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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8150577 / 144쪽 / 187g / 128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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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모든 문학 작품이 인간의 외부세계에 대한 경험을 표현하지만, 특히 ‘시 작품’은 의식에 표상되는 그 경험을 감각적으로 정서적으로 표출하는 문학 장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삶의 궤적을 통해 얻어진 그 경험의 내용을 알고 이해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시인의 말〉을 보면, “뭍을 떠나고/ 시는 아스라이 멀어졌다//색色을 버리니/ 비로소, 나는 섬이 되었다”라는 아름다운 시가 있는데, 시인이 “제주로 이주”하여 살고 있다는 것 이상의 정보는 제공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오히려 아무런 선입견 없는 객관적 시각으로 작품을 대하고, 자신만의 비평적 설득력에 의해 독자와 함께 작품을 향유할 수 있는 기회로 생각하고, 「제주 가시리」의 독서를 시작한다. 발자국 따라 굽이굽이 녹산로의 숲길 따라 걷는다 사월의 뇌관은 빙하기의 기압과 맞붙어 병풍으로 둘러싸여 있네 길 따라 가시리 풍차의 동쪽 마을 막막한 능선을 떠안고 동남쪽 저, 깊은 한라의 심연에 닿았네 아른대는 수평선 뒤로 하고 먼 지평선에 붙은 봄날의 사진, 갤러리 김영감은 보이질 않네 비경은 바람 부는 탐방 길에 몰려있네 맨발의 평원 큰 바람개비 장엄한 풍광 빙글빙글 돌아가는 지친 발걸음 네모난 의자에 앉아있네 인생사진 없는 나는 순례자, 오메기떡 청귤 에이드 이주민의 정착지에서 보드라운 속살을 내보이는 유도화는 지고 누군가 꺾어놓은 가지에 붉은 바람의 생채기가 아물어가네 잠시 머물다 가는 갑마장 길 조랑말과 꽃잎을 맞으며 노랑 물결 따라 걷는 탐라의 여행자, 전망대 왼쪽으로 파란 손수건을 흔들다가 울퉁불퉁 어느 모살 밭 꼼지락거리는 꽃무릇도 부활초를 켜는, -「제주 가시리」 전문 화자는 “녹산로”라는 숲길을 걷고 있다. 주위의 여러 풍광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 볼일 보러 바삐 걷는 길은 아닌 것 같다. 여유 있는 혼자만의 산책길이다. “사월의 뇌관은 빙하기의 기압과 맞붙어 병풍으로 둘러”싸여 있다는 계절에 대한 묘사가 눈에 띈다. ‘뇌관’은 폭탄의 점화장치로 터지면 주위는 불바다가 된다. 이제 지척인 사월의 봄은 곧 ‘녹산로’의 숲길에도 점화되어 온통 불바다처럼 번질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병풍처럼 둘러싸인 “빙하기의 기압과 맞붙어” 겨울의 찬 기운이 남아 있다. 아주 감각적인 ‘이른 봄’의 비유다. 이 작품에서의 ‘가시리’는 고유명사로 한 마을의 이름을 가리킨다. 그러나 시제는 물론 전체 작품집의 표제로도 견인된 이 어휘가 단지 한 동네 이름만을 말하고자 사용된 것은 아닐 것이다. 여기에는 커다란 함의가 내재하고 있다. “꺾어놓은 가지”에 아물어가는 “바람의 생채기”라는 미학적 존재가 창출되는 원천적 기능을 발하는 어휘로 작동되고 있다. ‘가시리’라는 말을 대하면 우리는 우선 사랑하는 사람과의 별리를 애절하게 노래한 고려 가요를 떠올리게 된다. 통곡의 눈물 대신 마음속으로 슬픔을 태우는 ‘애이불비哀而不悲’의 이별 이야기-사랑하는 임은 나를 버리고 떠나려 한다. 붙잡고 싶지만 내가 더 싫어질까 봐 서럽게 보내며 다시 돌아오기를 기도할 수밖에 없다는 애절한 이야기다. 여기에는 그리운 사람을 보내야만 하는 ‘상실의 아픔’이 서려 있다. 그런데 떠나가는 그 임의 뒷모습은 본문의 “잠시 머물다” “조랑말과 꽃잎을 맞으며 노랑 물결 따라” 떠나가는 사람의 모습과도 같다. 그러나 다시 돌아오기를 기도하는 ‘가시리’의 화자처럼 시인 역시 그 임이 “모살밭 꼼지락거리는 꽃무릇”을 보며 다시 “부활초”처럼 언젠가 꼭 돌아올 것임을 믿고 기도하고 있다. 시인은 이런 예민한 감성적 자세는 배제하면서, 몸집이 작은 귀여운 ‘조랑말’을 불러 동행한다. 더구나 ‘꽃잎까지 맞으며’ 함께 걷고 있다. 얼마나 아련하고 따뜻한 정경인가. 그야말로 속으로는 슬프지만, 겉으로 그것을 나타내지 않는 ‘애이불비’의 아름다운 자세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따뜻한 시선으로 ‘부활초’를 본다. 임과 함께 떠나버린 두 사람의 사랑이 다시 ‘부활’할 날을 기다리며. 시인의 말 네 권의 시집을 묶은 후, 뭍을 떠나고 시는 아스라이 멀어졌다 색色을 버리니 비로소, 나는 섬이 되었다
1부
손바닥선인장·12
제주 가시리·13
고요를 묻다·14
개화기·16
나의 부력·18
가시 꽃·19
이 봄밤의 향기는·20
그늘에 스미다·22
댕유자처럼·24
마스크 시대·26
불면의 방·28
가을 나그네·30
간극·32
싸락눈 내리는 날의 시·34
2부
곡우穀雨·38
고독한 러너·40
그믐·43
균열의 봄·44
금등화·46
달관의 힘·47
기일忌日·48
나비처럼·50
눈사람·52
꿈꾸는 늦가을·54
만추晩秋·56
말씀의 사원·58
향기에 젖다·60
먹낭·62
3부
무극無極·66
색色을 버리다·68
아슬하게 익어가는·70
바람의 노래·71
바다가 쏟아지다·72
비문·74
온기에 대하여·76
바람개비·78
백년초·80
비양도·82
비양봉·83
분화구를 지나다·84
부암동·86
봄이 쓰다·88
4부
격랑의 저편에서·90
포구의 밤은 가등을 켜고·91
新, 세한도·92
불두화·93
재회·94
접목의 기억·96
제주삼춘·98
지나간다·100
풍속風速·102
하귤나무 심기·104
장마·106
봄의 파이터·108
자유부인·110
반려伴侶의 장소·112
김 노인의 시간·114
해설 | 호병탁_‘짠 물에 부르튼 맨발’의 향내와 그 아름다움·1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