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구간

양한사상사 권1 (상) : 주.진.한 정치사회구조 연구 -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동양편 760 (양장)

서복관 저 | 세창출판사 | 2022년 07월

양한사상사 권1 (상) : 주.진.한 정치사회구조 연구 -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동양편 760 (양장)

북트리

정가
$68.00
판매가
$37.40 (45%↓) 최저가 보상
적립금
$0.75 (2%P)
출고예상일
2026년 10월 08일 수령예상일 안내
북카트 담기 바로구매하기 위시리스트담기

평점 -  ·  리뷰 0

리뷰 쓰기

ISBN : 9791166840890 / 424쪽 / 600g / 152 x 225 (㎜)

이 상품에 궁금하신점이 있으세요? 1:1상담문의

추천inside
Adobe Flash Player 가져오기

이 분야의 베스트셀러

아래의 도서와 구매하시면 이 도서들의 적립금을 즉시적용해 드립니다.

  • 22,500
  • 15,120
  • 16,020
  • 18,000

책 소개

출판사 리뷰

- 역자 서문 중에서 서복관(徐復觀)은 1903년 호북성 희수현에서 출생하였다. 본명은 병상(秉常)이고, 자는 처음에 불관(佛觀)이었다가 나중에 웅십력(熊十力)의 권유로 복관(復觀)으로 바꾸었다. 어려서 아버지를 따라 글을 익힌 후 현의 고등학당, 무창(武昌)의 성립(省立)제일사범(무한대학 전신)을 거쳐 국학관(國學館)에서 전통 경전에 대한 훈련을 받았다. 1928년 일본에 유학하여 사회주의를 비롯한 정치·경제·철학 등 새로운 사조를 접하였고 일본육군사관학교에 입교하였으나 1931년 9·18사변(만주사변) 발발로 귀국하여 군에 투신한 후 1937년 산서성 낭자관(娘子關) 전투 및 호북성 무한(武漢) 전투를 지휘하였다. 1943년 항일전쟁기에는 연안(延安)에 머물면서 국민당의 연락 임무를 맡았으며 6개월 후 중경(重慶)으로 돌아가 장개석의 14명 핵심막료의 하나로 기밀에 참여하였다. 1946년 육군 소장을 끝으로 15년간의 군생활을 마감하였다. 1944년 서복관은 웅십력과의 만남을 계기로 생애에서 중요한 전환기를 맞이한다. “나라를 잃는 자는 항상 그 문화를 먼저 잃는다”라는 스승의 말이 그로 하여금 불혹을 넘긴 나이에 학문 연구를 시작하도록 만들었다. 1949년 홍콩에서 창간한 정치학술이론잡지 『민주평론』은 1950-60년대 대만과 홍콩을 무대로 한 유학의 현대화 운동의 주요 토론장이 되었고 여기서 함께 활동한 당군의(唐君毅), 모종삼(牟宗三) 등과 함께 ‘현대 신유학(新儒學)’의 대표인물로서 명성을 얻게 된다. 그는 중국의 전통문화, 특히 유가사상과 중국지식인의 성격 및 역사 문제에 관심을 갖고 많은 글을 발표하였다. 1949년 대만으로 이주하여 대중(臺中)에 정착한 서복관은 성립 농학원(農學院)을 거쳐 동해대학(東海大學) 교수로 재직하다가 1968년 동료 교수와의 필전(筆戰) 사건 후 대학 측의 강요로 학교를 퇴직하고 1969년 다시 홍콩으로 거처를 옮기게 된다. 이 때문에 『양한사상사』 집필에도 큰 타격을 입었다고 『양한사상사』 제1권 서문에 쓰고 있다. 1982년 4월 위암 투병 끝에 대만에서 서거하였고, 유언에 따라 1987년 고향인 호북성에 유골이 안장되었다. 사상은 그 시대를 떠나서는 이해할 수 없다. 한대 사상의 연구는 당연히 그 사상이 배태되고 성장할 수 있는 토양, 즉 한대의 정치사회구조를 규명하는 작업으로부터 시작한다. 본서의 제1권 전체가 중국고대의 정치사회구조 연구에 할애되고 있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한(漢)이라는 사회가 탄생하기까지의 전사(前史)로서 서주 종법제도의 역사적 기능, 그에 기초한 봉건제도의 형성과 붕괴, 진(秦) 통일의 기반과 전형적 전제정치의 출현, 진을 계승한 한의 변질된 전제정치, 전제정치와 사회종족세력 간의 갈등관계 등 1권 전체가 고대사회 특히 한대 전제정치의 본질과 구조에 관한 연구로 채워져 있다. 제1권의 초판 제목이 『주·진·한 정치사회구조 연구』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대 정치사회구조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제2권과 제3권에서는 본격적인 사상 해부에 들어간다. 진·한을 대표하는 다양한 사상들의 종합과 조화를 시도한 『여씨춘추』, 『회남자』등의 대규모 편찬서는 물론이고, 『사기』, 『한서』 등 당대의 역사를 서술한 역사서, 심지어 『좌씨전』, 『공양전』, 『곡량전』과 같이 전승 과정의 불분명 속에 한대인의 가탁이 의심되는 부분까지도 사상 연구의 좋은 재료가 되었다. 구체적 사실과 현상을 객관적 언어로 표현한 문헌뿐만 아니라 상징화된 언어로 사람들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문학작품 또한 당대인의 정서와 관념이 투영된 귀중한 사상사 재료이다. 그들이 남긴 수많은 시부와 산문은 물론이고 한영(韓?)의 『한시외전』이나 유향(劉向)의 『설원』에 반영된 현실 인식도 놓치지 않았다. 이와 함께 육가(陸賈), 가의(賈誼), 동중서(董仲舒), 양웅(揚雄), 왕충(王充) 등 주요 인물들의 행적과 저작을 면밀히 분석하여 각 사상의 본질을 드러내고 사상사적 통찰을 제시한다.

저자 소개

  • 저자 : 서복관
저자 : 서복관
1903년 1월 31일 중국 호북성 희수현(?水縣) 서가요(徐家?) 마을 가난한 농촌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에게 기초교육을 받았고, 무창 제일고등사범학교(1918-1923)와 국학관(1923-1926)에서 엄격한 국학 훈련을 받았다. 1928년 일본으로 건너가 경제학을 공부하고 사회주의 사상을 대량 흡수하였으며, 경제적 지원 부족으로 1929년 일본 사관학교 중국팀 23기에 입학하였다. 1931년 9·18사건으로 귀국하여 군직을 맡았다. 1937년 낭자관(娘子關) 전투와 1938년 무한(武漢) 보위전 실전에 참여하였다.
1943년 5월에서 10월 사이 군령부 소장(少將) 연락참모로 연안(延安)에 파견되어 그곳에서 모택동(毛澤東), 주은래(周恩來)와 여러 차례 개인적인 접촉을 가졌다. 중경(重慶)으로 돌아간 후, 「중공 최신 동태」보고서로 장개석(蔣介石)에게 알려지면서 그의 막료로 발탁되어 점차 최고 의사결정에 참여하게 되었다. 1948년 3월 소작농이 소작료를 토지 매입비로 하여 토지를 취득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토지개혁 방안을 제출하였고 이 방안은 1953년 대만에서 시행되었다. 1951년 이념이 맞지 않아 국민당을 탈당하고 대학에 부임하면서 학문을 시작하였다. 그는 100여 년 동안 중국에서 유일하게 군사·정치의 실무 경험을 갖춘 유교학자였다.
서복관은 공자와 맹자 및 『논어』를 종지로 삼고 ‘수신(修身)’과 ‘치국(治國)’의 도는 반드시 보편적인 실천 가능성을 가져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므로 20세기 이래 중국의 학자들이 다투어 서양을 모방하고 사변(思辨)적 방법으로 중국 전통사상을 ‘철학화(哲學化)’하는 데만 전념해 온 학문적 성과는 ‘관념의 유희’일 뿐 공자·맹자의 도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보았다. 서복관은 이렇게 말한다. “공자의 가르침에 의해 개척된 세계는 현실 생활 속의 ‘정상인(正常人)’의 세계이다. 사람과 사람이 들어가야 하고, 들어갈 수 있는 평안한 세계이다. 사람이 플라톤의 이상형 세계에 들어갈 수 있겠는가? 헤겔의 절대정신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겠는가?” 서복관의 연구는 사상사를 중심으로 예술과 문학도 함께 다루고 있다. 그는 선진(先秦) 사상이 전제(專制) 통치를 거치면서 왜곡되었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중국 문화가 원래 가지고 있는 민주 정신을 다시 활짝 터놓아 흐르게 하고 싶다. 이것은 ‘옛 성인을 위하여 끊어진 학문을 잇는[爲往聖繼 學]’ 일이다. 그것은 일부 정신으로 하여금 민주 정치를 지지하도록 만든다. 이것은 ‘만세를 위하여 태평을 여는[爲萬世開太平]’ 일이다[역주: “爲往聖繼 學, 爲萬世開太平”은 장재(張載)의 『근사록(近思錄)』에 나오는 말이다]. 정치가 민주적이지 않으면 태평도 있을 수 없다.”
저서로는 『중국사상사논집』(1959), 『중국인성론사―선진편』(1963), 『중국예술정신』(1966), 『중국문학논집』(1966), 『공손룡자강소(公孫龍子講疏)』(1966), 『석도지일연구(石濤之一 究)』(1969), 『양한사상사』 권1(1972), 『양한사상사』 권2(1976), 『황대치양산수장권적진위문제(黃大癡兩山水長卷的眞僞問題)』(1977), 『양한사상사』 권3(1979), 『유가정치사상여민주자유인권(儒家政治思想與民主自由人權)』(문집, 1979), 『주관성립지시대급기사상성격(周官成立之時代及其思想性格)』(1980), 『중국문학논집속편』(1981), 『중국사상사논집속편』(1982), 『중국경학사적기초』(1982) 등이 있다. 1982년 4월 1일 별세하였다.
중국의 고난시대를 겪으며 서복관은 강한 ‘서민적 줄거리’[곽제용(郭齊勇) 교수의 말]를 가진 300여만 자의 시사평론을 썼으며, 1949년부터 1982년까지 대만과 홍콩에서 가장 권위 있는 평론가였다. (출처 : 서복관 선생 아들 서무군(徐武軍) 제공)

역자 : 김선민
연세대학교 사학과 졸업, 동 대학원 석·박사 취득. 전 연세대학교 연구교수. 역서로 『황제사경 역주(黃帝四經譯註)』(2011), 『아시아 歷史와 文化 2: 中國史 中世』(1999), 『古代中國』(1995), 논문으로 「魏晉교체기 관리의 喪禮와 公除」(2019), 「兩漢 이후 皇帝短喪制의 확립과 官人三年服喪의 入律」(2007) 등이 있다.

역자 : 문정희
연세대학교 사학과 졸업, 동 대학원 석·박사 취득. 연세대학교 중국연구원 연구교수. 역서로 『역주 중국 정사 외국전 1: 사기 외국전 역주』(2009), 『역주 중국 정사 외국전 2: 한서 외국전 역주 상』(2009), 『역주 중국 정사 외국전 6: 남제서·양서·남사 외국전 역주』(2010), 『역주 중국 정사 외국전 7: 위서 외국전 역주』(2010), 『天空의 玉座―중국 고대제국의 조정과 의례』(2002)(이상 공역), 논문으로 「고대 중국의 출행의식과 여행금기」(2008), 「일서(日書)를 통해 본 고대 중국의 질병관념과 제사습속」(2017) 등이 있다.

목차

역자 서문
일러두기

서장
1. 삼판개명 자서(三版改名自序)
2. 중국 은주(殷周)의 사회 성격 문제에 관한 보충의견―대만판 서문을 대신하여
3. 자서(自序)

제1장 서주(西周) 정치 사회의 구조 성격 문제
1. 서주 노예사회론자에 대한 검토
2. 주 왕실의 종법제도
3. 주 왕실의 봉건제도와 그 기본정신
4. ‘국인(國人)’의 성격, 지위 문제
5. 토지제도와 농민
6. 농민의 지위와 생활 형편
원주

제2장 봉건 정치사회의 붕괴와 전형적 전제정치의 성립
1. 봉건 정치질서의 붕괴
(1) 주 왕실의 봉건적 지도력의 상실과 그 원인
(2) 봉건정치의 전면적 붕괴
2. 부세(賦稅) 중압에 의한 봉건사회의 해체
3. 봉건사회 해체 속에서의 국인(國人) 계층의 발전과 전환
(1) ‘상(商)’의 의미와 유래
(2) 춘추 말기의 상업 발전
(3) ‘사(士)’의 의미와 유래
(4) 춘추 말기 사(士)의 발전 중의 전환
(5) 국인(國人) 계층의 발전 전환이 정권에 미친 영향
4. 봉건 도덕의 전승 문제와 종법의 정치에서 사회로의 이동
(1) 공자가 전승한 봉건 도덕의 가치 문제
(2) 예(禮)의 전승 중의 전환
(3) 종법의 정치에서 사회로의 이동
5. 개방의 과도시대
(1) 국가 성격의 변화
(2) 상공업의 발전
(3) 사(士) 집단의 확대
(4) 정치사상의 대분야
(5) 관념상 정치사회의 개방과 폐쇄
6. 상앙 변법과 진의 통일 및 전형적 전제정치 출현과의 관계
(1) 유동사회에서 맹자가 “보민위왕(保民爲王, 백성을 보호해야 왕자가 될 수 있다)”을 말한 근거
(2) 유동사회의 배경하에서 상앙(商?) 변법의 부정적 의미
(3) 상앙 변법의 긍정적 의미
(4) 여불위(呂不韋)의 에피소드
7. 전형적 전제정체(專制政體)의 성립
(1) 중국과 서양의 전제의 차이
(2) 중앙 전제
(3) 일인 전제
8. 일인 전제의 다섯 가지 특성
9. 전제정치의 사회적 기초 문제
원주

찾아보기

top