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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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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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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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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나
- 15,750
- 16,650
- 10,800
- 16,200
출판사 리뷰
책 속에서
[시]
<꽃이 재차 말하네> _ 이영선
내가 웃으면
아기 미소로 방긋 웃고
내가 울면
슬픔 되어 시든다 꽃이 말하네
꽃그늘에 시름 감추면
달콤한 향기로 덮어 주고
투정의 입술 오물거려 내밀면
바람의 숨결로 흔들어 재우네
향기 없는 꽃은 슬픈 일이고
괴로움 없는 인생은
찬란함 모른다고 꽃은 재차 말하네
<순례> _ 김명옥
맨발로 걸어 들어간다
나무들의 성당으로
된서리에 발 딛고
삭풍에 시달리는 나무들
성한 몸이 하나도 없다
잘렸거나 부러진 상처를 들고
고해소 앞에 길게 줄 서 있다
나무들이 흘린 죄로
숲은 점점 더 어두워지고
기울거나 굽은 고백을 주워 먹은 새들
날개 무거워지고
들어갈수록 하늘은 더 가팔라진다
절룩거리는 내게
못 자국 서늘한 나목이 묻는다
온 힘 다해 오느라 찢어졌냐고
펄럭이는 내 옆구리에서
흘러나오는 어둠을 본 걸까
빛을 나눠 줄 나무 성자는 어디에 있나요?
속이 텅 빌 때까지 더 찢겨야 하나요?
부르튼 질문들 허공에 붐빌 때
어디선가 나타난 호랑가시나무 한 그루
나를 들쳐업고 가시 밖으로 나온다
눈발이 온다
젖내나는 맨발을 신고서
[수필]
<눈물의 이모티콘> _ 이순헌
쌍둥이들이 거짓말처럼 남미로 떠난 날은 작년 만우절인 4월 1일이다. 아파트 주차장에서 딸네 가족과 잔뜩 짐을 실은 밴 차가 공항으로 떠나기 직전이다. 항상 곁에 있던 아이들, 오늘 헤어지면 언제 볼지 모른다. 난 차 안으로 몸을 반쯤 디밀고 서서 애들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가서 엄마 말 잘 듣고 건강하게 지내라~~”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서준이가 내 손을 덥석 잡으며 소리쳤다.
“할머니, 사랑해요! 할머니 사랑해요!”
그리고 한 손으로는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연신 훔쳤다.
“아이고, 우리 서준이 다 컸네.”
나는 놀라서 오히려 웃음이 나왔다. 좀 전까지 무심했던 아이다. 옆에서 큰아이 하준이도 의외인 듯 말했다.
“너는, 나도 안 우는데 네가 왜 눈물을 흘려?”
정작 하준인 며칠 전부터 이별을 준비하며 내게 틈틈이 말했었다.
“할머니, 나는 도착하면 할머니가 그리울 것 같애.”
전날에도 “할머니, 오늘이 마지막 밤이네.” 하며 나와 안고 헤어짐을 아쉬워했다. 그러나 서준인 태블릿에만 몰두하며 데면데면했었다. 일찍부터 괌, 말레이시아 몽키아라, 시카고 샌프란시스코 등 해외여행을 많이 다녔던 아이들이다. 우리 부부도 아이들과 말레이시아에 ‘한 달 살기’로 갔었고 괌과 제주에서도 같이 지냈다. 이번엔 3년이라니까 그 기간이 긴 세월인 걸 아는가 보다.
사위가 과테말라 지사장으로 발령이 나자 딸은 예민한 하준이가 안 가겠다고 보챌까 봐 계속 비밀로 했다. 아이들은 이제 막 초등학교 일 년을 보냈다. 그곳에선 국제학교에 다닐 것이다. 정든 친구들과 이별할 시간을 줘야지 않냐는 내 말에 딸은 반대였다. 갈 날짜가 거의 임박해서야 딸이 작정하고 아이들에게 알아듣도록 얘기했단다.
“엄마, 진작 얘기할 걸 괜히 감췄어. 서준이가, 내 인생에 외국에 나가서 살아보네, 하고 하준이도 금방 받아들이더라고.”
하여간 아이들 속은 부모라도 다 알 수가 없다. 그동안 고집부릴까 봐 공연히 애태운 게 무색했다. 영어를 잘하는 엄마와 과테말라의 스페인어까지 하는 아빠와 함께 둥이들의 외국 생활은 그리 갑갑하지는 않을 것이다.
8년 전 한꺼번에 찾아온 둥이들은 축복이었다. 모두가 기다리다 지쳐 마음을 정리하고 있을 때였다. 나의 잦은 눈물바람도 멎었다. 친구는 애들을 바라보는 내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진다고 했다. 쌍둥이지만 많은 부분이 서로 다르다. 이란성이라서 골라보는 재미도 있다. 큰애 하준인 기운이 장사인데 섬세하고 낯가림이 심하다. 작은애는 담백하고 용기가 있으나 기운 센 하준일 못 당해서 둘이 자연스럽게 서열이 정해졌다. 나는 매번 눈물 찔찔 짜는 맞은 놈 편을 들어 큰애를 꽉 안고 “너도 한 대 때려 봐.” 하며 서준에게 기회를 준다. 그러나 대거리만 하면 큰놈이 더 불같이 달려드니 작은애는 울면서 제 엄마한테 달려가 구원을 청한다. 이제는 제 깜냥으로 아예 덤빌 생각이 없다. 나도 작전을 타이르는 쪽으로 바꿀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도 금방 사이가 좋아져서 걱정은 없다. 다정한 제 부모처럼 둘이 여보, 당신 하며 놀 때는 동성 쌍둥인 것이 다행이라 생각한다.
평소 껌딱지 서준이가 제 에미에게 달라붙어 뽀뽀를 퍼부으면 옆에 있던 내가 “할머니도~” 하며 손을 벌렸다. 그럴 때마다 서준인 안으려는 날 밀치고 뒤로 뺀다. 그러면 에미는 “우리 서준인 엄마밖에 몰라.” 하며 아이를 더 사랑스럽게 힘껏 끌어안는다. 영리한 녀석이 에미 없을 땐 할머니에게도 넙적 잘 안기는데 에미나 애나 유난스러웠다. 제 딴에 날 잠깐씩 서운케 했던 게 갑자기 마음에 걸렸을까?
밴 차량은 공항으로 떠나버렸다. 남겨진 남편과 나는 우두커니 서 있고, 애들이 사라진 아파트 마당은 텅 비어 허허하다. 그때 손안에서 핸드폰이 부르르 떤다. 카톡이 왔다.
「보고 싶어요, 할머니. ㅠ ㅠ」
감정을 추스르지 못한 채 방금 떠난 서준이 그새 파란 눈물 홍수의 이모티콘과 함께 문자를 보내왔다. 허전한 가슴이 뭉클해 오며 나도 답장을 보냈다.
「위험한 장난하지 말고, 밥 잘 먹고 건강해져서 만나자.」
이모티콘처럼 눈물을 뿌리며 “할머니 사랑해요”를 외치던 아이 모습이 오락가락해 나도 눈앞이 흐려지면서 가슴으로부터 벅찬 웃음이 자꾸자꾸 삐져 나왔다.
거리에서 우리 쌍둥이만 한 애들이 깔깔 웃으며 서로 밀고 당기며 장난을 친다.
“너희들 몇 살이니?”
멈칫 서서 내가 물었다.
“안 가르쳐줘요!” “백 살예요!” “오만 살예요!”
“에구 이 개구쟁이들아, 울 애기들 같아서 묻는 거야.”
“우린 아기가 아니거든요!”
그렇다, 난 아직도 여덟 살 손주들을 애기라고 말하고 있다.
보고 싶다~~. 울 애기들.
책머리에\t회장\t 이영선\t 03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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