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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일라 - 은행나무세계문학 에세 16

메릴린 로빈슨 저 | 은행나무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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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7373847 / 508쪽 / 508g / 130 x 1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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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난 더는 길을 잃어버린 아이가 아니야” 외로움과 상실을 딛고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는 여정 아이는 어둠 속에서 현관 입구에 있는 계단에 앉아 추위에 떨며 자기 몸을 껴안고 있었다. 울다 지쳐 잠들기 직전이었다. 더는 소리를 지를 기력도 없었고, 어쨌든 사람들은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 하지만 아이가 거의 잠들었을 무렵 길에서 달(Doll)이 나타나 너무나 불쌍한 상황에 처한 아이를 발견했다. 달은 아이를 안아 올리고 자신의 숄로 몸을 덮어주면서 말했다. “흠, 우리는 갈 곳도 없는데. 어디로 가야 할까?” _9-10쪽 소설은 어린 시절 기억에서 시작한다. 누구도 돌보지 않아 방치된 채 현관 계단에 쭈그리고 앉아 있던 어린아이의 기억. 달이라는 떠돌이 여자가 황야의 천사처럼 나타나 아이를 훔쳐 달아난다. 달은 아이를 데려가 ‘라일라’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아픈 아이를 정성껏 먹이고 간호하고 씻기고 재우고는, 살라고 말한다. 라일라는 그렇게 죽을 고비를 넘기고 이름과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 라일라는 달의 아이로 성장한다. 일거리를 찾아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는 노동자 무리의 일원으로 달과 함께 다니며 먹고살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뭐든지 하고, 먹어도 죽지 않는 것들이 뭔지, 길에서 만나는 낯선 사람들은 어떻게 경계해야 하는지 배운다. 정작 본인은 글을 읽을 줄 모르면서도 달은 자신보다는 나은 인생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라일라가 학교에 다니며 글과 산수를 배울 수 있도록 한동안 노동자 무리를 떠나 작은 마을에 정착하기도 한다. 사회적 관점에서는 라일라를 납치한 것이나 다름없는 달에게는 한곳에 일정 기간 이상 머무르는 일이 커다란 위험을 무릅쓰는 것일지라도. 달은 라일라에게 살아남는 법을, 그러나 단순히 생존하는 것을 넘어 사람답게 살아가는 법을 가르친다. 그녀는 한 아이를 보살폈다. 그랬다, 그녀는 아이를 훔쳤다. 아마도 죽음으로부터. 외로움으로부터. 그리고 그 아이를 꽤 괜찮은 여자, 하루 품을 파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으로 키워냈다. _220쪽 그러나 달이 예상치 못한 일로 더 이상 라일라와 함께할 수 없게 되자 라일라는 또다시 혼자가 되어 외로움 속에서 길을 잃고 수년간 이곳저곳을 배회한다. 어느 날 쏟아지는 비를 피해 길리어드라는 아주 작은 시골 마을에 있는 교회에 우연히 들어서서 세례에 대해 설교하는 목사와 눈이 마주치기 전까지는. 목사가 하는 말은 이해할 수 없어도 촛불과 노래는 마음에 든다고 생각한 라일라는 교회에 몇 번 더 찾아가고, 어차피 이곳을 떠날 것이라면 목사에게 말을 걸어봐도 좋겠다고 결심한다. 그래서 어느 이른 아침 목사의 집에 찾아가서 인생을 바꿀 질문을 던진다. 라일라가 말했다. “내가 여기에 왜 왔는지 모르겠어요. 그건 사실이에요.”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기왕 온 김에, 본인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 들려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그 이야기는 하지 않아요. 난 최근에 그저 세상의 어떤 일들이 왜 그렇게 일어나는지 궁금해하고 있었을 뿐이에요.” “아! 그렇다면 당신이 시간이 있는 게 다행이군요. 나도 거의 평생 그 문제로 고민해왔으니까요.”_54쪽 그 질문에서부터 라일라와 존 에임스 목사의 인연이 시작되고, 그와의 관계에서 라일라는 난생처음으로 과거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안정감을 느낀다. 소설은 새로이 찾은 안전함 속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왜 버려져야 했는지, 그런 자신을 안아 올려 보살펴준 달은 누구인지, 세상은 왜 그렇게 모질게 돌아가는지와 같은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며 과거의 삶과 삶이라는 것 자체를 탐구해나가는 라일라 내면의 여정을 따라간다. 고통스러운 생존에서 희망의 실존으로 새로이 얻은 목소리로 들려주는 한 여성의 담담하고 아름다운 이야기 달이 라일라에게 몸으로 부딪치며 살아남는 법을 가르쳐줬다면, 존 에임스 목사는 그렇게 살아온 경로를 되짚을 수 있는 말들을 가르쳐준다. 그저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야 했던 라일라는 가진 언어가 별로 없었다. ‘심기’나 ‘건초 만들기’처럼 때마다 해야 하는 일로 각 계절을 구분했을 뿐 계절을 표현하는 말이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고, 자신이 살고 있는 나라를 미합중국이라고 부른다는 것도 몰랐다. 일거리를 찾아 농장과 과수원을 전전하며 살았던 노동자로서 대공황이 몰고 온 궁핍과 척박함을 온몸으로 겪었으면서도 라일라는 몇 년 후에야 그걸 대공황이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고백한다. 계절과 미합중국, 대공황처럼 직접 겪고 살아내면서 몸으로는 이미 알고 있는 것들, 그러나 언어가 없어서 누군가와 말을 할 수도, 혼자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것들에 이름을 붙일 수 있도록 목사는 조금씩 언어를 찾아준다. 라일라는 실존에 관해선 조금 안다. 그것이 그녀가 아는 거의 유일한 것이었는데, 그것을 가리키는 말은 노인에게서 배웠다. 마치 미합중국 같은 말이었다. 어쨌든 뭐라고 불러야 하긴 하니까. 밤과 아침, 자는 것과 일어나는 것. 굶주림과 외로움과 피로. 그러고도 여전히 그걸 더 원한다. 실존. _136쪽 이렇듯 먹고사는 데에 필요한 최소한의 도구로서만 기능하던 라일라의 언어는 목사를 만나면서 점점 확장된다. 그러나 목사가 제공하는 종교라는 틀을 통해 ‘실존의 의미, 인간 삶의 의미’를 처음 마주하면서도 라일라는 목사의 세계에 그대로 편입되는 대신 경험으로 알고 있는 사실들을 기반으로 자신만의 해석을 만들어내며 정체성을 찾아나간다. 성경을 대하는 라일라의 태도도 마찬가지다. 라일라가 성경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종교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라 그 오래된 책에 놀랍게도 라일라가 삶에 대해 가지고 있던 의문들이 이미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견뎌야 했던 지난 삶에 대한 실마리로서 라일라는 성경을 읽고, 평생 그 텍스트를 읽고 공부하고 설교해온 목사에게 질문을 던진다. 라일라가 말했다. “당신 그 부분 알죠. ‘네가 피투성이로 버둥거리는 것을 보았고’라는 부분 말이에요. 그건 누가 말하고 있는 건가요?” “주님이시죠. 하나님이요. (…) 물론 그건 비유예요. 에스겔은 시로 가득 차 있어요. 성경의 다른 권들보다 훨씬 더 많은 시와 우화와 환영들을 담고 있죠.” (…) “음, 하나님이 거기서 말한 건 진실이에요. 그건 내가 잘 아는 거거든요.” “그래요. 당신 말이 정말 옳아요. 나는 그게 더 깊은 차원에서 진실이 아니라는 뜻으로 말한 게 아니에요. 그 말씀이 실재하는 뭔가를 묘사하는 말이 아니라는 뜻도 아니었고요.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었어요.” 그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아, 라일라. 더 말해줘요.” _232-233쪽 라일라와 목사 사이에는 성경과 실존과 세상에 대한 질문과 답이 끊임없이 오간다. 그러나 반복되는 문답은 과녁을 향해 날아가는 화살처럼 정답을 향해 일직선으로 이어지는 궤적을 그리는 대신 두 사람 안에 층층이 쌓여 각각의 내면을 변화시키고 관계에 변화를 만들어낸다. 그렇기 때문에 소설을 관통하며 이어지는 둘의 대화는 라일라가 새로이 알게 된 언어와 사고의 틀로 과거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라일라와 목사가 나누는 정의하기 어려운 사랑을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공고히 확립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라일라는 궁핍하고 힘든 현실 속에서도 늘 최선을 다해 모든 것을 주려 한 달의 사랑과 그 폭풍과도 같았던 실존을 돌아보고 이해할 수 있도록 위안과 안전을 주는 존 에임스 목사의 사랑으로, 들판에 버려져 돌봐주는 사람 없이 피투성이로 버둥거리던 어린아이에서 스스로의 존재와 삶 그리고 자신이 살아왔으며 앞으로도 살아가야 할 세상을 탐구하고 이해하는 여성으로 변모하고 성장한다. 고통스럽고 척박한 인생을 살았음에도 마음 깊이 간직하고 있던 삶과 사람에 대한 따뜻한 애정을 되찾아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는 라일라의 솔직하고 담담한 목소리는 믿을 수 없는 감동을 선사한다.

저자 소개

  • 저자 : 메릴린 로빈슨
저자 : 메릴린 로빈슨 (Marilynne Robinson)
1943년 아이다호주 샌드포인트에서 태어나 브라운여자대학의 전신인 펨브로크대학과 워싱턴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했다. 1980년에 발표한 데뷔작 《하우스키핑》은 펜/헤밍웨이문학상을 수상하고 퓰리처상 최종 후보에 올랐으며, ‘타임 선정 100대 영문 소설’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 이후 하퍼스매거진과 뉴욕타임스북리뷰에 에세이와 서평을 발표하며 논픽션 집필에 매진했다가 20여 년 만인 2004년 두 번째 소설 《길리아드》를 발표하여 2004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과 2005 퓰리처상을 잇달아 수상했다. 《홈》(2008)으로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에 오르고 오렌지문학상을 수상했다. 2014년에 네 번째 작품 《라일라》로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을 수상했으며, 2020년에 《잭》을 발표했다.
우아하고 아름다운 필체로 인간의 본질과 종교를 탐구하며, 미국의 가장 훌륭한 작가이자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데뷔 이래 40여 년 동안 단 다섯 편의 소설을 발표했으나 매 작품 비평적 호평과 대중의 사랑을 받으며 미국 문학의 새로운 고전을 써 내려가는 작가로 자리매김하였다.

역자 : 박산호
화장품 대리점을 하느라 바빴던 부모님은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한 달 전 큰딸이 글자를 하나도 못 읽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초속성 단기 과외를 받게 했다. 그렇게 한 달 동안 부모님이 아는 아저씨 집에서 특훈을 하고 문자의 세계에 입문했다. 학창 시절 내내 유일한 취미인 소설 읽기에 빠져 있다가 대학교 졸업반이 돼서야 학점은 엉망이고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음을 깨닫고 뉴질랜드로 도피성 어학연수를 떠났다. 오클랜드 중고 서점에서 우연히 스티븐 킹의 《쿠조》를 샀다가 밤을 새워서 읽고 영어 원서라는 두 번째 문자의 세계에 입문했다. 이후 번역가가 되어 읽고 싶은 소설을 원서로 실컷 읽고 번역하는 가난한 성덕의 삶을 살다가 제대로 영국 문학을 공부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 뒤늦게 영국 브루넬 대학원에 입학했다. 배움을 추구하기 위해 물 건너 영국까지 갔지만 대학원에서는 토론식 수업만 한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매일 눈물을 흘리며 두꺼운 영어 소설을 찾아 읽고 수업 준비를 했다. 그러다가 영국인들에게서 특유의 민족성 비슷한 것을 감지하고, 그 힌트를 찾기 위해 19세기 영국 여성 작가들의 소설을 연구해보겠다는 무모한 야심을 품었다. 어렵기 그지없는 19세기 영어를 공부하며 다시 한 번 피눈물을 흘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현대 소설을 주제로 논문을 쓸 것을……. 내 발등을 내가 찍었다. 이렇게 소설을 주야장천 읽는 인생을 보내다가 급기야 《너를 찾아서》라는 스릴러 소설을 집필해 2022년에 발표했다.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에서 ‘영국 드라마와 영화로 읽는 영국 문화’를 연재하고 있고 다양한 매체에 다수의 칼럼을 게재해왔다. 《세계대전 Z》, 《토니와 수잔》, 《차일드 44》, 《사브리나》 등 80권이 넘는 소설과 그래픽노블을 우리말로 옮겼고, 《어른에게도 어른이 필요하다》, 《번역가 모모 씨의 일일》(공저), 《우리 지금, 썸머》(앤솔로지), 《단어의 배신》 등을 썼다. 에세이집 《생각보다 잘 살고 있어》는 웹툰이 제작되어 연재되었다.

목차


라일라 9

해설 소통과 애정을 통한 정상으로의 회귀_이승복 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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