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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간

청어

정명숙 저 | 선우미디어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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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56587424 / 206쪽 / 354g / 135 x 2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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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책 속에서 <청어> 발걸음을 멈추었다. 얼마 만인가. 불빛에 반짝이는 청어의 등살이 단단하다. 생을 보존시켜주던 날카로운 가시를 살 속에 감추고 옆으로 누운 몸가짐이 조신하다. 한때는 몸값 비싼 어느 여인과 비교되는 영광을 누린 주걱턱이다. 돌출된 아래턱을 바라보고 있으면 우스꽝스러워 가시가 많아 주의해야 할 생선이란 걸 잊고 만만하게 여기게 된다. 담홍색에 다소 푸른빛을 띠고 있는 몸빛은 싱싱해 보이고 무엇보다 둥근 비늘이 잘 벗겨져 손질하기 좋다. 날씨가 추워야 어물전 좌판에 올라오는 청어다. 어획량이 줄어 시장보다는 대형상점 어물전에서나 만날 수 있는 귀한 몸이 되었다. 고등어나 꽁치보다 지방이 많아 감칠맛이 좋다. 눈에 띄면 망설이지 않고 산다. 어종으로 분류되는 것들의 숨겨진 가시가 밥상 앞에서 나를 긴장시키지만, 청어는 더욱 신경 쓰이는 어종이다. 세심하게 살을 분리해도 작은 가시가 목에 걸리면 고통으로 인해 밥 먹는 일을 중단해야 한다. 스스로 빠지거나 빼내지 않으면 평범한 일상마저 흔들린다. 값싸고 맛있어 서울의 가난한 선비들이 잘 먹는 고기라 하여 명물기략名物機略에 비유어肥儒漁로 표기했다는 청어에 굵은 소금을 발라 구웠다. 기름을 바르지 않아도 노란 기름이 배어 나와 코끝에 맴도는 냄새가 식욕을 당긴다. 약속이라도 한 듯 밥상 앞에 앉은 식구들의 눈이 내게로 향한다. 접시 위에 놓인 몸을 해체했다. 커다란 알이 들어있다. 알밴 청어는 이름을 바꿔 구구대라 불러야 한다. 척추를 드러내면 잔뼈가 그대로 남는다. 균형 잡힌 뼈의 무늬가 촘촘하다. 느긋한 사람이면 잔뼈를 꼭꼭 씹어 먹겠지만 대부분 그러질 못하니 일일이 가시를 발라내야 한다. 성가신 작업이지만 험난한 세상사에 상처받는 일도 많을 터, 집안에서까지 생선 가시에 목을 내주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일을 마치고 돌아온 식구들이 함께 밥을 먹을 때, 직장에서 또는 사업장에서 있었던 일을 털어놓는다. 하루도 순탄하게 지나가는 날이 없는 것 같다. 제 몸의 가시를 세워 상대를 곤란하게 만들었다는 소리를 들으면 대화가 건조해지기 시작하고 상처가 나서 들어오면 감춰져 있던 내 안의 가시가 슬그머니 일어선다. 세상은 청어의 몸속 가시보다 많은 가시밭길이다. 험한 길을 가자면 만만하게 보이면 우습게 본다. 그래선지 사람도 저마다의 가시를 세우지 않던가. 가시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무리 작은 가시라도 손끝에 박히면 온몸의 신경줄이 곤두선다. 생선 가시를 발라내면서 피해 가는 방법을 터득하지만 작정하고 가시를 세우는 사람은 피하고 싶다고 피해지는 게 아니다. 내게도 여러 개의 가시는 있으나 숨기고 잘 보여주지 않는다. 하지만 말의 가시를 시도 때도 없이 쏘는 사람을 만나면 고슴도치처럼 온몸의 가시를 보란 듯이 세우고 경계한다. 살기 어렵다고 억세진 가시를 저리 세우는구나, 하다가도 자꾸만 말의 가시가 독고마리로 달라붙어 상처가 되는 걸 어쩌지 못한다. 그럴 때마다 상대와 똑같이 하지 말아야지 하면서 마음결을 눕히려 노력하지만 쉽지만은 않다. 그냥 넘어가도 될 일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화살처럼 말의 가시를 날렸던 일이 한두 번인가. 청어가 놓인 접시가 비어간다. 저렇게 많은 가시를 속에 넣고 청어의 등살은 단단해졌나 보다. <익숙해지기> 십 년 만에 하는 열다섯 번째의 이사다. 구정 명절이 지나자마자 도심의 끝에서 또 다른 끝인, 산골에서 산골로 거처를 옮겼다. 지인들은 나이 들었으니 편리한 아파트에서 살지 불편하게 주택으로 가느냐고 한다. 아파트에서 살아보니 편리함보다는 불편한 일이 많았다. 식구끼리만 살아도 늘 조용해야 하고 한밤중에 제사를 지내거나 가족 모임이라도 있으면 죄인처럼 아래위층의 눈치를 봐야 했다. 산골에서는 내 멋에 겨워도 남의 눈치 볼 일 없어 그리 편할 수가 없다. 같은 지명 안에서도 자리를 옮기면 낯설다. 주민들과는 정식으로 인사도 나누지 못했다.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는 잘 나서지 못하는 성격 탓도 있으나 꼬리를 담그고 있는 역병으로 스스럼없이 얼굴을 마주하기엔 서로가 조심스러워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 새집으로 오면서 좋은 마음도 있지만, 걱정도 앞섰다. 이번에는 제대로 활착할 수 있을까. 언제쯤이나 주변 환경과 익숙해질 수 있을까. 나무나 꽃도 자리를 옮겨 심으면 누렇게 떠서 몸살을 앓는데 쉽사리 사람을 사귀지 못하는 나도 별반 다르지 않아 자꾸 으슬으슬 춥다. 봄이라지만 여백의 산과 들판은 아직도 가난해서 더 낯설고 서먹하다. 이사란 사는 곳을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을 가리키는 사회학 용어다. 누구나 살다 보면 여러 가지 이유로 이사를 하지만 내가 했던 열네 번의 이사는 집에 대한 좋은 조건을 따지기 전에 밥을 벌기 위한 수단이었다. 풍수지리를 본다거나 손 없는 날을 가리지도 않았다. 마치 유목민들이 먹을 것을 쉽게 구할 수 있는 강과 초지를 따라 이동하듯 그렇게 이사를 했다.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수시로 떠나야 하니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도 깊어질 수가 없었다. 어느 곳에선 일 년도 살지 못했고 어느 동네에선 오 년을 살았어도 집 앞 마트나 세탁소 주인의 얼굴만 겨우 익히고 떠나기도 했다. 한데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다. 잠시만 살자고 들어간 산골 집에서 오래 살았다. 십 년이 넘는 세월을 한 가족처럼 챙겨주고 다독여 주던 정든 사람들을 떠나왔다. 고향처럼 자꾸 마음이 향하는 곳이다. 무엇보다 데려올 수 없었던 들고양이들의 안부가 몹시 걱정된다. 아침이면 밥 달라고 현관 앞에 모여 있던 애처로운 눈망울들, 외출했다 돌아오는 차 소리만 들려도 우르르 몰려오던 열두 마리의 고양이들이 우편물을 가지러 갔을 때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아 가슴이 내려앉기도 했다. 어느 집에서 든 거둘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는 위로의 말에도 그들과의 인연도 여기까지라고 생각하니 우울함이 몸을 덮는다. 생명이 있는 것들과 이별하는 일은 이토록 무겁다. 한때는 새로운 풍경과 공간을 찾아 그 안으로 들어가는 일에 거부감을 느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좀 더 나은 삶의 길을 선택할 수 있어서 위로되었다. 어찌 보면 내 삶은 끊임없이 낯선 곳을 찾아 누군가를 만나 익숙해지며 엘도라도를 꿈꾸었는지도 모른다. 수시로 거처를 옮기면서 많은 인연을 맺었다. 깊은 인연은 오래도록 변함없이 이어지고 스치는 인연은 무심해진다. 떠나와서 돌아보면 내가 살다 온 곳에서 만난 소소한 인연도 모두 의미가 있었고 나를 여물게 했다. 이젠 내 생의 마지막 정착지로 정한 이곳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익숙해져야 한다. 세월이 흐르면 떠나온 것에 대한 추억은 시나브로 희미해질 것이므로. <선녀와 나무꾼> 이사하면서 책을 정리했다. 오래되어 누렇게 변했거나 아이들이 어렸을 적에 읽었던 전래동화와 월간잡지를 분류해 재활용품으로 내놓았다. 그러다 눈에 띈 것이 ‘선녀와 나무꾼’이다. 설화를 바탕으로 지어진 책의 제목은 작가마다 다르다. ‘나무꾼과 선녀’가 있고 ‘선녀와 나무꾼’이 있다. 다 아는 동화지만 다시 읽는다. 기가 차다. 작금의 시대에 이런 나무꾼은 악랄한 범죄자다. 손가락을 꼽을 정도로 죄명이 많다. 날개옷을 훔쳤으니 절도죄, 목욕하는 것을 몰래 봤으니 성희롱에다 성폭력범이다. 목숨을 살려준 대가로 깊고 맑은 눈을 반짝이며 범죄를 사전 모의한 사슴도 용서할 수 없는 공범자다. 나무꾼은 제 욕심 채우자고 하늘나라 선녀님을 금강산 깊은 산속에 감금해 놓고 아이까지 낳게 했다. 천상의 선녀 가족을 비탄에 빠트리고 선녀의 삶을 망가뜨린 파렴치범이다. 낯선 곳에서 가족과 떨어져 생판 모르는 인간 남자와 살면서 아이 낳고 산다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나무꾼은 정말 몰랐던 것일까. 일방적인 관심과 사랑은 상대를 병들게 한다. 돌아갈 길이 보이지 않는 선녀는 날개옷을 잃어버렸다는 죄책감에 자기 삶은 포기하고 아이만 품어 안았을 터다. 날개옷을 찾았을 때 남편에 대한 미련 없이 아이만 데리고 살던 곳으로 날아간 선녀의 모정만큼은 인간세계보다 강해서 감동적이다. 주위를 둘러봐도 아이가 걸림돌이 된다 싶으면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버리고 방치하는 어미들이 좀 많은가. 하지만 나무꾼의 다음 행동에 또다시 화가 난다. 홀어머니를 산속에 버려두고 처자식에게 가겠다고 두레박을 타고 올라간다. 염치없이 처가 덕을 보고 있는 불효자가 아닌가. 그래도 양심은 있었는지 홀로 있는 어머니를 잠시 보고 가려 천마를 타고 내려온다. 노모를 홀로 두고 떠났던 아들을 위해 팥죽을 쑤어 먹이고 싶은 어머니의 눈물겨운 모정, 뜨거운 죽을 천마 위에서 급하게 먹다 흘려 놀란 말이 나무꾼을 떨어뜨리고 하늘로 날아가 버린다. 그 후, 나무꾼은 수탉이 되어 새벽마다 하늘을 쳐다보며 울었다고 하니 범죄자에다 불효막심한 그에게 하늘에서 벌을 내린 것이 분명하다. 나무꾼은 날개옷을 감추고 선녀를 볼모로 잡아 강제로 아내로 삼았다. 여자의 약점을 잡고 부부로 사는 동안 나무꾼은 행복했을까. 주위를 둘러보면 현대판 나무꾼이 왜 이리 많은지 모르겠다. 이웃 마을에 사는 허리 굽은 할머니가 어린아이 둘을 키우고 있다. 며느리가 삼 년 전, 친정으로 가버렸다. 부모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어 남자가 준 오백만 원은 친정에 주고 한국 농촌으로 시집온 심청이처럼 효성 깊은 캄보디아의 어린 여자다. 친정아버지보다 나이가 많은 늙은 남편은 적은 땅에 농사를 짓고 농한기에는 가끔 공사장을 기웃거리나 빈 날은 술에 젖어 지내는 사람이다. 친정보다는 나을 거라는 생각으로 타국에 왔지만, 말도 통하지 않는 한국 농촌의 가난한 남자와 사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남편의 폭언과 폭력에도 틈틈이 딸기 하우스에서 일하고 일당 받아 살림을 꾸려가더니 더 이상 못 견디겠는지 아이도 두고 혼자만 캄보디아로 떠났다. 설화 속에서 선녀의 날개옷을 훔친 나무꾼도, 유행처럼 외국의 어린 여자를 돈 주고 사 온 늙은 남자도 결국 아내는 떠나고 혼자가 되었다. 여자의 마음은 열지 못하고 약점만 쥐고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겠으나, 사랑 없이 시작된 두 여자가 받은 상처는 무엇으로 위로가 될까. 버리려던 ‘선녀와 나무꾼’을 다시 책장에 꽂았다.

저자 소개

  • 저자 : 정명숙
저자 : 정명숙
<새한국문인>(수필 2005)으로 등단하여 한국문인협회, 충북수필문학회, 여백회, 뒷목문학회, 푸른솔문인협회 회원, 청주문인협회 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충북여성문학상, 청주문학상, 홍은문학상, 푸른솔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작품집 《무인도》 《틀》이 있다.

목차

작가의 말

1부 익숙해지기
익숙해지기
차가운 길
키스
눈물
저녁 6시와 7시 사이
친정엄마
특별한 여행
평범함을 위하여
황홀한 고백

2부 선녀와 나무꾼
라온의 시간은 누가 훔쳐 갔을까
선녀와 나무꾼
모정
물뱀의 세월
산에 대한 기억
에스프레소가 간절한 날
봄나물
사랑하는 이유
밥만 먹고 가지요

3부 소멸하는 것들에 대한 위로
소멸하는 것들에 대한 위로
스물다섯 시간 동안
어미
업
연인
연필로 쓰세요
내 남편, 딸 남편
외가
원초적인 색에 빠지다
유년의 뜰
이발사의 다리

4부 감자
청어
감자
국이 식지 않을 거리
꽃보다 꽃게
오빠는 잘 있단다
늙어서 보자
당신을 차단했습니다
덫
독한 여자
둠벙
뒤로 가는 밥상
바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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