」「누마 루메스탕」「전도사」「사포」「아를의 여인」등이 있다.
저자 : 빌헬름 하우프
빌헬름 하우프(Wilhelm Hauff)는 독일의 시인, 소설가, 슈바벤 시파(詩派)에 속하는 낭만주의 작가로 1802년 11월 29일 슈투트가르트에서 태어났다. 튀빙겐대학에서 신학과 철학을 공부하였으며 가정교사로 생계를 꾸리다가 코타의 조간신문 편집장으로 일했다. 다재다능한 그는 작가로서 낭만주의와 사실주의적 요소가 버물어진 『유대인 쥐스』, 『리히텐슈타인 Lichtenstein (1827)』 같은 소설을 썼다. 특히 그의 『하우프 동화집』 덕분에 그는 세계적으로 알려졌으며, 25세 생일을 앞두고 고향에서 짧은 생을 마쳤지만 그가 지은 노래와 작품에는 여전히 그의 자유로운 영혼이 숨쉬고 있다.
저자 : 니콜라이 바실리예비치 고골
체호프, 푸시킨과 더불어 러시아의 대문호로 일컬어지는 니콜라이 고골은 1809년 우크라이나 폴타바의 소지주 집안에서 장남으로 태어나 친러시아적인 우크라이나-러시아 정교 문화를 접하며 성장했다. 10대에 러시아 낭만주의 문화를 접하기도 했던 그는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상경해 하급 관리로 생활하면서 낭만주의적인 우크라이나 창작 설화집 『디칸카 근교 마을의 야회(Vechera na khutore bliz Dikan’ki)』를 발표한다. 이 설화집은 푸시킨, 주콥스키 등 당시 최고 문인들과 벨린스키 같은 비평가들로부터 찬사를 받으며 대중적인 인기를 누렸고, 고골은 이내 러시아 문단의 총아로 떠오른다. 그는 문학 비평과 역사 비평을 수행하며 페테르부르크에서 역사 교사와 역사학 교수를 지내다가 키예프대학교의 역사학 교수에 지원하는데, 그 자리를 얻지 못하자 ‘작가로서도 사회에 봉사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전업 작가의 길을 걷는다. 1835년 초 우크라이나를 배경으로 한 소설집 『미르고로드(Mirgorod)』와 문화-역사 비평 에세이들로 구성된 『아라베스크(Arabesques)』를 출간하고, 1836년에는 희곡 「감찰관(Revizor)」과 단편 소설 「코(Nos)」를 발표하면서 푸시킨과 함께 러시아 최고 작가의 반열에 올라섰다. 그러나 독자와 관객들이 「감찰관」을 사회 풍자 혹은 가벼운 소극(笑劇)으로만 인식하고, 일부 관객은 이를 러시아에 대한 모독이라고 분개하는 데 상처를 받고 1836년 말 유럽으로 떠나 1848년까지 로마에 거주하면서 창작 활동에 전념한다. 1842년에 장편 소설인 『죽은 혼』 1부를 발표했으며 이후 예루살렘으로 성지 순례를 다녀온 직후 모스크바에 정착하여 종교적인 정진에 힘쓰면서 2부에 전념하여 1851년 완성본을 탈고한다. 고골은 자신의 영적 지도자였던 정교 수도사에게 『죽은 혼』 2부의 평을 부탁했으나 부분적으로 미약하다는 비판을 받고 낙담해 원고를 불태웠다. 이후 생의 의미를 잃어버린 고골은 정교의 대정진 기간에 금식을 극단적으로 수행하다가 눈을 감았다.
저자 : 에른스트 테오도어 아마데우스 호프만
독일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작가. 문학뿐 아니라, 음악, 미술 분야에서도 재능을 발휘하여 낭만주의의 ‘보편 예술’ 정신을 구현한 독보적인 인물로 꼽힌다. 1776년 프로이센 쾨니히스베르크에서 변호사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생애 대부분을 법원 관리로 생계를 유지했으며, 1799년 징슈필 「가면」 작곡을 필두로 작곡과 평론 등 음악 활동으로 예술가의 길을 시작한다. 오페라단 단장직에서 해임당하고 생활고에 시달리던 시기인 1814년에 그간 집필한 「황금 항아리」 등을 모아 펴낸 소설집 『깔로풍의 환상집』이 선풍적 인기를 끌며 문학계 유명인사로 자리 잡는다. 이후 8년간 왕성한 집필 활동을 이어가며 장편소설 『악마의 묘약』(1815~16), 「모래 사나이」 등을 수록한 소설집 『밤 풍경』(1816~17), 중편소설 「키 작은 차헤스, 위대한 치노버」(1819), 「호두까기 인형과 생쥐 왕」 「스뀌데리 부인」 등을 수록한 소설집 『세라피온의 형제들』(1819~21)을 잇달아 펴낸다. 건강이 악화되는 와중에도 매년 수백 페이지를 써내며 『브람빌라 공주』(1820) 『수고양이 무어의 인생관』(1820~21) 같은 장편소설과 소설집의 후속권들을 쉼 없이 출간한다. 1822년 위중한 상태로 병석에서 『사촌의 구석 창문』을 구술로 마무리하고, 당국과의 마찰로 검열당한 『벼룩 대왕』을 출간하는 등 “죽기 전에는 살아 있기를 멈추지 않”으며, 온몸이 마비된 채 구술을 하던 중 생애를 마감했다. 환상문학의 전범이자 장르문학의 고전, 그로떼스끄의 대가, 심리묘사의 거장으로서 도스또옙스끼, 고골, 보들레르, 발자끄, 포 등 무수한 작가들을 매료했고, 음악계에서도 차이꼽스끼, 슈만, 오펜바흐 등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며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저자 : 기 드 모파상
1850년 프랑스 노르망디의 미로메닐에서 태어났다. 열두 살 때 부모의 이혼 이후 모빠상은 어머니와 함께 노르망디 해안의 작은 마을 에트르타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열세 살 때 입학한 신학교에서는 억압적인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해 퇴학당하고, 이후 루앙 고등학교를 거쳐 파리에서 법학을 공부한다. 이즈음 어머니, 외삼촌과 절친한 사이이던 플로베르의 지도로 문학 수업을 시작한다. 모빠상은 1870년 프랑스와 프러시아의 전쟁이 발발하자 자원입대하여 전장에서 참혹한 패전을 겪었고, 이후 해군부와 교육부 등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젊은 시절 심취했던 쇼펜하우어의 철학이 그의 문학 속에 나타나는 비관적 세계의 바탕을 이룬다면, 이렇게 직접 겪은 어두운 사건들, 즉 부모의 불행한 결혼과 아버지의 부재, 패전의 치욕, 사무원 생활의 권태 등은 그 바탕을 채우는 주제로 등장하게 된다. 플로베르를 통해 여러 작가들, 특히 에밀 졸라를 알게 된 모빠상은 ‘메당’ 모임에도 합류하면서 본격적으로 문학의 길로 들어선다. 프랑스-프러시아 전쟁을 주제로 한 단편집 『메당의 저녁』에 발표한 「비곗덩어리」(1880)가 큰 성공을 거두면서 그는 공무원 생활을 그만두고 글쓰기에 전념할 수 있게 된다. 이후 10여 년 동안 모빠상은 평생을 괴롭힌 매독의 고통, 특히 그로 인한 눈병에도 불구하고 정력적인 작품 활동을 했고, 『텔리에 집』(1881), 『피피 양』(1882), 『두 친구』(1883), 『어느 인생』(1883), 『벨아미』(1885), 『목걸이』(1885), 『오를라』(1885), 『피에르와 장』(1888) 등 약 300여 편의 소설을 써냈다. 모빠상의 작품들은 인간 내면에 파고드는 특유의 냉정한 묘사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이즈음 그는 매독으로 인한 신경쇠약이 시작돼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게 된다. 그가 방랑벽에 가까울 정도로 충동적인 여행을 즐기고 때로는 요트 ‘벨아미’호를 타고 항해를 떠난 것 역시 병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한 수단이었을 것이다. 결국 모빠상은 1892년 자살을 시도하고, 이듬해 마흔세 살의 이른 나이로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한다.
그림 : 신웅
만화가이며 일러스트레이션 작가다. '시이튼 동물기', '한국전래만화 콩쥐 팥쥐', '한문 고사성어', '허균', '제국의 아침', '상도', '삼국지', '과학 이야기' 등을 그렸으며 그 외 다수로 창작에 전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