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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2102995 / 200쪽 / 200g / 145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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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해설 멋대로 살기와 살고 싶기 사이 ― 두 편의 수필로 구자선 따라잡기 살펴보기 사람마다 살아가는 방법이 다 다르다. 그러나 가만 살펴보면 사는 것이 다 비슷비슷하다. 이렇게 다르면서 비슷한 것을 차이성 속의 유사성이라고 한다. 이는 글 쓰는 과정에서 비유로 유용하게 활용된다. 내가 낳은 자식도 나와 생각이나 좋아하는 음식이나 취향이 다를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도 성격이나 취미가 다를 수 있다. 다르다는 말은 그래서 거부나 부정의 표시가 아니라 인정해주고 끌어안아야 하는 일이다. 나와 다른 부분을 강요해서 비슷하게 만들 일이 아니다. 강요의 결론은 폭력으로 가기 쉽다. 여기서 다르다는 말은 매력적이다. 수필은 남과 다른 이야기를 쓰는 일이다. 남과 똑같은 이야기를 한다면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이때 다르다는 말은 개성과도 연결된다. 자기만의 특징을 살리며 인생을 살아갈 때 나름 매력이 발견되는 것이다. 남을 따라가면 내 길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이 당연한 말이 수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비슷하다는 말은 보편적인 이야기이다. 너나없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평범한 일상일 수 있다. 이는 소통과 공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유용하다. 첨단과학 시대에 휴대폰이 기본이 되고 컴퓨터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다든지, 환경 문제에 민감해졌다든지, 자식 낳고 기르는 일이라든지 하는 큰 틀에서 공동관심사를 공유하는 것으로 이는 수필의 바탕이 되어 준다. 구자선 수필가의 이번 수필집에서는 나름 다르다는 것과 비슷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다르다는 밑바탕에는 자유분방한 모습으로 남과 다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멋대로 살아>라는 제목도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자유는 나만의 색깔로 나만의 목소리로 나만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며 이는 수필이 가지고 있는 특징을 살리는 일이기도 하다. 비슷하다는 것은 너나없이 살아가면서 느끼게 되는 기쁘거나 슬프거나 재미있는 이야기들이다. 이는 수필을 수필답게 만들어 주는 역할을 충실하게 한다. 이 낯익은 이야기들을 어떻게 남과 다르게 표현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통해 의미를 만들어낼 것인가가 관건이다. 이렇듯 다르면서 비슷한 이야기를 끌어안고 다독이며 소통과 공감이라는 분위기까지 만들어낸 구자선의 수필 속으로 동행해 본다. 고백하기 구자선은 현실 세계에 살지만 꿈에서 나타나기도 한다. 여기서 꿈은 꼭 자면서 꾸는 꿈만이 아니다. 꾸지 않는 꿈도 꿈이고 희망도 기원도 상상도 꿈이 될 수 있다. 현실 세계는 한계와 만나는 일이 많다. 그러나 꿈의 세계는 엉뚱하기도 하지만 무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수필에서 상상을 금기시하던 일은 이제 폐기 처분해야 한다. 첨단과학으로 치닫는 시대에 어떻게 현실 세계만 그려나갈 수 있단 말인가. 수필 세계를 활발하게 발전시켜나가기 위해서는 과감하게 상상을 끌어들여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꿈의 세계는 일단 긍정적이다. 지난밤 꿈속에서 금반지를 주웠다. 하나도 아니고 두 개도 아니고 무려 다섯 개다. 그중 가장 크고 빛나는 금반지를 가슴에 품고 집으로 돌아왔다. 가슴에 품은 금반지를 바라보며 활짝 웃고 행복해 한다. 금반지… 뭐지? 머리맡에 얌전히 놓여 있는 휴대폰을 열어 ‘금반지 꿈 해몽’을 찾아본다. 결혼을 하게 되거나 새로운 집을 장만하게 되거나 재물이 풍족하게 되는 꿈이라 한다. 아하, 오늘 꿈은 대박이다. 그런데 나는 결혼도 했고, 집도 있는데 그래도 오늘은 재물이 들어온다니 기대가 된다. 어디 로또라도 사 볼까. 즐거운 상상을 하며 아침을 시작한다. ― 요즘 아줌마 에서 꿈 이야기로 아침을, 수필을 시작하고 있다. 꿈은 현실과 반대라든지 현실적 결핍을 만난다든지 하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후 펼쳐지는 고백을 통해 구자선의 삶을 환히 들여다보게 된다. 착실하게 하루를 이야기하는 사이로 구자선의 수필 세계까지 관조할 수 있다. 아침 준비를 시작하며 컴퓨터를 켠다. 함께 동아리 활동하는 카페를 열어 밤새 올라온 글이 있는지 확인하고 방송통신대학교 홈페이지를 연다. 어제 듣다 만 방송강의를 열고 화장을 한다. 물론 공부할 준비를 마치고 얌전하게 시작해야 하지만 바쁜 일상에서 시간을 아끼고 자주 강의를 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화장하는 동안에도 컴퓨터를 열고 강의를 듣곤 한다. 이렇게 강의를 듣고 나면 책을 읽을 때 이해가 쉽기 때문이다. 다시 공부를 시작한 것이 나의 일상에는 더없는 즐거움이다. ― 요즘 아줌마 에서 일차 공부 이야기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또 미디어 영상학과를 졸업한 구자선은 공부하는 즐거움을 알고 있다. 공부는 글 쓰는 사람에게 숙명 같은 일이다. 왜 공부하는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보다 더 어렵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하는 것이다. 그 배운 것을 글을 통해 많은 사람과 나눈다면 이보다 더 기쁜 일이 어디 있겠는가. 글 속에는 분명 아는 즐거움이라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바쁜 일상에서 꾸준히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고 공부한다는 일은 자신에 대한 채찍일 수도 있다. 거듭 깨어나려는 의지이다. 그 어려운 길을 걷고 있는 모습도 글 속에서 보인다. 출근하고 어느 정도 일이 자리 잡히면 다시 휴대폰을 연다. 내가 하는 일은 프런트에서 회원이 오면 카드를 찍고 안내를 해 주는 일이다. 다음 회원이 올 때까지 특별한 일 없이 기다리는데, 그 시간에 휴대폰을 켤 수 있다. 유튜브를 검색한다. 내가 좋아하는 자연 다큐멘터리나 걸어서 세계여행을 시작한다. 외국 여행 간 사람이 있으면 가는 곳마다 소식을 들으며 나도 따라 유튜브를 보면서 여행을 한다. 내가 유튜브로 본 여행지를 글로 정리한다. 직접 만나고 만져 본 느낌보다 더 자세하게 글을 쓰기도 한다. 자연 다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흙’이라는 다큐멘터리가 있었는데 흙 속에 사는 유기물이 어떻게 분해되고 어떻게 양분이 되는지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왜 농약을 쓰지 않고 낙엽이나 흙을 유기농으로 살려야 하는지, 건강한 땅속에서 온갖 미생물이 꿈틀거리는 모습을 영상에 담아 보여주고 있다. 땅이나 물속에서 미생물이 번식하고 생명이 살아나는 모습을 관찰하기 쉽지 않지만 전문가의 영상에 담겨 자세히 관찰하며 볼 수 있어 유튜브를 시청하며 배우는 기쁨이 더없이 크다. ― 요즘 아줌마 에서 고백이라는 말 다음에는 진실이 따라올 가능성이 크다. 그 뒤를 이어 인간적으로 감동이라는 말도 따라 나오고 사회적이거나 문학적인 분위기와 참이라는 말도 자연스레 나타나게 된다. 공감이니 의미니 하는 분위기가 고고하게 자리 잡기 쉽다. 수필을 고백의 문학이라는 특징으로 잡아냈을 때 유추할 수 있다. 거짓이 판을 치고 가짜가 행세하는 세상에서 진실이라는 것은 오래 그 빛을 발하게 된다. 고백이 수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똑같은 고백도 어떻게 풀어내느냐에 따라 상반된 느낌으로 나타난다. 세상만사 진리는 하나로 통한다. 하나의 진리 속에는 또 다른 모습이 자리 잡고 있다는 말을 이렇게 풀어본다. 구자선의 고백은 정점을 향해 거침없이 치닫고 있다. 주부로 살림도 하지만 직장 다니는 일도 그대로 쏟아 놓고 있다. 그리고 잠시 여유 시간을 할애하고 있는 모습도 보여준다. 유튜브를 통해 부족한 자료나 이슈를 보고 세계여행까지 세세하게 하는 것은 바쁜 시대의 지혜이다. 이렇듯 시간을 절약하여 지적 면모까지 갖춰 나가며 이를 수필에 접목하여 의미도 만들고 있다. 수필을 고백의 문학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자신의 개인적 이야기를 일부만 공개하는 데 비해 구자선은 가감 없이 고백의 본질에 다가서고 있다. 이번엔 음악이다. 하루를 마무리하며 음악을 켠다. 멋진 오디오 장치가 따로 없어도 된다. 손안에 있는 작은 휴대폰을 열면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 수두룩하다. 예전에 좋아했던 이승철의 ‘그런 사람 없습니다’, ‘그 사람’과 요즘 우리 아이가 좋아하는 '죽어도 못 보내’ 노래를 듣고 아이유의 청아한 감성에 빠져들기도 한다. 경음악을 들으면 마음까지 센티해지는 느낌도 이 유튜브 음악이 없다면 경험하기 쉽지 않은 대목이다. 또한 세바시 명강의나 영화도 휴대폰 하나면 다 해결된다. 또 있다. 이번엔 은행이다. 이제 은행에 가지 않아도 엄마에게 용돈을 보낼 수 있고 생일 파티에 가지 않아도 케이크를 보낼 수 있다. 시장에서 장을 보면서 현금을 주고 싶을 때는 바로 계좌이체로 물건값을 결제할 수도 있다. 길 찾아갈 때는 ‘맵’을 이용하고 내 일상을 친한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을 때는 카카오스토리를 열어 사진과 소소한 여행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서로 안부가 궁금할 때는 그 사람 이름을 치고 들어가면 보여주고 싶은 그의 일상이 고스란히 올라와 있기도 하다. 휴대폰 하나에 하루는 짧다. 하고픈 일 보고 싶은 일들이 가득한 내 손안의 친구,미디어가 일상이 되어 혼자이면서도 혼자가 아닌 멋진 소통의 장을 손안에 들고 다닌다. 카톡, 카톡. 쉼 없이 달려오는 함께하는 사람들의 일상을 오늘도 나는 손안에 품고 달린다. ― 요즘 아줌마 에서 구자선의 고백 뒤에는 휴대폰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는 현대인에게 있어 가장 가까운 친구요 동료이며 분신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휴대폰 하나만 가지고 있으면 하루가 해결된다는 말은 휴대폰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가를 가늠하게 한다. 효율적으로 활용하면 몇 사람 일을 대신해줄 수도 있다. 그 휴대폰 하나로 구자선의 하루는 적나라하게 이어지며 고스란히 명암을 드러내고 있다. 아줌마는 바쁘다. 빨래도 해야 하고 밥도 해야 하고 돈도 벌어야 하고 남편도 챙겨야 하고 그게 다는 아니다. 시간 날 때마다 수다도 떨어야 하고 치장도 해야 하고 지적 수준도 높여야 하니 틈틈이 공부도 해야 한다. 아이가 다 컸다고 손 놓을 수도 없다. 작으면 작은 대로 크면 큰 대로 챙겨야 할 일들이 수두룩하다. 하지만 아줌마는 거뜬하다. 힘센 팔뚝 하나면 만사 오케이다. 오늘도 아줌마는 새벽부터 밤중까지 열 일하신다. ― 요즘 아줌마 에서 고백이라는 말 다음에는 반성이 따라올 가능성이 크다. 그 뒤를 이어 종교적으로 회개라는 말도, 도덕적 윤리적인 분위기와 노력이라는 말이 판에 박은 듯 나타나기 쉽다. 그 뒤로 사랑이니, 희망이니 하는 분위기가 잔치판을 벌이기도 쉽다. 수필을 고백의 문학이라고 할 때 유추할 수 있는 분위기다. 사랑의 고백도 아니고 낭만적인 고백도 아닌 다음에야 살아가는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고백은 대개 빤한 형태의 흐름을 가지게 된다. 고백이 오히려 수필 분위기를 망칠 수도 있다. 세상만사 그렇다. 좋았던 일이 오히려 독이 되기도 하고 나빴던 일이 전화위복의 기회를 만들기도 한다. 이때 구자선은 막연한 희망을 귀결로 삼지 않고 솔직한 자기 고백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 그 고백 속에서 살아가는 모습과 좋아하는 일들과 관심 있는 분야를 ?요즘 아줌마? 수필 한 편 속에서 찾아보았다. 이는 구자선의 다른 수필을 이해하는 데에도 열쇠 역할을 하고 있다. 멋대로 살아가기 ‘봄은 멋대로 왔다 멋대로 가는가 보다. 그러나 멋대로 인 것이 어찌 봄뿐이랴. 거리를 달리는 버스도 멋대로요, 일요일마다 교외로 몰려나가는 택시, 관용차, 자가용차들 또한 멋대로 이다.’ 시와 수필을 엮은 장만영 시인의 <그리운 날에>라는 책에 실린 앞부분이다. 세상만사 멋대로 보면 다 멋대로요, 규칙대로 보면 다 나름대로 규칙이 있다. 버스도 멋대로 달리는 것 같지만 노선이 있고 택시나 그 외 차들도 다 목적지가 있다. 필 가는 대로 쓴다는 것이 수필인데 이를 쉽게 이야기하면 멋대로 쓰는 글이라고도 할 수 있다. 멋대로 쓰는 글이라서 누구나 쓸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멋대로 쓰는 일이 더 어렵다. 스스로 터득하고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시나 소설은 장르 특징이 강해서 멋대로 쓴다는 말은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 시와 소설 틈 사이, 중간선에 있는 장르가 수필이다. 시는 아닌데 시적 요소인 짧은 분량의 글이고, 소설은 아닌데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는 데 있어서 수필은 나름의 특징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크게 규칙을 따지지 않고 그렇다고 멋대로를 허용할 수도 없는 부분이 있다. 여기서 규칙과 멋대로 사이에 수필이 있다고 또 결론 내려 본다. 규칙은 때로 딱딱하고 답답한 부분이 있다. 멋대로는 혼란한 느낌으로 찾아오기도 한다. 그런데 구자선은 <멋대로 살아>라는 제목을 들고 당당하게 독자 앞에 나섰다. 선천적인 자유분방함 때문이다. 구속받기 싫어하고 부딪치기보다 피하고 싶고 스트레스보다 자연과 만나고 느끼는 감정이 말 그대로 멋대로 살기에 안착한 것이다. 멋대로 산다지만 앞에서 살펴본 <요즘 아줌마>에서 보면 규율에 짜인 하루를 보내고 있는 사람이 구자선이다. 반대로 생각하면 그러한 각박한 현실에 묶여 사는 구자선의 입장에서 멋대로 산다는 말은 희망 사항일 수 있다. 그리고 근무하는 중간에 간간이 주어진 시간 안에서 자유를 찾아다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가꾸지 않아서 버려진 땅. 그 땅에도 생명은 있어, 푸르게 붉게 풀밭이 되었다. 지난여름 무성했던 망초와 양귀비, 듬성듬성 황금빛 금영화, 수레국화, 말뱅이나물이 제 터전인 양 활짝 꽃을 피웠다. 복잡한 도시를 떠나 시골 한적한 곳에 자리 잡은 어느 농가 같다. 붙어 있지 않아서 헐렁한 듯 여백 사이로 바람이 사이사이 숨바꼭질한다. 어느 젊은 처자의 환한 웃음 같다. 나는 지금 고잔역을 지나 초지역으로 향하는 철길 아래에서 여름을 기다리고 있다. 아직은 꽃의 계절을 아쉬워하는 듯 봄과 여름 사이에서 한낮을 견디는 법을 알아가고 있다. 산다는 것이 매양 봄처녀처럼 들떠 살 순 없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 뜨거운 햇살을 견디어야 다음을 기약하며 씨앗을 품을 수 있는 거라고, 여러 해 건너온 선조들은 이미 다 아는 사실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 멋대로 살아 에서 구자선의 자유분방함은 이렇게 가까운 고잔역이나 화랑유원지나 갯골공원에서 구체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주어진 분량만큼 시간을 할애해야 하기 때문이다. 왜 멋대로 살고 싶은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지금 멋대로 살지 못하기 때문에 나온 제목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는 구자선 뿐만 아니라 이 시대를 사는 바쁜 현대인들에 대한 제유로 봐도 좋다. 계절은 소리 없이 겅중겅중 건너서 다음 계절에 도착한다. 나도 오십 년을 건너서 뜨거운 여름을 지나간다. 여기가 끝은 아니다. 아직 씨앗도 부풀려야 하고, 내 몸의 수분을 다 빼내야 비로소 다음을 기약하는 씨앗으로 여물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모르는 일이다. 내 작은 씨앗이 모래밭에 뿌려질지 가시덩굴에 던져질지 가보지 않은 길이기에 알 수는 없다. 곱게 자라 여문 호박도 때로는 빈방 구석 창에 던져져 잊힐지 모르기 때문이다. ― 멋대로 살아 에서 구자선은 멋대로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다. 그 사이 사이에서 고뇌하고 되돌아보고 자연의 이치를 보며 깨닫고 미래에 대한 막연한 기대도 풀어내고 있다. 수필가의 자세를 잊지 않고 꼿꼿하게 지키고 있는 것이다. “멋대로 살아. 다른 사람 신경 쓰지 말고 멋대로 살아. 살아보니 그래.” 텔레비전 프로그램 다큐 공감이라는 방송을 보고 있다. 106세의 최돈춘 할아버지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고 물으니 ‘멋대로 살라’고 한다. 멋대로 살라는 말이 가슴에 박힌다. 남 신경 쓰지 말고 하고 싶은 것 하면서 멋대로 살아보라는 말이 참 멋있는 말이구나 한다. 나는 때때로 멋대로 하는 버릇이 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말만 듣는 경향이 짙다. 가끔은 듣고도 못 들은 척, 보고도 못 본 척 외면할 때가 있다. 그러면 마음의 풍랑이 잔잔해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오래 지내다 보니 누가 뭐라 해도 내 고집대로 일 때가 많다. 가끔 고집불통이라는 말을 듣긴 해도 잘 바뀌지 않는다. 원래 사람은 잘 바뀌지 않는 습성이 있다고 하니 그러려니 한다. ― 멋대로 살아 에서 구자선 보다 곱을 더 살아온 106세 최돈춘 할아버지 이야기에 의한 자기 확인이다. 먼저 살아본 사람의 이야기는 예언처럼 소중하다. 그에게서 들은 ‘멋대로 살라’는 말이 가슴에 박힌 것도 실상은 그렇게 살기 어렵기 때문이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남과의 관계에서나 직장에서는 내 멋대로 할 수 없다. 그러나 나 혼자만의 세계에서는 크게 구애받지 않고 멋대로 살 수 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말만 듣는다는 것은 나이 들어가면서 생기는 고집이면서 지혜이다. 굳이 스트레스를 몰고 오는 말이라면 피하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이다. 나주의 한 작은 마을에 ‘죽설헌’이 있다. 이곳은 박태후 화백이 고등학교 때부터 화가의 꿈을 키우며 가꾸어온 한국 전통 정원이다. 나무가 좋아서, 자연이 좋아서 조금씩 좋아하는 꽃과 나무를 심다 보니 이제는 만 오천 평이나 되는 멋진 정원이 되었다. 정원에서는 꽃과 나무를 가꾸고 시간이 날 때마다 그림을 그렸다. 그 그림 속의 소재는 언제나 정원에 있는 꽃과 나무이다. 나무는 우리에게 많은 인생의 비밀을 가르쳐 준다고 말하고 있다. 젊은 시절, 그는 농촌진흥청 공무원이었다. 열심히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틈틈이 그림을 그리고 자연을 가꾸었다. 어느 날, 공무원은 퇴직을 해도 어느 시점이 되면 평생 연금이 지급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 시점에 도달했을 때 과감히 사표를 내고 고향 나주에 들어간 것이다. 문득 참 멋진 인생을 시작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멋대로 살아 에서 이 글에서 구자선의 멋대로 산다는 말의 뜻을 확연히 알게 된다. 차분하게 자기 인생을 원하는 대로 만들어 가는 것ㅡ. 크게 욕심부리지 않고 자기에게 맞는 일을 찾아가는 것ㅡ. 이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살아가다 보면 내 뜻과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도, 억지로 하는 일도 많다. 그렇게 힘들게 살아간다는 것은 억울한 삶이다. 내 뜻이 있는 일이나 자신 있는 일을 찾아 사는 것은 누구나의 바람이지만 현실이 발목을 잡아 엉뚱한 삶을 살아가는 일이 빈번한 까닭이다. 그래서 멋대로 산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다. 멋대로 산다는 것이 방임이나 나태에 빠진 것이 결코 아니라는 의미가 강하게 느껴지는 예이다. 사람들은 평생 자신의 꿈보다 생활에 대한 책임으로 살아갈 때가 많다. 설령 많이 가졌다 해도 일을 손에서 놓는 것은 삶을 놓는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쉽게 일을 놓지 못한다. 그런 반면 과감히 하던 일을 정리하고 꿈꾸던 꿈을 향해 과감히 사표를 던진 화가의 선택이 참 멋있어 보였다. 나도 언젠가는 과감히 사표를 던지고 나의 터전을 찾아 떠날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 멋대로 살아 에서 구자선의 행로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직장 일은 노동 그 자체에서 오는 충족감도 있지만 결국은 사표를 내고 내 멋대로 살기 위한 과정이며 방편이다. 설사 그 과정이 뜻대로 진행되지 않아 기간이 연장되더라도, 꿈으로만 남을지라도 한편으로 멋대로 사는 멋진 꿈을 꾸며 요즘 아줌마에서처럼 ‘오늘도 새벽부터 밤중까지 열 일하고 계신 것이다.’ 문득 내게 두 발이 있어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하루를 시작하며 어디를 가야 할지, 무엇을 바라보아야 할지 생각해 본다. 오늘은 강아지 미용을 하는 날이고, 그 강아지가 미용하는 동안 어제 지나오면서 언뜻 본 들꽃을 찾아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이곳 고잔역 양귀비 그늘 아래에서 꽃바람을 맞고 있다. 가볍게 망초와 양귀비 사이를 지나온 바람이 장난이라도 걸듯 선뜻 어깨를 스치며 지나간다. ― 멋대로 살아 에서 요즘 대세는 반려견이다. 저녁 산책길에 나가보면 반려견과 나온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구자선도 또 다른 꿈의 하나인 반려견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변하기 쉬운 시대에 올곧게 주인을 섬기는 반려견의 모습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얄팍한 변심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늘 한결같은 사람으로 살아가는 심지 깊은 마음이 여기서도 읽힌다. 그리고 틈틈이 카메라 들고 자연과 만나는 마음은 때로 수필가 이전에 시인 같은 구절들도 남겨 놓고 있다. 조용히 휴대폰을 열고 듣다 만 노래를 듣는다. 노래에는 사랑이 있다. 노래에는 슬픔도 아픔도 기다림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전하지 못한 마음의 말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조용히 노래 가사에 사랑을 담아 다음 이야기를 띄워본다. 그리고 생각한다. ‘그래, 멋대로 살아. 그래야 후회가 없어.’ 백세를 넘긴 할아버지의 말을 되새긴다. 그래, 멋대로 살아보자. 마음이 후련해진다. ― 멋대로 살아 에서 구자선은 음악적 감각도 뛰어나다. 그는 노래를 좋아한다. 이는 수필 속에서 리듬을 확보하는 데 효과적이다. 리듬이 좋다는 말은 문장 속에 흐르는 나름의 자연발생적인 형식 때문이다. 이미 음악적으로 무장된 구자선의 문장은 막힘없이 시원시원한 모습으로 읽히고 있다. 그의 음악 사랑은 한때 음악 속에서 살아가게 한 적도 있다. 그의 곁을 지켜주고 있는 이러한 자연과 여행과 음악과 약간의 노동의 즐거움 속에 문학은 필연으로 다가와 그의 또 다른 동반자가 되어 주고 있다. 가만 보면 구자선은 이미 멋대로 살아가고 있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상당 부분 멋대로 살아나가는 전형적인 예를 여기저기서 보여주고 있다. 그가 완전하게 멋대로 살게 되었을 때, 그것을 자유분방이라고 의미 있게 이야기할 수 있을 때, 가깝게 지내는 사람 몇몇이 슬쩍 동행해 준다면 그의 멋대로 살기는 완성되는 것 아닐까. 그때를 기다려 보며 두 편의 수필을 전제한 구자선의 수필 세계를 꼼꼼 살펴보았다. 큰 틀에서 제유를 활용한 특이한 해설을 누구나 읽어보라고 마지막 장에 현수막처럼 걸어 놓는다. 배 준 석 시인ㆍ문학이후 주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