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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기의 선각자 서재필

김삼웅 저 | 두레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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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74431600 / 264쪽 / 370g / 140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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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갑신정변과 서재필 서재필은 스물한 살 때인 1884년에 김옥균과 박영효, 홍영식 등 개화당 인사들과 청나라에 의존하려는 척족 중심의 수구당을 몰아내고, 실질적인 독립과 개혁정치를 이룩하고자 갑신정변을 일으켰다. 그러나 수구세력이 끌어들인 위안스카이(袁世凱)의 청나라군에 진압되어 갑신정변은 삼일천하로 막을 내렸다. 서재필은 목숨을 구하기 위해 고국을 떠나야만 했고 이후 일본을 거쳐 미국으로 망명했다. 서재필은 갑신정변 당시 휘하의 사관생도들을 지휘하여 고종을 호위하고 수구파를 처단하는 역할을 맡았다. 갑신정변이 실패한 뒤 그의 가족은 역적으로 몰려 부모·형제와 아내는 음독자살하고, 동생은 참형을 당했으며, 두 살 된 아들은 돌보는 이가 없어 굶어 죽었다. 서재필 박사(doctor) 일본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서재필은 미국으로 귀화한 1호 한국인이 된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컬럼비안 의과대학(오늘날 조지워싱턴 대학교)에서 인턴 과정을 수학한 뒤 의사 면허증도 땄다. 서재필은 박사 학위를 받은 적이 없다. 각종 기록에서 ‘서재필 박사’라고 쓰는 것은 흔히 의사를 ‘닥터(doctor)’라고 하는 데서 온 착오인 듯하다. 『독립신문』과 독립문, 그리고 다시 추방 서재필이 미국에서 정착하는 사이에 국내 정세는 급변했다. 갑오개혁(1894~1896)이 일어나 개혁정치가 단행되고, 서재필 등에게 내려졌던 역적의 죄명이 벗겨졌다. 이로써 죄인의 신분에서 벗어난 서재필은 1895년 말에 귀국하고, 중추원 고문에 임명된다. 망명한 지 12년 만에 귀국한 서재필은 백성들의 계몽이 중요하고, 개화정책을 국민에게 알리기 위해서는 신문을 발행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판단하여 1896년에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신문인 『독립신문』을 창간했다. 창간일인 4월 8일은 오늘날 ‘신문의 날’이 될 만큼 『독립신문』의 기능은 막중했다. 『독립신문』은 최초로 한글 전용과 가로쓰기와 띄어쓰기를 함으로써 우리나라 한글이 보급되고 발전하는 데에도 크게 기여했다. 서재필은 『독립신문』을 창간한 데 이어 독립협회를 조직하고, 만민공동회를 열어 개화사상을 대중화시키는 데 기여했다.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는 우리나라 최초의 시민단체 역할을 하면서 입헌군주제를 주창하고, 정부 대신들의 부정부패를 규탄하고, 열강들의 이권 침탈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또한 청나라 사신을 맞아들이던 영은문이 헐린 자리에 프랑스 개선문을 본떠서 독립문을 세웠다. 『독립신문』과 독립협회, 만민공동회는 줄기차게 수구파의 국정 농단과 이와 결탁한 열강의 이권 침탈을 폭로·비판했다. 그러자 수구파 정부와 국제 열강들은 이들의 중심에서 서재필이 작용한다고 보고 그를 미국으로 추방했다. 그가 다시 쫓겨나기 전까지 2년여 동안 한국에서 벌인 여러 가지 활동은 우리나라 개화운동사에 큰 비중을 차지한다. 당시 그 누구도 그의 업적을 넘어서기 어렵다. 그런데 또한 이 시기에 그의 납득하기 어려운 일탈 행위도 없지 않았다. 미국에서도 독립운동에 매진 다시 미국으로 돌아간 서재필은 생업에 종사하다가 1919년에 국내에서 3·1 혁명이 벌어지자 필라델피아에서 ‘한국회의’를 개최하고 월간지 『한국평론』을 발행했다. 상하이 임시정부가 워싱턴에 설치한 구미위원회에 참여하여 독립운동도 전개했다. 펜실베이니아주에서 병원을 개업해 생계를 꾸려나갔다. 서재필은 1922년에 워싱턴에서 군축회의가 열리자, 우리나라 독립을 세계 여론에 호소했다. 1925년에 하와이에서 범태평양 회의가 열렸을 때는 우리나라 대표로 참석하여 일제의 만행을 규탄하면서, 한국의 독립을 각국 지도자들에게 호소했다. 서재필이 이렇게 조국의 독립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사이에 병원은 경영이 어려워지고 결국 문을 닫아야 했다. 45년 만의 귀국, 그리고 서거 서재필은 일제가 패망한 뒤 미국 정부의 한국문제 수석고문(미군정최고의정관)에 위촉되어 망명 45년 만에 환국했다. 미군정 측은 한때 이승만 대신 서재필을 남한의 집권자로 옹립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서재필은 이 같은 일로 이승만의 견제를 받다가 정부가 수립된 뒤인 1948년 9월 11일에 홀연히 미국으로 돌아갔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1월 5일, 고국의 민주통일국가를 염원하던 서재필은 필라델피아 근교 몽고메리 병원에서 87세를 일기로 눈을 감았다.

저자 소개

  • 저자 : 김삼웅
저자 : 김삼웅
독립운동사 및 친일반민족사 연구가로, 현재 신흥무관학교 기념사업회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대한매일신보≫(지금의 ≪서울신문≫) 주필을 거쳐 성균관대학교에서 정치문화론을 가르쳤으며, 4년여 동안 독립기념관장을 지냈다.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 위원, 전 제주 4·3사건 희생자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위원회 위원, 백범학술원 운영위원 등을 역임하고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위원, 친일파재산환수위원회 자문위원,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건립위원회 위원, 3·1운동·임시정부수립100주년기념사업회 위원 등을 맡아 바른 역사 찾기에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역사·언론 바로잡기와 민주화·통일운동에 큰 관심을 두고, 독립운동가와 민주화운동에 헌신한 인물의 평전 등 이 분야의 많은 저서를 집필했다. 주요 저서로 『한국필화사』, 『백범 김구 평전』, 『을사늑약 1905 그 끝나지 않은 백년』, 『단재 신채호 평전』, 『만해 한용운 평전』, 『안중근 평전』, 『김대중 평전』, 『안창호 평전』, 『빨치산 대장 홍범도 평전』, 『김근태 평전』, 『10대와 통하는 독립운동가 이야기』, 『몽양 여운형 평전』, 『우사 김규식 평전』, 『위당 정인보 평전』, 『보재 이상설 평전』, 『의암 손병희 평전』, 『조소앙 평전』, 『백암 박은식 평전』, 『나는 박열이다』, 『신영복 평전』, 『현민 유진오 평전』, 『외솔 최현배 평전』, 『3·1 혁명과 임시정부』, 『장일순 평전』, 『의열단, 항일의 불꽃』, 『수운 최제우 평전』, 『꺼지지 않는 오월의 불꽃: 5·18 광주혈사』, 『운암 김성숙』, 『이승만 평전』, 『김재규 장군 평전』, 『우당 이회영 평전』, 『다산 정약용 평전』, 『겨레의 노래 아리랑』 등이 있다.

목차

들어가는 말: 서재필은 누구인가 5
1. 격동기에 태어나다13
2. 청소년 시기 19
3. 갑신정변의 격류 속에서 37
4. 1차 망명 시기 57
5. 다시 개혁에 앞장서다 79
6.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 창설하다 117
7. 미국으로 추방 137
8. 기미년 3·1 혁명 149
9. 워싱턴 회의에 진력하다 167
10. 항일전선에서 생업전선으로 179
11. 국내외 지도자들에게 편지를 보내다 195
12. 미·일 전쟁 시기 211
13. 반세기 만의 환국 219
14. 미국 귀환과 서거 247
주(註) 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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