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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해적 - 파란시선 122

김해선 저 | 파란 | 2023년 03월

나의 해적 - 파란시선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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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91897494 / 138쪽 / 179g / 128 x 2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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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시인의 말 굽은 등에서 장미가 핀다 장미가 흐른다 이마와 콧등을 지나 목청을 타고 내려간다 안개가 고여 있다 수많은 굽은 등이 잠겨 있다 모두 같은 모양 같은 크기이다 오지 않는 시간을 장미가 뱉어 버린 것일까 얼굴과 표정을 등 속에 감추고 있는 거미가 복제된 것일까 장미를 업고 굽은 등이 간다 가시를 매달고 줄기가 뻗어 간다 추천사 김해선 시인의 ‘해적’은 그에게 뱃머리를 대며 출격해 온다. 그를 보면 출몰하는 ‘해적’을 만나고 오느라 “나의 살과 피”를 다 주고, 나타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촛불과 파도와 미로’ 속을 휘젓고 온 시와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하곤 하였다. 우리는 만나면 시를 쓰는 일에 대해 마음을 나눈다. 그때마다 “고요하고 격렬한 배회”로 “이쪽과 저쪽을 잇”고 있는 김해선 시인의 쉼 없는 순례를 목격한다. “언제부터 존재했는지 잃어버린 질문”이 “왼쪽 가슴속에 살고 있”다는 감각으로 ‘오지 않는(을) 시간’을 기다리는 자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폭격처럼 쏟아지는 감각을 시가 아니면 덜어 낼 수 없어, “불타는 머리카락이 미친 듯이 오그라”드는 날들을 숙명으로 맞닥뜨린 채 걸어가고 있는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그는 ‘해적’의 언어로 기다림을 구사한다. 기다림의 자세가 곧 중간 지대라고 역설한다. 폭풍 같은 ‘해적’의 언어를 받아 적으면서 동시에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으로만 알 수 있는 이상한 세계가 생활의 생김새라고 말한다. 이 기다림은 특정 사람이나 때에 있지 않고 도처에서 시작돼 사방으로 흘러가는 것에 집중하는 기다림이다. 바로 그 흘러가는 길목에 김해선 시인이 앉아 있다. 그 흔적들을 위해 자신을 다 쓰기로 작정한다. 그러므로 김해선 시인은 생활인으로서의 걸음을 선명하게 반복한다. 분명한 자리에서는 감지할 수 없는 뒷면을 적는다. 감각적인 이미지의 홍수 세례가 “나의 얼굴에 여덟 개의 발목을 붙이”지만 정작 도달할 곳은 없고, 단지 “다시 세어 가고 던지기를 반복”하는 연거푸의 시간이 방점이라는 진실을 시로 증명하려 한다. 나는 그가 오늘도 걷고 있거나 권태로운 마음을 바깥 풍경에 던지고 있다고 느낀다. 시가 하는 감지는 삶을 관통해 간(갈) 되풀이의 무한 속에 있으므로, 기다림의 자세로만 붙잡을 수 있다는 말을 되뇌면서. 이쪽에서 기다리는 자에게 필시 기다림이 만드는 기도의 자세가 저쪽의 “보이지 않는 소리”를 가져오리라. 마침내 그것이 우리에게 “새로운 몸”을 입힐 것이기에 아주 오래 잘 기다려 왔다는 것을 친구에게 전하고 싶다. ―김기형(시인) 시집 속의 시 세 편 새우 새우가 뛴다 촛농을 떨어뜨리며 수백 마리 새우가 뛴다 나뭇가지에서 솟구치는 파도를 움켜쥐고 뛴다 죽은 나무에서 미로가 왜 돋아나는지 손에 쥐고 있던 지도를 찢어 버리고 뛴다 빈 가지 끝에 매달려 사라지는 새우 사라지지 않은 새우가 뛴다 굽은 등을 밀어 올리며 폭풍을 폭동이라고 중얼거리며, 촛불 속에서 껍질이 살을 붙잡고 뛴다 공중을 매달고 있는 수많은 방 수많은 꿈이 뛴다 ■ 시고 덜 익은 푸른 사과 사과가 간다 두 귀가 달린 병적인 사과가 간다 깊은 저수지 언덕길을 오르는 버스를 타고 물 위에 비치는 얼굴을 보고 간다 이마를 창에 붙이고 물속에서 출렁이는 눈동자와 마주친다 들여다볼수록 눈동자가 없는 텅 빈 공간에서 두 귀를 세우고 두리번거린다 짖어 대는 이웃집 개보다 더 난폭하게 소리 지르는 사과 밤이 오면 창문에 스치는 그림자가 무서워 벽에 붙어 있는 사과가 보인다 혼자 가둬 둘까 봐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사과 나뭇잎 구르는 소리에도 귀를 막는다 빙빙 도는 저수지 수문 속으로 휘말려 가는 강박에 사로잡힌 사과 사라지는 버스에서 내리지 못한다 보이지 않는 물거품에도 움찔거린다 길 없는 길에서 꼭지부터 썩어 가는 내일 ■ 한 조각 빵에 얹혀 있는 치즈처럼 손등이 가렵다 부풀어 오른다 순간 목과 등이 가려워진다 부푼 피부 안에서 불안의 씨앗이 터져 나오는지 손끝이 스치기만 해도 사방이 가렵다 세포들이 씨앗을 날린다 싱싱해진다 마트에서 장을 보거나 운전할 때 친구를 만날 때에도 날갯죽지나 옆구리에서 불쑥 솟아난다 어깨를 들썩이게 하고 여기저기 슬쩍 꼬집게 한다 그것은 깊은 잠 속으로 내려가 개미들처럼 여러 개의 방을 만든다 천장과 바닥이 없는 방을 지나 비상구 불빛이 보이는 방문을 열게 한다 얼굴 없는 가족사진이 걸려 있다 모두 아이 같기도 하고 거친 사막에서 사는 사람들 같다 발끝에서 머리까지 몸을 가리고 불안을 먹고 사는 걸까 텅 빈 목구멍들이 움직인다 불가능하고 자유로운 방을 찾아 빈 구멍들이 긁기 시작한다 모두 흘러내리며 긁는다 가려움의 뿌리가 무엇인지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는 방에서 죽어 가며 긁는다 ■

저자 소개

  • 저자 : 김해선
저자 : 김해선
2015년 [실천문학]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집 [중동 건설] [나의 해적]을 썼다.

목차

시인의 말

제1부
새우 - 11
입덧 쌓기 - 12
살짝 지워 줘 - 13
벌레 먹은 나무를 보호하기 위한 자율적인 분쇄기 - 14
이야기 독립군의 지도 - 15
나의 해적 - 16
반쯤 뜨고 있는 눈꺼풀 안에 저장된 변압기 - 18
핑크 아침 - 19
두개골을 감싸고 있는 모태의 밤 - 20
마르지 않는 샘 - 21
시고 덜 익은 푸른 사과 - 22
샌드위치 - 23
나의 탄소 일기 - 24
가려진 시간 - 25

제2부
사라지는 피부 말을 배우는 피부 - 29
끊어지거나 이어지거나 - 30
다이버 - 31
고요하고 격렬한 배회 - 32
이른 아침 자두나무 근처 - 33
살구 - 34
이기적인 바퀴의 탐사 - 35
단단한 씨앗처럼 - 36
한 조각 빵에 얹혀 있는 치즈처럼 - 37
줄어들지 않고 바스락거리는 오후 - 38
작은 오아시스 - 39
잠깐 볼 수 있는 - 40
온도를 높이며 - 41
다뉴세문경 - 42
뜨거운 잠 - 43

제3부
브라질 종소리 - 47
슬픔이 없는 구석 - 48
함몰 - 49
방치되는 - 50
지루하지 않은 방 - 51
나의 연 - 52
귀퉁이가 떨어져 나간 석관의 덮개 아래 - 53
체스키크룸로프에서 온 엽서 - 54
어둠의 자발성 - 56
지나치게 지나치지 않은 방식으로 - 57
빈혈에 대한 몰두 - 58
새와 산소 - 59
아름다운 손 - 60
왕관 - 61

제4부
새벽시장 - 65
물집의 신진대사 - 66
잠시 해가 뜨고 문득 눈비가 오고 - 67
침몰 - 68
늑대와 함께 - 69
세포분열 - 70
현기증을 읽는 방식 - 71
박하 - 72
사라지는 거울 속으로 - 73
개별적인 여름의 하루 - 74
소심한 기계 - 75
사소한 눈 코 입 - 76
겨울이 끝나 갈 무렵 - 77

해설 박동억 존재함이라는 의무 -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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