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김동인
호는 금동琴童, 춘사春士. 평양 진석동에서 출생했다. 기독교 학교인 평양숭덕소학교와 숭실중학교를 거쳐 일본의 도쿄 학원, 메이지 학원, 가와바타 미술학교 등에서 공부하였다. 1917년 일본 유학 중 이광수(李光洙), 안재홍(安在鴻) 등과 교제하였다. 1919년 전영택, 주요한 등과 우리나라 최초의 문예지 [창조]를 발간하였다. 처녀작 「약한 자의 슬픔」을 시작으로 「목숨」, 「배따라기」, 「감자」, 「광염 소나타」, 「발가락이 닮았다」, 「광화사」 등의 단편소설을 통하여 간결하고 현대적인 문체로 문장 혁신에 공헌하였다. 1923년 첫 창작집 『목숨』을 출판하였고, 1924년 폐간된 [창조]의 후신 격인 동인지 [영대]를 창간했다. 1930년 장편소설 『젊은 그들』을 [동아일보]에 연재, [삼천리]에 「광염 소나타」를 발표했다. 1932년 [동광]에 「발가락이 닮았다」, [삼천리]에 「붉은 산」을 발표하였다 .1933년에는 [조선일보]에 『운현궁의 봄』을 연재하는 한편 조선일보에 학예부장으로 입사하였으나 얼마 후 사임하고 1935년 월간지 [야담]을 발간하였다. 극심한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소설 쓰기에 전념하다 마약 중독에 걸려 병마에 시달리던 중 1939년 ‘성전 종군 작가’로 황국 위문을 떠났으나 1942년 불경죄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1943년 조선문인보국회 간사로 활동하였으며, 1944년 친일소설「성암의 길」을 발표하였다. 1948년 장편 역사소설『을지문덕』과 단편「망국인기」를 집필하던 중 생활고와 뇌막염, 동맥경화로 병석에 누우며 중단하고 1951년 6·25 전쟁 중에 숙환으로 서울 하왕십리동 자택에서 사망하였다.
저자 : 이상
1910년 2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명은 김해경, 본관은 강릉이다. 여덟 살 되던 해 신명학교에 입학하여 화가 구본웅과 만나 오랜 친구로 지냈다. 학창 시절, 미술에 관심이 많아 화가를 꿈꾸다가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에 입학해 수석으로 졸업했다. 학교 추천으로 조선총독부 내무국 건축과 기수로 발령받아 근무했다. 1930년,잡지 《조선》 국문판에 첫 작품이자 유일한 장편 소설 「십이월 십이 일」을 ‘이상(李箱)’이라는 필명으로 연재했다. 1931년 조선미술전람회에 서양화 「자상」이 입선하고, 《조선과 건축》에 일본어로 쓴시 「이상한가역반응」 등 20여 편을 발표했다. 폐결핵으로 조선총독부 건축기사를 그만둔 후, 1933년 서울 종로1가에 다방 ‘제비’를 개업했다. 1934년 박태원, 정지용, 이태준 등의 도움으로 연작시 「오감도」를 《조선중앙일보》에 발표하고 ‘구인회’ 회원이 되었다. 1936년 구인회 동인지 《시와 소설》 창간호를 발간하고 단편 소설 「지주회시」, 「날개」를 발표하며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1936년 가을, 일본 도쿄로 건너가 작품 활동을 하다가 1937년 2월에 ‘사상 혐의’로 일본 경찰에피검되어 조사를 받던 중 폐결핵이 악화되어 병원으로 옮겼으나 같은 해 4월, 스물여덟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저자 : 이효석
가산 이효석은 강원도 평창에서 출생하였다.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를 거쳐 경성 제국대학 영문과를 졸업하였으며, 1928년 '조선지광'지에 단편소설 '도시와 유령'을 발표하면서 문단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효석의 문학은 시적 서정을 소설의 세계로 승화함으로써 한국 단편소설의 백미를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실적 묘사보다는 장면의 분위기를, 섬세한 디테일보다는 상징과 암시의 수법을 이용하는 그의 문체는 우리 단편소설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메밀꽃 필 무렵'에 이르러 전성기를 누렸다. 또한 '돈', '메밀꽃 필 무렵' 등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성(性)의 탐색을 통해 그는 일제시대의 암울한 현실과 대비되는 순수하고, 순결한 세계를 인간의 원초적 본능인 성(性)과 결합시킨 시적 서정소설로 새로이 개척해냈다. 이로써, 자연과 인간 본능의 순수성을 시적 경지로 끌어올렸다는 평가와 함께 당시 이태준, 박태원 등과 함께 대표적 작가로 주목받았던 이효석은 그의 황금 같은 문학적 결실을 다 누려보지도 못한 채 1942년 결핵성 뇌막염으로 36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말았다.
저자 : 나도향
처음에는 감상과 낭만이 가득 찬 소설을 썼으나, 차츰 당시 현실문제를 파헤친 사실주의 계열의 소설을 쓴 소설가로 본명은 경손, 필명은 빈, 호는 도향이다. 1902년 서울 청파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배재고보를 졸업하고, 경성의전에 입학했다가 몰래 일본으로 건너갔으나 학비가 없어 귀국하였다. 1921년 \"신민공론\"에 단편소설 <추도>를 발표하고, 1922년 동아일보에 장편소설 <환희>를 연재. 당시 홍사용, 현진건, 이상화, 박종화 등과 함께 문예동인지 \"백조\"를 발간하였다. <젊은 시절>, <여이발사>등의 단편들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1923년에 단편집 <진정>, 장편소설 <환희>출간하였고, <행랑자식>, <17원 50전>등의 단편을 발표. 1925년 <물레방아>, <뽕>, <벙어리 삼룡이>등의 대표적인 단편들을 발표하면서 왕성한 활동을 했다. 학업을 계속하기 위해 다시 일본으로 건너갔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귀국하고, 1926년 8월, 24세의 젊은 나이에 급성 폐렴으로 작고. 이 해에 장편소설 <청춘>이 간행되었다.
저자 : 현진건
1900년 대구에서 대한제국 말기 대구 우체국장을 지낸 아버지 현경운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호는 빙허. 그의 집안은 당시로서는 보기 드물게 신학문을 익힌 지식인 집안이었다. 현진건의 형제들만 하더라도 큰형 홍건은 러시아 사관학교 출신으로 러시아 대사관 통역관을 지냈으며, 둘째 형 석건은 일본의 메이지 대학을 졸업하고 변호사로 활동했고, 셋째 형 정건은 일찍부터 민족애에 눈을 떠 상하이에서 독립운동을 했다. 집안의 전통을 이어받아 현진건 역시 1917년 일본 세이조 중학을 졸업하고 잠시 귀국했다가 다시 중국 상하이로 가서 후장 대학 독일어과에 입학했으나, 1919년 오촌 당숙인 현보운이 자식 없이 죽자 집안의 대를 잇기 위해 귀국하여 그의 양자로 들어갔다. 문학적으로 현진건에게 큰 영향을 준 사람 역시 집안 사람인 현희운(필명 현철)이었다. 우리나라 신극 초기에 연극평론가로 활동한 그는 현진건을 신문사에 취직시키고, 처녀작 「희생화」를 『개벽』에 발표하도록 주선하기도 했다. 현진건의 본격적인 문학 활동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1921년, 「빈처」, 「술 권하는 사회」 등 한국문학사에 길이 남을 명작을 잇달아 발표하면서 작가로서 명성을 얻은 현진건은 『백조』 동인으로 활동하는 한편으로 기자로서도 타고난 재능을 발휘해 술 잘 마시고 기사 제목 잘 뽑기로 인기가 대단했다. 그러나 1936년 이른바 '일장기 말살 사건'으로 투옥되면서 오랜 언론계 생활을 마감하고 이후 창작에만 전념했다. 한국의 단편 문학은 현진건 때문에 풍요로워졌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근대문학 초기 한국 사실주의 단편소설의 기틀을 다진 그는 말년에는 주로 장편소설 창작에 몰두하다가 과음과 일제의 탄압에 따른 울분으로 건강을 해친 나머지 1943년 장결핵으로 43세라는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저자 : 김유정
강원도 춘천에서 부친 김춘식 씨와 모친 청송 김씨 사이의 2남 6녀 중 일곱째로 출생했다. 휘문고등학교와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하였으나 자퇴하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한때는 일확천금을 노리고 금광에 몰두하기도 하였다. 1932년 크게 깨친 바가 있어 마음을 바로잡고 본격적인 계몽운동으로 춘천 실레 마을에 금병의숙(錦屛義熟)을 설립하였다. 1935년 소낙비가 당선되어 본격적으로 문단에 등장하였고 '금 따는 콩밭, 봄봄, 만무방, 안해, 솥, 동백꽃'등 많은 작품을 발표하였다. 폐결핵에 시달리면서 29세에 요절하기 까지 2년 동안의 작가생활을 통해 30편에 가까운 작품을 남겼다.
저자 : 이광수
평북 정주 출생으로 최남선과 더불어 신문학을 개척한 대표적인 문인이다. 일진회 장학생으로 도일하여 명치학원에서 수학했으며, 귀국 후 오산학교에서 교편을 잡기도 했다. 초기에는 '무정'을 비롯하여, '개척자', '윤광호', '방황'과 같은 작품을 발표하였다. 일본에서 '2.8독립선언서'를 기초하고 상해로 탈출한 후에는 도산 안창호의 사상에 큰 영향을 받고 돌아왔다. 1930년대 초반까지 윤리 중심적 색채를 띤 '재생', '마의태자', '흙' 같은 장편을 집필하였고, 중반 이후에는 '이차돈의 사', '원효대사', '무명'등 불교적인 색채가 짙은 작품을 창작했다.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투옥된 이후, 창씨개명하고 학병 권유 연설을 하는등 친일 활동에 본격적으로 참여했다. 1950년 납북되었다.
그림 : 김태연
1960년에 태어나 성장기를 합천, 대구, 부산에서 보냈다. 1980년에 연세대에 입학해 공학과 문학 공부를 병행했다. 대학 재학중이던 1987년에 월간문예지 '문학정신'에서 실시한 장편소설 공모에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2년 뒤 장편소설 '폐쇄병동'(1989)을 내놓았고, 그 후에 '그림 같은 시절'(1994)을 출간했다. 잡학병을 심하게 앓고 있다는 평소 지인들의 말처럼 소설 이외의 분야에도 관심이 많았다. 반도체를 비롯한 재료공학, 물리학과 천문학, 역사와 철학, 정신의학 같은 분야에 눈길을 주기도 하고 1989년부터 1995년까지 국민경제연구소와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한국경제를 구경하기도 했다. 제12차 국제수학교육대회(ICME 12) 융합학문특별위원회 위원(현). 장편소설 '폐쇄병동(1989년)', '그림 같은 시절(1994년)', '반인간(2003년)', '풍류왕 김가기(2008년)', '이것이다(2009년)' 등을 발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