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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동, 교육에서 청나라의 미래를 찾다 - 중국근현대사학회 연구총서 8 (양장)

장지동 저 | 한울아카데미 | 2023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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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46074682 / 280쪽 / 420g / 153 x 2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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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위기를 몰랐기에 맞이한 근대 중국의 위기, 장지동의 진단 근대 사회로 변화하면서, 중국은 왜 서양 열강에 뒤처지고, 중국의 학문은 위기에 대응하지 못해 새로운 학문을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에까지 이른 것일까. 장지동은 중국이 여러 왕조를 거치며 하나로 통합된 이후 주변에 중국을 능가할 만한 경쟁 상대가 없으니, 문사 치장만을 중시하여 실력이 없어진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중국은 지식의 개발이나 개혁을 하지 않고 옛 법을 그대로 지키며 간혹 수정하고 정돈해도 위기 없이 안심하고 유지할 수 있었으니 학문이 점차 쇠퇴했다. 그리고 아는 것이 없으니 할 일이 없으며, 하찮고 시시하게 일을 처리하여 졸렬하고 쓸모없는 것을 만들게 되었다. 중국이 인재가 넘쳐나던 때는 춘추전국시대와 삼국시대같이 경쟁이 상존하던 때였다. 경쟁이 인재를 키우고 지식을 개발하는 원천인데, 대일통(大一統)을 이룬 이후 주변에 경쟁할 만한 국가가 없던 중국은 안일하게 대처하며 지식을 개발하지 않았다고 장지동은 주장했다. 중국의 위기를 극복하는 것은 교육받은 인재의 힘 그는 군중의 힘을 신뢰하기보다는 국가만이 이해 갈등을 통제하고 공적인 이익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으며, 군중의 이익 다툼과 이기적 활동을 막을 대안을 국가에 대한 신뢰로 연결시켰다. 또한 국가가 국난을 극복하는 핵심은 인재의 유무라고 파악했고, 사대부가 국가 개혁의 중심에 설 것을 요구했다. 사대부가 사적 이익을 넘어 국가의 공익을 추구하는 개혁을 담당할 적임자였다. 장지동은 중국 학문이라는 문화적 가치를 강조했고, 이 외에도 신문, 철도 등을 통해 중국인의 국민 의식 강화를 추구했다. 그가 강조한 신문 열람은 견문을 넓히고 기개를 양성하며 불명확한 논설을 없애 식견이 좁은 선비, 들판의 농부 모두가 중국에 관한 소식을 보며 중국이 있음을 알게 하는 것이었다. 장지동의 계묘학제, 중국 근대 교육체계를 56개 조문으로 만나다 1904년, 장지동은 1902년의 학제를 수정하여 새로운 학제를 만들었다. 이를 만들 때 영경, 장백희 두 명의 관학대신과 상의했다고 하나, 실상은 장지동 혼자 주도한 것이었다. 이것이 속칭 계묘학제로서, 1904년 1월 13일 발표하고 청 말까지 사용했다. 계묘학제는 22개의 장정으로 구체화되어 있었고, ‘학무강요’도 그중 하나로서 총 56개의 조문으로 구성되었다. 계묘학제는 사립학교에 대한 엄격한 통제, 여성교육에 대한 언급이 없으며, 초등에서 대학까지의 교육기간이 너무 긴 등 여러 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청 말까지 실제 운영된 학제이자 학교체계와 행정의 분리, 사범교육과 실업교육의 중시 등 중국교육제도의 근간을 만들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이를 살펴봄으로써 장지동이 주장한 중국 근대교육제도의 구체적인 실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

저자 소개

  • 저자 : 장지동
저자 : 장지동(張之洞, 1837∼1909)
청나라 말기의 관료. 직예성(直隷省) 남피(南皮) 출신으로, 27세에 진사과에 합격하여 한림원 편수로 임명되었다. 산서 순무, 양광(광동과 광서) 총독, 호광(호북과 호남) 총독 등의 직책을 역임했다. 총독 재임 시절에 신식 군대를 육성하고, 방적 및 제사 공장, 제철소 등을 만들었다. 근대 학교 설립과 학제 제정, 교육행정제도의 설립에 큰 역할을 하여 중국 근대 교육제도의 근간을 마련했다. 1907년 대학사와 군기대신에 임명되어, 현재 교육부에 해당하는 학부의 관리 사무를 맡았다. 1909년 사망했으며, 시호는 문양(文襄)이다.

역자 : 이병인(李丙仁)
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주요 관심 분야는 근대 중국의 국가와 사회관계, 거버넌스 문제이다. 상해의 상회 같은 민간단체와 국민정부의 관계 등을 연구했다. 최근에는 청 말부터 중화민국 시기의 교육 목표, 교육행정제도, 교육회 등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근대 상해의 민간단체와 국가』(창비, 2006), 『100가지 주제로 본 중국의 역사』(공역, 고려대학교 출판부, 2007), 『제국의 학술기획과 만주』(공저, 동북아역사재단, 2021) 등의 저역서와 교육회에 관한 다수의 논문이 있으며, 중학 역사, 고등 세계사 등 교과서 저술에 참여했다.

목차

중국근현대사학회 연구총서 간행사
책을 엮으며

제1부 장지동과 교육개혁 _이병인
제1장 장지동의 구상과 그 유산
제2장 『권학편』의 국가 중건 구상과 문화 전환
제3장 장지동과 계묘학제

제2부 『권학편(勸學篇)』 _장지동
서문

권학편 상, 내편
제1장 단합된 마음 /同心
제2장 충성심 교육 /敎忠
제3장 윤리 확립 /明綱
제4장 정체성 인식 /知類
제5장 판단의 기준, 경전 /宗經
제6장 국가권력 확립 /正權
제7장 배움의 순서 /順序
제8장 학문의 핵심 학습법 /守約
제9장 아편 근절 /去毒

권학편 하, 외편
제1장 지혜 증진 /益智
제2장 유학 /游學
제3장 학당 설립 /設學
제4장 학제 /學制
제5장 번역 진흥 /廣譯
제6장 신문 열람 /閱報
제7장 제도 개혁 /變法
제8장 과거제도 개혁 /變科擧
제9장 농학, 공학, 상학 /農工商學
제10장 군사학 /兵學
제11장 광업학 /鑛學
제12장 철도 /鐵路
제13장 회통 /會通
제14장 군축론 비판 /非兵
제15장 종교적 관용 /非攻敎

제3부 계묘학제(癸卯學制)의 학무강요(學務綱要)_장백희 장지동 영경

편역을 마무리하며
참고자료 1 『권학편』에서 인용한 서적 소개
참고자료 2 『권학편』에서 언급한 인물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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