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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없는 세상을 향한 외침 안 AN : 대한민국 다문화의 아픔과 희망을 담아낸 동행의 기록

원옥금 저 | 가연 | 2023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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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68971211 / 288쪽 / 374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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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차별 없는 세상을 향한 외침, 안 AN 편안할 안(安), 베트남어와 한국어로 같은 말이다.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저자는 작은 흥분을 느꼈다고 한다. ‘안녕’/‘AN NINH(안 닌)’, ‘안전’/‘AN TOAN(안 또안)’, ‘안락’/‘AN L?C(안 락)’, ‘평안’/‘BINH AN(빈 안)’, 베트남어와 한국어 둘 다 따듯하고 다정한 느낌의 같은 말들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이주민의 현실은 늘 어딘가 불안하다. 이곳에 아무리 오래 살아도 그렇다. 주위에 좋은 사람들만 있어도 마찬가지다. 아무 탈이 없는 삶을 바라지만 결코 이룰 수 없는 꿈을 꾸는 것 같은 답답함이 가슴을 누른다. 저자 역시 그랬다. 아니 지금도 그렇다. 용기를 내어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고,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말하고 행동해도 마음 한구석 불안을 모두 지울 수는 없다. 그래서 더욱 안(安)이라는 글자에 매달린다. 저자는 한국에서 살고 있는 모든 이주민이 안녕하고 안전하고 안락했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리고 한국에서 사는 모든 사람이 다 평안하고 이주민과 평등하게 잘 어울려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오늘도 마음속에서 외친다. 안 An이라고... 안 An에 화답하고, 안 An을 위한 동행의 첫걸음 한국 주민의 4%를 차지하는 이주민에 대하여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타자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얼굴을 마주해야 우리 안에 그가 들어올 수 있다. 우리 또한 이러한 조우를 통해서만 성찰적 존재로 변할 수 있다. 지금까지 이주민과 이주 현장에 대한 기록은 선주민에 의해 쓰여졌다.?그런데 이주여성의 눈으로 본 한국 사회와 이주 현장은 선주민의 기록과 닮으면서도 다르다.?이 책은 국제결혼이 많지 않던 시기에 베트남에서 이주하여 한국 사회를 살아낸 한 개인의 분투기이자 이주민 인권 현장에 뛰어든 활동가의 기록이다.?다문화가족을 중심으로 상상된 결혼이주여성에 대한 한국 사회의 시선이 얼마나 납작하고 협소한지를 생각하게 한다. 또한 이 책은 우리가 안 An에 화답하고, 안 An을 위한 동행의 첫걸음을 제시하고 있다. 아름답고 진솔한 저자의 글에서 우리는 함께 웃고, 분노하며, 이주민의 삶에 다가설 수 있다.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폭발한 그리움에 져버렸다”라는 향수에서, 내 아이들로부터 “엄마, 사랑해!(M? ?i! con th??ng m? l?m! 메어이, 꼰 트엉 멜람!)”라는 말을 모국어로 듣고 싶었다는 고백에서, 이주노동자를 괴롭히는 사업주 때문에 하루에 몇 번이나 분노가 솟아오르고 어떨 때는 도움이 되어 주지 못해 절망에 빠진다는 자책에서 우리는 결혼이주민이며 이주노동 활동가인 저자에 공감하며 공존의 방법론을 찾아 나가야 한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우리 모두 이 동행에 기꺼이 참여하여 “한국에서 살고 있는 모든 이주민이 안녕하고, 안전하고, 안락했으면 좋겠다”라는 그의 염원이 곧 이뤄지길 바란다. 책 속에서 타향에서 몸이 아프면 서럽다. 그냥 단순한 몸살에 걸려도 아무도 돌봐줄 사람이 없는 타국에서는 더욱 서러운 법인데, 일을 하면서 병을 얻게 되는 이주노동자의 경우에는 더욱 막막하고 힘이 든다. 이주노동자들은 대부분 작업 환경이 열악한 곳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질병에 걸리거나 재해를 당하기 십상이다. 이런 노동자도 있었다. 충북 제천에서 일하고 있는 베트남 노동자인데 몇 번 연락을 해오면서 우리 이주민센터 동행을 방문하여 상담을 받고 싶다고 했다. 나는 충북이면 너무 멀어 도와줄 수 없다고 여러 번 거절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 그 노동자는 갑자기 우리 센터에 불쑥 찾아왔다. 어쩔 수 없이 어떤 어려움인지 한 번 들어나 보기로 했다. 그는 큰 강관 배관 부속품을 생산하는 회사에서 일한 지 1년 반이 되었는데, 일을 시작한지 6개월 무렵부터 온몸에 두드러기가 빨갛게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피부과에서 계속 치료를 받고 2주일씩 약을 먹어왔다. 일하다가 중간에 몸이 가려워 사무실에 가서 사장에게 옷을 벗어 보여주기도 했다. 처음 몇 번은 인사 담당 직원이 병원에 동행했는데 나중에는 본인이 알아서 갔다. 약을 먹지 않으면 다시 몸이 가렵고 발진이 생기는 이 증상은 한국에 오기 전 베트남에서는 전혀 없었다. 증상이 있을 때부터 1년이 지나는 동안, 그는 회사에 수없이 사업장 변경을 요청했지만 회사는 외면하였고 계속 근무하도록 강요하기 위해 ‘열심히 일을 하겠다.’는 각서에 서명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노동자는 일할 수 있는 만큼만 일을 하겠다면서 서명을 거부하였고 이에 회사는 무단이탈 및 상급자 지시 불이행으로 2개월간 업무정지라는 징계처분을 내렸다. 사업장 변경을 요청하면 꼬투리를 잡아 징계와 함께 업무정지를 시키는 것이 외국인노동자를 채용하는 사업주들이 흔히 쓰는 수법이다. 왜냐하면 제한된 취업 기간에 일하지 못해 돈을 못 벌면 이주노동자에게 치명적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이 회사의 사장도 업무정 지 기간에 회사에 가서 사업장 변경 요청하는 노동자를 만나주지 않았고 경찰을 불러와 회사 근처에 얼씬도 못하게 쫓아냈다. 노동자가 질병에 시달려온 1년 동안 여기저기 연락해 도움을 요청했지만 도와주는 곳은 없었다. 나도 전화상으로 거절했지만 그는 더 이상 다른 방법이 없어 충북에서 서울까지 올라와 동행을 찾아온 것이었다. 동행에서는 일단 그가 충북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업무정지구제신청’을 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구제신청이 받아들여지면 그것을 근거로 사업장 변경 신청 요건으로 활용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왜 구제신청을 하느냐는 지방노동위원회의 질문에 노동자는 곧바로 사업장 변경을 원한다고 대답을 하였다. 그렇게 대답을 하자 지방노동위원회는 자기들은 사업장을 변경해 주는 곳이 아니라며 취하서를 작성해서 제출하라고 했다. 나는 나대로 회사에 연락해 사장님과 한번 만나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회사에서는 다시 일할 생각이면 오고 일할 생각이 없으면 연락하지 말라고 했다. 눈앞이 보이지 않았다. 회사가 우리를 무시하는 태도도 생각할 수록 화가 났다. 우리가 구제 신청을 진행하는 동안 함께 일하던 캄보디아 동료가 사업장에서 이탈하여 미등록자가 되었다. 그 노동자는 증상은 약간 다르지만 역시 얼굴에 심한 여드름이 생기는 피부 질환을 앓고 있었다. 그도 사업장 변경을 원했지만 베트남 노동자의 시도가 실패하는 것을 보고 본인도 더 이상 희망이 없겠다는 생각에 일찌감치 포기하고 미등록자로 살기로 한 것이었다. 그래도 우리는 여기서 포기할 수 없었다.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오기 전에 이탈방지 예치금으로 약 500만 원을 냈는데 이탈해서 미등록자가 되면 그 돈이 베트남 정부에게 귀속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등록이 되면 항상 불안한 상태로 살아야 하고 운이 나빠 단속이라도 되면 강제출국을 당하기에 어떻게든 미등록체류자가 되는 것만큼은 막아야 한다. 다시 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했다. 이번에는 공익변호인을 신청하여 변호사가 노동자와 함께 출석하도록 했다. 사실, 부당정직구제 재판에서 우리가 이긴다 해도 정직 기간 동안의 임금을 받고 복직을 할 수 있는 것이지 사업장 변경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업장 변경을 하려면 몸에 난 두드러기와 현재 하고 있는 업무와의 인과관계를 입증해야 한다. 그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그동안 치료했던 피부과에 찾아갔다. 그러나 병원 원장은 “이 두드러기는 몸에서 나온 것이지 환경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다.”라고 말을 했다. 더 이상 방법이 없을 것 같았다. 나는 혹시 아직 모르고 있는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주노동자운동후원회 정영섭 사무국장님께 여쭤보았다. 내용을 듣고 나서 정 선생님은 원주세브란스기독교병원 직업환경의학과에 가서 진단을 받아보라고 했다. 나는 통역인을 섭외해서 노동자와 함께 소개 받은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를 만나보도록 주선을 하였고 노동자는 교수를 찾아가 그간 챙겨두었던 사진과 일하면서 접촉한 화학물질에 대해 설명을 하였다. 노동자와의 상담을 마친 교수는 두드러기가 작업 환경과 관련이 높다는 내용의 업무적합성평가서를 발급해 주었다.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평가서를 가지고 고용센터에 사업장 변경을 신청했지만 담당자는 사업주가 동의를 해줘야만 다른 회사로 갈 수 있다는 답변만 하였다. 열흘이 지나도 일에 대한 진척이 없자 나는 사업주만을 위하는 고용센터의 일처리 방식에 더 이상 기대할 게 없다고 판단하고 국민신문고에 민원을 넣었다. 그러고 나서 8일 후에 사업장 변경 신청이 승인되었다는 답변을 받았다. 너무 기쁜 나머지 노동자한테 바로 연락해 이 소식을 전했다. 알고 보니 노동자가 나보다 먼저 알고 있었다. 베트남 EPS(이주노동자관리시스템)에 근로계약이 해지되었다는 내용이 올라와 있어 알 수 있었다는 것이다. 사업장 변경은 되었지만 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 신청을 한 부당 정직된 기간의 임금 청구 건이 아직 남아있었다. 코로나로 심문회의는 계속 연기되었고 노동자는 지쳐만 갔다. 결국 노동자는 출석하지 않고 변호사님이 혼자 지방노동위원회에 가서 화해 절차를 진행하고 사건을 마무리 하였다. 얼마 후 노동자로부터 새로운 사업장에서 아프지 않으면서 일을 잘하고 있고 첫 월급을 탔다고 연락이 왔다. 이주노동자가 사업장 변경을 원할 때 그 변경 사유가 자기 책임이 아님을 입증해야만 사업장을 옮길 수 있다는 노동부의 주장을 다시 생각해 본다. 이 노동자의 경우만 봐도 건강을 잃고 나서 과연 혼자 힘으로 이 회사를 벗어날 수 있을까? 한국어도 못하고 한국 법과 제도도 모르는 이주노동자들이 어떻게 자기를 스스로 구제할 수 있단 말인가?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아무리 외쳐도 그 누구도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는데 말이다. 지금도 회사에서 강압적 지시에 의해 일하고 있는 수많은 이주노동자들이 견디다 못해 캄보디아 동료처럼 사업장을 이탈해 미등록체류자가 되는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베트남 노동자의 경우는 한국에 입국하기 전에 이탈방지 예치금으로 무려 500만 원을 베트남 정부에 납부하고 입국하기 때문에 한국에서 이탈하면 그 돈이 베트남 국고로 들어가므로 아무리 힘들어도 참아야 하는 실정이다. 노동자가 자신의 의사에 따라 취업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 일이 자신의 건강을 해치는 일일 수도 있고, 단순히 적성에 맞지 않아 힘들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힘이 들어도 이주노동자 자신의 의지로는 이직을 할 수가 없다. 고용허가제에 묶여있기 때문에 사업주의 동의없이는 사업장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사업주가 명백한 위법을 하지 않는 이상, 강제 노동에서 벗어날 길이 없는 것이다. 현대판 노예가 따로 없는 답답한 현실이다.

저자 소개

  • 저자 : 원옥금
저자 : 원옥금 (응웬 응옥 깜)
1975년 베트남 남부 동나이성 출생.
한국 생활 26년차 결혼이주민, 이주 활동가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 졸업
건국대학교 행정대학원 법무학과 졸업

전, 재한베트남공동체 대표
전, 주한베트남교민회 회장
전, 서울시 외국인주민대표자회의 위원
전, 서울시 외국인 명예시장
전, 3.1운동 및 대한민국 정부수립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위원

현, 서울 외국인노동자센터 이사
현, 이주배경 청소년 재단 이사
현, 이주민센터 동행 대표

2007년‘나의 서울살이’체험담 현상공모 우수상 수상(숙명여대)
2017년 제10회 세계인의 날 대통령 표창 수상

목차

추천사
들어가는 말 _ 나의 안, 우리의 An

PART 01 나의 살던 고향은
남베트남의 해방
존경하는 나의 아버지, 어머니
우리 집은 해방전선의 연락소
보트피플, 그리고 오빠와 언니
그래도 순수했던 그때의 추억
내 어린 시절의 꿈

PART 02 희망과 불안의 공존, KOREA!
운명처럼 만난 한국인 남편
내 이름은 구슬 옥에 비단 금
좁혀지지 않는 문화의 차이
나도 일하고 싶어요
허전하고 슬픈 타국살이
고향의 음식
상처 입은 민족 자존심

PART 03 나는 그래도 운이 좋았다
사랑받는 베트남 며느리
남편의 사랑, 시어머니의 기도
한국어학당과 방송대학교
뒤늦게 알게 된 베트남 역사
분가를 위한 10년의 노력
내 꿈과 미래는 이 땅 위에

PART 04 그녀들 역시 대한민국의 여성이자 어머니
너무도 자연스러운 문화적 불평등
농담으로 치부되는 이주민 비하
그녀들을 바라보는 차가운 시선
베트남 유학생 대상 농촌 총각 장가보내기
결혼이주여성의 무거운 어깨
폭력을 견디는 아내, 권리를 빼앗긴 엄마
불합리한 비자발급 제도
엄마의 말로 아이와 이야기하고 싶은 소망
서로를 보듬어 안은 몇 가지 소소한 일상

PART 05 짓밟히는 이주노동자의 꿈
현대판 노예의 비극
감금 폭행에 살해 협박까지
여성 이주노동자의 고달픈 삶
8년 근속 노동자의 몸부림
휴가 다녀왔는데 해고라니
농업 이주노동자의 비참한 현실
온갖 벌레와의 동침
여전히 맞고 사는 이주노동자
때로는 공무원도 폭력 가해자

PART 06 그들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
이주노동자의 등급 E7과 E9, 그리고 가족
짓밟히는 이주노동자의 권리
직업선택의 자유? 잔인한 고용허가제!
고용허가제가 합헌이라고?
그들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
나는 욕먹어도 좋다

PART 07 작지만 절실한 ‘동행’의 가치
저요, 제가 통역하겠습니다
이주노동자 상담을 위한 첫걸음
스스로 돕는 이주민공동체
베트남 공동체의 축제
발전하는 주한베트남 교민회
이주민 축제는 그들만의 축제인가?
외국인 주민의 시정 참여
이주민센터 동행의 탄생

PART 08 차별 없는 세상을 향한 발걸음
당신이 하고 싶어? 안 하면 안 되나?
짧은 좌절과 새로운 시작
차별의 아픔은 내 아들도 가지고 있었다
한국에 존재하는 다양한 차별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싸우는 사람들
정(情)으로 보듬는 공동체

맺은 말 _ 이주민이 조금은 편안해질 수 있는 자리

부록 _ 언제 우리 아이들이 나의 말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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