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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글자책) 조선의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

김을한 저 | 페이퍼로드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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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90475884 / 336쪽 / 638g / 196 x 2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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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추천글 조선 500년 역사의 마지막 페이지는 영친왕이다. 영친왕 이은 씨의 파란만장하고 또 기구한 일생이야말로 우리의 머리와 가슴과 피를 뜨겁게 하는 기록이 아닐 수 없다. 동명 김을한 씨의 『인간 이은』은 그 시대환경과 한일 두 나라의 인정·풍토 가운데서 영친왕의 인간상을 가장 정확하게 부각시킨 문장이다. 1950년 이후 영친왕을 가까이 모셔온 동명은 누구보다도 자연인 이은 씨를 잘 아는 사람이다. 영친왕 이은 씨의 일생을 우리 독자에게 소개하는 동시에 망국 왕조의 역사를 회상시키는 기록을 남기는 일에 동명만한 적임자가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_작가 김팔봉 영친왕은 한마디로 말해서 비극의 주인공이다. 좀 더 일찍이 세상에 태어났더라면 한 나라의 군주가 되었을지도 모를 분이 시대를 잘못 만나서 망국의 통한을 품은 채 거의 일생을 볼모로 지낸 일을 생각하면 인간적인 동정을 금할 수 없다. _전 ≪한국일보≫ 사장 장기영 김을한 씨의 서술은 대체로 정확하며, 아주 어려운 시기에 왕전하의 잘못된 국적을 다시 고치고 가여운 덕혜옹주마저 본국으로 모셔오게 해준 그 노고를 고맙게 생각한다. _영친왕비 방자 여사 김을한 씨는 다년간에 걸쳐 우리 가족 일에 관해서 여러 가지로 상세한 자료를 수집해왔다. 김을한 씨는 이 저작을 통해서 정확한 역사와 부친에 관한 일을 자세히 소개하고, 한일관계의 복잡함을 말하고 있다. _영친왕의 아들 이구 씨 ○추천의 글 영친왕이 손수 라이터를 켜 담뱃불을 붙여줄 때는 진땀이 흐를 지경이었다. 아무리 민주주의 시대라 하더라도 일국의 황태자였던 이가 그렇게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너무나 소탈한 영친왕의 태도에 깊은 감명을 받고 머리가 저절로 숙여졌다. 영친왕은 조국을 떠난 지 거의 반세기나 되었는데도 우리말을 잊어버리기는커녕 나보다도 더 잘했다. 게다가 궁중에서나 쓰는 우아한 말을 들으니 ‘역시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진심으로 경탄하게 되었다. -21p “그때 이 대통령의 심리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자기도 걸핏하면 무슨 대군의 몇 대손이라는 것을 내세우면서, 황태자는 그만두고라도 개인적으로도 전주이씨 종손인 이은 씨에 대해서 어찌 그리 냉담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한 가지 추측할 수 있는 것은, 당시 전 국민이 영친왕을 동정하고 있었고 그만큼 인기도 대단했으므로 그것이 싫었던 것 같습니다.” -33p 무엇 때문에 이 세상에 났다가 무슨 까닭으로 만리타향에서 산송장의 신세가 되었단 말인가? 그 처참한 광경을 보고는 병원에 갔던 것을 오히려 후회하게 되었다. 이제는 하루바삐 덕혜옹주를 데려다가, 죽더라도 조국에서 죽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깊이 하게 되었다.-50p 영친왕님은 그때 복건에 초립을 쓰시고 연두 두루마기에 남빛 전복을 입으셨다. 나하고는 생일까지도 같은 동갑장이 열한 살의 아기인지라 그분도 세상을 모르는 듯 소파에서 뛰어놀고 계셨다. 나는 그분과 함께 뛰어놀고 싶은 충동을 가슴에 품은 채 그저 가만히 서있을 뿐이었는데, 그분은 아침부터 와서 고생을 치른 우리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대로 천진하시기만 했다.-103p 다이쇼 일왕의 뒤를 이어서 황태자로 있던 히로히토(裕仁)가 쇼와(昭和) 일왕으로 등극하는 것을 본 영친왕은 문득 “나도 황태자였는데···” 하는 생각이 머리에 떠올라 자신도 깜짝 놀랄 지경이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잠시라도 일본을 떠나고 싶은 생각이 더욱 간절했던 것이다.-119p 왕전하의 경우와 똑같은 불행한 길을 걷게 되신 것인데, 옹주의 몸이었고 더구나 말이 없고 심신이 약한 분이었습니다. “마음을 굳세게 먹으셔야 됩니다”라고 말씀드리면 덕혜옹주는 다만 “예” 하고 대답만 할 뿐 아무 말이 없었는데, 서울로 귀국해서 어머님의 장사를 치르고 와서는 더욱 말없는 옹주가 되고 말았습니다.-136p 하얼빈 역두에 있는 이토 히로부미의 조난비는 뒤집어 말하면 안중근 의사의 의거비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 앞에 서 있는 영친왕의 가슴속에는 이토의 죽음을 조문하는 마음과 안 의사의 의거를 찬양하는 정반대의 생각이 서로 엇갈려서 형언할 수 없는 감회에 잠겼다.-146p 그들은 볼모로 잡혀온 영친왕의 신세를 동정했던 것이다. 영친왕의 눈물은 여학생들의 마음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서글펐기 때문이다. 그리고 방자 여사가 그를 따라 눈물을 흘린 것은 영친왕을 동정하는 여학생들이나 그들로부터 동정을 받는 영친왕이 다 같이 가여웠기 때문이다.-153p 영친왕은 문득 40년 전의 일을 회상했다. 이토 히로부미의 손에 이끌려 외종사촌 엄주명과 함께 처음으로 일본에 왔을 때 잠시 아카사카 이궁에서 묵었던 일이 생각난 때문이었다. 혼란한 영친왕의 머릿속에는 “조선독립 만세!”라는 민중의 부르짖음과 함께 “이왕전하!” 하고 자기를 환호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러나 그 다음 순간에는 “아니야, 아니야. 내가 무엇을 했다고?” 하는 생각과 함께 회한의 눈물이 흘렀다. 누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 어째서 이렇게 되었는가?-179p 나는 의장대를 지휘하던 원용덕 중령에게 사정 이야기를 하고 덤으로 다시 한 번 연주해줄 것을 부탁했다. 그는 군인답게 선뜻 쾌락하면서 “국빈을 위해서 또 한 번 받들어 총!” 하고 호령했다. 수십 자루의 총이 수풀처럼 일제히 높이 들렸다. 군악 소리도 요란히 울렸다. 좌우로 박사를 부축해 안은 우리는 형언할 수 없는 감회를 품고 지휘관의 선도를 따라 의장대를 사열했다. 헐버트 박사의 노안에도 눈물이 어렸다.-208p

저자 소개

  • 저자 : 김을한
저자 : 김을한
동명(東溟) 김을한은 1905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을사년에 태어났다 하여 이름을 을한(乙漢)으로 지었다. 병자호란 때의 충신 김상헌의 후손인 그는 교동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양정고보 2학년 때 3·1운동을 맞았다. 그 직후 도쿄로 유학하여 와세다대학에 진학했다. 그곳에서는 김기진 등과 함께 극단 토월회를 조직하기도 했다. 귀국한 직후인 1924년, 조선일보 한기악 편집국장의 발탁으로 신문기자가 되었다.
김을한은 식민지시대의 대표적인 저널리스트였다. 사회부기자 김을한은 그 당시 발생했던 큰 사건들을 밑바닥에서부터 파헤쳐 일제의 악랄한 식민정책을 폭로함으로써 이름을 떨쳤다. 광주학생운동, 장진강 토지사건, 만주사변의 치열한 현장에 특파원으로 파견되어 생생한 실상을 보도하는 눈부신 활약을 했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김을한은 서울신문사 특파원으로 도쿄에 주재하게 되었고, 이때 영친왕을 처음 만났다. 이후 20여 년 동안 영친왕과 덕혜옹주의 귀국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언론 일선에서 물러난 뒤에도 활발한 저술 활동을 이어갔다.
『인간 이은』『월남선생 일대기』『여기 참사람이 있다』 등의 저서가 있다.
덕혜옹주의 유치원 동무였던 아내 민덕임을 먼저 보내고 못내 그리워하다 1992년 서울 반포에서 세상을 버리고 그 곁으로 갔다.

목차

끝 없는 한, 마르지 않는 눈물(無窮限不盡淚)·김을한|5

영친왕과 덕혜옹주, 그리고 내 아버지 김을한·김수동|7

영친왕을 위해 곡하다(哭英親王)·박종화|14


제 1부·왕조의 석양

도쿄에서|19

해방은 되었건만|27

이승만과 영친왕|32

윤대비의 기품|38

가엾은 덕혜옹주|45

사랑의 귀공자|51

의친왕과 이건 공|60

명성황후는 미인이었다|67

세 번의 통곡|72

고종의 고심|78

마지막 가르침|84


제 2부·망국의 볼모

정략결혼의 안팎|93

만년처녀 민 규수|101

여운형의 도쿄 방문|107

신혼마차에 날아든 폭탄|111

유럽 여행|117

상해임시정부의 영친왕 납치 기도|124

헤이그에서|130

10년 만의 득남|136

마지막 황제 부의와의 만남|140

하얼빈에서|145

불타는 민족혼|151

도쿄의 제 2 종묘|160


제3부·자유 없는 자유인

일본의 패전|169

평민으로 산다는 것|176

아들의 미국 유학|181

환국은 통일 후에|187

홍사익 중장의 비극|195

헐버트 박사의 귀국|202

6·25전쟁|214

밀항 학생들을 구하다|220

고집스러운 이 대통령|226

구황실 재산처리법|230

이승만과 요시다의 호랑이 문답|235

왕저는 사라지고|244

문제의 패스포트|249

이중의 국제결혼|255

지난한 국적 환원|263


제4부·창덕궁의 봄

창덕궁으로 환궁한 윤대비|277

창덕궁의 괴화(怪火)|284

주영대사를 고사하다|293

영친왕 쓰러지다|301

박 대통령과의 면담|307

덕혜옹주의 귀국|316

그리운 조국으로|324

고독의 왕자, 침묵의 왕자|331


에필로그|334

영친왕 연보|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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